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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44. 에필로그

by 영숙이 2020.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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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 1.

   가슴에 처음으로 남자의 가슴팍을 느끼게 했던 그 사람은 단 한 번의 눈짓도 보여 주지 않고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은 체 가버렸다.

   가버리는 그 뒷모습을 단지 그냥 보고 있었다.

   그 너무 잘 생긴 얼굴이 그리고 그 엉성한 걸음걸이가 차츰 따스해져 가던 눈빛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 가슴에 매달릴 수 있기를.

 

   처음으로 남자를 느끼게 했던 그 사람은 단 한 번의 눈짓도 보여 주지 않고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은 체 가버렸다.

   

   가버리는 그 뒷 모습을 단지 그냥 보고 있었다.

   아니 가버리고 나면 그 공허함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먼저 떠나 왔다.

   악수도 해 본적 없고 손도 한번 잡아 보지 못한 사이지만

   혼자 남아 있게 된다면 폭발할 것 같아서 먼저 떠났다.

   혼자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먼저 떠나 왔다.

 

   처음으로 남자를 느끼게 했던 그 사람은 단 한 번의 눈짓도 보여 주지 않고 

단 한번의 눈길도 주지 않은 체 가버렸다. 

 

   두사람에게 주어진 6개월이란 결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서울의 카톨릭 의대 성심 병원에서 미친 듯이 바쁘게 살던 32살의 의사 선생님을 버스도 잘 안 다니는 깡촌 시골에서 22살의 모자 보건 요원으로 만났다.

   가슴에 심겨진 강렬한 그림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 홀로 선 버드나무 "

 

   제목까지 정하고 소설로 쓰고 싶었지만

   소설은 쓰고 싶다고 저절로 써지는 글이 아니었다.

   

   울산에서 적응하느라 시간이 흐르고

   정신이 들고 나니

   객지의 외로움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다.

   

   그때 만약 한번이라도 토닥토닥 안아 줬더라면

   그때 만약 어깨를 한번이라도 따스히 감싸 줬더라면

   그렇게까지 힘들어 하고 외로워하진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때 우린 그렇게 살았다. 

   한번이라도 토닥토닥 안아 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어깨를 한번이라도 따스히 감싸 주면 정말 큰일 나는 줄 알고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땐 우린 그렇게 살았다.

 

   친구도,

   가족도,

   아는 이도 없는

   단지 직장 동료들과 학생들이 전부인 객지 생활 속에서

   혼자 참 많이도 외로워하고 방황했다.

 

   5년이 지난 어느 날.

   윤선생님이 포항 성심 병원에 근무하는 걸 알게 되었다.

   전화를 하고

   약속을 하고 선생님을 찾아갔다.

 

   진료실에서 만난 것이 아니고

   윤선생님은 주차장 차 속에서 대기하고 계셨다.

   

   경주 무슨 주차장에 도착하여 선생님은 물으셨다.

   

      ㅡ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ㅡ

     

   무슨 자다 깬 홍두깨람?

   차라리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과 환자로 만나는 게 더 나았을 뻔.

   서로 아는 체하고 악수하고 잘 지내 셈 하고 끝나는 게 좋았을 듯.

 

   체중이 5킬로쯤 불어난 그냥

 

      ㅡ 꼰대 ㅡ

 

   였다.

   

   졸부가 입을 법한 번쩍이는 비싼 모직 곤색 천에 연한 미색 줄무늬 양복을 입은

   전혀 낯선 이였다.

   이 사람이 정말 윤선생님일까?

   아직도 의심스럽다.

   청성 보건 지소에서 알았던 그 윤선생님과 동일 인물인지.

 

   눈을 힐끗하면서 영숙이의 팔을 보고

   

      ㅡ 피부도 금방 시드는데 빨리 결혼 하지.  ㅡ

 

   으 ㅡ 아.

   아무 말도 못 하고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차에서 내렸다.

   이런 상황은 없었다.

   영숙이가 상상했던 그 수만 가지의 경우의 수에, 수많은 상상속에 이런 상황은 전혀 상상이 안되어 있었다.

