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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

하얀 로맨스 그 후 이야기

by 영숙이 2019.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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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시작 -1

   

 

   사람의 사귐은 얼마나 잘 어긋 나는가! 

   그렇더라도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추억만 남는다고 했다.

 

 

  여행을 마치고 난 후에 그 애가 완성한 소설

    " 열두개의 반지 "

  그 소설이 학교 신문 문예 공모에서 장원이 되었다고 그 아이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또순이는 사실 그 때만 하여도 그것의 의미를 잘 몰랐다.

  만약 지금이라면 훨씬 더 그애의 기분을 잘 이해 했을텐데.

 

  막연히 또순이는 시인을 꿈꾸고 있었고, 

  문학을 꿈꾸고 있는 정도였으면서도

  앞으로 좋은 글을 쓰게 됨을 의심치 않았고

  그리고 역시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리라는 황당함을 의심치 않았던 또순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 인듯.

 

  무엇이 또순이를 그렇게 자신감 있게 했을까!

  아마도 젊음이라는 특권이 택도 없는 자신감을 주었을게다.

  거기에다가 아직 그 쪽에 깊이 빠지지 않았던 무지의 소치이리라!

 

 

  대학 신문에서 소설이 장원이 되어 일금 삼십만원의 상금과 상패를 들고 그 아이는 우리 집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기다렸어요! 사실은 어제 상을 받았거든요! 일금 삼십만원을 받았어요! 어제 상을 받자 마자 학교로 찾아 갔더니 산업 시찰을 갔다 하더군요! 의대 선배를 만났는데 그것도 모르고 찾아 왔느냐고 하더군요! 내가 맥주 사고 싶은데요! "

 

  들뜬 그 애의 목소리와는 달리 또순이의 대답은 냉담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를 집이 보이는 골목에서 만나니 당황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 애가 상을 받은 것이 나와는 전혀 무관하게 느껴지는 거였고 나랑 상관 없는데 왜 그애가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 저 맥주 마실 줄 몰라요! "

 

  사실이었다.

  맥주도 마실 줄 모르고 아직까지는 맥주 마시면 꼭 타락한 것 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 어제도 오늘도 친구들이 술 사라고 붙잡는 것을 갈 데가 있다고 뿌리 치고 왔는데요! 맥주를 못 마시면 맛있는거 사줄께요! 뭐 먹고 싶어요? "

     " 너무 늦었어요! 집에 들어 가야 해요! "

     "  그럼 내일 간호 학교 앞 다방에서 만나요! 루바에서.  몇시에 학교 끝나죠? "

 

 

 시작 -2

 

 

   간호학교는 수업이 항상 빡빡하다.

   5시에 만나기로 하고 그 날은 헤어졌다.

 

   그 다음 날 루바에서 만나 같이 레스토랑으로 갔다.

 

  일금 삽십만원.

 

  그때 공무원이던 아버지 월급이 십 사오만원 이었으니까 적지 않은 금액이었고

  그애는 또순이를 생각하면서 쓴 소설이었기에 또순이에게 특별히 뭔가를 해주고 싶어 했는데 아직 선물 같은 것은 할 줄 모르고 그저 뭐라도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어 했었다.

 

  부모님에게 상금을 드리고 친구들에게 한턱 낼 정도로 용돈을 타 왔다는 그애에게 나는 이유없이 비싼 것을 얻어 먹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그 때의 또순이에게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사치에 해당하였다.

  아는 음식 이름도 없었다..

   

    " 오무라이스요! "

    " 좀 비싼 것 먹으면 안되요? "

    " 오무라이스 먹을께요! "

   

  오무라이스와 같이 나온 양배추를 마요네즈와 함께 먹고 있자니 그애가 바라보면서 하는 말.

 

    " 풀만 먹으니 꼭 염소 같잖아요! 다른거 시키지! "

 

  사실은 다른 음식은 낯설었고 사실 먹어본 음식이 오무라이스 밖에 없어서 또순이가 가장 자신있게 먹어본 그리고 시킬 수 있는 것이 오무라이스였었다.

  안 먹어 본 것을 시킬 자신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걸 설명 해 줄 수도 없어서 잠자코 그리 맛있지는 않았지만 먹고 있었고 또 그애는 가만히 구경하다가 무슨 말인가를 했다. 

 

     " 중학교 2학년 때 나에게 슬픈 일이 있었어요! "

     " 네? "

 

  또순이는 그 애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는 걸 깨달았고 또순이는 그 이야기를 듣는게 겁이 났고 또 부담스러웠다.

 

  사실은 또순이 성격이 조금 참을성이 없고 경박한 면이 있어서 그런 것을 참고 들어 줄줄 아는 성품이 못되었었다.

  그 순간을 참았어야 하는데.

 

    " 오무라이스가 맛 있어요! "

 

  그 애는 말을 막는 또순이를 가만히 바라 보다가 말 할 시기를 놓치고 또순이 말에 대답했다.

 

    " 맛 있다고 하니까 다행이네요! "

 

 

  우리 집으로 바래다 주는 길.

  어두운 가로등 사이로 이따금씩 차들이 왕래하는 도로를 가면서

 

     " 아! 내가 다른 연인들처럼 데이트를 하는구나! "

 

  하는 실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인도 위에 길게 드리워진 우리들의 그림자를 밟으면서

   그 그림자의 길이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여행 갔다 온 후 같이 여행 갔었던 친구가 한 말이 귓가에 맴돌아 떨어지지 않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너, 그애 정도면 괜찮은게 아니고, 수준 이하야!  알겠어? 괜찮은 애들이 얼마나 많다고! 괜히 너 그 애랑 자꾸 사귀지 말아! 너만 손해야! "

 

   지금 같으면 조금은 사리 판단을 할 줄 아니 그런 말에 흔들리지는 않았을텐데 그리고 친구가 질투심 때문에 그런 말 했다는 것도 짐작 했을텐데 ......   

 

   나름대로 가치관이 확실하고 남의 말에 좌우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변명하자면 아직은 여렸기에

   또한 아직은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고 믿고 있었던 때 였기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는 이성을 한번도 가까이 사귀어 보지 못했기에

   또한 이성 사이에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잘 모르기에

   친구의 말에 알게 모르게 그 애에게 거리를 두고 있었으리라!

 

 

   또순이네 집 앞을 지나 저만큼 골목 끝.

   충남 대학으로 가는 테미 고개란 도로가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어두운 건물 그늘에서 무슨 말인가를 할 듯 하면서 머뭇거렸다.

