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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29. 고향의 봄

by 영숙이 2020.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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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봄>    

 

    영숙이는 아침부터 싱글싱글

    진료실에 건너가서 윤선생님에게 말 붙일 시간을 기다렸다.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서 

    윤선생님에게 꼭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생각을 하니까 저절로 웃음이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드디어 아침 일찍 방문하는 환자들이 다녀가고

    진료실이 한가해진 11시쯤에 건너갔다.

    선생님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계셨다.

    글씨를 못쓴다면서 여러 번 다시 쓰고 다시 쓰고 매번 얼마나  정성을 다해서 작성하는지 모른다.

   

    글씨를 못 쓰기는 못 쓴다.

    아무렴 어떠려고.

    그런데도 이런 사소한 것으로 성의가 있네 없네. 일을 잘하네 못하네 평가받는다면서 정말 정성을 다한다.

 

    난로 옆에 서서 영숙이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윤선생님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 선생님 절 좋아하세요? "

 

   윤선생님은 고개를 들고 바라보더니

 

       " 그럼 내가 김양을 얼마나 좋아한다고. "

       " 절 좋아한다고요? "

       " 응. "
       " 그럼 절에 자주 다니시겠네요. "

 

  윤선생님은 숙인 고개를 다시 한번 들더니

 

       " 날 놀린 거구나. 김양이 날 놀렸어. "

       " 친구들한테 이야기 듣고 선생님한테 꼭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선생님이 너무 진지하게 대답해서 좀 미안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뭐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가족계획실로 돌아와서 쓰던 글을 마저 써 나갔다.

   재미 있건 없건 잘 쓰건 못 쓰건 계속 써내야 뭐가 돼도 되겠지.

 

 

 고향의 봄

     

   떠나온 고향으로부터 큰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방학이나 되어야 가보는 고향의 뜰에는 아직도 등나무 향기가 가득한 것 같습니다.

 

   집 앞에는 초등학교가 있고 연이어서 우체국이 있고 바로 옆에 교회가 붙어 있는 나의 고향은 언제나 나에겐 봄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산등성이를 따라 고개를 넘어가면 예쁜 피아노 선생님이 생머리를 늘어 뜨린 채 고운 손으로 피아노를 가르쳐 주고,

   끝나고 나서 살랑 거리는 봄바람에 예쁜 원피스 옷자락을 휘날리면서 고개를 넘어올 때면 외딴 피아노 선생님의 기와집에서도 등나무 향기가 따라오고 나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아름다운 꿈결 같은 꿈을 꾸며 살랑살랑 고갯길을 내려오고는 했습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우리 다섯 딸은 피아노 앞에 모여 앉아 한 사람은 바이올린을 켜고 한 사람은 피아노를 치고 한 사람은 첼로를 치고 다른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는 하였습니다.

   그러고도 모자라면 우리 다섯 딸은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초등학교로 올라갔습니다. 

   초등학교 운동장 가득 등나무 향기가 넘쳐 나고 우리는 그 속에서 같이 등나무 꽃인 듯 등나무 향기인 듯 노래로 즐거웠습니다.

 

   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교회를 갔습니다.

   모두들 예쁘게 차려 입고 서로서로 손을 잡고 왼 종일 집과 교회를 왔다 갔다 하면서 하루를 온전히 찬양했습니다.

   아카시아 꽃이 만발한 교회는 언제나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휴식을 주었습니다.

 

   생머리를 예쁘게 늘어 드렸던 피아노 선생님은

   다비드 상을 닮은 초등학교 총각 선생님에게 시집가고

   우리 다섯 공주도 모두들 백마를 탄 왕자님을 만나 고향을 떠나 살게 되었습니다.

   고향은 언제나 우리의 가슴에 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지 않다고 하여도

   언제인가는 돌아갈 우리들의 영원한 봄이었습니다.

 

   큰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가슴이 아픕니다.

   오래 떠나 있었던 고향의 모습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도

   고향에 계신 어른들은 점점 더 멀리 떠나고 계시니까요!

   우리의 고향의 봄은 이젠 우리가 떠나고 나면 그 누가 기억해 줄까요!

                                          (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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