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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또순이 어렸을 적에

또순이 어렸을 적에 106

by 영숙이 2020.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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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충남 여고 입학

   

    고등 학교 입학식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제 기억 나지 않는다.

    옥천 여중을 졸업하고 엄마는 아버지가 반대하는 데도 아이들을 데리고 대전 대흥동 집에 이사 하셨다.

   

    아버지는 그때 가족이 살 집을 안 사고 월세 방을 전전 시키면서 대전 시내에 있는 주택을 사놓으셨고 작은 큰 아버지가 살 수 있도록 가게를 차려 주셨다.

    엄마 말에 의하면 대흥동 주택 일층에 세 들어 사시는 아주머니를 꼬시려고 대전 집에 자주 들락 거렸다고 했다.

    실제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늘 바람을 피우던 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여자랑 좀 친하게만 지내면 무조건 바람 피운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엄마가 아버지 말 안듣고 이사 가지 말라고 한  대전으로 마음대로 이사 갔다고, 보은 군청에 근무하시면서 하숙을 하셨던 아버지는 대전 집에도 안오시고 생활비도 안주셨다.

    맏딸이었던 또순이는 엄마 혼자 마침 비어 있던 대전에 있는 주택 2층으로 이사하는 것을 지켜 보았고 아버지가 생활비를 안주시는 바람에 돈 때문에 걱정하시는 엄마를 가까이서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옥천 읍내에 2칸 짜리 월세 방을 전전하던 터라 처음 이사한던 날 양옥으로 지은 2층 집을 보고 정말 집이 좋다 생각을 했었다.

 

    입학식 날.

    뾰족 칼라의 충남 여고 교복을 입고 집에 도착하여 1층 현관에서 운동화를 벗고 아래층 거실을 보니 엄마가 어떤 아주머니하고 앉아 있다가 또순이를 바라 보는데 얼굴이 환하게 빛나면서 웃는 얼굴로 얼릉 일어나 맞이 해 주셨다.

    엄마가 얼마나 또순이를 자랑스러워 하는지 팍팍 티를 냈다.

 

    아버지가 생활비를 안 주니 엄마의 시름이 깊어졌다.

    2층 간이 부엌에서 한숨을 쉬며 먼발치를 바라보는 엄마 옆에서 엄마가 쉬는 한숨 소리를 자주 들어야 했다.

   엄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참기름을 짜서 판다고 하는데 어린 마음에도 그게 팔릴까? 과연 누가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순이가 보아도 엄마는 참기름을 팔 수 있는 주변 머리가 있는 분이 아니셨다.

   참기름 병을 들고 바로 옆 동네에 사는 큰이모 집에 갔었다. 큰이모는 우리가 가면 먹을걸 주기는 커녕 대 놓고 시골뜨기 취급을 했다.

   흑백 티비 보는 것 조차 눈치를 주었다. 엄마는 참기름 병을 전부 말발 센 큰이모에게 주고 팔아 달라고 했다.

 

   점심 시간이면 교감 선생님이 체육교사 출신인 관계로 전교생은 체조를 해야 했다.

   아버지가 생활비를 안주는 바람에 체육복을 못 샀던 또순이는 큰 이모 둘째딸인 옥화 언니한테 체육시간에 체육복을 빌려 입었는데 미쳐 가져다 주지 못했었다.

   전교생 체조 시간에 체육복 없는 사람 조회대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또순이가 나가니 이종사촌 언니도 나와 있었다.

  언니는 언니 체육복 입고 나오지 뭐하러 나왔냐고 말했다.

 

  큰이모는 아이들이 5명이었다. 큰언니인 옥희  작은 언니인 옥화  큰오빠 서권이 또순이와 동갑 남자애인 석수와 망내 선희였다.

  대전여고의 빵모자를 쓴 똑똑한 옥희 언니는 또순이 눈에도 너무 멋지고 특별해 보였다.