 

     " 간호 학교 축제 한다면서요? "

     " 예! "

     " 훼스티발은 언제 해요? "

     " 축제 마지막 날에요! "

     " 파트너 있어요? "
     " 아니요! "

 

  사실은 훼스티발 파트너 없다고 걱정하던 차였다.

  그러면서도 그애에게 가자고는 안 했다.

  여자 친구의 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또순이도 하나 쯤은 감추고 싶었을까?

  어찌되었던 그 애 하고 같이 가고 싶지는 않았다.

  백마를 탄 먼 나라의 또순이가 모르는 어떤 좀 더 멋진 남자와 같이 가고 싶었다.

   어떻게 구해지겠지! 하는 생각.

   또순이가 걱정하는 소리를 들은 엄마는 히트치게 우연히 동생들과 알게 되었던 미국 선교사로 목원 대학에 유학 온 미국인을 데려 가라고 농담처럼 말했었다.

 

 

시작 -3

 

 

  축제 첫날.

  전야제에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아무도 올 남자 친구가 없었다는 것이 섭섭했는데 아르바이트 때문에 다음 날도 못온다고 하였다. 

 

   둘째 날.

   클라식 음악 감상이 끝나고 그 준비와 디제이로 애쓴 간호학교 단짝 친구랑 둘이서 뒷 정리까지 끝내고 교정을 늦게서야 빠져 나오는데 그애가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언제 왔어요? "

     " 한참 됐어요! 사실은 시작 할 때 부터 있었어요! "

     " 거짓말! 오늘 아르바이트 있다고 했잖아요! "

     " 오늘 하루 쉬기로 했어요! 이번에 시 써서 장원한 같은 신문기자 동기예요! 제가 가자고 해서 같이 왔어요! "

     " 무슨과예요? "

     " 국문과입니다. "

     " 아! 그러세요? "

 

  지난 번에 보여 준 신문에 실렸던 장원한 시를 쓴 이가 친구라고 하더니 바로 이 친구였나부다!

 

      " 저 친구 참 대단합니다. 나는 국문과니까 당연 하지만 국문과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소설을 썼는지 참 놀랐습니다.! "

   

     " 제가 처음부터 음악 들었는지 안들었는지 이야기 해볼까요? "

 

   그러면서 그 애는 또순이 친구가 수없이 연습을 하고 또 또순이는 들어 주었던 베에토벤의 " 마왕 "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감상까지 가락의 변화까지 설명하는 것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야기 하는 것을 들으면서 어쩌면 저런 감수성이 있어서 소설을 썼나보다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듣고 있었다.

 

      " 하얀 밤톨 속의 벌레처럼 자신의 일상을 파먹으면서 그 속에 웅쿠리고 앉아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라고 제가 쓴 장원 소감문 어땠어요? "

 

   또순이는 할 말이 없어서 대꾸를 못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처음 설명한 음악에 관한 것은 듣고는 있었으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외울 수 있을까 감탄 할 뿐이었고 소감문에 관한 이야기는 솔직히 잘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어서이다

 

   축제가 끝난 어느 날.

 

   참 축제 때에는 남학생을 하나 구하긴 구하였다.

   교회 대학생부 오빠야 한테 친구 한명을 소개해 달라고 하여서

   겨우 같이 갔었는데

   양복에 넥타이를 맨 정장이었으며 화려한 외모를 하고 있었는데

   또순이에게 애프터를 신청하지 않았었다.

 

   군대가려고 휴학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었으니까.

   아마도 내가 너무 어리던가 아니면 매력이 없어서였겠지!

   그애가 그걸 자꾸 물어서 사실대로 이야기 해주었었다.

   하루 저녁 훼스티발 파트너 였을 뿐이였다고.

   아무말도 없이 그 말을 듣고 있던 그 애는 별 표정 없이

   그날 그렇게 어두운 밤길을 걸어서 가버렸었다.

 

   지금 생각하면 또순이는 얼마나 철 없었던 아직은 미성숙 단계에 있었던 소녀였던가!

   백마 탄 왕자님을 먼 곳에 있는 먼나라 에서만 찾으려 하다니 

   참 어리석기도 하였지!

   아마도 둘 다 어려서였을게다.

   그애도 나도 이성을 사귀는 것은 처음이었고 그 애가 자기가 또순이보다 2살 많다고 하였지만 사실은 알고 보니 한살 차이였으니까!

 

   20살과 21살의 아이들이 알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그 애에 관한 나의 간호 학교 단짝의 평.

 

      " 너희 둘은 안되겠다! 둘다 흐느적거리니 어디 맞겠어? "

 

   아마도 그 애가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서 일테고 또순이는 또순이단짝 친구에게 평소에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 편이었으니까!

 

   여름 방학 직전 친구랑 하학 후 우리 집을 지나서 테미 고개까지 가서 뭔가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어 길가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얘, 어디서 너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

     " 응? 누가 나를 불러? 부를 사람이 어디 있다고? "

 

  뭐라고 큰 소리로 부르는 듯한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 곳에 그 애가 친구하고 서서 부르고 있다가 얼른 가게로 들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곳은 학사 주점이었고 가게에는 남학생들이 잔뜩 들어 앉아 있었다.

 

  아마도 한턱 내느라고 그 곳에 있다가 우리가 지나가니까 엉겁결에 부른 듯.

 

   또순이와 친구는 챙피하게 길에서 막 부른다며 그것도 사람들이 잔뜩 있는데서 그렇게 불렀다고 분개하면서 다시 우리 집 쪽으로 걸어 와서 한참을 떠들다가 친구 혼자서 그 길을 갔었다.

 

 

< 2 > 전개 - 1

 

   

   여름 방학 이후.

   우리 학교의 실습을 서울 영등포 성심 병원에서 했기에 병원 근처에 숙소를 정해 놓고 한 학기를 보냈다.

 

   8개월.

 

   시도 쓰고 또 책도 시집도 많이 읽고 지금은 없어진 청량리 복개천 헌 책방도 열심히 뒤지고 다니고 기억에 남는 책이라면 김소월 영역 시집을 한권 구해서 열심히 외우고 다니던 일이었다.

 

   실습을 마치고 새 학기가 시작 되었다.

   

   3학년 졸업 반.

   졸업반이 되고 보니 그동안 남학생 하나 제대로 사귀지도 못했고

   그러다 졸업하면 기회는 더 없을 것 같고

   또 서울 생활 해보니 역시 또순이는 우물 안 개구리였었다.

 

   별 볼일 없는 우물 안 개구리.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그 애와 다시 사귀는게 제일 나을 것 같은 판단이 섰다.

   더 늦기 전에 어떻게 연락할 방법이 없을까를 궁리 하였다.

