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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또순이 어렸을 적에

또순이 어렸을 적에 98 - 아카시아 꽃

by 영숙이 2019.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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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아카시아 꽃 

 

     어렸을 적에 산에 아카시아 나무가 정말 많이 있었다.

     들은 얘기로는 아카시아 나무가 쓸모 없는 나무라서 일본 사람들이 일부러 산에 많이 심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5월이 되면 아카시아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성당 마당에는 고목에 가까운 아카시아 나무가 있어서 아카시아 꽃이 봄바람에 흔들리면 정말 보기 좋았다.

    또 봄바람에 실려 오는 아카시아 향은 그냥 행복이었다.

 

 

    아카시아 꽃을 가지고 엄마는 떡을 쪄 주셨다.

    지금 아이들은 아카시아 꽃으로 만든 떡을 구경은 커녕 상상도 못할 것이다.

    아카시아 꽃에 쌀가루를 버무려서 채반에 삼베를 놓고 그 위에 올려 쪄내는 아카시아 꽃 버무리를 만들면 달큰하게 씹히는게 맛이 있었다.

    밥먹는 거 외에 특별한 간식이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그런 간식을 먹는 게  좋을 수 밖에. ( 또순이 엄마 또래는 쑥 버무리와 고사리 국을 먹어야 하는 시절을 보내셨다.)

   

 

    성당 마당으로 올라 가고 있는데  또순이 또래의 남자 애가 말을 걸었다.

        " 성당 사택에 사니? "

        " 응, 그런데? "

        " 성당에 의사 선생님이 우리 아버지셔! 서울 사는데 여기 놀러 왔어! "

        " 그래? "

     하늘색 와이샤쓰에 까만 양복 바지를 입고 퉁퉁하니 하얀 피부에 살집이 좋은 진짜 서울내기였다.  

 

     

     지금은 살이 찐 아이들이나 어른들에 대한 인식이 별로지만 또순이 어렸을 때만 해도 살이 쪄야 사장이라고 생각 했다.

      굶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살찐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았고 허리 둘레가 곧 인격이던 시절이다.

 

 

       의사 선생님 아들인 서울 내기하고 나란히 서서 성당 마당으로 걸어 가는데,

       성당 마당에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에 수없이  달려 있는 아카시아 꽃들이 불어 오는 봄바람에

       살랑 살랑,

       흔들 흔들, 

       찰랑 찰랑.

 

 

      어여쁜 봄 소녀들이 나란히 나란히 하얀 드레스를 입고 손에 손 잡고

      살랑 살랑

      흔들 흔들

      찰랑 찰랑

      노래를 부르는 오페라 무대였다.

     

     

      잘 아는 아이도 아니고 특별한 아이도 아니었지만

      사춘기 소녀 혼자 보는 것이 아닌

      그 누군가와 함께 보는 그날의 아카시아 꽃은 정말 특별했다. 

   

 

 

        " 아카시아 꽃으로 떡해 먹으면 엄청 맛있다? "

        " 뭐? 아카시아 꽃으로 어떻게 떡을 해먹어? 난생 처음 들어 보는 소리네!  그런 떡을 어떻게 먹어? "

 

   

      또순이는 머쓱 했다. 

      자신이 아카시아 꽃으로 떡이나 해먹는 원시인이나 시골에 사는 촌 아이 처럼 느껴졌다. 

      서울내기에 비하면 촌뜨기는 촌뜨기였지만.

 

 

      아카시아 나무는 나무로서는 쓸모 없었을지 몰라도

      봄이면 꽃을 따서 떡 버무리를 해먹고 봄바람에 흔들리며 좋은 향기를 뿜어 주는 꽃은 향기와 더불어 벌들을 바쁘게 하는 꿀의 원천이었으며

      또순이의 어린 시절에.

      온산을 붉게 물들이던 진달레, 철쭉과 함께 잊을 수 없는 꽃이었다.

 

 

176. 홍두깨

 

      사춘기.

      또순이는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다.

   

 

     책을 좋아 했던 탓에 야한 소설이나 잡지책등 가리지 않고 책 속에 파묻혀 있었던 적이 많았지만 

     모든 게 불만 투성이였다.

       ' 아버지는 왜 그렇게 술을 마시는지 ㅡ '

       ' 엄마는 항상 무표정한 얼굴로 웃는 얼굴은 한번도 보여 준 적이 없고ㅡ 

 

 

    이런 저런 불만을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에 전부 욕으로 썼다.

    그건 일기장이 아니라 그냥 욕을 쓰는 욕쓰기 공책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 일기장을 읽었을 때 왜 그렇게 불만이 많았는지 그럼 그 불만을 체계적으로 써 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뜻도 없이 그냥 끝없이  욕을 나열한 공책이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도 없이 욕만 잔뜩 써 놓은 공책을 찢어서 태워 버렸다.

   

 

    욕으로 일기장을 메꿨다 해도 어쨌거나 일기를 쓰면서 또순이는 욕구불만을 공책에 쏱아 놓아서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성격도 있을테고 사춘기의 혈기가 때때로 말썽을 일으켰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 없는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만큼 힘들었었나 부다.

