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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 동굴 호텔, 하룻밤이 천 년의 시간이 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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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 동굴 호텔, 하룻밤이 천 년의 시간이 되는 곳


"호텔이 아니라 역사의 품에서 잠들었다."

카파도키아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동굴 호텔에서 보낸 하룻밤이라고 말할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동굴이라니 신기하겠다'는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두꺼운 화산암 벽은 바깥의 더위를 막아주고, 은은한 조명은 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공간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현대적인 욕실과 침대는 편안했지만, 벽과 천장은 분명 오래전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동굴의 모습 그대로였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서 만나는 느낌이었다.

카파도키아에 동굴 호텔이 많은 이유

카파도키아는 수백만 년 전 화산 폭발로 형성된 부드러운 응회암 지형 덕분에 사람들이 쉽게 바위를 파서 집과 교회, 저장고를 만들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동굴과 석조 건물을 보존하면서 내부를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해 특별한 숙소로 운영하고 있다. 덕분에 여행자는 역사와 편안함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동굴 호텔의 매력

가장 큰 장점은 사계절 내내 쾌적한 실내 온도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 자연이 만든 최고의 단열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아침이면 테라스로 올라가 하늘을 가득 메운 열기구를 바라본다. 붉게 물드는 새벽 하늘과 수십 개의 열기구가 떠오르는 풍경은 카파도키아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다.


숙박 전 알아두면 좋은 점

동굴 호텔은 각각 구조가 달라 객실 모양도 모두 다르다.

또한 오래된 지형을 활용한 경우가 많아 계단이 많은 곳도 있으므로 어르신과 함께 여행한다면 예약 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객실마다 분위기와 전망도 다르므로 테라스 전망 여부를 살펴보는 것도 추천한다.


여행을 마치며

카파도키아의 동굴 호텔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다.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바위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는 열기구가 떠오르는 하늘을 바라보는 경험.

그 하루는 여행의 숙박이 아니라,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된다.

언젠가 다시 카파도키아를 찾게 된다면, 나는 또다시 동굴 호텔의 문을 열 것이다. 그곳에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시간과 따뜻한 침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추천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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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내가 이렇게 영화 속에 들어 올 줄이야. 정말 몰랐어.

사회 교과서에 사진으로만 보던 걸 이렇게 실제로 바라보면서 저녁을 먹고 있다니 상상 불가가 현실이 되어 버렸네.

주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에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찬양이 저절로 흐르는 날.
감사 위에 감사가 있는 날.
모든 날들에 찬양이 있고
모든 날들이 감사 위에 감사가 있지만 오늘은 조금더 진한 커피향 같은 날이다.


점심을 먹고 기독교 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서 지하 8층까지 파고 내려가 살았었다는 지하 주거지를 본 다음 카파도끼아 마을 갔다가 지프 투어를 했다.

지프 투어는 좋은 식품으로 액기스를 만들어서 파는 것처럼 카파도끼아의 정수를 보여 주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버섯바위를
보고 또 보고
사진으로 찍고 또 찍고
동굴 호텔로 왔다.


방을 배정하고 일정을 설명하면서

'거리를 다니시면서 구경을 하셔도 좋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들이 여러분들이니까요. '

와하하하 ~
모두들 통쾌하게 웃었다.

저녁을 6시에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레스토랑이 건물 옥상 야외에 차려져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영화 촬영을 위한 영화 셋트장이었다.

주변을 빙 둘러싼 동굴 주거지들.
시시각각 얼굴을 변화시키는 밝고 명랑한 햇살들.


가는 곳마다 보이는 고양이들은 야옹야옹을 잊은듯 사람을 피하지도 않고 늘어져 누워 있다.
개들도 짖지 않고 축 늘어져
누워 있다.
그만큼 신경 안써도 되는 행복한 셰계에서 살고 있네.

방 배정하는데 604호를 뽑았다 하니까 같이 온 지인이 신경질을 낸다.
"어떡해. 6층까지 어떻게 올라가?"
옆에서 누군가가 일러준다.
그건 층수가 아니고 동이라는 표시입니다.      
"너 신경질 부리는게 습관이 되겠다."

감동적인 저녁을 먹고 거리를  따라 내려 갔다.
지인은 터어키는 위험한 동네니까 화장실 갈 때도 절대로 혼자 다니면 안되고
저녁에는 호텔 밖을 나서면 안된다는 자녀의 단단한 교육을 받은터라 저녁 먹고 이렇게 거리를 나서는건 처음이었다.

