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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편지글

편지글 20

by 영숙이 2020.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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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치지 못한 영숙이의 편지들 >

 

1. 이젠 본격적인 겨울이야.

  

  회색빛 하늘이 우울하게 가라앉아 있군.

  (이제 막 창 밖은 햇볕이 비치고 있는데 이즈음의 날씨 대분분은 회색 빛.)

 

  이렇게 회색빛 날씨 속에서 문득 옛 생각을 떠올리고 너와 나누었던 우정 운운한다는 것은 나이가 먹었다는 증거?

 

  엊저녁에는 우리 학교 음악 선생님이 mbc 어린이 합창단 지휘를 맡고 계시는데 발표회를 울산 예술 회관에서 했거든.(많이 추웠는데도 갔었음)

  한 시간 반의 공연을 위하여 가을 내내 선생님과 아이들과 안무, 피아노 선생님이 하나가 되어서 연습을 하고 비로소 빛을 발하였어.

  조금은 허무할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슬픈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순간에 빛나기 때문에 더 아름답고 곱고 예쁘게 보이는지도.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어쩌면 순간으로 이어진 삶이기에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어쨌든 지난 추억은 아름답다고 했나?

  너와 함께 일 학년 때 음악 선생님 댁을 찾아갔었던 일이 떠오르는군.

  순수했던 시절이었지.

  그날 선생님은 자취방에서 기타도 쳐주고, 나름대로는 멋있게(?) 보이려고 노력하신 것 같아.

 

  선생님 댁을 나오니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어.

  우리는 계단을 함께 내려오고 있었지.

  아직도 네가 연두색 비옷을 입고 있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네가 정말 좋아서 피아노를 치는 아이에다가 또 음악 선생님에게 찾아갔었던 일.

  그리고 그날 내리던 비 속에서 우산 하나를 둘이서 쓰고 계단을 내려올 때. 

  네가 했었던 말

 

  "이것도 먼 훗날에는 추억으로 기억이 나겠지?"

 

  그때는 그렇겠구나 하면서도 왠지 그런 말이 낯설었어.

  우리가 추억으로 생각할 때쯤에는 나이를 얼마나 먹었을까.

  우리가 추억을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닌데 현재의 아름다운 시간들을 추억 운운한다는 게 이상 했었거든.

 

  지금 그것을 추억으로 생각하고 있다니.

  그때 음악 선생님이 커피를 한잔 끓여 주었었나?

  동서 커피 문학상에 멋지게 추억의 그림으로 써서 응모?

  작년과 올해도 응모했는데 떨어졌거든.

  당선작들의 글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 보내오는데 정말 다들 잘 쓰거든.

  나는 커피에 관한 추억이 있어야지 멋진 글을 쓰지.

  이제 생각하니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네.

 

  메기의 추억은 보내고 현실로 백업

 

  사는게 아무리 바빠도 전화 한 통 없이 살아야 하다니

  손가락만 돌리면 되는 일을.

  우리 이번 겨울 방학 때에는 한번 만나자.

  얼굴이나 한번 보았으면.

 

  너도 대전에 올 거지.

  워낙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살고 있는 걸 알지만 방학만 되면 대전 집에 찾아들겠지.

  나도야. 대전을 간다.

 

  만나서 수다도 떨고. 사심 없이 사는 이야기도 하고, 네 얼굴에 주름살도 세어 보자.

  너는 결혼하면서도 부엌 냄새나는 아줌마는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글쎄?

  그럴까?

 

  나는 방학이면 방콕 했었는데 올여름부터 방학 때 여행 좀 다니려고. 

  애들이 이젠 커서 여행을 다녀도 될만한 나이들이 됐거든.

 

  너 결혼할 때 보고 우리 아직 한 번도 못 만났나?

  시집을 동봉 하마.

  너의 여고 시절 문학소녀였던 친구가 시집을 냈다고 가족들에게 자랑해줘.