 

 

    하루는 무슨 일인지 엄마랑 투닥투닥 하다가

    아마도 동생하고 싸우다가 엄마가 동생 편을 들어서 화가 났는지

    절구통에 무엇을 빻을 때 쓰는 홍두깨를 들고 방문을 냅다 질러서 부셔 놓고 외갓집으로 튀었다.

    그때의 방문은 나무로 격자 무늬를 짜서 만든 열고 닫는 여닫이 문이었는데 홍두깨로 방문을 힘껏 지르니까 우지끈 뚝딱 부셔지는 소리가 났다.

    홍두깨로 질러 놓고 부서진 걸 보니까 겁이 나서 그길로 외갓집으로 가서 몇일 동안 집에 안 왔다.

    안 온게 아니라 못 온거 였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외갓집에 있다가 집에 오니까 방문이 고쳐져 있었고

    무지기 혼날 줄 알았는데 엄마는 아무 말도 안했다.

       " 아이고 무식하게 방문을 다 부셔놓고  참 내~~ "

    그냥 어이 없다는 듯 웃었었다..

 

 

    그때 이후로 부시는건 안했다.

    왜냐고?

    부시면 고치는 데 돈이 드니까.

    그때 이후로 또순이 엄마도 또순이랑 또돌이가 싸우면 또돌이 편을 들어 주지 않았다.

 

 

177. 성당 진료실

 

     또순이가 귀가 아프다고 하니까 엄마가 성당 진료실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하였다.

     성당에는 자주 가는 편이었지만 진료실을 가는 건 처음 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성당 마당을 가로질러서 진료실의 파랑 철문을 바라 보면서 진료를 받으러 걸어 갔다.

   

     

     기분이 이상 하였다.

     또순이가 환자가 되어 처음 가보는 진료실이었다.

     다른 사람이 들락 날락 하는 건 보았지만 그건 진료를 받으러 다니는 특별한 사람들로 보였었다.

 

 

    문을 열고 진찰 받으러 왔다고 하니까 의사 선생님이 계시는 진찰실로 들어 가라고 하였다.

    선생님은 또순이 귀를 후레쉬 불로 비추어 보더니 무언가를 귓속에 칙칙 뿌려주고

    귓속이 부어 있으니까 먹는 약을 줄테니 가져가서 먹으라고 이제 가도 된다고 하였다.

 

   

    대하 드라마를 찍을 것처럼 용감 무쌍하게 진찰실 문을 두드리고 용기 내어 들어 왔건만  

    선생님은 예삿일 처럼 그저 귓속을 후레쉬로 한번 쓱 비춰 보고 약을 줄테니 가져가서 먹으라고ㅡ 그게 전부 였다.

   

       ' 병원 진료 받는게 이런 거였나? 아무 것도 아니잖아? '

   

    폼생폼사 온갖 폼을 다 잡고 나름 긴장해서 왔는데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178. 수녀님

 

      아침에 성당 뜰을 지나서 학교 갈 때나 학교  마치고  성당 마당을 가로질러 가다 보면 숙소에서 본당으로 향하는 수녀님들을 만났다.

      수녀님들은 온몸을 검은 천이나 하얀 천으로 감싸고 있었는데 얼굴 표정이 너무나 평화 스러워 보였다.

      저절로 또순이의 고개가 수녀님들을 따라 다녔다.

 

       

          " 무슨 일로 수녀가 되었을까? "

     이런 생각은 들지 않고

         " 어떻게 저렇게 이뻐 보이지? "

 

 

      하루는 그 이쁜 수녀님이 말을 걸었다.

      그림 속에서 방금 나온 듯한 조금 나이가 지긋하신 수녀님이 또순이에게

         " 얘 너 있잖아! 교리 공부 하고 싶으면 토요일 날 오후 2시에 여기 있는 이 문 앞으로 오세요!  "

   

 

      또순이는 성당을 늘 기웃기웃.

      성당 안으로 들어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본당에서 미사보를 머리에 두르고 기도하고 있는 모습들을 본당 입구에 서서 한참씩 바라 보기도 하였다.

      자주 자주 마추치는 이 낯선 소녀에게 교리 공부를 하라고 권하신 것.

      아마도 또순이네가 성당 사찰에 살고 있는 것도 아셨을지도.

 

 

      토요일 날

      놀다가 보니 수녀님이 말씀 하신게 생각이 났다.

      2시가 훌쩍 넘어 있었지만 얼른 수녀님이 말씀 하신 건물 입구에 가보니 아무도 없었다.

     

        " 너무 늦었나 부다! "

 

      지금 같으면 그냥 복도를 따라 들어 가서 방문을 두드리며 교리 공부 하는데가 어디지요? 하고 물었을텐데

      그때의 또순이에게는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지만,

      수녀님들이 살고 있는 땅은 또순이가 살고 있는 땅에서 멀고 먼 거룩한 땅이었다.

 

 

       이후로 여전히 수녀님들과 마주쳤지만 그분이 그분 같은 수녀님들 중에서 또순이에게 말을 걸었던 수녀님은 없었다.

       그냥 시내에서 만나던지 길이나 그 어디에서 만나더라도 또순이게는 그저 멀고 먼 낯선 분들이고 그냥 멀리서 바라 보아야 하는 분들이었다.

       거룩하고 정결한 땅에 거주하시는 분들.

       수녀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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