  큰이모는 어린 또순이가 보아도 4명이나 되는 친정 동생들한테 베푸는 일이 없는 이기적인 분이셨다.

 

   큰 이모가 동생들에게 베풀지 않는 분이셔서 뚱띵이 이모나 상순이 이모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둘째 언니인 또순이 엄마를 찾아 왔었다.

   찾아와서 몇일 동안 있으면서 집안 일을 도와주면서 한숨을 쉬면 엄마가 필요한 것을 마련해주고 그러면 집으로 돌아 가는 걸 여러번 보았었다.

 

 

195. 친구 혜경이

 

   1학년 6반 아이들 중에서, 아니 1학년 전체에서 피아노를 칠줄 아는 아이는 혜경이 밖에 없었다. 

   혜경이는 피아노를 칠줄 아는 아이이기도 했지만 턱이 뾰족한 얼굴에 속눈썹이 긴 하얀 얼굴에 입술이 빨간 예쁜 아이였다.

   

   또순이는 혜경이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또순이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할 일을 열심히 하는 아이였고 특히 청소 시간에 청소를 정말 열심히 하였다.

   집에서 엄마가 청소를 시키지 않았지만 학교에서는 청소 시간에 주어진 청소 일을 열심히 하였고 마지막으로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을 도맡아서 했다. 책임감이 강해서 맡은 일은 꼭 해내는 성격이었다.

   

   청소 시간, 역시 쓰레기통을 들고 비우러 가는데 신발장에 신발을 들고 와야 밖에 있는 쓰레기장에 버릴 수 있는데 그냥 와서 실내화를 신고 있었다.

   실내화를 신고 쓰레기를 버리러 갈까? 하고 쓰레기장을 바라 보고 있는데 화장실을 다녀오던 혜경이가 보였다.

   쓰레기통을 내밀면서 혜경이한테 말했다.

   

       " 혜경아, 이 쓰레기통 좀 버려줘! "

   

   말도 못 붙일 것 같이 생긴 혜경이가 아무 말 없이 쓰레기통을 받아서 쓰레기장에 버리고 가져 오는 것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또순이는 혜경이와 친구가 될 것 같은 가능성을 보았다.

 

   그 이후 또순이는 쉬는 시간마다 혜경이 옆으로 가 혜경이 책상에 붙어서 놀았다.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혜경이가 앉아 있는 책상 옆에 서서 혜경이 책상 가를 붙잡고 무언가 열심히 말을 걸고 있던 또순이.

 

   드디어 혜경이하고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어디나 함께 다녔다.

    또순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하니까 혜경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있던 충남여고 음악선생님 한테 데리고 갔다.

    음악선생님은 하숙을 하고 계셨는데 나이가 지긋한 40대로 얼굴이 어둡게 생긴 키가 작고 딱벌어진 체격에 음악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분이었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하니까 무척 좋아 하면서 상냥하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셨다.

   한달 레슨비가 비쌌다.

   다음주부터 혜경이와 같이 일주일에 2번 배우러 오라고 하였다. 집에 피아노가 없다고 하니까 종이 피아노로 연습을 하고 오라고 하였다.

 

   음악 선생님 집을 나오는데 올때는 안오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선화동 계단을 한참 올라왔기 때문에 내려 갈 때도 한참을 내려가야 했다. 

   등교할 때 비가 왔었던 탓에 우산을 가지고 있어서 우산을 쓰고 둘은 계단 맨 꼭대기에 서 있다가 한발자국 내디뎠다.

   혜경이는 노란 우산을 쓰고 있었다.

   노란 레인코트를 입고 노랑 우산을 쓴 혜경이.

 

      " 이렇게 다니는 것도 먼 훗날에는 추억으로 남겠지? "

      " 추억을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추억이 있으면 아무래도 좋겠지? "

 

  추억이란 멋진 단어를 쓰는 혜경이가 좋았다.

