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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칼럼/해외여행

내가 거쳐 본 가이드들.

by 영숙이 2020.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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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여행 가이드

  일본으로 유학 온 유학생이 아르바이트 겸해서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었다.

  가이드에 길이 든 사람이 아니어서 인지 조심스럽게 말하고 최대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서 알려 주려고 애쓰고 나름 이런저런 지식도 역사 적인 것에서부터 일본이 거품이 꺼진 이후의 상황을 잘 설명해 주었었다.

  또 여행도 처음이어서 가이드의 수준이 어떤지 잘 파악할 수 없었다.

  오래전이니까 잘 기억이 안 나고 그저 가이드가 인텔리 틱 하다는 기억이다.

 

  모든 가이드가 다 그런 줄 알았었다.

 

 

2. 중국 여행 가이드

 

  중국 여행 가이드는 여행사에서 따라 간 사람은 기본적인 것만 안내해 주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난다. 

  잘 기억이 안나는 걸 보면 평범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현지인 가이드 중에서 연변에서 백두산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현지 여성이었는데 아주 오래전인데도 잊을 수가 없었다. 

  주로 여행을 공제회에 있는 여행사를 통해서 갔기 때문에 거의 다 교사들이나 교사 가족들이 많았었다.

  젊고 예뻤던 아가씨였던 그 가이드는 자기 자신 소개를 하는데 자신의 가족이 얼마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지에 대해서 강조하고 강조하였다.

  중국에는 교사의 지위가 굉장히 낮다고 말하면서 패키지 여행단을 무시했다.

  아무도 그에 대해 항의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정말 듣기 싫었다.

  우리가 여행을 왔지 가이드 가족의 사회적 지위를 파악하러 온 것도 아니고, 우리의 사회적 지위를 평가받기 위해서 온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가이드 엄마가 뭐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게 듣기 싫어서 커다란 호수 옆을 지나가는데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가이드님. 저 호수 이름이 무엇인가요?"

  "지금 제가 이야기 하고 있는데 내 말을 가로막지 마세요."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자랑질.

  호수를 바라보면서 그곳에 두어 채 집이 보이는 걸 가르치면서 자기네 별장이 있어서 여름철마다 가족 전부가 저기로 가서 휴가를 보낸다고 말했다.

 

  '자기네 집에 금송아지가 있던지 말든지, 가이드로 왔으면 가이드만 잘해주면 되지. 왜 저렇게 자랑질을 할까.

  어려서일까?'

 

  이틀인가 지나더니 이번에는 팁을 달라고 강요를 한다.

  우리팀은 가이드한테 미운털이 박혀서 뭐라 말은 안 하고 있지만 팁을 줄 생각이 없는데 팁을 달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누구도 대꾸를 안하고 듣고 있다가 도착해서 발 마사지받는데 교수 부부 중에 부인이 여행사에서 따라간 가이드한테 조용히 항의를 하였었다.

 

  "이번 여행비에 가이드 팁이 일체 없다고 알고 있는데요. 왜 가이드가 팁을 달라고 하나요?"

 

  사실 우리가 얼마정도 모아서 줄 수도 있었다.

  한팀에 만원씩만 모아서 주어도 십만 원 정도 모아서 줄 수 있었고 그러면 그때 중국 한 달 월급이 십만 원이니까 제법 큰돈이다.

  우리는 아무도 그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았고 결국 아무도 주지 않았다.

 

  사흘 째 되는 날.

  현지 가이드한테 여행사에서 따라온 가이드가 뭐라 말했는지 모르지만 조용해졌다.

  쓸데없이 자기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여행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지식도 없는지 조용해져서 내렸고 여행사에서 따라간 가이드가 현지의 날씨와 산업과 분위기를 전해 주었다.

 

  연변.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한글 간판이 많았던 그 거리가.

  쓸데없이 자기자랑하던 가이드도.

 

 

3. 태국 가이드

 

  태국에서 만난 가이드는 기억에 남는다.

  상냥한 40대 였는데 패키지 여행단에게 상냥하게 대해 주었다.

  여행사에서는 비행기만 태워 주고 가이드는 현지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현지 여성을 한 명 데리고 다녔었다.

  현지 여성도 키가 크고 많이 배운 여성인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 별로 없이 조용히 뒤에서 보조해주는 여성이었다.