  너도 피아노를 쳤고, 나름대로는 예술적인 감각이 있는 친구니까.

 

  여전히 그 시원한 웃음소리와 함께 부디 건강하고, 어디에서든지 열심히 살다 보면 네가 잘 지낸다는 소식만 간간 듣는다 해도 좋은 일이지.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이 너의 가정에 가득가득 넘치길 빌면서 여기서 부족한 쓰기를 끝낼게.

 

                   1996년 마지막 달력의 여섯 번째 날에 울산에서 영숙이가

 

 

2. 노마 아빠에게

 

  속으로 수많은 편지를 썼건만

  막상 펜을 드니 할 말이 없는 것도 같고...

  그동안 뜸했었지?

  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서.

 

  문득

  오래전 내가 방황할 때 네가 보내 주었던 편지들 그리고 음악 테이프 또 만나러 와 주었던 일들이 생각나더구나.

  어떠한 경우이던지 너는 우리 서씨네 일가의 대장이며 그리고 나는 너의 영원한 펜이고 우리 모두들은 우리들의 대장을 항상 지켜보고 또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다오.

 

  매사 승승장구란 소설에나 있는 것이고 실은 수많은 도전과 그리고 시련 속에서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닐까.

  대기만성이라든지, 앞으로 끌어당겼던 주먹을 내뻗을 때 더 힘차다던지 하는 말이 다 이유가 있어서 있는 말들이 아닐까.

 

  사노라면 좋은 일 궂은일이 뒤섞이고 우리는 그중에서 좋은 일 그리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기 암시 쪽으로 디디고 가려고 노력하지.

  '자기 암시'

  난 언제나 시인이 되고 싶어 했지.

  지금도.

  그리고 좋은 시를 쓰고 싶어 하고,

  그래서 난 시인이 되리란 걸 믿어.

  우리 롬이 아빠의 자기 암시 목표는 무얼까.

  자신의 목표를 갖고 조금씩 다가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믿어.

  난 시인이 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김소월과 같은 민족 시인(?)이 꿈이야.

  아직도 사춘기 같다고 웃을까?

 

  하늘이 무척이나 높고 푸르기만 하네.

  참 내가 요즘 쓴 시중에서 몇 편 보내줄게.

  감상하고 독후감(?)ㅇ르 써서 보내주면 좋고, 안 보내주면 할 수 없고.

 

  롬이와 리야도 무척이나 컸겠지?

  큰고모라고 먼데 사니 조카들 얼굴도 자주 못 보고

  올케도 잘 있겠지?

  잔잔한 얼굴 표정의 올케 모습이 떠오르는 군.

  올케를 생가하면 전형적인 한국 여인상이 떠오르는데 사실은 올케 이야기를 소재로 단편을 쓰다 만 것이 있어. 

  롬이와 리야 이야기도 들어가는데 미완성이거든, 영원한 미완성 일수도.

  얼른 시집 하나 내얄텐데.

 

  단풍이 들고 있어.

  그리고 가을이 가까이 있네.

 

  우리는 계절의 순환 속에서 웃고 울고 그리고 세월이 가고,

  이번 추석에는 대전에도 갔었어.

  여름 방학 때 한 번도 못 가서 집에 가서 충전을 하고 왔지.

 

  내가 지금 있는 학교는 한마디로 아이들이 갈데없어서 모여든, 공부고 뭐고 항상 말썽이 끊일새 없어.

  그러려니 하고 산다면 나도 교육자가 아니고 그저 글 가리키는 선생이라고 화낼까?

 

  아직도 써야 할 말이 많은데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꼭 하고 싶은 말은 항상 신중하고 자신을 잘 돌보라는 것.

  잘 지내고 항상 건강하기를

                                          1995년 가을에 울산에서 누이 씀.

 

 

3. 선아에게

 

  봄인데도 날이 새코롬 하니 찬기운이 있구나.

