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또순이 어렸을 적에

또순이 어렸을 적에 94 - 고속도로

by 영숙이 2019. 11. 18.
728x90
반응형

 

 

 

174 - 1) 고속도로 1

   

    1969년 2월에 군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옥천 여자 중고등학교를 진학했으니까

    1970년 고속도로를 준공할 당시 옥천 여자 중학교 2학년 이었다.

 

 

    수업 하다가 선생님이 운동장에 모이라고 하였다. 

    운동장에 모여서 

    종이로 만든 태극기를 흔들며 도착한 곳은 

    새로 개통하는 고속도로 였다.

 

   

    재잘 재잘 고속도로 한옆에서  떠들고 있는데 

    언제 개통을 하는지 

    또 군악대의 빵빠레는 언제 울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다리고

    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

 

 

   선생님이 갑자기 태극기를 계속 흔들라고 하였다.

   영화에서 보면

   개통식에는 반짝이를 뿌리고

   종이 테이프를 가위로 끊던데

 

 

   무슨 고속도로 개통식에

   아무 것도 없는데 종이 태극기를 흔들라니 의아 했지만

   선생님이 흔들라 하니까 열심히 태극기를 흔들었다.

 

 

   검정 세단 몇대가

   도로 위를 쌔 ~ 앵 지나갔다.

   눈 깜짝 할 사이에

 

 

   방금 대통령이 지나 갔으니까

   이제 그만 학교로 돌아 가자고 하였다.

 

 

  여기까지 오는데 20여분 걸어 와서

  기다리는데 30분

  다시 돌아 가는데 20여분 걸어 가야 한다.

 

 

  소퐁도 아닌데 공부도 안하고

  이렇게 나오는건 좋았지만

  고속도로 개통식이

  개통식 같지가 않아서 아쉬웠다.

 

 

  개통식이

  검정 세단 몇대가

  쌔 ~ 앵 지나가는 것이라니

 

 

  서울서 부산까지 가는데 5시간 밖에 안걸린단다.

  그 길을 대통령이 쌔 ~ 앵 지나 가는데

  쌔 ~ 앵 지나 가는걸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 하러 나온 것이다.

 

 

 

174 - 2) 고속도로 2

   

 

    아이들과 종종 고속도로 이야기를 하였다.

    고속도로를 타본 아이는

    굉장한 무용담이었다.

 

 

      " 나 어제 고속버스 탔었다? "

      " 그래? "

      " 어디 갔었는데? "

      " 서울 가는데 대전 가서 고속버스 탔어! "

 

 

   모두들 그 아이의 둘레에 서서

   귀를 쫑끗 세우고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고속버스 타니까

      정말 예쁜  언니가 사탕을 주더라! "

     " 그래?  사탕을 전부 줘? "

     " 응 탄 사람 모두에게 사탕을 줘! "

     " 그으래? "

     

 

    " 사탕 주는 언니도 엄청 이뻐! "

    " 얼마나 이쁜데? "

    " 연예인 보다 더 이쁘고 날씬하고 키도 커! "

    " 외국 잡지책에 나오는 사람 같아! "

    " 와 ~~ "

 

 

   감동의 물결이 듣는 아이들의

   가슴을 적시고

   상상의 나래를 편다.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탕주는  언니는

   (지금의 비행기 스튜디어스 언니들보다)

   더 이쁘고 더 날씬하고

   사탕도 준다고 한다.

 

 

   그런 고속버스를 타 봤다니

   우리는 언제 고속버스를 타고

   이쁜 언니가 주는 사탕을 먹어보지?

   언제 그런 일이 생길지 요원한 일일거 같았다.

 

 

174 - 3) 고속도로 3

 

 

   또순이는 마음이 답답하고

   정말 심심한 날에는

   고속도로가 보이는 작은 동산을 올라 갔다.

 

 

   성당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올라 가서

   낮으막한 동산에 오르면

   가끔씩 자가용이 달리는 고속도로가 보였다.

 

 

   동산 꼭대기는 나무도 없이 

   잡풀이 가득 나 있는

   무었을 심기에는 너무 작고 평평한 땅이 있었다.

   

 

  평평한 곳이 끝나는 곳에는

  작고 연약한 나무가 

  2~3 그루 자라고 있었다.

 

 

  또순이는 그 동산 위에서

  고속도로를 지켜 보면서 

  차가 몇대 지나가는지 세어 보고는 하였다. 

   

 

 

     " 언제인가는 또순이도

       저 고속도로를 자가용을 타고 달릴거야! "

 

 

  정말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서

  언제인가는 차를 타고

  저기 보이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상상을 하고는 하였다.