   전화번호도 모르고 집 주소도 모른다.

 

   그래서 생각해낸게 충남 대학 서무실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부탁하는 거였다.

   고등학교 때 절친이었던 친구는 처음에는 안된다고 완강히 거절하다가

또순이가 애원하면서 자꾸 부탁하니까 어쩔 수 없이 비밀로 해야 한다고 여러 번 당부 하면서 그 애의 생활 기록부를 보고 그 애의 주소를 알려 주었다.

 

   전화번호는 없었다.

 

   하긴 우리 집도 또순이가 3학년이 되어서야 전화를 놓았으니까.

 

  간호학교 단짝 친구와 그 친구가 재수 할 때 부터 사귀었던 남자 친구가 군대에 간 이후 연락을 끊어 버려서 남자 친구가 근무 한다는 수원에 있는  군 부대를 서울에서 실습 할 때 추운 겨울 날 둘이 찾아 돌아 다녔었다.

 

  수원 역 비오큐에서 군인들한테 한 소리 들었었다.

 

     " 이 넓은 수원 어디에서 찾아요? 한강에서 김서방 찾기지! "

 

   그리고 또순이 절친은 그 남자 친구를 단념 했었다.

 

   이처럼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또순이가 또순이 남자 친구 집을 찾아 가는데 당연히 친구는 동행해 주었다.

 

   우리는 주소를 들고 그 애가 나에게 보내 주었던 시를 쓴 편지를 기억 삼아 그리고 그 애가 버스에서 내려 걸어 들어 가던 골목 길을 생각해 내어서 그 애네 집을 찾았다.

 

   주소를 들고 한 장소를 몇 바퀴나 돌다가 길가에 있는 조그만 가게에서 물어서 드디어는 찾았다.

 

   옆집에는 그 애의 시에 쓰여 있었던 것처럼 교수댁이 있었고 교수댁 옥상에 빨래가 펄럭이고 있었다.

 

    친구는 가게에서 기다린다고 혼자 가라고 하였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내친 김에 도로 그냥 돌아가지는 못하겠고 용감하게 그 집 대문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그 집 조그만 철 대문에 서서 시간은 왜 그리 천천히 가는지, 한참 서 있자니 누군가가 나오는 소리가 났다.

 

    모르는 남학생 이었다.

    그 애가 말하던 동생인 듯 하였다.

 

     " 누구세요? "

     " 저 혹시 여기가 김열정씨 댁이에요? "

     " 그런데요! 누구세요? "

 

   난감했다.

   뭐라고 대답을 못해서 머뭇거리는 데 안에서 또 누군가가 나왔다. 

   여학생이었다.

 

       " 누구 왔니? "

 

   또순이가 아무리 결단력이 있고 뻔뻔하다 해도 저절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저 혹시 김열정씨 집에 있어요? "

     " 없는데요! "

 

   대답하면서 왠 이상한 여자냐는 듯 아래 위로 훝어 보는 남자 애와

   적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자 애를 바라 보면서 굴욕감을 느꼈다.

   그리고 없으리라는 상황을 생각 해 놓지 않아서 당황 했었다.

 

   다만 만나서 확실한 이야기를 들으면 계속 만나게 될 것인지 아니면 영 완전히 끊어지던지 양단 간에 결정이 날터라는 상황 설정 만을 했었다.

 

     " 아, 예!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

 

   돌아서는 또순이 뒤로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또순이는 그 때의 느낌을 시로 써서 그 애에게 보냈다.

   교수님 댁 옥상에는 빨래 만이 휘날리고 있더군요. 등등의

   그리고 시를 쓴 종이를 봉함엽서에다 붙이고는 시 쓴 종이 뒤쪽으로 숫자가 하나만 밖으로 보이도록 전화 번호만 써놓았었다.

 

 

전개 - 2

   

   

    몇일 후 전화가 왔다.

   

    소설에서 이야기 하는 가슴 설레는 재회

   

    그 날은 운이 없게도 비가 억수로 오는 날이었다.

 

   거기에다가 시청에 다니시는 아버지가 새마을 운동으로 내일 아침 일찍  청주 시청에서 하얀 체육복을 입고 청소를 해야 한다고 하얀 체육복을 준비 하라면서 중앙 시장에 가서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점심 전에 일찍 사다 놓고 나갈 양으로 나갔으나 하얀 체육복이 적당한 것이 없어서 이리 저리 다니다가 마침내 그것을 사 가지고 가슴에 껴안고 시간이 없어서 그 애가 기다리는 다방으로 곧장 갔다.

 

   그 애는 기다리고 있었다.

   안경을 끼고 여전히 갈색의 잠바를 입고 하얀 표정으로

   그 애의 앞 자리에 앉자 반가운 듯 조금 일어 나다가 말고 자리에 그대로 앉았다.

   

   그리곤 침묵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또순이를 구경하는 거였다.

   기다렸다.

   그 애가 무슨 말인가를 하기를.

   숨막힐 듯한 긴장감.

 

   또순이는 쫓기다가는 드디어 엉뚱한 생각지도 않은 말을 하고 말았다.

 

      " 여자 친구 있어요? "

 

   한번도 상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말이었다.

 

      " 없어요! "

 

   그리고 또 한참 침묵 ...

 

      " 여자 친구!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고! 전에 내가 아르바이트 하던 아이가 이번에 대학에 들어 갔는데 오빠, 오빠하면서 따르거든! "

 

   거기까진 그래도 괜찮았는데 또순이는 그 애의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리고 말았다.

 

      " 저기 옛날에 중학 2학년 때 집안에 슬픈 일이 었었다고 했었는데 어머니는 어디 계세요? "

 

   갑자기 그 애의 표정이 차가워지면서

   

      " 집에 계시지! 어디 계시겠어요? "

 

   상금 받았다고 레스토랑에서 오무라이스를 먹을 때 막 그 애가 그 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또순이는 듣게 될 그 애의 말을 얼른 막았었고 그때 말을 놓친 그 아이는 가만히 또순이 얼굴을 바라 보다가 다시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었고 또순이는 항상 듣지 못했던 그 애의 나머지 말을 궁금해 하면서 기억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 말이 갑작스레 튀어 나온 것이다.

   또 한참이나 침묵.

 

   그러다가 커피를 마시고는 밖으로 나섰다.

