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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또순이 어렸을 적에

< 또순이 학창시절 ~ 로맨스 >

by 영숙이 2020.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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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산에서

   

   오늘은 남산에 올라갔습니다.

   서울 생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혼자 남산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이래 저래 서울 생활 끝나면 63 빌딩 옆에 살면서 63 빌딩에 가본 적 없는 사람처럼 남산 구경 한번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먼저 아무 때나 갈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두 번째는 언제인가는 갈 거라고 미루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은 무조건 남산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남산에서 내려서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1년 전에 함께 걸었던 그 길을 다시 한번 걸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남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를 따라 걸었더니

   그때처럼 남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도로를 건널 때 이 또순이의 팔을 잡고 뛰었지요.

   그 일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실은 여자 친구 아닌 사람한테 처음으로 팔을 잡혀 본 날이었습니다.

   

   순간적이었지만 팔이 잡혀 뛰는데 기분이 좋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추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새록새록 돋아나는 것이 참 신기하군요. 

   지금 현빈을 유명하게 만든 드라마 촬영지 팻말이 쓰여있는 곳을 지나고 있습니다.

 

  드디어 계단 끝에 도착   

  동상이 서 있는 작은 광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연인들이 참으로 많군요.

  우리도 저들 중에 한쌍이었지요.

  이 사막처럼 척박한 광야 생활 가운데에서 떠올릴 젊은 날의 추억이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서울 타워.

 

   엘리베이터를 타고 서울 타워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창문에 붙어 서서 망원경으로 내가 사는 곳을 찾아보았던

   바로 그 자리에 서서 

   동전을 집어넣고 다시 한번 우리가 같이 찾았던 그곳을 들여다봅니다.

   활짝 웃는 젊은 날의 투명한 웃음을 마주 합니다.

 

   이젠 그 하얗던 추억이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옐로 칼라로 변해 버리고 말았네요. 

   오래된 앨범 속에 빛바랜 사진처럼 추억 속의 얼굴은 아직도 20대의 얼굴로 웃고 있는데 

   지금은 벌써 30대의 얼굴이 되어 있군요. 

   

   아무런 이해타산 없이 웃을 수 있었던 젊은 날의 투명한 웃음.

   젊은 날의 추억은 시간 속에 빛을 바랐지만

 

   바쁜 일과 중에 마시는 커피 향기 속에 까마득히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에도 함께 있군요.

 

   서울 타워의 그 유명한 화장실에 들어가서

   손을 씻어 봅니다.

   화려한 서울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손을 씻듯 마음을 씻어 내립니다.

   그 빈 마음에 젊은 날에 또순이 웃음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자물쇠를 샀습니다.

   자물쇠에 또순이 이름과 남편 이름을 하트와 함께 적었습니다.

   자물통을 걸고

   계단을 내려옵니다.

   

   많은 연인들이 팔짱을 끼거나

   서로의 얼굴을 눈부신 듯 바라보면서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언제인가 인생의 계단을 내려가야 할 때

   여전히 투명하게 활짝 웃는 빛나는 얼굴로

   서로를 눈부신 듯 바라보면서

   한 계단 한계단 내려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계단을 다 내려오니 

   방금 올라갔었던 서울 타워가

   벌써 아득하게 보입니다.

   

   우리의 시간들이 쉽게 멀리 보일지라도

   지금도 또순이는 팔을 잡힌 듯 시간을 뛰어서 건너갑니다.

                                       

                                                                       1995. 3월 첫날에. 

 

 

2. 서울역

 

  서울역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대구에 놀러 가서 만났지만 정말로 대전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다.

  여자 앞에만 서면 말을 못 하고 덜덜 떤다고 별명이 재봉틀이라던 현택 씨가 대전에 다녀 간 후에 또순이는 현택 씨와 펜팔을 주고받았다.

  서울에 있는 공수부대에서 직업군인인 중사로 근무했던 현택 씨와 서울역 앞 깃대봉이 있었던 조그마한 네모진 단상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약속 날 자에 또순이는 몸매에 딱 맞는 미색 원피스를 입고 서울역 앞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을 위해 미색 원피스를 맞춰서 입었고 옷 색깔에 맞추어서 미색 작은 핸드백도 사서 손에 들고 있었다.

  서울역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영화나 뉴스를 통해서 또순이도 잘 알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최대한 촌스럽게 보이지 않으려고 의상이나 핸드백이나 구두에 신경을 썼지만 스스로 보기에도 이제 막 서울에 상경한 아가씨처럼 보였다.

 

  "이렇게 햇볕이 뜨거운 8월의 한낮인데 별일 있으려고, 사람들도 참 많이 지나다니는구나."

  "이상한 사람들이 꼬나보면 어쩌나 했더니 이상한 사람은커녕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다녀도 바라보는 사람조차 한 명 없네."

 

  약속 시간보다 20분쯤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촌스럽게 보여 사람들 눈에 튀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나중에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아서 편지를 꺼내서 약속시간이 맞는지 여러 번 확인하였다.

 

  처음에는 30분만 기다린다고 생각했다.

  30분 기다렸는데도 안 나타나니까

  조금 더 기다려보자.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이 안 나올 리 없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결국 미련하게 2시간인가 3시간인가를 기다리다가 다시 실습하던 강남 성심 병원 숙소로 돌아갔다.

 

  전화 연락이 안 되던 시절이다.