  어제는 스승의 날.

  난 항상 스승의 날이 부담스러웠고 스승의 날 좀 없었으면 했었단다.

  허기사 어버이 날에 억지로 효도하듯, 스승의 날에 억지로라도 감사한다는 것은 영 아니하는 것보다는 좋지만. 

 

  이번 스승의 날에는 고등학교 이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 시집 2권과 편지를 장장 11장 써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써서 보냈단다.

  그리고 스승의 날 밤 8시 30분에 제자에게서 전화가 왔네.

  커피 마시러 온다고 제자 남편과 아이까지 데리고 꽃과 함께 왔었어.

  내가 항상 그 제자에게 하는 말.

  '네가 스승의 날 나의 자존심을 살려준다고'

 

  나도 차츰 나이를 먹어 가면서 느끼는 건데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닫게 돼.

  나 자신의 일에 대해 변명하는 게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변명해야 할 때마다 정말 속이 상하네.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지만 ~~~

 

  너의 목소리는 여전히 곱게 들리더구나. 

  오랜만에 너의 목소리를 들어서 정말 반가웠어.

  언제 얼굴 한번 봐야 할 텐데.

  이렇게 저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시간 내기가 쉽지 않지?

 

  부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행복하길 기도할게.

                                            1995년 5월 울산에서 친구 영숙이.

 

 

4. 보고 싶은 엄마에게

 

  목련이 떨어지고 벚꽃이 다시 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떠난 내 여린 젊음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요.

 

  엄마.

  그동안 누군가에게나마 마음 놓고 정말 길고 긴 편지를 쓰고 싶었지만 수습되지 않는 내 마음 때문에 쓰고 싶다는 생각뿐.

  쉽게 써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시험 감독 들어와서 갑자기 너무 편지가 쓰고 싶어서 편지지와 펜을 아이들 것을 실례해서 쓰고 있습니다.

 

  난 지금도 훨훨 떨치고 떠나고 싶습니다.

  다만 지금 내 마음을 붙들고 있는 것은 오직 동아뿐입니다.

  엄마 말마따나 우리를 믿고 산 엄마처럼 저도 동아를 위해 꾹 참고 살아야겠죠.

  그러나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싫은 것을 억지로 좋아할 순 없어요.

  이사하고 나서도 빨리 가지 않는 시모 때문에 신경과민에 걸릴 지경이었어요.

  가고 나서 2주 지났나?

  조금씩 안정이 되더군요.

  시모가 여기 우리가 조용히 살게 놔두지 않고 휘젓고 싶어서 야단 났으리란 생각이 들무렵 어제 또 왔어요.

  아무리 인격으로 참고 있으면서 웃으려 해도 잘 안돼요.

 

  어느새 1995년 5월입니다.

  신록의 새순이 기분 좋게 반짝입니다.

  마음은 항상 엄마 옆에 있어요.

  그래도 간혹 엄마에게 편지 쓴다는 게 잘 안되네요.

  시인이라고 하면서 사실은 엄마에게 편지 쓰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항상 건강하셔요.

  그리고 감잎차 만들어서 엄마도 드시고 우리도 조금 주시려면 주시고요.

  다른 애들도 전부 필요한 나이들이 되고 있네요.

 

  날이 점차 따뜻해져 가고 있어요.

  여러 가지로 일이 많은 듯하면서 실은 아무 일도 없이 지루한 듯하고 이것이 세월의 흐름인가 봐요.

  사실은 책을 좀 읽어야 하는데 책을 손에 못 쥐고 있어요.

 

  시간이 흐르면 점점 좋아지겠지요.

  책도 읽고 사색도 하고 글도 쓰고...... 제가 좋아하는 일상을 찾게 되겠지요.

 

  엄마.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도할게요.

  안녕히 계셔요.

                                          1995년 5월 울산에서 큰 딸 영숙이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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