 

   집에서 일찍 나선데다가 아버지의 체육복을 사느라 돌아 다녔고 약속 시간은 오후 5시 였으니 사실은 배가 많이 고팠었는데 긴장해서인지 배는 고프지 않았고 또 무엇인가를 먹자고 하지도 못하겠고 또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각기 자신들의 생각에 파묻혀 있다가 안그래도 또순이는 판이 딸리는 판국이었는데다가 그 애가 그런 식으로 말을 받으니까 일이 잘 안풀린다고 생각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벌써 시간이 꽤 오래 지났는지 캄캄하였고 비가 억수로 정말 억수로 많이 오고 있었다.

 

   비 앞에서 막막하니 그저 서 있으려니 그 애가 우산을 폈고 또순이도 어쩔 것이란 생각도 없이 가만히 서 있다가 가지고 있던 우산을 펼치지 않고 그 애가 편 우산 속으로 들어 갔다.

 

   그 애도 가만히 서 있다가 앞을 막아선 사람들을 피하듯 비 속으로 나서서 무조건 걸었다.

 

   그리곤 시내 버스 정류장에 가서 버스를 탔다.

 

   그 애도 딱히 정한 것은 아닌 것 같았고 그저 별 생각 없이 타는 것 같았고

또순이가 또순이 우산을 포기하고 그 애의 우산 속으로 들어 간 이상 또순이도 아무말 없이 그 애가 타는 버스에 타고는 맨 뒤의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비가 퍼붓는 밖보다는 버스 속이 조금 많이 포근하고 그런대로 기분이 나아졌다.

 

   이미 저녁 생각은 달아난지 오래고 멀어진 그 애에 대한 촉각으로 신경이 곤두 서 있었다.

 

   버스는 유성으로 가는 것이었고,

   유성으로 바로 들어 가지 않고 다리 이쪽 편에서 하천 도로를 따라 가는 것이었다.

 

   그 때 까지도 말 없이 앉아 있던 그 애가 갑자기 일어서서 버스를 세우곤 내리자고 하였다.

 

   승객이라곤 우리 둘 뿐인데다 기사 아저씨가 백미러로 계속 우리들을 보고 있어서 불편 했었는데 거기에다 모르는 길로 가니 당황 한데다 내리자고 하니 얼른 내렸었다.

 

   우와!

   무슨 5월 초하의 폭풍이 그리 심했는지!

   비가 너무 너무 많이 내리고 있었고 나무도 휘날리고

 

   그 애의 우산 속에서 아무 말 없이 도로를 따라 유성의 불빛이 아득히 보이는 그 곳을 둘이 걸었다.

 

   그런데 아뿔사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가끔씩 트럭들이 지나가면서 짖궃게 클락션을 빵빵 거렸고

   헤드라이트 불빛에 노출 되는 우리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남들이 보면 우리를 비 속의 연인이구나 했겠지만

 

   또순이는 그게 아니었다.

 

   그런 낭만적인 생각과는 달리 또순이에게는 큰일이 있었다.

   멀리 아득하게 건너다 보이는 유성으로 빨리 가야 할 큰 일.

 

   커피에다

   찬비에

   또 집에서 일찍 나와서

   긴장 한 탓인지

   볼일을 한번도 안보았으니

   그야말로 방광이 터질 지경이었다.

 

    따스했던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찬공기를 쐰 탓인지

    갑자기 볼일을 보고 싶은데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야말로 오랜 만에 다시 처음 본 사람인데 어떻게 볼 일이 급하다고 오줌이 마려워 죽겠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 같으면 사실을 이야기 하고 갖고 있던 우산을 쓰고 둑 아래로 내려가 억수로 쏟아지는 비겠다 캄캄해서 보일리도 없을테고 머쓱하기는 하겠지만 기다려 줄테고 더욱이 소리도 안들릴테니까 오줌 누기야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그 때는 그 일 자체가 수치스러운

   말하기조차 민망한 21살이 아닌가!

 

   정말로 쌀 지경이었다.

   으아 질금 질금 나오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고 참으려니 정말 방광이 터져 나가는거 같았다.

   낭만이고 분위기고 뭐고 없었다.

 

   오! 그 고통

   그 괴로움.

 

   오랜만의 재회와

   터질 것 같은 방광.

 

   이 어인 고통이란 말인가!

 

   그 애는 아까와는 달리 평소의 기분이 되었는지

   이젠 무엇인가를 열심히 떠들기 시작하였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님 이런 분위기가 그 애의 기를 살렸는지.

 

   또순이 귀에는 하나도 들려 오지 않는 말들을 끊임 없이 엮어 대고 있었다.

   그 때 그 애는 타인이었다.

 

   그 애는 그 애의 기분에 젖어 열심히 뭔가를 이야기 하고 있었고

   또순이는 오직 참을 수 없는 오줌 때문에 빨리 저 불빛 속으로 걸어 가서

실수없이 볼일을 보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여서 또순이의 온 신경이 거기에 집중 되어 있었다.

 

   사실 그렇게 황당한 일만 아니었다면

   나이는 21살

   따뜻한 늦봄의 싱그럽기까지한 빗줄기.

   길게 늘어선 가로수 길.

   먼나라 인듯한 아득한 불빛들.

 

   다시 만나는 재회였기에

   얼마든지 먼길이라도 기분좋게 걸어 갈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었는데

   어쩌면 일이 정말 잘 풀릴 수도 있었을 것을

   아마도 인연이 아니였었는가 보다.

 

   만약 앞으로 주위의 누군가가 데이트를 하게 된다면 이 이야기를 꼭 해줄 것이다.

   여자는 요도가 짧기 때문에 집에서 어디 갈 때는 꼭 화장실에 들렸다 갈 것이며 혹 커피 숖에서 커피를 마시고 밖으로 나갈 때에는 아무리 긴장 되드라도 반드시 화장실을 거쳤다가 나갈 것을 신신 당부하리라!

 

   그런 사소한 일 때문에 인생이 변할 수도 있으니까!

 

   어찌됐던 그 때 내 눈에 들어 오는 것은 오직 화장실이 있을 유성 시내 쪽의 먼 불빛을 간절힌 바라보며 제발 빨리 그 곳으로 달려 가서 그 순간 내 최대의 인간 과제인 생리적 현상을 시원하게 해결하는 것이 절대 절명인 순간이었다.

 

   비 내리거나 말거나

   분위기가 좋거나 말거나

   비 속의 연인이거나 말거나

 

   정말 속옷에다 싸면 어찌되나!

   비에 젖어서 표시야 그리 나지 않겠지만 소리는 나겠지!

   양쪽 엉덩이에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있는 힘을 잔뜩 주고는 조바심을 치면서 드디어는 시내로 들어섰다.

 

   정말 미칠 것 같았다.

