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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

초등학교 동창생

by 영숙이 2019.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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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살.

 

결코 젊다고도 늙었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

결혼 한지 10년 안팎의 이제 생활의 기반을 닦고 아이들도 왠만큼 키운 시기.

 

학교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여 적응하고

아이들 낳고

정신 없이 키우고

집 장만하고 ......

 

그러다 문득 옛날 생각이, 동창생들 생각이 날 때

다들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질 때이다. 

또순이도 예외는 아닌 듯

그동안 사느라 바빠 돌아 볼새 없다가 이젠 조금은 주위를 돌아 보게 된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나설 정도는 아닌데 역시 같은 이유에선지 남편도 제작년부터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마침 남편이 졸업한 초등학교가 무주초등학교여서 또순이의 친정인 대전과 가깝기에 동창회에 참석 할 때 마다 어차피 빈차인 바에댜 카풀 운동도 벌이는데 방학인 또순이를 차에 태워 친정에 데려다 놓고 하루 밤을 잔 다음 이틀날 동창회에 참석했다. 

이번엔 마침 회사가 토요일 격주 휴무제로 토요일 날 쉬게 되어서 금요일 저녁에 대전에 올라 갔었다.

 

토요일 오후

찜통 더위 속.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겸사 겸사 또순이가 졸업한 군서 초등학교에 가보자고 한 것이다.

 

옥천을 지나 군서로 가는 길엔 피서 차량으로 나오는 길이 꽉막혀 있었다.

또순이가 살 땐 볼 수 없었던 피서 인파는 엄청나게 많았지만

차창 밖에 강변의 물은 또순이가 살 때 보다 약 반 밖에 안되는 것 같았다.

물이 줄어서 얼마 없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눈으로 직접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기야 전국 어디를 가든 공해에 찌들지 않은 곳이 드물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물줄기를 찾아서 저리 모여 들었다가 지금은 빠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토요일이어서 밤새 야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피서 인파와 국토의 몸살.

올 여름엔 우리라도 정말 피서 가지 말고 집이나 지켜야 할까부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눈이 도로에 수북이 쌓인 탓에 버스가 다니지 않아 옥천에 있는 외갓집 갔다 오면서 옥천 장날이라 장보러 나가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오고 있는 도로를 따라 동생과 둘이서 미끄럼을 타며 오는 데 처음엔 재미 있었지만 갈 수록 얼마나 멀게 만 느껴졌었는지!

 

예전의 그 비포장 도로가 까만 아스팔트로 깨끗이 포장이 된 탓인지 금새 또순이가 졸업한 군서 초등학교가 나왔다.

교문 앞 문방구가 보이지 않았는데 대신에 교문을 저쪽으로 옮겨 그 쪽에 문방구가 있었다.

 

학교는 역시 아담하고 작은 시골 학교 다운 모습 그대로이다.

학교 운동장에 심어져 있던 나무들이 더 울창해진 것 외에는,

국기봉과 그 앞의 동상도 그대로이고.

 

교무실에 들어 가서 1969년 제 45회 군서 초등학교 졸업한 아이들 주소 좀 알 수 없느냐고 하니까 아저씨가 월요일 날 연락해 보라 한다.

실망한 마음으로 실내를 휘둘러 보며 나오자니 학교 건물이 단층에서 이층으로 그리고 나무로 만든 건물에서 시멘트로 새로 지은 것이 눈에 띄었다.

빨간 벽돌의 군서 유치원도 보인다.

또순이가 배웠던 교실은 보이지 않았지만 옛날 그 자리에 있던 교무실하며 이곳에서 배우고 졸업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친정에서 찾아낸 졸업 앨범 뒤에 주소록이 없어서 중학교 졸업 후 떠나온 또순이가 살던 마을을 가보고 기억 나는 초등학교 동창생 집을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배석칠 선생님이 세들어 사셨던 작은 집은 그대로였지만 학교 다닐 때에는 선생님이 사시는 집이라 생각해서인지 참 깨끗하고 아담해 보였었던 집이 지금은 참 작고 초라해보이기까지 하였다.

 

우체국이 길 건너로 이사를 갔고 빨간 벽돌로 개끗하게 지은 새 건물이었다.

 

드디어 다리 건너 금천리에서 유일하게 생각나는 아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6학년 때의 남자 반장 집을 물으니 바로 길가였다.

 

아직도 정정해 보이는 반장 어머니에게 초등학교 동창생이라 하고 동창생을 찾으니 인천 산다고 하고는 전화 번호를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면서도 얼른 묻는다.

 

" 아이는 몇명이우? "

 

남편하고 같이 왔다고 하니까 또순이가 차로 가는 길 내내 눈길이 따라 오신다.

조금은 쑥쓰러웠지만 이젠 그야말로 불혹의 나이가 아닌가!

 

금천리를 떠나와 명촌리에 명숙이네를 찾으니 친정 집에 명숙이 부모님이 그대로 살고 계셨다.

명숙이는 대전에 산다고 하였다.

 

대전 집 전화 번호를 묻고는 명숙이랑 수없이 지나 다녔던 길을 지나 차를 몰고 가면서 생각하니 6학년 때 학교에서 오후 늦게까지 공부를 해서 늦게 끝나 무서워서 못간다고 하면 명숙이 아버지가 명숙이 동생을 들에 업고 저만치 또순이 동네가 보이는 곳까지 바래다 주셨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인지 그 분은 나의 친정 아버지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다.