 

 

  미래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그때 꿈꾸었던 것 중에 하나가

  언제인가는 내가 쓴 책이

  집집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꿈이었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작가들의 글처럼

  내 글이 교과서에 실리고

  그 국어 책이 집집마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상상만 해도 위로가 되고 즐거워 지는 일이었다.

 

 

    ' 이 ~ 야, 야 ~ 호 내 책이 대한민국 집집마다 있구나! '

 

 

  어느 날 올라 가니

  땅 위 잡풀로 가려진 약간 움푹 파인 곳에

  앙징맞고 귀여운 조그만 새끼들이

  몇마리 꼬물 꼬물 있었다.

 

 

  눈도 못 뜨고

  움직일 줄도 모르고

  그렇게 둥지 안에서 자고 있었다.

 

 

  몇일이 지나서 올라 갔더니

  빈 둥지만 남아 있고

  그 안에 있던 새끼들이 한마리도 없었다.

 

 

  나중에 보니

  그 귀여운 새끼들이

  바로 쥐새끼 였었다.

  쥐새끼도 엄청 귀여웠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쥐를 키우는 사람도 있는가 부다.

 

 

 그후 정부에서는 

 식량증산을 위하여 보리 혼식을 장려 하였고

 쥐 잡기도 실시 하였다.

 

 

 이후 학교에서는 점심 시간에

 도시락에 보리 혼식을 했는지 검사하고

 

 

 특별히 쥐잡기 날을 지정하여

 쥐꼬리 잘라 오는 날도 있었다.

 

 

 파리 잡아 오는 날도 있었다.

 

 

지금의 아이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이다. 

 

     

 << 참고 >>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기 전 부산과 서울을 통행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경부선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경부고속도로는 서울과 부산을 5시간 내로 잇는 사업으로, 기공 전에는 현실성 등의 이유로 논란이 많았다.

   경부고속도로는 429억원이 투입 되어 1968년 2월 1일부터 1970년 7월 7일까지 2년 5개월만에 완공 되었고, 연인원 892만 8천명과 165만대의 장비가 투입된 대형 사업이었고, 77명이 건설과정에서 사망하였다.

   16개의 업체와 3개 건설공병단이 참여하여 건설하였다.

   2014년 승용차의 서대전 - 부산간 통행 요금은 13,800원이나 1970년엔 1,000원이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 되자 고속버스도 운행을 시작하였다.

   1970년 당시 서울 - 부산간 고속버스 요금은 성인 1명 기준 1,600원이었으나, 2019년 3월 1일 인상 기준 서울 - 부산간 고속버스 요금은 일반고속 기준으로 24,200원이다.

 

 

<경부 고속 도로 >

 

처음 경부고속도로를 뚫을 때에 엄청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차도 몇대 없는 나라에서 돈도 없는 나라에서 월남전에 참여한 대가로 받은 돈으로 길바닥 닦는다고 얼마나 많은 반대가 있었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쯤이었다.

고속도로 개통한다고 깃발 들고 고속도로 나가서 기다리는데 도대체가 자동차가 오지도 않는 것이었다.

 

얼마 만에 차 몇 대 지나간 것 같았는데 끝났다고 학교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 후 고속도로가 보이는 산꼭대기로 가끔 올라가서

어쩌다 자동차 한두 대 지나가는 고속도로를 바라보며

언젠가는 저 길을 자가용을 몰고 지나 갈 거라는 환상을 꿈꾸고는 하였다.

 

몇 년 후 우리나라가 2000년대에는 국민 10인당 자동차 한대씩 일거라고 정부에서 발표했지만

정말 그 장미 빛 무지개를 믿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됐을까?

 

나 지금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그 환상 속에 살게 된 것은 정말 나 혼자만의 힘일까?

 

누군가가 선각자가 있었고 결단력이 있었고

그리고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 이대로 우리나라 경제성장 멈출 것인가?

과거에 이룬 것들의 열매만을 먹으며

후손들에게 우리가 물려받은 것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물려줄 것인가.

 

건설현장에서

사막에서

수없는 전쟁터에서

실제로 토목공사를 지휘한 사람의 의견을 못 믿는다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여전히 책상 앞에서 탁상공론만을 일삼는 사람들의 의견에만 동조해야 마땅할지.

우리나라가 왜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신음하고 세계 최대 빈국이 됐었는지를 잊었는지.

 

그것은 탁상공론과 당파만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때에 세계에서 일해 본 전문가가 있었고 중용했었더라면

최소한 실학자만이라도 중용했었더라면 ...

지나간 역사를 되풀이하지말자.

 

경부고속도로 반대한 사람들도 많았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