   화장실이 가까워 졌다고 생각하니 긴장감이 조금 느슨해 지는지 그야말로 이제는 질금 거리며 나올 것 같았다.

 

   그 애가 어디를 갈까 망설이는데 또순이는 주저 없이 다방으로 가자고 하였다. 

   대충 눈에 띄이는 아무 다방이나 들어 가서 그 애가 앉자 마자 또순이는 선 채로 들었던 물건을 탁자 위에 놓고는 다방 레지에게 물었었다.

 

    화장실이 어디냐고!

 

   성공적인 화장실로의 진입과 옷을 내리면서 약간 질금 거리긴 했지만 그 시원한 물줄기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아마도 남자들은 잘 모를게다.

   여자처럼 요도가 짧지 않으니!

   어쨌든 최후의 실수는 하지 않고 무사히 볼 일을 끝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자의 요도를 짧게 하셨지만 결국 실수 하지는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 오는데 그 애의 하얀 얼굴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때까지는 보이지 않던 그 애의 얼굴과 표정이 비로소 눈에 들어 오는 것 이었다.

 

    뭔가 생각하는 얼굴.

    시선이 바닥을 향하여 있었고 이곳까지 올 동안 생겨 있었던 좋은 분위기는 벌써 오래 전 이란 느낌을 주는 차가운 분위기였다.

 

    그런 얼굴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냉정한 얼굴과 창백하게 굳어진 얼굴.

    나의 재회는 성공적이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전화번호를 알려 주지 않은 탓에 전화 오기 만을 기다릴 수 밖에

    어짜피 또순이 생활도 이제까지의 놀기 위주에서 앞으로의 장래를 위하여 공부 위주의 생활로 변화 되어 있었고 어쨌든 그 애도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애는 또순이를 만나서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지 어쩌면 소설을 쓰고 있는지도, 아니면 심리 실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

   

 

전개 - 3

   

   

   한달 후 연락이 왔다.

 

   만수원에 갔었는데 가게 앞에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별 말은 없었지만 분위기는 좋은 편이었다.

   

   부드러운 초하의 밤공기와 조용한 주변 그리고 가게의 작은 불빛들.

   

   그 애는 하얀 티를 입었었는데 그 티가 썩 잘 어울렸다.

 

   하얀 얼굴을 고상하게 받쳐 준다고 생각하면서 저만하면 괜찮은 남자 아니냐며 사실 또순이가 밀리는 만남이었지만 굳이 그런거 따질 거 없이 이렇게 청춘의 따뜻한 밤에 누군가를 그리고 저 정도면 괜찮기까지 한 남자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이 좋았다.

 

   주위의 정원수 한그루 한그루까지 다 청춘의 축복으로 보였다.

   또순이는 한참 기분이 좋아서

   언제인가는 이 장면을 꼭 글로 써낼 것이라는

   글로 써 먹을 것이란 상상을 혼자 하면서

   말없이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꽤 괜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일어서더니 가자고 하였다. 

 

   아쉬웠다.

 

   이왕 이렇게 만나서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더 있었으면 했지만 그런 말은 하지 못하고 머리 속으로 생각만 하면서 그냥 아무말 없이 따라 일어서서는 늦은 밤길의 만수원 길을 터벅 거리고 나오는데 그 애가 갑자기 손을 잡으려 했다.

 

   또순이는 당연히 재빨리 뿌리쳤다.

   그 애는 또순이가 뿌리치자 오기로 더욱 잡으려고 했다.

   누가 이기는가 보자면서 나중엔 손을  또순이 바지 주머니에 감추니까 바지 주머니에 까지 손이 따라 들어 왔다.

 

   그땐 정말 싫었다.

 

   또순이는 자신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빼내어 획하고 뿌리치니 그 때에는 정말 이구나 싶은지 아니면 자존심이 상해서 화가 나서인지 아무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가고만 있었다.

 

     " 침묵에 견디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죠! "

 

   하고 자기가 한 말을 지키듯이.

 

    사실 지금의 나이엔 남녀 사이의 그런 것을 이해 하지만 그 나이까지만 해도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용납이 안되는 시절이었고 나이였었다.

    그리고 그것이 여자와 남자의 차이였던 것을 또순이가 알턱이 없었다.

 

    그저 친구처럼 여자 친구보다는 조금 감정이 미묘한 친구 정도로서 이성을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그 것은 그 때 당시의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그 애와 느끼는 거리감 때문에 그 거리감 만큼 저 쪽에 그 애를 세워 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순이가 그 애를 찾아 가긴 했지만 그 애는 또순이를 받아 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자신도 모르게 또순이 자신을 방어 하고 있었는지도.

 

   그런데 또 난처한 일이 생겼다.

   또순이 신발에 못이 삐져 나와 또순이의 발바닥을 찌르는 것이었다.

   발이 아픈데 발이 아프다는 소리를 못하고 싸구려 신발을 신어서 신이 망가졌고 창피스러워서 신발이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 채 자갈 길을 걷자니 괴로움이란.

 

   사실 그 애가 화가 나서 냉냉하지만 않았던들 발에 못이 빠져 나와서 아프다고 그러고는 돌을 들어서 한번만 박아주면 되었을 것을.

   아니 내가 조금 뒤쳐져서 돌로 한번만 박았어도 됐을 것을.

 

   그 애가 너무 화가 나서 쌀쌀 맞게 구는 통에, 쉽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재회 이후 친하지도 않았기에, 그래도 어떻게 참고 집근처까지 왔다.

 

   조금 안심도 되고 말해도 될 정도로는 화가 풀린 것 같고 거기에다 집 근처까지 바래다 주니 조금 가까워 진 것  같길레 지난번 화장실 건도 생각나고 해서 또 사실은 동정심을 유발하고도 싶어서 이야기를 하였다.

 

      " 구두에 못이 삐져나와 아파 죽겠어요! "

      " 못이 발바닥을 찌르면 예수잖아요! "

 

   안됐다는 표정 대신 잔인해지는 표정이었고,

   또 절망감을 맛볼 수 밖에.

   

 

전개 - 4

 

   

   충남 대학 열람실에서 친구와 함께 중간 고사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애로부터 연락이 왔다.

 

   저녁 8시에 문리대 앞에서 만나자는 거였다.

   문리대가 도서관과 가까이 있어서 공부하다가 가면 되겠다고 생각하여 그리 하겠다고 하였다.

 

   문리대 앞 벤치에 앉으니 어두운 하늘이 가득 캠퍼스를 덮고 있었다.