아직도 건강하시고 보기 좋은 모습으로 나이가 드시니 잠깐 뵈었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또순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살던 동네에 왔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낯설은 동네였다.

여기까지 행락 객이 찾아 오는지 무슨 가든이 서 있고 도로 옆으로는 양옥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렇게나 자주 꿈에 보이던 앞 산의 그 모습은 그대로 였건만

그 밑의 강변에는 물이 줄어 들어 있었고

특히 또순이네가 그렇게나 열심히 저녁 늦게까지 헤엄치며 놀아 대던 그 물가에는 헤엄치는 아이들을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아니 강변 뿐 만이 아니라 늘 동네 사람들이 초저녁이면 모여 앉아 있던 느티나무 아래에도

나무들은 그대로 였건만 아이고 어른이고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어디로 간 것일까!

 

마을 앞 도로는 깨끗하게 포장이 되어 있었지만 그 앞 도로를 걷는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차들만 바쁜듯이 속도를 내어 빈번하게 지나갈 뿐이었다.

 

또순이가 살던 집에 와보았지만 또순이가 살던 기와 집은 없어지고 그 자리엔 근사한 양옥집이 한채 들어서고 그야말로 깨끗하고 조용하게 그래도 옛날처럼 활짝은 아니어도 대문은 약간 열린 채 낯선 모습으로 서 있었다.

 

뒷집의 재연이네 대문은 그 색깔 그 양철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안을 들여다본 재연이네 집 모습은 바뀌었지만 아마도 생각에 아직도 재연이 오빠가 살고 계시지 않을까 싶었다.

 

마을에는 한 사람도 사람이 눈에 띄지 않기에 마을 초입에 서 있는 낯선 가든으로 들어서니 식당에는 아주머니 세분이 모여 앉아 있다가 인사를 한다.

 

  " 저 김응천이라고 이 마을에 살았는데요! 제가 국민학교 동창이거든요! "

  " 대전에 살아요! "

  " 그 사촌동생 금순이는요? "

  " 구미에 살아요! "

  " 저 혹시 재연이는 어디 살아요? "

  " 옥천에서 옷가게 해요! "

 

그랬다.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에 나가 살고 집을 지키고 있는 분들은 모두 연세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 뿐이니 마을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하고 모여 떠드는 소리가 날 턱이 없다.

 

마침 아주머니 한분의 남편이 또순이와 같은 동창생이라 한다.

180명 밖에 안되는 동기 동창생인데도 그 아주머니 남편 이름은 특별한 아이가 아니었든지 잘 기억나진 않았지만 대충 동창생들 소식은 들을 수 있었다.

 

여자 동창생중 하나인 문금옥이는 금천리에서 서화슈퍼를 하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남자 동창들은 특히 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는 동창생들은 3개월에 한번씩 모여서 계를 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또한 대부분의 동창들이 서울 그리고 대전과 옥천에서 산다는 것도.

 

가든을 나와서 그 집 마당에 서 있는 커피 자판기에서 시원하게 차가워져 있는 캔 커피 두개를 빼 가지고 남편에게로 갔다.

이럴 때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는 음료

 

커피.

 

이젠 매일 커피를 마시고 또 생활에서 커피를 빼 놓을 수 없는 필수품으로 알고 있듯이,

자동차가 우리의 생필품 임을 알 고 있듯이,

또순이가 살던 고향도 이젠 예전에 또순이가 기억하고 있던 고향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의 고향이 아닌 이젠 타지의 사람들이 와서 가든을 열고 있는 지금의 고향에서 마시는 찬 캔 커리의 맛.

 

무엇인가의 종지부를 찍으며 무엇인가를 새로이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또순이가 살던 마을을 약간 지나 지난 날 또순이네 집 산이었던 친정 아버지가 농장으로 가꾸셨던 그 산 꼭대기에 세워져 있는 양옥집을 바라보며 도로를 조금 더 달리니 아주 근사한 풍경 속에 가든이 여러 채 보였다.

 

이재희 Live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이렇게 멋진 풍경이었는데도 어떻게 또순이는 이곳에 한번도 와봐지질 않았을까>

 

10리 길의 초등학교를 다니면서도 5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이곳의 풍경은 오늘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쪽으로 올 일이 없었던 탓에 또순이가 사는 울타리 안만 보고 그 안만 보였기 때문일게다.

 

아직도 또순이의 손에 들려 있는 캔 커피를 마시면서 이젠 또순이는 또순이가 살던 고향을 벗어 났다는 생각을 하였다.

 

25여년 동안 가끔씩 꿈 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떠오르던

그 산과

그 강과

그 들녘 들

그 집들.

 

~ 고향 너머에 있는 무엇인가를 그리고 고향의 따뜻한 향기 보다도 더 좋은 사랑의 향기를 가꾸어 가야 할 때 ~

 

이렇게 뜨거운 여름 날 저녁.

남편이 모는 차 안에서 집에서 타 마시던 냉커피 못지 않은 시원하고 맛 좋은 캔 커피를 마시며 고향에서 느끼는 씁슬한 맛을 잊기로 한다.

 

그동안 객지에서 곤하게 살았던 타향살이를 풀어내고

그리고 새롭게 변신한,

향기롭고 달콤한 커피 향 같은 고향 만을 기억날 수 있도록 할게다.

 

1996. 8. 4일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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