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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어린시절 이야기

또순이 어렸을 적에 35 - 차숙이

by 영숙이 2019.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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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차숙이 

     또순이 어렸을 적에는 학원이 없었다.

    경기 중.고와 서울 대학교라는 코스가 있었지만 그 것은 우리와 상관없는 서울 사는 아이들 중에서 특별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시골에서는 서울로 무작정 상경을 하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신문에 무작정 상경을 했다가 어떤 일이 생겼는가에 대해서 날마다 기사가 쓰여 지던 시절이었다.

      - 서울에서는 눈감고도 코 베어 간다러라 - .

  

     무작정 상경

     실제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 차숙

    내 뒷자리에 않았던 차숙이가 여름 방학이 끝나고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명순이 말로는 차숙이네 가족 모두가 여름 방학 때 서울로 이사 갔다고 하였다.

    정확히 말하면 여름에 온 식구가 무작정 상경을 한 것 이다.

 

      - 차숙-

   아침에  상지리 아래 동네 앞에서  명순이와 차숙이를 기다리던 어떤 날인가 차숙이가  찐 감자 알 너 댓개를 가지고 와서 하나씩 주 길래 껍질을 하나 하나 까니까 차숙이가

     “이렇게 하는거야! ”

   감자를 꼭 누르니까 알맹이가 껍질 사이에서 쏙 튀어 나왔다.

 

   명순이는 감자를 먹지 않았다.

   자기는 감자 싫어한다고 하면서 사정을 잘 아는  명순이가 먹을 리가 없었는데 그게  차숙이의 아침이었으니까 ~~~

   철없던 나는 그 감자를 아무 생각 없이 잘도 먹었었다.

 

    차숙이네가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떠나간 후에

    명순이네 집에 놀러 갔었다.

    명순이가 냇가에 빨래하러 갔다 하여서 냇가로 명순이를 찾으러 갔더니 동생의 하얀 천 기저귀를 조그만 개울가에서 행구고 있었다.

 

    소나무와 풀 밭 사이로 제법 물이 많이 내려오고 있었고 그곳에는 빨래판을 할 수 있는 넓적한 돌들이 두서너개 있어서 그곳에서 명순이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명순아 하고 부르니까 빨래를 하다가 고개를 돌리면서 환하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지금은 그 어는 곳에서도 빨래를 할 수 있는 개울조차 본 기억이 드물다.

     하얀 빨래에 투명한 개울물 대신에 최근의 기억에는 파랗게 이끼가 낀 하천이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집에서 삶아서 개울가에 나와 다 행군 기저귀를 들고  명순이네 집으로 가려는데

    개울가에 조그만 집,

    초등학교 6학년짜리의 눈에도 정말 조그마하게 보이는 한 칸짜리 집이 한 채 있었다.

    우리 집 외양간 보다 작게 느껴지는 집이었다.

 

      " 차숙이네 집이야! "

      " 여름에 갑자기 다들 이사 갔대!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아무도 몰라! 서울로이사 갔다고 하더라! "

 

   갑자기 차숙이가 여름 방학 끝나고 왜 학교에 안 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차숙이 -

    이런 집에서 이렇게 살았구나!

    반짝이던 그 애의 눈동자와 죽은 깨 있는 유난히 까맣던 얼굴.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 애의 얼굴이 떠올랐다.

 

    10년 쯤 되었나?

    한참 초등학교 동창생 찾으러 다니던 때 연락이 되어서 차숙이 연락처가 연결이 되었는데 몇 번 전화가 왔었다.

 

     " 지금 차안에 있는데 아들 둘이 오늘 대학 졸업하는 날이라서 졸업식에 와있어! " 

 

95. 멱감기와 벌에 쏘인 일

 

    그때 그 시절에는 학원이 없었다.

 

    그래도 중학교 가기 위해서 중학교 입시반이 있었다.

    6학년 3개 반에 실업반이 2, 진학반이 1.

 

    아침 7시까지 학교에 와서 오전에 4시간 수업하고 나면 12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이어서 학교에서 제법 떨어진 강으로 목욕을 하러 갔었다.

 

     지금 아이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여학생 18명이 한 줄로 서서 논둑길을 따라 강으로 가서 검은 빤쯔를 입고 물에 뛰어 들어 물놀이를 한 시간 쯤 하고 난 다음 옷을 갈아입고 검은 빤쯔를 물에 빨아 꼭 짜서 바위위에 펴 놓으면 따뜻한 여름 볕에 꾸들꾸들 말랐다.