 

   가는 초생달이 기우는 듯 떠 있었고 대학 관현악단이 발표회에 대비해 문리대 2층 강당에서 총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밤하늘과 교정을 바라 보면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우리가 더 이상 가까워지진 않을 것이란 걸.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렇게 만나고는 있지만 그 애의 마음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애가 헤메고 있는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문리대 교정에 엷게 흩어져 있는 달빛과 고즈넉하게 이렇게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으니까 꽤 분위기가 괜찮았다.

 

   마치 또순이가 영화의 주인공인 것처럼 느껴졌고

   소설의 한 장면인 것처럼 여겨졌다.

 

   강당에서 비치이는 연한 실내 불빛을 따라 음악이 흘러 내려 오는 듯 하였다.

 

   머리위로,

   가슴 속으로,

   순결한 청춘의 영혼 속으로.

 

   이 아이는 이런 것을 소설로 쓰고 있을까?

   소설을 쓰다가 다음 장면을 생각 하면서 만나자고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집에 가서 이 장면을 소설 속에 써 넣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던 그 애가 얌전히 다리를 모으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또순이 다리를 손가락을 세워서 꽉 누른 것이었다.

   기겁을 하면서 얼른 손을 치우고 자리를 옮기곤 신경질조로 말했다.

 

      " 멍들겠어요! "

 

   무안했던지 가만히 있더니 가자고 하였다.

   조금 더 있어도 괜찮은데...

   또순이 혼자만의 속 생각일 뿐.

 

   아마 좀 더 있다 가자고 또순이가 그랬나?

 

       ~ 더 있으면 뭐해요? ~

   

   그만 가자고 그애가 그랬나? 

   아무튼 20년 전의 이야기다.

   장면 장면과 분위기는 생각이 나지만 정확한 정황이나 대화는 전부 생각이 안난다.

 

   아쉬워하며 그 애를 따라 문리대 정문 쪽으로 걷는데 교정 이곳 저곳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데이트 족들이 풀밭 위에 감추이듯이 앉아들 있는 것이 보였다.

   사실 또순이도 몰랐었는데 그 애가 말해서 알았다.

 

     "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는데? "

 

   그 애도 그걸 보니 그렇게 앉고 싶었나부다.

   길을 벗어 나서 그 애가 앉자는 풀 밭 위에 손에 있던 가방을 풀밭 위에 놓고 않으니 옆에 앉아 있던 그 애가 갑자기 팔로 또순이를 잡아 당긴다.

 

       " 나보다 높이 앉아 있잖아요! 이쪽으로 내려 앉아요! "

 

   안 그래도 그 애가 이야기 하는 대로 바라보니 이곳 저곳에 두 사람씩 파묻혀서 무얼 하는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차에,

   순간적으로 너무 기분이 나빠져서 벌떡 일어섰다.

 

   가방을 들고 쌀쌀하게 걷고 있는 또순이 옆에서 말없이 또순이네 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던 그 애가 또순이 노트를 손에서 빼앗아 뒤적인다.

   열심히 공부한 흔적 밖에는 볼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그 애는 또순이가 정말로 공부를 하는지 미심 쩍었었나?

    아니면 무안해서 공책을 들여다 보는 척 했는지.

 

   생각보다는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지만 그 애의 표정도 결코 띠뜻해지지는 않을 것 같았고 또순이의 말도 화가 나서 날카롭게 나왔다.

 

       " 공책 주세요! "

 

   테미 고개 까지 왔을 때 그 애는 밝은 불빛 속에 더 선명히 나타나는 쌀쌀한 표정의 얼굴로 공책을 돌려 주면서 말했다.

 

      " 내가 왜 여기까지 왔지? "

 

   그러고는 두말도 않고 돌아서서 그 애의 집쪽으로 가 버렸다.

   또순이도 화가 나 있었지만 그래도 집가지 바래다 주지 않고 밝은 불빛 아래까지 오니까 얼른 가버리는 그애가 조금은 섭섭했었다.

 

   하긴 섭섭하고 말고가 어디 있냐만

   또순이 마음에 불어 오는 찬 바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애의 마음 속에 불고 있을 찬 바람도.

 

   사실 또순이는 그 날의 데이트를 위하여 특별 복장으로 또순이가 아끼던 옷을 입었었고 그 옷이 또순이에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까지 들었었는데

   

   데이트는 망쳐진 데이트 였었다.

 

   

   충남 대학 서무실에 근무하는 고등학교 동창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애의 기행문이 학교 신문에 실렸다면서.

 

   보내준 신문을 보니 그 애가 졸업여행으로 갔다 온 설악산에 대한 기행문이 신문의 한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가 쓴 내용이라든지 형식은 2학년 때 당선된 그애의 소설과는 비교가 안되게 성장하여 있었다.

 

   많이 성장 하였지만 또순이는 그 글의 행간에 숨겨진 뜻을 읽고 있었다.

   매사에 좀더 자유로워진 모습이었고 그것은 또순이로부터도 자유롭다는 의미였다.

 

 

전개 - 5

   

 

   지루한 여름 방학.

 

   여름방학 내내 할일도,

   목표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던 그저 시간을 보내며 무엇인가를 기다리던 때.

 

   방청소,

   거실 청소,

   쓸고 닦고,

   그러면 하루 해가 기울던,

   지루한 집안에 만 있어서 얼굴이 되려 하얘지던

   여름 나날 중의 하루.

 

   역 앞에 있는 다방에서 한 낮에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만나자마자 신문에 실린 글 이야기를 하였다.

   그때까지도 신문에 실린 것을 몰랐다고 하였다.

 

   또 말없이 서로를 바라 보다가

   탁자를 바라 보다가

  역전 앞의 그 이층 다방에서,

  여름 햇살이 쨍쨍 내려 조이는 역 광장과

  어쩌다 도로를 지나가는 택시도 느릿 느릿 움직이는 듯한 거리를 내다 보았다.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아이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아이도 얼굴이 하얗게 수척해 보였고 물론 내 얼굴도 햇볕을 보지 못해서 하얗게 바래 있었을 것이다.

   흰티를 입은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저 애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또순이는 그 애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또순이가 생각하는 것과 그 애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 정도였다.

   처음 글이 신문에 실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기뻐하는 듯 했었는데 그것도 잠깐 심각한 얼굴로 탁자 위만 바라 보고 있었다.

 

   생각에 잠겨서.

 

   주위는 무더운 여름답게 정말 조용히 가라 앉아 있었다.

   다방은 물론 거리를 나다니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여름 볕만이 거리를 가득 체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 애는 정화 된 듯한 모습이었지만 무언가를 고뇌하는 듯 하였고

   혼자 생각에 깊이 빠져 있는 듯 하였다.