  지금까지 만난 가이드 중에서 유일하게 회사에 칭찬의 글을 남기고 싶은 분이다.

  가이드에 대해서 회사에 이러쿵 저러쿵 하는게 싫어서 안 올렸을 뿐이다.

 

  패키지 여행으로 가이드를 며칠씩 따라다니다 보면 가이드의 인격, 가치관, 생활 태도, 역사관, 안목에 따라 여행 자체가 영향을 받는다.

  좋은 가이드는 필수.

  긍정적인 가이드를 만나게 되면 여행이 상승기류를 타고 부정적인 가이드를 만나면 여행이 하강 곡선을 타게 된다.

 

  태국 관광 가이드는 상냥할 뿐만 아니라 여행객들이 찍어 달라면 언제든지 사진을 찍어주고 말을 걸면 자신이 아는 내용을 전부 말해주고 태국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중간 중간에 자기 이야기도 하였지만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만 이야기하였고 인생을 유쾌하게 사는 모양이 그대로 태도에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패키지여행이라는 게 물건 파는 곳을 여기저기 다니게 마련인데 부담 안 주도록 안내하면서 강요하지는 않았다. 

  대신 식당을 아는 가이드끼리 몇 사람 모여서 운영하고 있어서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갔는데 음식이 좋았다. 

  딱 우리가 김치찌개가 생각날 즈음에 김치찌개를 내주는 식당이었다.

  태도도 세련되어서 넘치게 접근하지도 않았고 멀리도 아니고 딱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다. 

  우리는 그 사람이 그렇게 좋은 가이드인 줄은 그때는 몰랐다. 

  여행을 많이 안 다녔으니까 당연한 결과이다. 

                 

  어디에서 친절한 배려를 많이 받아 보지 못했던 우리는 그렇게 친절하고 상냥하며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하는 것에 조금 부담을 느꼈지만 다른 곳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말하게 되었다.

 

  "태국 방콕 갔을 때 그 가이드 정말 좋은 가이드였네."

 

  특히 그 가이드한테 미안한 일이 있다.

  현금을 뺄 수 있는 기계가 없어서 팁을 다 못 챙기는 바람에 공항에서 빼서 안 주고 있다가 비행기 타러 나가면서 주머니에서 꺼내서 일일이 여행 오신 손님들을 끝까지 배웅하시는 그분 손에 쥐어 주면서 말했었다.

 

  "예수 믿으세요." 

  "제가 잡사이긴 하지만 예수 믿습니다."

 

  가이드 처가집이 강남인데 아파트가 10억이라고 해서 팔아서 태국에 부동산 사업하면 안 되겠냐고 말했었는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부인도 기념품 가게를 한다고 하였다.

 

  벌써 거의 20년이 다되어 가니까, 태국에서 만났던 그분도 이제 나이가 들었겠다.

  태국의 정치적 변혁도 만만치 않았는데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다.

  팁을 제때 못 챙겨 준거는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짐작컨데 유쾌한 사람이라서 지금도 유쾌하게 사람들에게 유쾌함을 전파하면서 모든 일에 성공하고 잘 살고 계시리라.

 

 

4. 호주 가이드.

 

  호주에서 만난 가이드는 욕심은 있는데 실제의 생활이 욕심을 못 따라가는 젊은이였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가이드를 잘하려면 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식도 있어야겠지만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있어야 하며 또 사회 분위기에도 민감해야 흐르는 세상 속에서 알고 있는 지식을 접목하여 제대로 가이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적인 역사관이나 지역에 대해서 전문적인 사람처럼 알지는 않아도 조금씩은 다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인이 한국에서 티셔츠를 보따리로 사 와서 보따리 장사를 한다고 말하는데 꽤 잘된다 하면서 가게 앞에 자동차를 세워 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말해 주었다.

  한국 티셔츠가 이곳에서 인기가 좋다고.

  그냥 부인한테 장사 잘되냐고, 얼마나 버냐고, 내가 도와줄 게 없냐고 물어보면 될 텐데 왜 가게 앞에 차를 세워 놓고 살폈을까나 하는 의문점이 들었었다.

  부인과 가이드는 그런 사이였던 것이다. 