 

    물속에서 놀아 추워진 몸을 여름 볕에 따뜻하게 데워 제법 따뜻하게 마른 빤쯔를 주워 입고 학교로 와서 오후 수업을 하고는 하였다.

    뉘엿뉘엿 해질 녘에 수업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고는 하였다.

 

    신작로 길을 따라 집까지 걸어가는데 한 시간씩이나 걸렸지만 훨씬 먼 곳에서 몇 개의 산을 넘어 다니는 아이들도 많았다.

 

    한번은 논둑길을 따라 가다가 논둑길에 앉아서 다들 쉬를 하는데 누군가의 오줌이 벌집에 들어가서 갑자기 벌들이 날아올라 그 벌에 쏘이지 않으려고 각자 도망쳤는데 강가 버드나무가 있는 곳까지 도망쳤는데도 거기까지 쫓아온 두 마리의 벌에 쏘였던 나는 훨씬 많이 쏘인 다른 아이들은 아무 표시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발갛게 얼굴이 퉁퉁 부어서 오후 공부 시간에 선생님 하시는 말씀

       " 어이 김 군. 얌전히 놀지 얼굴이 그게 뭔가? "

 

    정말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부끄러워서 더 빨개진 얼굴을 책상 위에 깊이 파묻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 아이들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일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그 누구도 아무도 지난 세월로 돌아 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세월 따라 살아가는 방법도 달라졌고 살아가야 할 환경도 달라졌다.

 

    아무리 세월이 달라졌다고 하여도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은 비슷하다.

    어떤 세월이냐 

    어떤 상황이냐

    어떻게 사느냐에 상관없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도 변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변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아이들에게 꿈을 찾아 주는 것도 그중 변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꿈을 꾸려면 여유가 있어야 꿈을 꾼다.

 

    우리가 어떤 상황이라도 매일 매일 눈을 감고 자야 할 수면 시간이 있듯이 아이들에게는 꿈을 꾸어야 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꿈을 꾼다.

    혼자 상상할 시간이 있어야 꿈을 꾼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학원도 없고

    TV도 없고

    폰도 없고

    자동차도 없고

    기차도 타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꿈꿀 시간이 충분했다.

    모두들 꿈꾸는 시간,

    상상의 시간은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지금 아이들은 꿈 꿀 시간이 없다.

    매일 매일 아침 자습부터 시작하여 방과 후 시간까지 또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가야 한다.

    학원을 안 다닌다 해도 집에 오면

    TV

    인터넷에

    폰에

    각종 현대적인 기기에 둘러싸여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소모하고

    꿈꿀 시간도 없이

    피곤하고

    지친 몸과

    정신으로

    잠이 든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 비교하면 얼마나 행복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밥은 먹기 싫어서 못 먹는다.

    먹을 게 없어서 아침으로 작은 감자 몇 알로 때운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덥다고 점심시간이 길고

    그 길고 덥기만 한 점심시간 때문에 강으로 멱을 감는 다는 것도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조금만 더워도 선풍기에

    에어컨에

    여름에도 추워서 감기에 걸릴 지경이다.

 

    그런데도 예전에 우리보다 훨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더 힘들어하고

    피곤해하고

    항상 긴장감에 둘러 싸여 있다.

 

    건드리기만 하면 곧 폭발 할 것 같은 폭탄 같을 때도 있다.

 

    상담 선생님께 자살 충동 상담을 하는 아이들이 꽤 된다고 한다.

    실제로 손목을 칼로 그은 흔적이 있는 중학생들도 있다.

 

    배만 안고프면 행복했던 옛날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사춘기라는 점을 감안 한다고 하여도 사춘기 때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충동을 느낀다고 생각하여도 어쩌다 한번 생각해 본 것과 다른 사람에게 상담 할 정도로 또 실제로 행동에 옮길 정도로 생각 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무엇이 이 아이들로 하여금 행복하지 않게 하는 것일까?

    왜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실제로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고 하여도,

    부모들은 특히 엄마들은 자기의 아이가 그렇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한다.

 

 

    우리의 아이가 행복할 수 있도록 아이가 정말 원하는 행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

    혹시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아이를 독촉하거나 대리만족을 위하여 아이를 힘들게 하고 있지 않을까?

    다른 아이들에게 지지 말라고,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라고 힘든 시간들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꿈을 찾도록 

    꿈을 꾸도록

    얼마나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함께 뛰고 있을까?

    아이와 생각을 공유하기 위하여 얼마나 애쓰고 있을까?

    아이들이 꿈꾸는 시간을 갖도록,

    상상을 하는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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