   우리는 둘 다 이제 이번 가을 학기만 지나면 졸업을 하게 된다.

   나이는 정말 어렸지만 학생으로서는 늙다리(?) 학생들에 속해 있었다.

 

   우리 학생 시절의 마지막 여름은

   그렇게 느릿 느릿 기어 가듯 가고 있었으며

   그 여름은 이젠 다시 돌아 오진 않을터였다.

 

   문득 생각 난 듯 그 애가 말했다.

 

      " 우리 여행가요! "

      " 여행요? 어디루요? "

      " 나를 믿고 따라 와요! "

      " 어디로 가는지는 알아야 될 것 아녜요? "

      " 부산을 가든지, 아니면 바다를 보러 가든지! 강릉도 좋고! "

 

   말없이 탁자 위를 내려다 보는 나를 살펴보던 그 애가 말했다.

 

      " 우리 아버지가 철도청에 다니기 때문에 열차 이용은 무료여요! 패스권이 있는데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도 무료예요! 같이 기차 타고 가면 되요! 날 못 믿어요? "

 

   또순이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무말도.

   

   사실을 말하자면 그 애를 못 믿어서는 아니었다.

   사실 괜찮은 남자 애하고 여행 간다는 것은 멋있는 일이지!

 

   호감을 갖고 있고 그리고 알게 모르게 오랜 세월을 알고 지낸 사이인데     또순이는 우리의 젊음이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것이 흘러 가서 사라질 것이라는 것도

   그렇다고 함부로 낭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정도로는 괜찮을 것이라는 것도.

 

   또순이는 결단력이 있는 아이였고

   마음 먹은 것은 마음 먹은 대로 반듯이 해내는 아이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또 두려워 하는 것도 없던 때였다.

 

   그렇지만 경제력은 무능한 그래서 여름방학 내내 아무데도 못가고 청소나 하면서 집에 들어 앉아 있다가 밖에 어쩌다 나올라치면 엄마한테 겨우 천원 한장 얻어 나오는 정도 였었다.

 

   시청 공무원이신 아버지 월급과 다섯 형제는 전부 학생 이었고 엄마가 평소 때에는 그래도 학생들 하숙을 하고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지만 학생들이 가고 없는 방학 때에는 많이 쪼들린다는 것을 장녀인 또순이는 잘 알고 있었기에 엄마에게 무리한 요구는 할 수 없었다.

 

   그날도 당연히 또순이 수중에 돈이 없었다.

   그야말고 동전 몇개와 토큰 뿐이었다.

   엄마한테 데이트 한다고 데이트 비용 좀 달라고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냥 무력한 여름이었고 그렇게 시간을 죽이고 있던 여름이었다.

 

   졸업을 하면 직업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 때에는 경제적 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오직 기다림만이 필요하던 때

 

   지폐가 단지 한장이라도 있었다면 혹 갈 수 있었을런지도 몰랐다.

   그러나 또순이는 돈이 무어라는 것을 잘 아는 아이였고,

   돈의 의미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박차면서까지 용감하지도 않았다.

 

   돈도 없는데

   그리고 밖을 보니 너무나 후덥지근하게 뜨거웠고

   빈 지갑을 들고

   지금 이 순간 갑자기 여행을 간다는 것은 무리였고

   내키지 않았다.

 

   또순이를 전적으로 믿어 주시기 때문에 부모님은 야단치시지 않겠지만

   배짱 좋게 준비도 없이 여행을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화 할 때 귀뜀이라도 주었더라면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용돈을 좀 더 타오고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런지 모른다.

 

   아직은 젊음이 있었으니까.

 

   사실 어디로인가 훨훨 떠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일까!

   생각은 벌써 기차를 타고 개찰구에 서 있는 모습이 상상 되었다.

   엄마는 젊음의 추억이 얼마나 소중 한지를 잘 아시는 분이셨다.

 

      " 예쓰냐! 노냐! 빨리 대답해요! "

      " 노예요! "

 

   그때부터 또 한참을 침묵.

   만약 대답을 제촉하지 않고 좀 더 설득했더라면 넘어 갔을런지도 모른다.

   기분은 벌써 여행을 떠나고 있었으니까.

   누구나 다 그러리라 믿지만 또순이도 또한 여행을 간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넉넉하고 자유로워지던 때였다.

 

   얼마나 멋있을까!

 

   나란히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고 그 애는 또 뭔가를 열심히 이야기 하겠지!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 아니었고 또순이는 현실에 적응할 수 밖에 없는 아이였다.

 

   침묵 끝에 그 아이가 말을 꺼냈다.

 

     " 만약 내가 여자 친구가 있다면 어떡할래요! 아니 내가 여자 친구와 같이 있는 것을 본다면 어떡 하겠어요? "

 

     " 소개시켜 주세요! 그 여자 친구 나에게 소개 시켜 주면 되잖아요! "

 

   이 아이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구나!

   또순이는 그 아이의 말을 현실감 있게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이렇게 또순이는 이 아이와 둘이 있고 그것이 좀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그냥 말장난 쯤으로 듣고 있었고 그런 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느낌의 데이트를 그런 말 장난으로써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하고 있었고 심각하게 받아 들이진 않았다.

 

   얼마 전 단짝인 간호 학교 친구가 그 애가 어떤 여자 애를 데리고 유성 가는 직행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흥분하며 했던 것을 떠올렸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고 했다.

 

   친구에게 보란 듯이

   그애가 보았느냐니까 보았는거 같은데 글쎄 표정이 자랑스러워 보이더라나?

   단짝이 또순이의 얼굴을 살펴보며 목소릴 톤을 낮추지 못했다.

   또순이는 솔직히 말하면 믿지 않았었다.

 

   그럴라구!

   아르바이트 하느라 가르쳤었던 그 애인 모양인데 또 뭐 있으면 어때,

   여자 친구가 또 있으란 법 없나 뭐?

   나도 그 애랑 만나면서 다른 남학생들 한번씩 만났었는데

   사실 심각하게 받아 들이진 않았었다.

 

   그런데 본인이 이렇게 나오니 어쩌면 여자 친구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단짝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려 들어서인지 그 것을 물어 볼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그리곤 집에 가자면서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는데

   우리 집 앞에서 내리지 않고 계속 가길레 어디 가냐닌까 집에 간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

     

      " 안 내려요? 집에 갈려면 내렸어야 했잖아요? 종점에 볼일 있어요? "

 

   벌써 버스는 충남 대학을 지나서 그 애네 동네가 보이는 곳까지 와 있었다.