  펜팔이라는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던 때이다.

  약속을 안 지키면 연락해 볼 방법이 없었다.

 

 

3. 찾아왔다. 

 

  다음 날 오전 11시.

  나이트 근무 실습을 마치고 숙소에서 자고 있는데.

  누가 또순이를 찾아왔다고 했다.

 

  "찾아 올 사람이 없는데? 누가 찾아왔지? "

 

  숙소 입구 쪽으로 갔더니 베레모를 쓴 현택 씨가 서 있었다.

 

  "어떻게 알고 왔어요?"

  "병원으로 찾아갔더니 여기 숙소를 알려 줬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

 

  숙소를 벗어나서 한강 쪽으로 걸어갔다.

 

  "어제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해요."

  "부대에 일이 있었어요."

  "제 밑에 하사가 부대원을 때렸는데 다쳤어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다친 병사 누나가 신고해서 부대가 난리가 났었어요."

  "어제는 도저히 외출을 할 수가 없었어요."

  "어제 서울역 앞에서 3시간 기다렸어요."

  "지하도 앞에 네모진 턱에서 기다리는데 어찌나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바라보던지."

  "시간이 잘못됐나? 장소가 잘못됐나? 편지를 몇 번이나 확인했는지 몰라요."

  "연락할 방법은 없지. 기다린다는 거 알아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오늘 겨우 외출 허락받고 나왔어요."

 

 

 또순이는 현택 씨와 한강변을 걸었다. 

 한강 둑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4. 경복궁

 

  그날 덕수궁과 경복궁 그리고 남산을 갔었다.

  수많은 연인들이 걸었을 덕수궁 돌담 길을 걸었다.

  또순이도 덕수궁 돌담 길 그 길을

  연인들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그 길을 걸었다.

  20살 또순이도 걸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덕수궁은 정갈한 별궁 같은 느낌이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단정한 정원.

  과하지도 초라하지도 않은 건물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

  요즘의 연인들도 가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모든 군인들이 베레모를 쓰지만

  그때는 군인들 중에서 특별한 공수 부대원들만 베레모를 썼었다.

  당당한 체격에 베레모를 쓰고 훈련받는 이야기를 했었다.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높이가 얼마인지 알아요? 5미터인데 거기서 밧줄에 의지하여 뛰어내리는 거 처음에는 진짜 무서웠어요."

 

  다음으로 찾아간 경복궁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경복궁 뒤뜰에 작은 연못을 바라보면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작은 연못 주위에 키 작은 나무들.

  반짝이는 연못 물에 나무 잎새가 비치는 모습.

  지저귀는 새소리. 

 

  또순이는 20살이라는 젊음이

  고요하고 고적한 옛 숨결이

  비쳐 드는 햇볕 사이로 가라앉아 있는 정원을 천천히 걸으면서

  좋은 사람과 걷는 길은 행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길이란

  누구하고 동행하는 가에 따라서

  행복한가 아닌가 결정된다.

  많은 것으로 치장해서

  좋은 것을 짊어져서 행복한 게 아니다.

  누구하고 걷느냐로 행복이 결정된다.

 

  아직 어떤 계획도

  미래도 정해 지지 않았지만

  젊음이라는 그 순간이 반짝였었다.

 

  해가 어스름해지는 저녁 시간에

  남산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갔다.

  걷는 게 너무 좋았던 시절이다.

  그냥, 마냥, 늘 걷는 게 좋은 시절.

 

  남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는 횡단보도 앞에서 

 

  "차가 오네. 뛰어야겠다."

 

  현택 씨가 또순이 팔을 잡고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넜다.

  얼결에 팔을 붙잡혔었다.

  의도적으로 그랬던 거 같다.

  선아가 말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손을 허락하면 팔로 올라가고 팔을 만지기 시작하면 어깨에 손이 올라가고 그다음에는 입술을 허락하게 되고 그러면 다시 내려와서 마지막을 허락한대"

 

  순간에 일어났던 일이라서 또순이는 얼떨떨하고 현택 씨도 의도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순간적으로 팔을 잡고 뛰었던 것 같다.

  길을 건넌 다음 모르는 척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에서 우리도 그때 다른 사람들처럼 가위보를 했나?

  격차가 많이 났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한 사람이 계속 이겨서 저 위에서 한 사람은 저 아래에서 가위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식물원에도 들어가서 한 바퀴 돌면서 구경하고

 그때는 서울 타워가 아니고 남산 타워였었다.

 꼭대기에 올라가서 망원경으로 영등포 한강 성심병원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 넓은 서울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현택 씨뿐이었던 게 신기했다.

 그렇게 많은 서울 사람 중에 또순이가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게 신기했다.

 정말 넓고 넓은 서울.

 

  숙소로 돌아올 땐 택시를 타고 왔었다.

  그때는 택시를 타면 합승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서 술 취한 승객이 또순이 옆에 탔는데 자꾸 기대 왔다. 

  앞에 앉아 있던 현택 씨가 돌아다닐 땐 주머니에 넣었던 베레모를 꺼내서 머리 위에 얹었다.

  베레모를 얹으면서 뒤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괜찮아요?"
  "아, 예 괜찮아요.".

 

  그러니까 술 취한 승객이 몸을 똑바로 해서 앉았다.

  그때는 공수부대 베레모 쓴 군인들을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인정해 주던 시절이다.

  베레모를 쓰니까 꼼작 못하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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