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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어린시절 이야기

또순이 어렸을 적에 19 - 성적

by 영숙이 2019.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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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필순이

   

     자동차가 다니는 큰 도로 건너편에는 제법 고풍스러운 한옥이 있었고 잘 꾸며진 큰 대문에 동그랗게 만들어진 정원에는 작은 분수까지 나오는 부잣집아이 이름이 필순이다.

 

    귀염성 있는 하얀 얼굴에 어울리는 빨간색 옷을 자주 입었는데 귀티가 흐르고 부잣집에 어울리는 부잣집 아이처럼 보였다.

 

    필순이네 대문 앞에는 도로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 긴 나무 벤치가 양쪽으로 2개 놓여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가끔 앉아서 담소를 주고받는 곳이다.

    얼마나 오래되고 사람들이 많이 앉는지 나무의자가 빤질빤질 윤이 나고 촉감도 매우 좋아서 또순이도 자주 그곳으로 필순이를 만나러 갔다.

 

   대문간에서 기웃거리고 있으면 마당에서 놀고 있던 필순이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대문 앞 의자로 나왔다.

 

    만나기만 하면 필순이가 하는 동네 사람들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집안에서 누군가가 부르면 아쉬워하는 또순이를 두고 얼른 집안으로 들어갔다.

 

    한 번도 또순이는 필순이네 대문을 넘어서 집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필순이만 불러들이지 또순이한테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 한 번 있었다.

    필순이가 큰 게 마렵다면서 또순이한테 화장실에 같이 가자고 한 것이다.

 

    그때의 화장실은 모두 그렇듯 대문간 옆에 재래식 화장실이었고 필순이네 화장실은 문도 반듯하고 커다란 나무 대문에 절에 있는 화장실 만큼이나 크고 깊이가 깊은 화장실이었다.

 

    필순이는 그 큰 화장실이 무서워서 또순이한테 같이 가자고 한 것이다.

 

    필순이는 또순이더러 가지 말고 화장실 대문을 열어 놓고 대문 앞에 서 있으라고 하였다.

 

    필순이가 볼일 보는 동안 그게 노랗게 쌓이는 것을 보았다.

      ' 부잣집 애들은 그걸 노랗게 보는군! '

    하고 생각하였다.

 

    풀떼기를 먹는 또순이네는 섬유질 때문에 파란색이었고 부자로 잘 사는 필순이네는 육류인 고기를 많이 먹어서 노란색이었다.

 

    볼일을 마치고 미안했는지 필순이가 안쪽으로 들어가자고 하였다.

 

    마루 밑 뜰에는 커다란 화분이 많이 놓여 있었고 방앞 마루는 나무에다 기름을 먹여 까맣게 빤질빤질하였다.

 

    이것저것 구경할게 많아 이쪽저쪽 보고 있는데 창호지문으로 되어 있는 방 안에서 엄격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시더니 누구냐고 물었다.

 

    필순이가 당황해서 길 건너편에 사는 또순이라고 말하는데 할머니는 필순이한테 선생님이 오셨으니까 들어가서 공부하라고, 또순이는 필순이 공부해야 하니까 다음에 놀러 오라고 하였다.

 

57. 성적

    뚱뚱한 아줌마였던 40대 후반의 담임 선생님이 시험 본 것을 발표한다면서 책상을 전부 뒤로 밀라 하더니 1등부터 이름을 불러서 벽 쪽으로 서라고 하였다.

 

    또순이도 16번째로 이름이 불렸고 20등까지 불러서 교실을 빙 둘러서게 하였다.

 

    그때의 자랑스러움이란, 70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 16등을 한 것이다.

    20명 중에 끼지 못한 아이들이 더 많은 게 너무 자랑스러웠다.

 

    또순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과외 한 적이 없었는데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며 서 있는 것이 ㅋㅋㅋ

 

    20명 중에 끼지 못한 필순이가 교실 뒷쪽 복도 쪽 창문 앞으로 밀어 놓은 책상과 의자 사이에서 평소에 같이 다니는 아이들이랑 심각한 얼굴로 또순이를 보고 있었다.

 

    청소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은 마치 개선장군이 싸움에 이기고 의기양양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으쓱으쓱하였다.

 

    평소 부잣집 딸이었던 필순이에게 눌려 지내던 또순이가 과외를 받는 필순이보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 때문에 엄청나게 으쓱 거렸던 것 같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는 왜 그런 게 그리 중요했을까?

 

    그 후로 필순이 할머니는 또순이가 방안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셨고 먹어 본 적이 없는 유과나 떡 같은 간식을 주셨다.

 

    방에는 반질반질하게 잘 닫인 자개가 박힌 까맣고 키 낮은 장이 놓여 있었다. 노오란 방바닥은 반질반질하였고 너무 깔끔해서 필순이가 안채에서 과외 선생님 공부가 끝날 때까지 조용하고 얌전하게 기다려야 할 것 같은 방이었다.

 

" 공부를 그렇게 잘한다면서? "

 

" 필순이는 과외까지 받는데 왜 똑순이보다 공부를 못하는 거여? "

"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거여?

 

" 공부시간에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잘 들으면 돼요! "

58. 희준이1

    아침부터 필순이한테 놀러 가 대문 앞 의자에 앉아서 놀고 있었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키가 무척 큰 190가까이 되는 남자 어른이 양쪽 팔을 옆구리에 바짝 붙여 어깨를 치켜든 채 한 손은 턱밑에 접혀서 놓여 있고 한 손은 반대쪽 팔꿈치 밑에 놓고 고개를 45도 기울인 모습으로 필순이네 의자가 놓여 있는 도로를 걸어와서 우리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무엇을 달라는 모양처럼 보이지만 무엇을 달라는 것 같지는 않았고 옷도 좋은 건 아니지만 깨끗하게 빨아진 것을 입고 있었다.

 

    한참을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 희준이라고 맨날 이 시간에 이 앞을 지나가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시간에 지나가! "

       " 그려? 어디 사는데? "

       " 몰러! 어디 사는지 모르는데 아침마다 지나간다니께! "

 

 

    정말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그곳을 지나갔고 또순이와 필순이가 앉아 있으면 마치 우리를 알고 있는 것처럼 한참을 서서 바라보다가 지나갔다.

 

    얼굴 표정이 너무 맑아서 생각이 읽힐 수 없는 그런 얼굴이 45도 기울어진 체 팔이 접힌 부자유스러운 몸짓으로 천천히 걸어서 지나갔다.

 

    모자라 보였지만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비가 오는 날 비를 맞으면서 고개를 숙인 채 필순이네 집 앞을 지나가는 희준이는 정말 초라해 보였다.

 

    놀리는 아이들한테 쫓겨서 던지는 돌멩이를 맞지 않으려고 바짝 치켜 올려진 한쪽 어깨로 얼굴을 가리며 걸어가는 희준이는 정말 불쌍해 보였다.

 

    체격으로 하면 조무래기 아이들 한주먹 거리도 안 될 터인데 화를 낼 줄 모르고 맨날 히죽히죽 웃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희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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