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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어린시절 이야기

또순이 어렸을 적에 17 - 주인 집

by 영숙이 2019.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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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행려병사자

   

    또순이 어렸을 적에는 길에 가끔가끔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시장이나 골목이나 이런 곳에 저녁에는 술 취한 아저씨들이 쓰러져 있었고 새벽에는 길에서 자던 사람들이 의식이 없이 누워 있기도 하였다. 


    보릿고개에는 먹을 게 없어서 사람들이 부황 떠서 굶어 죽던 시절이었다.


    지금 아이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 왜? 라면 먹으면 되지? ' 
    그 시절에는 아직 라면이 나오던 시절이 아니다.

    혹여 나왔더라도 삼양라면은 서민의 음식이 아니라 여유 있는 집의 먹기 어려운 식품이었다. 


    콩나물을 사려고 추운 새벽에 집을 나섰는데

    가게가 있는 도로 옆에 나이 지긋한 뚱뚱한 할머니 한 분이 누워 계셨다.
      ' 아줌마 저기 할머니가 누워 계셔요! '
    가게 주인에게 이야기했지만 아주머니는 내다보는 듯하더니   

      ' 그래? 그러네!  '
    하고는 또순이한테 동전을 받아 들고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에 콩나물을 뽑아서 담아 주었다. 


     아주머니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니 또순이도

       ‘ 별일 아닌가 보다! ’

     하면서 콩나물 바가지를 받아 들고 집으로 갔다. 


     보릿고개에 사람이 굶어 죽는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 할머니가 어떤 상태였는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도 쓰러져 계시던 모습이 기억나는 것을 보면 그 모습이 충격적이었나 보다.  

 

 

51. 주인 집

 

    멋진 한옥으로 대청도 넓고 마루도 시원하게 지어진 집이었다.

 

    문간 방은 보통 주인 일을 봐주는 머슴들이 사는 곳으로 또순이네는 문간 방에 월세로 살았다.

    지금처럼 셋집 형편이 좋은 아니어서

    정말 작은방 하나에 시설이라고 수도 없는 연탄을 넣고 솥을 걸칠 있는 아궁이 1개가 전부였다.

    부엌 문이 따로 달려 있는 것도 아니어서 부엌이 들여다 보였고

    방문은 창호지를 바른 삐거덕 거리는 문이라 문을 닫고 끈으로 만든 고리를 못에다 걸어야 하는 문이었다.

 

     지금이라면 창고도 그보다는 좋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그런 집이 많았고,

     그런 집에 들어 살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별다르게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그래도 부자는 있었고

     가난한 집도 있었고, 

     집이 있는 사람이 있었고

     집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방문을 활짝 열어 놓아서

     깨끗한 방안이 훤히 보이는

     주인 넓고 매끈매끈한 마루 끝에 앉아서 주인 언니들이 보여주는 앨범을 보고 있었다.

 

       " 이게 백 원짜리 지폐야! "

 

52. 백원짜리 지폐

 

    집 한 채에 몇 만원 하던 시절이었다.

 

    공무원 한달 월급이 쌀한가마니 하던 때라 10원짜리 한개면 콩나물 한바가지를 살 수 있는데 100원짜리 지폐가 앨범에 끼워져 있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또순이는 주인 집 딸들이 자랑하는 10원짜리, 100원짜리 지폐가 끼워져 있는 앨범을 보면서 언제인가는 꼭 저렇게 앨범을 만들어서 지폐를 넣어 놓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 앨범이 마치      "부"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초록색 100원짜리 지폐

 

    지금 우리집 앨범에도 있지만 그때는 정말 마냥 부러운 얼굴로 구경하였었고 주인 집 딸들은 마냥 자랑스러운 얼굴로 보여 주었었다.

     " 부의 상징 "

    초록색 100원짜리 지폐

    지금도 그처럼 가치가 있을까?

 

    가치가 있는 것도 있고 가치가 없는 것도 있겠지만 지금은 설령 오만원짜리를 앨범에 끼워놓고 보여 준다고 해도 그리 부러운 얼굴로 구경하지는 않았을 거 같다.

    나이가 들어서?

    부자라고 생각해서?

    화폐의 가치가 떨어져서?

 

    그 모든 것보다 돈에 대한 가치관이 변해서 일 것이다.

    평생 돈만 모으고 쌓다가 떠나야 하는 인생이라면 너무 불쌍할 거 같아서이다.

 

<보릿고개> 위키 백과에서

 보릿고개는 지난 해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바닥나고, 올해 농사지은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 ~ 6월, 식량 사정이 매우 어려운 시기를 의미한다. 춘궁기(春窮期)·맥령기(麥嶺期)라고도 한다.

 일제 강점기의 식량 수탈과 6.25 전쟁으로 인해 당시 사람들은 극심한 굶주림 속에 살아야 했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추수 때 걷은 농작물 가운데 소작료·빚·이자·세금 등 여러 종류의 비용을 뗀 다음, 남은 식량을 가지고 초여름 보리수확 때까지 견뎌야 했다. 이때는 대개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끼니를 때우거나, 걸식과 빚으로 연명했으며, 유랑민이 되어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하늘을 의지해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가뭄·홍수·해충에 의한 피해 등으로 굶주림이 심했고, 특히 봄에서 초여름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는 남은 식량으로 보릿고개를 넘기기가 어려웠다. 근래에 와서는 경제성장과 함께 농민들의 소득도 늘어나고, 생활환경도 나아짐에 따라서 보릿고개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으나, 일제강점기 때와 8·15해방 뒤부터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보릿고개 때문에 농민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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