   놀라서 부랴부랴 버스가 서는대로 내려서 바라보니

   또순이 혼자만 달랑 내려 놓은 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가고 있었고

   뒤 유리창에 그애의 똑바로 앉아서 앞을 바라보고 있는 모양이 보였다.

   

   그때만큼 그 애의 등이 넓어 보였을까!

   

   그리고 견고하게 보였다.

   또순이는 이젠 그 애 외곽 지대의 별 볼일 없는 한 여자애로서

   밀쳐져 있다는 것을 실감 할 수 있었다.

 

   굴욕감이 또순이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입술을 깨물었지만 어쩔 수 없이 누구를 탓할 수도 없이 터벅거리며 비포장 도로의 먼지 쌓인 길을 혼자 집으로 돌아 오면서 이빨을 사려 물고는 다시는 안만나겠다고 아니 못만날 거란 생각을 하였다.

 

   결국은 그것이 그 애와 또순이 사이에 있었던 마지막 버스였었다.

 

   

< 3 > 대단원 

   

 

   졸업시험도 끝나고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아침에 전화가 왔다.

   그애에게서

   오전에 만나자는 것이었다.

   

   이젠 어느 정도 그애에게 체념하고 있었지만

   그 여름 이후로 처음 오는 전화라서 반갑기까지 하던 차였다.

   그러나 오전에 만나서 뭘 어쩌자는 것인지!

 

      " 오전에요? 오후에는 안되요? "

      " 오후에는 약속이 있어서요! "

      " 무슨 약속요? 군대 가는데 환송회 쯤 있어요? "

 

   짧게 웃는 웃음소리.

 

      " 오전에 만날 거여요? 안 만날 거여요? "

      " 그럼  안되겠네요! "

      " 알았어요! "

 

   찰칵.

 

   또순이는 한참동안 수화기를 바라 보다가 내려 놓았다. 

   그냥 만난다고 할걸 그랬나 하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며

 

   사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할 일이 없었다.

   갈곳도

   오라는 곳도

   불러 낼 친구도

   불러 주는 친구도

   할일도 없었다.

 

   단짝 친구는 언제인가부터 남자가 생겼고

   그 남자로써 친구가 전에 사귀었던 남자 애를 체념하였었던 자리를 완전히 메꿨고

   동시에 단짝 친구의 비어 있는 스케쥴에 따라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정도였었다.

 

   엄마가 졸업 기념으로 사준다기에 돈을 얻어 가지고 나와서

   백화점에 가 옷이나 하나 사볼 량으로 기웃거리다가

   입고 싶었던 비로도 투피스 하나를 사가지고

   집으로 들어 가려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인도의 끝지점 

   아스팔트가 시작되는 바로 앞에

   한쌍의 사이좋은 연인이 서 있었다.

   남자는 팔로 여자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고

   또순이는 그 뒷 모습을 바라 보면서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저 곤색 바바리는 그 애의 바바리다.

   

   조금 구겨진 곤색 바바리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고

   남자는 기분 좋은 듯 그애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고

   여자 애는 가만히 고개를 조금 숙인채 있었다.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지만

   어쩌지 못하고 뒷모습만 바라 보고 있자니

   수분인 듯 수십분인 듯

   드디어 연인들이 돌아서서 사람들 사이로 가고 있었다. 

 

   순간 정신이 든 나는 그들 뒤로 따라가 그 애의 얼굴을 확인 했다.

 

   그애였다.

   

   그애 옆 얼굴을 들여다 보며 갑자기 말이 안나와 그애의 어깨를 잡았다.

 

     " 여자 친구예요? 군대 간다더니! "

 

   그때 또순이 눈에 그 애가 하얀 와이샤쓰에 맨 빨간 넥타이가 들어 왔다. 

   

   또순이와 만날 때는 한번도 하지 않았던 넥타이.

   그리고 와이샤쓰 입은 모습도 처음이었다.

 

   여자애는 잠깐 뒤돌아 보더니 그냥 가고 있었고

 

      " 넥타이 했네요! 빨리 가보세요! "

 

   당황한 얼굴인지 술을 마셨는지 얼떨떨 하면서 홍조 띤 얼굴로 또순이를 바라 보았다.

   

   또순이는 재빨리 돌아서서 지하도로 들어가는 계단을 내려 갔다.

   뒤에 쫓아 오는 그애의 시선을 느끼면서.

 

   단짝을 만나서 엄청나게 그 애의 욕을 했는데 단짝은 아무말 없이 잘도 들어 주었고

   엄마는 이야기 하니까 하시는 말씀.

 

      " 걔도 어느 쪽을 쫓아 가야 할지 몰랐겠는걸? "

 

 

< 4 > 에필로그 

   

 

   결혼 후 그애네 집으로 들어 가는 골목 앞을 지나갈 일이 있어 가는데

   그 애의 예의 빨간 넥타이와

   옆에는 청홍의 새댁이 한복을 입고 서 있었다.

   

   차 뒷좌석에 앉아 지나 가면서 바라 보는 또순이를

   그 애도 바라 보아서

   시선이 마주 쳤었는데 알아 보았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또 잘못 보았을 수도 있고.

   

   그 후에 한번 더

   성모 병원 앞쪽 그애네 집으로 올라가는 버스 정류장에

   그애 엄마인듯한 연세드신 아주머니하고 서 있었다.

   추운 표정들을 보니 밤새운 것 같기도 하고

   아마 누가 아픈지 아니면

   집 사람이 아기를 낳으려고 하는지도 모르지!

   영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또순이에게 있어 그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는 중앙일보 비지니스 컨설팅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어디선가 열심히 살고 있을게다. 

   

   또순이에 대한 한 두가지의 기억은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아님 최소한 한가지 이상의 또순이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길 바라면서

   오늘의 글을 마친다.

   

   사람의 사귐은 역시 정석대로 가는 것이 아님을 깨달으며

   또한 인생에 있어 바르게 간다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 1997. 1. 25일 일년 전의 글을 약간 교정함 >

 

 

   어제 실은 인터넷으로 이름을 찾았더니 인물사전에 이름이 나와 있었다. 

   열심히 살아 주어서 감사하고 또 살아 있어서 감사하다.

   혹시 이 블로그를 보면 연락해서

   열두개의 반지나 이후 쓴 글이 있으면 이 블로그에 같이 올렸으면 좋겠다.

             

    교회에 등록하고 다니면서 반사도 하고 나름 교회 생활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하나님이 좋은 만남과 사귐을 주셔서 이제 이렇게 블로그에 올릴 수 있음에

   여호와 이레 하나님,

   예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2019. 12. 14. 토요일. 하얀 로맨스 그 후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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