 

  젊은이라서 지식적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안 그러려고 노력은 하는데 귀찮아하는 태도가 은연중에 배어 나왔다.

  그러다 보니 무엇을 물으면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이야기 도중에 1년 동안 크루즈 여행을 하는데 1억이 든다는데 크루즈 여행가는게 인생의 목표라고 하였다.

  가치관이나 역사관이 정립되어서,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호주의 모든 현상을 역사와 연관 지어서 설명하면 좋을 텐데 알고 있는 것과  호주와 한국을 연결하지 못하였다.

 

  결혼하고 가이드를 직업으로 살고 있다면 자신에게 좀더 투자하고 공부하고 세계관을 넓힌다면 좋을 텐데 사람은 다 자기 그릇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호주 가이드를 따라다니면서 태국 가이드가 얼마나 좋은 가이드인가를 다시 한번 발견하였었다. 

 

  가이드는 양털로 만든 것을 팔려고 물건 판매처를 안내하면서 정말 힘을 다해 설명하면서 설득하였다.  

  그래도 스케줄을 조정하여 저녁때 시드니 항구에서 맥주 마시는 시간을 주었었고, 아이들이 많이 온 것을 배려하여 동물원 입장권을 구입해 주고 동물원에 가서 코알라를 관광하게 하는 자율성을 보여 주었었다.

 

5. 홍콩 가이드

 

 전형적인 가이드였다.

 딱 가이드가 해야 할 만큼만 일하고 해야 할 것만 하고 3박 4일 왔다가는 사람들에게 딱 그만큼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딱히 기억에 남는 일이 없다.

 어떤 사람인 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면세점에 열심히 데려다주고 딱 여행 스케줄에 나온 만큼만 가이드를 했다.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했다는 기억이 난다. 

 

  

 

6. 동부 유럽

 

  동부 유럽 가이드는 살림 맛을 아는 초등학생을 둔 주부였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짰다.

  거기다가 2/3가 학생들이어서인지 가이드도 시들해서 가이드로서의 재미도 없었다.

  풍경이나 경치는 정말 좋고 아름답고 가고 싶었던 유럽이어서 불만 없이 비용 대비 퀄리티가 좋다고 생각하면서 따라 다녔지만 가이드로부터 배울 게 없었다. 

  태도도 딱 가이드만큼만 하고 또 대부분이 현지 가이드를 고용해야 하는 시스템 때문에 본인은 유럽 현지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고 호기심도 없고, 자율성도 없었고 그냥 주어진 대로 직업으로서 사람들을 대하였다.

 

  가끔가끔 자기 아이에 대해서 비쳤지만 그뿐이었다.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하는 적도 없었고 9박 12일을 함께 다니면서 유럽의 역사나 현재 상황이나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라도 좀 다양했으면 했지만 얼른 일정이 끝나 팁을 받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를 만나고 싶어 하는 그냥 직업 가이드였고 엄마였었다.

 

  아가씨 때부터 30대 후반이 될 때까지 했다면 15년을 한 건데 전문적인 가이드라는 인상보다는 그냥 다른 직업을 구할 수 없으니까 직업으로서 끌고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 달에 2번에서 3번 나온다니까 현지에서 식당 하시는 분들과도 친해질 법하건만 전혀 친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까칠한 가이드인 만큼 까칠한 사이로 지내고 있겠지.

 

  그러다 보니 현지 음식이 형편없었다.

  음식 때문에 정말 괴로웠었다.

  호텔은 도시 변두리에 있는 그냥 괜찮은 호텔이었고 거기에서 주는 음식은 먹을 만했는데 그 외의 음식은 그냥 보통 음식이라도 주면 좋으련만 ~ 이런 ~ 하는 생각이 드는 음식이었었다..

 

 

  거기에서 가이드 설명을 듣는 수신기를 잃어버렸고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가이드한테 이야기했었다.

  버스를 주유소에서 30분 기다리게 해서 그곳에서 유학생이 수신기를 가져다  준거 같았는데 진쌤한테 수신기 비용 13만 원을 다 받아 챙기는 욕심을 부리는 가이드였다. 

  수신기 빌려주는 사람한테 수신기를 돌려주면서 손님이 한 개 잃어버렸는데 가이드가 가지고 있는 여유분에서 채워 넣었다면서 돌려주고 있었다.