 

   그리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를 보면서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잘 안 되었다.

   분명한 건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영숙이가 그리워하고 영숙이의 가슴속으로 걸어왔던 윤선생님이 아니라는 거다.

 

   영숙이는 울산으로 돌아와서 미친 듯이 선을 보고

   아마도 스물대여섯 번은 족히 봤을 거다.

   아무것도 안 보고 단지 선해 보이고 성실해 보이고 속을 안 썩일 거 같다는 이유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좋은 만남을,

   하나님의 축복을 허락하신 것이다.

 

 

<에필로그> 2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면 그건 나 자신을 위해서 이로울게 없는 것이다..

 

      “ 영숙이는 여전히 건강하리라.

        영숙이는 여전히 자신의 일을 잘해 내리라.

        영숙이는 여전히 어려운 나의 상황을 잘 극복해 내리라

 

   다음날부터 한달 동안 잠을 잤다.

 

   지독한 증오심이나,

   지독한 애정이나,

   지독한 고통이나,

   지독한 어려움이나,

   그 모든 것을 잠재우기 위하여

   꼭 해야 할 일과 먹는 일을 빼고는

   되도록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무조건 잠만 잤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무엇도 떠올리지 않는

   지독한 무신경 속에서 잠만 잤다.

 

   어느날 저녁,

   막 해가 주위를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이면서

   서산으로 넘어 가고 있었다.

 

   영숙이는 몇일 전부터 모아 놓았던,

   그동안 썼었던 시들이며,

   소설이며,

   일기장들이며 편지들.

   영숙이에게 남아 있던 제자들이나 친구들의 편지들을

 

   몇 번 들락 날락해서 우수아파트 화단 모퉁이에 쌓아 놓고서 쪼그리고 앉았다.

 

   원고지 한 장씩,

   노트 한 장씩을 찢어 성냥불을 긋고

   불을 붙이면서 한 한가지만을 염원했다.

 

   단 한가지 만을

 

      “ 가장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가서 아무 것도 아닌체 살리라. 진정 아무 것도 아닌체 살아 가리라. ”

      “ 영숙이는 가장 평범한 남자 한테 시집간다. ”

      “ 영숙이는 가장 평범하게 살아간다. ”

 

   서산에 붉게 사위어 가는 저녁 놀 속에서 입속으로 수없이 중얼 거리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말을 하면서 서산의 붉은 해가 사위어 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다 태우고 났을 때에는 주위엔 저녁 어둠이 흠씬 적셔져 있었다.

그리고 어쩐지 꼭 이루어질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영숙이는 진정한 글쟁이가 아니었는가 부다. 중학교 때 썼던 일기장도 그때 태웠다.

 

   여기저기 소개하는데 마다 쫓아 다녀도 이상하게 연결이 잘 안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양호실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기도를 하는데 영숙이가 아담하면서 탄탄한 어떤 남자 샤워를 도와주는 환상을 보았다.

 

   추석 때 대전 집에 다녀오는데 울산 오는 고속버스 앞에서 대학동기 정화를 만났다.

   그때는 표를 못 끊으면 버스 앞에서 돈 들고 손 흔드는 사람한테 여분 표를 팔던 시절이었다.

   정화가 신랑을 부르더니 표가 하나 남아 있다면서 챙겨 줘서 같이 타고 왔다.

 

   봄방학 때 영숙이가 사는 집 가까이에 사는 정화네 집에 놀러 갔었다.

   정화는 아파트 아주머니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있었고 한꺼번에 두 사람을 소개하였는데 그때 남편을 만났다.

 

      " 외숙모가 사다주라 해서 사왔어요. "

 

   음료수를 아파트 문을 열고 받으면서 이 남자는 여자 속은 안썩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10일 딱 100일 만에 결혼하고 살면서 서로를 알아 갔다.

 

   어느 날 친정에서 샤워하는 걸 도와주다가 그때 기도하면서 본 환상 속에 남자라는 것을 알았다.

   살면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이 보내 주신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힘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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