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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어린시절 이야기

또순이 어렸을 적에 20 - 참외

by 영숙이 2019.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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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희준이2

   

    어린 시절 강렬하게 새겨졌던 희준이의 모습이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 엄마 희준이라고 알아? 매일 아침마다 필순이네 집 앞을 지나가는데! "

        " 음 그래? 희준이? 잘 산다고 하던데 읍내 여관집 아들이라 하더라 집도 잘 사는데 그러고 다닌다고! "

    엄마는 더 이상 말을 안 하고 생각에 잠긴 눈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희준이

 

     또순이하고 상관있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런 희준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50년이 지난 뒤 친정엄마를 만나서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희준이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는 희준이 이야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 주셨다.

 

       ----- 희준이는 나한테 외할아버지 그러니까 엄마의 아버지 친척이였다.

     외 할아버지는 위로 형 하나와 아래로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옥천에서 여관을 하는 큰 부자집이었단다.

    위에 형하고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형이 여관을 운영하면서

    형수가 어린 동생 둘을 돌봐 주기는 커녕 내어 쫓았다는 것이다.

    울며 불며 매어 달렸지만

    한겨울에 쫓겨난 외 할아버지와 여동생은

    친척 집을 전전하기도 하고 머슴을 하기도 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자랐다고 한다.

 

    여관을 운영하면서 잘 먹고 잘 살던 형이 어린 아들한테 너무 센 비싼 한약을 먹여서 멀쩡한 아이가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성치 않은 몸으로 매일 매일 그렇게 돌아다닌 다는 것이다.

 

   엄마 말 대로라면

     " 형제한테 모질게 해서 벌받은 거지! "

 

 

60. 참외

    집 앞에 장이 서는 장날이었다.

 

    맛있는 거 먹고 싶다고 엄마를 졸랐다.

    돈 달라고 여러 번 졸랐었던 거 같은데 받은 기억은 없다.

 

    필순이와 또순이네 집 사이에 도로는 장날이면 장터가 되었다.

    온갖 것이 풍성하게 도로를 가득 채웠지만 또순이네가 무엇을 산 적이 없었다.

 

     그날도 장에 가서 뭔가 사고 싶다고 엄마를 졸랐다.

     방앞에 있는 마루에 엎드려서 조르고 또 조르고 그런데 그날은 엄마가 어떻게 된 건지 100원짜리 종이돈을 한 장 주셨다.

 

     신나서 장이 열리고 있는 도로로 나가니까 마침 바로 집 앞 도로 중앙에 리어카를 놓고 노랗고 커다란 참외를 팔고 있었다. 참외에 볼록하게 줄이 선명하게 나있는 참외를 100원에 5개나 준다고 하였다.

 

     어린 또순이에게도 참 싸게 느껴졌다.

 

     조금 망설이다가 100원을 주고 가져간 소쿠리에 참외를 받았는데 참외가 소쿠리에 수북하게 넘쳐났다.

 

       " 이렇게 맛있고 크게 생긴 참외가 100원에 5개라니! 리어카에 가득 있지만 다 팔아도 얼마 안 될 텐데! "

 

     참외를 팔던 농부는 보기에도 튼실 튼실 하게 보이는 큰 키에 어깨가 딱 벌어진 장년의 남자로 그을린 얼굴이 정직해 보이지만 왠지 슬픔이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는 미남형의 농부였다.

 

     얼른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소쿠리를 보였다.

     엄마는 정말 100원 주고 샀냐고 이 많은 것이 100원이냐고 몇 번이나 묻고 또 물었고,

     덕분에 평생 처음 먹어보는 것처럼

     그날 참외를 정말 맛있게 먹었었다.

 

     돈이 될만한 것이 없었던 시절이다.

     해봐야 농사지은 것을 파는 게 고작이었고 그것조차도 사 먹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던 시절이다.

 

     그래도 장날에는 튀밥이나 떡이나 유과 등등 옛날 간식거리가 있었고 흥청거렸고 사람들이 많이 모였었다.

 

     장날에 장 구경을 하는 것은 항상 재미 있었다. 또순이가 모르는 것이, 신기한 것이, 가득했었으니까.

 

       ---50년도 넘게 지난 지금 이 글을 쓰고 나서 문득 든 생각인데 또순이는 잘 몰랐지만 그때부터 이미 하나님의 간섭함이 있지 아니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나 먹고 싶어했고

     돈을 들고 나간 순간 집 앞 리어카에

     그렇게도 싼 참외가 있었다는게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얼마나 크고 노오랗고 싱싱하면서 단내가 나던지 ---

 

 

61. 전학

 

    4학년이 끝나갈 무렵

    또순이네 집에 또 아기가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옥천군 군서면에 산 하나를 사고 집을 지었다면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귀했던 기와 집에 넓은 대청마루가 있는 집이었는데 처음 옥천에서 세를 살았던 주인 집과 똑같은 모양의 집이었다.

 

    나라에서 개간을 많이 장려하던 시절이라 아버지는 작은 산 하나를 사서 밭으로 개간하여 배나무를 심고 콩이나 고구마 감자 밭나락 등 여러 가지 작물을 밭에 심었다.

 

    전학하던 날 4학년 교실에 들어갔는데

    건물 뒤쪽으로 교실을 증축하느라

    4학년 애들은 교실이 모자라서 합반 수업을 하고 있었고

    교실 가운데 놓인 칸막이 너머로

    남자애들이 턱을 올려놓고 전학생이라고 신기한 듯 구경하였던 광경이 생각난다.

 

    그렇게 집중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어쨌거나 또순이는 까무잡잡한 시골 아이들 사이에서 비교적 하얀 얼굴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전학생이었다.

    비록 하얀 얼굴이 몇 달 안 지나서 다른 아이들처럼 까무잡잡해지고

    처음 신었던 까만 운동화 대신 까만 고무신을 신고 옷도 군서 아이들처럼 입게 되었지만

    또순이 눈에도 또순이는 시골 아이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존재였었다.

 

     어느 날 학교 뒤쪽에 있는 사택이 헐리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그 집을 사서 헐고 거기에 쓰였던 자재를 가지고 개간 중이던 산위에 집을 짓는다고 하였다.

 

     육중한 기계가 한순간에 집 한 채를 힘없이 쓰러뜨리던 광경이 참 신기했다.

 

     4학년 말이어서 바로 겨울 방학에 들어갔었다.

 

     아버지는 지나가던 떠돌이 가족을 겨울 방학 동안 살게 하였다. 봄이 되면 우리 집 농사짓는 일을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그 가족은 날이 풀리고 봄이 되어서 일을 시작해야 할 즈음 온다 간다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다.

 

     엄마 말처럼 겨울에는 돌아다니기 힘드니까 봄 되면 머슴 일을 한다면서 겨우내 우리 집에서 먹고 자고 놀다가 봄이 시작되자마자 한밤중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들이 떠돌이 생활을 하는 건 결국 일하기 싫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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