 

  수신기 그거 얼마 안 하는데 만약 조금만 생각을 돌려 수신기를 사서 한 가방 들고 다니다면 수신기에 드는 비용을 회사에서 받아 챙길 수 있거나 본인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아낄 수도 있으련만.

  아무 말도 안 하고 비용을 지불했지만 그렇게 해서 번 돈은 그렇게 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로바키아 선교사님께 매달 10만 원씩 선교비를 보내고 있었는데 여행 간다고 돈 아끼느라 안 보냈더니 결국 나가게 되었단 생각이 들어서인지 아깝다던지 속상하다던지 하는 마음 없이 이런저런 마음은 들지 않았었다..

 

  현지를 안내하는 가이드 중에 유학생들을 많이 쓰는데 유태인 학살이 있었던 수용소 관광 안내를 해주던 유학생 가이드가 생각난다.

  얼마나 힘들게 유학생활을 하는지 그 학생 눈에는 우리가 관광 온 관광객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은 부자일까 아닐까 파악하고 다니느라 바빴다.   

  잠깐이었지만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객지에서 얼마나 메마르고 피곤하게 사는지 얼굴에 팍팍 티가 났다.

  온통 머릿속 가득 물질 ~ 물질로 가득 차 있는.

 

  헤어질 때까지 가이드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다하긴 했지만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헤어지는 공항에서 바라보면서 인사하는 키가 작은 편에 속하고 약간 통통한 몸매의 그 가이드의 번뜩 스쳐가던 달갑지 않은 눈길이 생각난다.

  작년인가 우리와 똑같은 코스에서 크루즈 선이 배를 들이받아 많은 한국 사람들이 수장되는 슬픈 일이 생겼을 때 오래 전의 그 가이드가 생각났다.

 

 

7. 스페인 가이드

 

  스페인 여행은 여행 코스를 잘 못 잡아서 스페인 이끝에서 저 끝으로 가는 코스를 잡아서 지루했는데 가이드까지 지루한 가이드여서 더 지루했다.

  일정은 빡빡했고 버스를 8시간 타고 가는 강행군이라 끝도 없이 펼쳐지는 오렌지 밭을 무궁무진하게 구경하느라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쌤 속이 잘 쓰리는 스타일이라 속 쓰림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오렌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사에서 파견한 가이드의 목소리는 좋았다.

  해변 길을 갈 때 설명하는 목소리는 마치 방송국에서 흘러나오는 디제이 같은 목소리로 음악소리처럼 흘러나왔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아름다운 목소리는 정말 꼭 라디오 방송국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스페인도 다른 유럽처럼 현지 가이드를 고용해야 하는데 정말 형편없는 가이드였다.

  여행 코스가 정말 지루해서 힘이 들고 또 쫓기는 일정에 가이드는 사람들을 바삐 바삐 돌렸다.

  가이드는 50대 중반의 중년 남자였는데 한마디로 실패한 인생을 사는 남자였다. 

  더 나쁜 것은 본인은 자신이 실패한 인생을 산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지도 않을뿐더러 그저 그렇게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으면서 이룬 것 없이 현재에도 노력하지 않는 가이드였다.

 

  거기에다 자기 말이 먹힌다 싶으면 충고를 열심히 해주었다. 

  "스페인 좋습니다. 이사 오세요. 여기로 이민 오면 정말 좋습니다."

  뭘 먹고살라고 이민 오라는 거지? 

  뭐하고 살라고 오라는 거임?

  말도 안 통하는데, 보니까 가이드도 먹고살기 힘들어하면서 가이드 아니면 할 게 없을 거 같은데

  풍경만 먹고살 것도 아니고...

  그 가이드가 데려오는 현지 가이드들도 다들 똑같았다.

  다 그렇고 그런 가이드들이었다. 한국에서 여행객이 많아서 가이드가 없기 때문에 나이 드신 분들을 모신다고 했는데 진쌤이 볼 때에는 그런 분 밖에 알고 있지 않은 데다 더 노력하거나 개선해 보거나 좋은 가이드를 찾아낼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

  가이드들 중에는 사람들을 모으고 다 같이 즐기고 또 단체 사진도 찍어서 가지고 있는 연락처로, 카톡으로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스페인 가이드는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고 말도 안 되는 충고를 하였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몰라도 젊은이들에게 현지에 남아서 가이드하라고 부추기는가 하면 여기에서 결혼해서 살라고 부추기었다. 

