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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또순이 어렸을 적에

또순이 어렸을 적에 11 - 자치기

by 영숙이 2019.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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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정월 대보름

   

   달빛이 눈부시게 

   마당으로, 

   지붕으로, 

   길로, 

   들판으로, 

   산등성이로 쏟아져내렸다쏟아져내렸다.

   

   정월 대보름의 눈부신 달빛이  세상을 점령하였다.  


   모든 동네 사람들이  떨어진 동네 어귀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서낭당에 모여 있었다. 

   

   돌탑 아래에는 낮에 외갓집 정지에서 찌던 시루떡이 놓여 있었고 

   그 앞에 외 할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소지 종이에 불을 붙여서 

   동네의 평안을 빌면서

   농사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마지막 남는 작은 불꽃을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계속해서 소지 종이에 불을 붙이고 기도를 중얼거리면서 작은 불꽃을 띄워 올리는 외 할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었다. 

   내가 알던 외할아버지 모습이 아니었다.
   

   또순이도 다른 동네 아이들과 같이 길게 줄을 서서 외할아버지 소지 올리는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낮에 그토록 맛있게 보여서 먹고 싶었지만 손도 못 대게 하던 시루떡  조각을 손에 받아 들었다.


   쏟아져 내리는 눈부신 달빛 속을, 

   

   별빛이  보일 정도로 밝은 달빛이, 

   얇은 신부의 베일처럼 

   온 세상에 뒤덮여 있는 풍경 속을

   

   마치 꿈속을 걸어가는 것처럼 구경하면서 

   외갓집으로 돌아왔다.


  외갓집 마당에도 유난히 밝은 달빛이 가득 내려 앉아 있었다. 

   

  티 하나 없는 하얀 신부의 레이스 베일 같은 눈부신 달빛 속에

  외할머니가 마당 한가운데 백설기 시루떡을 떡시루 그대로 밥상 위에 올려놓고  손바닥을 비비며 연신 절을 하고 있었다. 


  왠지 외할머니에게 말을 걸면  될 거 같아서  외할머니  대문간에 서서 밝고 고요한 달빛 속 외할머니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무엇이 저토록 간절할까? '
   

  달빛 때문인지, 

  외할머니 모습 때문인지   없었지만 

   

  그날 외갓집 마당에, 

  온 집에, 

  지붕에,

  산과 들에 덮여 흐르던 달빛은 다른 날과 다른 달빛인 것은 확실하였다

 

 .

32. 대문 옆 우물 

  

   외갓집 대문 옆에는 마을에서 유일한 우물이 있었다. 

   

   물론 몇 집에 우물이 있었지만 그 우물은 판 집에서만 사용하는 것이고 마을 공동 우물은 외갓집 대문 옆뿐이었다.


   동네를 조금만 들어오면 동네길 옆에 있었기 때문에 지나가던 나그네들은 목이 마르면 그 우물물을 퍼서 마셨다. 

   덕분에 우물물을 퍼 올리는 두레박을 빌리러 외갓집에 나그네들이 자주 들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문둥이 이야기가 떠돌던 시절이라 동네 아이들이 이런 말을  했었다.
   

   "얼마 전에 문둥이가 지나가면서 우물에 침 뱉었어! 동네에서 아무도 밥 안 준다고!" 
  

   우물물을 퍼 올릴 때마다 그 말이 생각나고 무서웠지만 여전히 우물물을 길어 마셨고 차가운 물은 정말 시원하였다.


   두레박으로 퍼올린 물을 먹고 난 후에 버리면

   물길을 따라 미나리 밭으로 흘러들어 가 미나리꽝에 미나리도 잘 자라고 

   미나리꽝 옆에 있던 밭에 토마토와 고추도 잘 자라고 

   상추도 오이도 잘 자라서 여름 반찬으로 최고였다. 


   외양간에 소도 잘 크고 그 옆에 화장실이 차면 외 할아버지가 똥지게를 지고 똥을 퍼서 밭으로 날라다가 밭에 뿌렸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살았는데 전염병에 걸렸다던지 동네 누가 그 우물물을 먹고 배가 아팠다던지 그런 일은 없었다.  


   그 우물 물을 길어서 국그릇에 담고 금방 해낸 뜨거운 밥을 말아 후루룩후루룩. 

   얼마나 맛있는지 먹어본 사람만 안다.

 

 

33. 자치기

     

     동네 한가운데 마을회관   무덤에 아이들이 모여서 자치기를 하였다.


     무덤 머리 쪽에 길쭉한 홈을 파고  위를 가로질러서   길이의 하얗게 벗긴 나무를 올려놓고 1m 정도의 나무 막대기로 힘차게 들어 올린다. 
    편을 가른 상대편 아이들이 무덤 이쪽 저쪽에 흩어져 있다가 날라오는  막대기를 받던지, 

    못 받으면 떨어진 곳에서 주워  나무 막대기가 길게 놓인  위로 던져서  맞추면 2단계로 진입한다.


    2단계는  위에   막대기를 세우고 한쪽을 쳐서 튀어 오르면 그걸 맞추어 멀리 날리는 것이다. 

    그러면 날아간 곳까지 긴막대기로 재고 이긴 쪽은 계속 자치기를 돌아가면서 하고 지게 되면 막대기를 받아내는 술래가 된다. 


    또순이도 막대기를 날렸지만 단번에 잡혀서 또순이네 편이 술래가 되었다. 
   

    그 시절 무덤은 그냥 우리의 놀이터였다. 

   

   동네 한가운데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고  무덤에서 노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누구의 무덤인지도 몰랐고 안다고 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자치기는  시절 우리들이 모여서 즐겁게 놀았던 최고의 단체 게임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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