  피아노를 치는 것도, 노란 비옷에 노란 우산은 쓴 것도, 이쁜 얼굴에 목소리가 허스키 보이스인 것도 좋았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피아노 배우고 싶다고 하면서 레슨비가 그때 돈으로 8만원이랬나? 레슨비 비용을 듣더니 엄마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돈이 어디 있냐고 말하면서 우울한 얼굴로 베니어판으로 만든 임시 부엌 문 앞에서 먼발치를 하염없는 눈길로 바라 보셨다.

   또순이네 집은 지대가 높아서 이층에서 보면 낮은 지대에 있는 집들과 먼 산까지 잘 보였다.

 

   혜경이가 준 종이 피아노로 가르쳐 주는 대로

               

      " 도래미파솔라시도 "

 

   를 몇번 연습하고 피아노는 그만이었다.

 

 

196. 필드 하키

 

   체육시간마다 체육샘이 또순이를 유심히 보았다.

   왜 저렇게 유심히 보는 거지? 생각은 했지만 ㅡ 아나 공 ㅡ 하고 공을 주고는 그 공을 가지고 놀고 있는 우리들을 관심있게 지켜 보는 수업에 열정적인 선생님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루는 체육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부른다고 했다.

   교무실로 찾아 가니 선생님이 학교에 필드 하키부가 있는데 운동을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입학시험 볼 때 체력장도 같이 보니까 체력장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살펴보고 필드 하키부에 합류 시키려고 그랬나보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고, 무언가에 목마르던 시절이니까 당연히 또순이는 한다고 하였다.

  필드 하키부는 방과 후에 옆에 있는 충남 여중 운동장에 모여서 달리기 같은 운동을 2시간 정도하고 하교를 하였다.

 

   여름 방학 때에는 등교하는 시간에 학교로 와서 주로 운동장을 돌면서 달리기 운동을 하였다.

   또순이가 제법 잘 달려서 많이 달려야 하는 센터를 코치가 배정하였다.

  선배 언니들은 또순이 포지션에 불만을 품고 단체로 코치 집에 까지 달려가서 항의를 하는 바람에 코치가 몇일 동안 운동 시간에 안나왔다.

   그때 선배 언니들이 1학년들이 군기가 없다면서 필드하키 운동기구를 넣어 두는 창고같은 곳으로 불러 들여서 엎드리라 한다음 스틱으로 돌아가면서 한대씩 때렸다.

   그때 12대 쯤 맞았었던 거 같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이유없이 그렇게 맞을 이유가 없었다.

   또순이는 체육 특기로 충남여고에 입학 한 것도 아니고 시험을 쳐서 들어온 학생이기 때문에 본인이 싫으면 굳이 운동을 할 이유도 없었다.

   다음 날부터 운동하러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이학기 개학 후에 체육 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렀다.

   운동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단호하게 운동 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체육교사 출신 이었던 교감 선생님은 필드 하키를 싫어 했다. 

   부엌 아궁이 앞에서 부지깽이로 솔방울을 쳐서 아궁이에 넣는 운동이라고 말하면서 지원에 소극적이었다

   그래서 필드 하키 운동 특기생을 안뽑아서 팀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반 학생 중에서 운동 잘하는 학생들을 뽑아서 운동을 시켰던 것 이다.

 

   또하나 그때 대통령 영부인 이었던 육여사 남동생이 제주도 시찰 가서 공부를 장려하기 위해서라는 핑게로 우열반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려서 그걸 또 전국에 있는 학교에 적용을 하였다.

   성적에 신경을 안쓰면 2학년 되었을 때 열등반이 될까 봐 공부에 신경을 써야 되는 상황이었다.

 

   2학기 추석 즈음에 대전 공설 운동장에서 필드하키 시합이 있었다.

   같이 운동을 시작했던 1학년들도 함께 시합 하는 것을 운동장 밖에서 들으면서 또순이도 계속 운동을 했었다면 저 시합을 같이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였지만 거기까지 였다.

   그만 둔 걸 후회 한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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