  자신의 딸들은 한국으로 보내서 미술 전공을 하고 있다고 자랑스레 말하면서 ㅡ 한번 가더니 안 돌아온다면서 ㅡ

  '자기 딸이나 가이드시키지. 왜 안 시키는데? 자기 딸은 가이드시키면 안 되고 다른 사람의 딸은 가이드 싶을가보네. 자기 딸이나 스페인 남자하고 결혼시키지  왜 스페인 남자가 그렇게 좋다고 칭찬하면서 스페인 남자랑 결혼을 안 시키는데? 아직도 32살인데 결혼도 안 했다고 한탄하지 말고.'

  여하튼 불쾌했다.

  스페인은 산업이 없다. 중세기 때 아프리카에서 훔쳐온 금 가지고 그리고 그때 훔쳐온 금으로 지은 궁전이나 성전이나 그런 것으로 관광 수입을 올리면서 살아가는 나라이다.

  우리가 유럽으로 외국으로 여행 다닐 수 없었을 때 건너온 분들은 정말 잘 사는 집 자제들이었다.

  어떤 이유로든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가이드로 살아가면서 즐겁게 살고 즐겁게 결혼해서 살고 노력이나 힘들게 벌려고 하지 않았던 가이드들.

  이제 한국에서 살면서 열심히 노력해서 여행 오는 사람들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피곤과 무절제에 절은 얼굴로 여행 온 사람들을 무시하고 싶어 한다.

  왕년에 라면서 옛날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잘남을 돋보이려 하지만 이제 그런 가이드들을 존경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멸시하는 눈으로 패키지 스케줄 외의 가게로 안내하면서 혐오하던 모습이.

  스페인의 유명 식당이 방송에 나오거나 유명 음식이 방송되면 마음이 아프다. 왜냐하면 한 군데도 못가보고 정말 아닌 음식만을 먹었으니까.

  젊은이들은 스페인으로 자유여행을 다니는데 패키기로 이끝에서 저 끝까지 갈게 아니라 도시 한 군데에 머물면서 자세히 그리고 여유 있게 분위기에 젖어보고 들려보는 게 좋을 거 같다. 

 

8. 베트남 가이드

  베트남 가이드도 생각이 잘 생각이 안 난다. 2~3년 전에 갔었는데도 생각이 안나는 걸 보면 별 특징이 없었나 보다. 

  베트남보다 잘 산다고 생각해서 넘 베트남을 후진국 취급하는 게 좀 그랬다. 또 동료들끼리 상품 파는 가게를 운영하면서 지나치게 오랫동안 상품 설명을 했었다.

 

9. 스위스 가이드

  스위스 가이드도 잊을 것 같지는 않다.

  야무진 30대 후반의 싱글이었는데 정말 체격도 야무지고 말하는 것도 야물딱지고 움직이는 것도 야무졌다. 에너자이저였다.

  가이드를 직업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분이셨다. 사람들하고도 잘 어울리고 항상 웃는 얼굴로 여행객들에게 상냥하게 대해주고 사진도 잘 찍어 주었다. 관광지 설명도 유쾌하게 풀어 나가고 어떤 경우에도 얼굴 찡그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떻게 그렇게 항상 웃는 얼굴로 모든 사람에게 상냥하게 대할 수 있을까? 피곤한 일정인데도 피곤한 표시가 하나도 안 났다. 

  사춘기인 중학교 때 아무도 아는 이 없는 스위스 친척집에 맡겨졌다고 했다.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사람들 가이드가 되어 살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어머니가 다녀갔다면서 어려서 처음 보내졌을 때는 자기를 혼자 이 머나먼 이국 땅에 보내서 원망도 많이 했고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지금은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유쾌하게 풀어 나갔다.

  이건 가이드와 전혀 상관없는 혼자만의 생각인데 종교적인 연유로 스위로 오게 되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었다. 물어보지는 않았다. 가이드의 사생활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가이드가 기억에 남는 것은 일정이 끝나고 함께 숙소 근처의 찻집이나 카페나 거리 음식점에서 차를 마시고 맥주를 마신 것이다. 여러 여행지를 다녔지만 그런 분은 처음이었다. 정말 반갑고 고마웠고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덕분에 패키지여행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스케줄 밖의 풍경과 이야기를 맛볼 수 있었다.

