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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어린시절 이야기

또순이 어렸을 적에 53 - 상지리 집

by 영숙이 2019.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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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상지리 집 

       

       군서면 상지리 집은

       아버지가 옥천 군청으로 전근 하셔서

       또순이가 외갓집에서 나와

       엄마와 아버지와 함께 처음 세 살았던  한옥집과  같았다.

       

 

        일자형 집에 큰방과 작은 방이 있고 커다란 대청에 사랑방이 있었다.

        집을 새로 지어 이사를 들어 가서 모든게 새거 였다.

        마루도,

        지붕에 기와도,

        커다란 대청도,

        마당에서 마루로 오르기 위한 뜰팡도

 

 

        마루에 누워서 보면

        지붕을 받치고 있는

        커다란 서까래가 보였다.

        뜰팡에서 마루로 오르기 위해 

        나무 기둥을 잡으면 촉감이 참 좋았다.

 

 

        앞마당이 정말 넓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 잘 다져 놓았고

        마당 오른 쪽에는 소를 키우기 위한 외양간과

        농기구를 넣어 놓기 위한 헛간

        마당 끝쪽 대문 반대 쪽엔 화장실이 있고

        화장실이 있는 담 너머로는 텃밭이 있었다.

 

 

        텃밭만 해도 상당한 넓이였고

        텃밭에는 커다란 감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대문과 화장실 사이 중간 쯤 담벼락에 닭장에는 암닭 몇마리와 숫탉이 있었다.

        텃밭쪽 담과 집 사이에 우물을 팠고 집 뒷쪽으로는

        다른 집 뒷뜰에 붙어 있는 쪽마루는 없었다.

        보통 쪽마루에 뒷뜰로 나가는 또다른 문이 있는데

        아버지는 뒷문과 쪽마루를 생략한 것이다.

 

 

117. 퇴비

 

       농가에서 퇴비를 만들도록 퇴비 장려 정책을 독려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사람들을 시켜서 일을 하게 하는 놉을 얻어서 풀을 베어 마당 한 귀퉁이에 산처럼 쌓아 놓으셨다.

       풀에다 화장실 오줌을 끼얹져 퇴비를 만들었다.

       처음 몇일은 냄새가 났지만 풀이 퇴비로 변하면서는 퇴비 냄새가 그렇게 싫지는 않았던거 같다. 

   

 

       텃밭에 엄마는 콩을 심고

       뒷뜰에는 부추를 심고

       집 마당가를 돌아 가면서 화단을 만들어

       꽃을 키운게 아니라 산 딸기 나무를 심었었다.

       뒷뜰 비탈에는 자두나무들이 있었다.

 

 

       산을 개간하면

       나라에서 개간비가 나오던 시절이니까

       작은 산 하나를 개간해서 

       개간한 밭에다 퇴비를 뿌렸었다.

       처음 일군 밭은 그냥 황토 흙이고

       퇴비로 거름을 만들어 생산성을 높인 것이다.

 

 

      작은 산 전체에 밭을 일구고

      배나무를 100평 정도 심고

      수수도 심고

      콩도 심고

      밭나락도 심고

      참외와

      수박

      옥수수도 심었었다.

 

 

118. 소와 닭과 돼지

     

      처음에는 외양간에 소가 한마리 있었다.

      논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산에 밭을 갈 때는 어짜피 아버지는 할 수 없고

      누군가 사람을 시키는 놉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매일 쇠죽을 끓여 먹이고 또 풀을 베어 오는 것도 누군가를 시켜야 하기  때문에 소를 키우는 게 힘이 들어서 였는지 얼마 안키우고 소를 팔았다.

     소가 없는 빈 외양간을 고치는 것을 보면서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

      는 속담을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소가 없는 외양간에 엄마는 암탉이 달걀을 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니까 노오란 병아리 10여마리가 암탉을 졸졸 따라 다녔다.

      병아리들이 물 마시고 하늘 한번 보고 이렇게 물 마시는 것을 보는 것도 신기하고

      암탉이 구구구구 소리를 내면 병아리들이 암탉 날개 밑에 전부 들어가 있다가 나왔다가 하는 것을 보는 것도 신기 하였다.

      새벽이면 수탉이 제일 먼저 울었고

      저녁에는 앞산 뒷산에 뻐꾹이 들이 울었었다.

 

 

     텃밭에 돼지막을 짓고

     아버지가 작은 돼지 새끼 한마리를 사왔다.

     꿀꿀 거리며 얼마나 잘 먹던지 100키로가 훌쩍 넘는 커다란 암돼지가 되었다.

     암돼지를 임신 시킬 때는 숫돼지를 데려 오는게 아니라

     아버지가 수의사를 모시고 왔었다.

     얼마 지나니 새끼를 12마리나 낳아서

     돼지 새끼들을 낮에는 마당에 방목 하였다.

     학교 갔다 오면 12마리의 까맣고 작은 돼지 새끼들이 엄마를 졸졸 따라 다니는 모습을 볼 때가 있었다.

     새끼 돼지들은 집안에 있는 산딸기 잎 뿐만 아니라

     먹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먹어 치우고

     엄마한테 밥달라고 마당을 이리저리 돌아 다니는 엄마를 졸졸졸 우르르 따라 다녔다.

 

 

119. 세월이 흐른 후에 찾은 상지리 집

 

 

      대학 다니면서 찾았던 상지리 집은 그대로 였다.

      산위에 개간을 하기 위해 일군들이 살 수 있도록

      초등학교 사택을 뜯어와서 다시 지은 집도 그대로 였다.

      다만 그 집에 서울로 진학 했던 대학생들 3명이 학교를 휴학 하고 내려와

      그 산을 사서 거기에 살면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산 위에 있는 집 주위에는 과일 나무들이 고목이 될 정도로 우람하게 자라 있었다..

     

        

      40대 중반에  찾았던 상지리 집은 예전에 아버지가 지은 집 그대로 였다.

      30여년이 지나서 집이 좀 퇴락해 보였다.

      텃밭도 그대로 였고

      외양간은 없어졌다.

      마당에 있던 화장실도 보이지 않았다.

 

 

     50년이 지난 후에 찾아 갔던 상지리는 많이 변했다.

     아이들이 뛰어 놀던 느티나무 놀이터도 보이지 않았고,

     도로도 새로 나 있었고,

     상지리 집은 새로 지어져 있었다.

     집 주위로는 샷시를 해서 보온과 보냉을 하고 있었고

     집 뒷뜰에는 보일러 실과 식재료를 넣어 두는 창고가 있었다.

 

 

     배나무가 심어져 있던 산에는 가보지 못했다.

     언제인가 가보게 될까?

     초등학교 시절 많은 시간을 보내었던

     산

     골짜기 개울

     밭

     배 과수원 등

     그리운 얼굴들을 다시 마주치게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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