  멋지게 인생을 즐기며, 직업도 즐기도, 친구도 즐기도 그렇게 즐길 줄 아는 분이셨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가이드를 하면서 멋진 삶을 살고 계실 것이다.

 

10. 북유럽 가이드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은 아니지만 작년에 갔었던 동유럽 여행의 가이드는 진짜 최악이었다. 그런 가이드만을 만난다면 여행하기가 정말 괴로울 것이다.

  회사 홈페이지에 안 좋은 이야기 올리고 싶었지만 가이드로 먹고살아야 하는데 나쁜 이야기를 쓸 수는 없었다. 그냥 넘어갔지만 지금도 불쾌한 기분이다. 

  "아니 가는 데마다 화장실에 가네요? 15분도 안 지났는데? 가서 억지로 짜내는가 봐."

  '네가 요실금이 뭔지 알아?' 

  학기 중에 갔었기 때문에 나이 드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말할 때도 나이 먹은 것에 대해 멸시하듯 말했다. 그러면 자신이 좀 더 돋보일 거라 생각이 드는 것일까? 그냥 가이드이니까 가이드만 하면 안 될까? 그렇게 안 되는 게 여행 시작할 때부터 여행 끝날 때까지 7박 9일인가를 계속 함께 다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마음 바닥이 다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말하는 내용 때문에 나도 모르게 좋지 않은 표정이 만들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이드는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정말 싫었다. 가이드는 호기심도 없었고 가치관, 역사관, 현재에 대한 노력도 없었다. 말도 쌀쌀하게 했고 설명하는 얼굴 표정도 구렸고 잘난 체는 무쟈게 했다. 잘나지도 않았는데 잘난체 하는 건, 잘난 놈이 잘난체 하는 것은 잘났으니까 잘난 값 하네 하고 봐주겠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멋진 체, 잘난 체하는 건 정말 못 봐주겠다. 

  같이 여행하면서도 절대로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말도 안 섞었다. 가이드랑 그렇게 말도 안 섞어 본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거기에다 가이드 한걸 자랑질했다. 경력이 어떻고 저떻고 어디를 어떻게 얼마큼 다녔고 ~ 아니 그게 여행하는 우리들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현재 여기에서 지금 상냥하게 잘 가이드해주고 친절하고 유쾌하게 대해주면 될 것을.

   모스크바 숙소에 도착해서 물었었다.

  "모스크바 시내 좀 같이 나가면 안 될까요? " "안됩니다. 치안이 안 좋아서 밖에 나가면 큰일 납니다."

  단칼 거절이다. 결국 같은 여행객들끼리 거리 끝에서 거리 끝까지 다녀오는 것으로 만족했다. 

  상냥할 생각도 없고 친절할 생각도 없고 유쾌하게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가이드 역할도 다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가이드로서 유능하다고 생각하니 할 말이 없다. 교회도 다니는 것처럼 말하던데 얼마나 교만한지 ~ 무언가 배울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아직 30대 후반인 것 같은데. 알아서 자기 인생 자기가 살겠지. 

  여행 내내 한국을 욕하더니 도착할 때쯤 되니까 너무 심했다 싶었던지 한국 칭찬을 한다. 

  공항에서 비행기표 사는 데 마일리지 많은 것 때문에 따로 표를 끊는 것 보면서 저거라도 잘난 체 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쁘게 봐주세요."

  하고 도착 후에 메시지가 왔는데 정말 불쾌했다. 생각 같아서는 안 좋은 답을 써 보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알아서 살겠지. 다른 사람 불쾌하게 하는데 재주가 있는 사람이네 하면서 속으로 욕하고 아무 답도 안 보내고 참았다.

  참 가이드도 여러 유형이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참고로 여기에 쓴 가이드에 대한 이야기는 진쌤 개인 취향(개취)이니까 여기에 써진 내용이 전부 옳다고 할 수도 없다. 진쌤이 겪은 가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진쌤의 시야와 관점에서 적어 본 것일 뿐이다. 

  가이드는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가이드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게 최고로 중요하신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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