처음 그말을 할 때

'아니 25년전 사고 방식으로 말하면 어떻해? 그때는 중국에 가면 그래야 한다고 교육 받았잖여.'
'지금은 상하이에 아이들이 자유여행 다니는게 유행인 시절이야.'
'마치 한국은 아직도 전쟁 국가 인 것 처럼 생각하는 것과 같은거지.'

  우리가 아무리 우리나라가 세계 6위 무역국가라고 말해도 잘모르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대해 전쟁을 겪은 나라나 전쟁 중인 나라 또는 그 비슷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가이드가 호텔 밖을 나가면 위험합니다. 절대로 호텔을 벗어나지 마세요. 하는 것과 같다.
우리 가이드는 사람들을 인솔하는데 아주 효율적인 사람이었지만 이 여행은 왜 왔을지 또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왔을지 그 마음까지 챙겨 주는 분은 아니었다.

안탈리야는 세계적인 미항이다. 그만큼 사람들도 많이 살고 시내도 번창한 그런 동네인데 져녁을 먹고 우리는 대문 밖을 나서 보지 못했다.

시내구경? 그게 뭐지?

가이드가 보여주는 만큼만 보았다.
가이드가 챙겨 주는 만큼만 챙겨 받는 우리 착한 우리나라 관광객들이다.


호텔에서는 수영장에서 쫓겨났다.
9시라고 아직 20대인 뚱뚱이 여자가 와서

"나가, 나가, 나가,"

했다고 일행 중에 한분이 말한다. 한국어를 못하니까 그럴만 하다고 말하면서도 상처 입은 얼굴까지는 감출 수 없었다.

"ㅋㅋㅋ 노 노 노 버스에 가 있어요.
사모님 노노노 버스에서 기다리세요.
노노노 사모님 버스로 가세요."

고함치듯 말하던 현지 가이드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아침에 현지 가이드가 사진   찍히고 싶은데 보이길레 찍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첫날 내 마음이 아팠다."

말했더니 지 마음을 이야기 하는줄 아는지
"괜찮아요."
말하길레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겠다 싶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사진은 원하는 구도대로 나오지 않고 그자리에서 그냥 팍팍팍 찍혀 있었다.

모이라는 시간에 맞추느라 열심히 모이라는 장소와 반대로 열심히 걸어 갔는데 시장 거리가 너무 아름다웠다.

잠깐 어쩌다 들여다 보이게 된 안탈리야의 거리는 거리 전체에 차도 안다니는 넓은 광장같은 도로에 꼬마 전구를 가득 달아 놓고 데이트 족속을 기다리는 보기에도 설레는 곳이었다.
사진으로 못 찍어 안타까울 뿐이다.
살인적인 물가라고는 해도 여행이란 자고로 돈 쓰려고 집을 떠나오는 건데 번화한 시장 거리 한번 다녀 보지 못한게 안타까웠다.

이틀 후인가 카파도끼아 강변에 있는 도시에 내려 주고 한 시간 동안 카페를 가라고, 시장도 안내 해 주었지만 그 거리는 번잡한 거리가 아니었고 뜨겁고 햇볕이 가득한 한낮에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안보이는데 시장 구경한다고 양산 쓰고 모자 쓰고 선그라스 쓰고 홀로 불볕 햇볕이 쏱아지는 광장을 가로지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인과 나도 모여야 할 곳에서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았고 사진만 찍다가 시간을 끝냈다.
보러갈 엄두가 안났기 때문이다.
이런 패키지는 손님을 챙기는게 아니라 손님에게서 쏱아져 나올 지폐를 위한 패키지이다.
생각해보면 호텔비와 비행기 삯에도 빡빡한 비용으로 온갖 곳을 다 다니는데 시원한 시간에는 상품 보여 주러 가고  한낮의 불볓 더위에 관광지 구경하라는 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것 같다.

최선을 다한 건 안다.

호텔도 별 다섯개는 아니어도 자유여행으로 다닌다면 망설일 만한 좋은 호텔에 식사도 호텔 부페에서 좋은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준 것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정작 원하는건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나는 먹는건 좀 소박해도 (아침 저녁은 간편식이고 점심만 제대로 먹는 식사라도 좋다.)
관광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안탈리야에서의 섭섭함이 충분히 남아 있다.

안탈리야는 정말 신혼부부가 와도 좋은 곳이었다.
터어키는 도시마다 건물에 칠하는 색이 다르다.
안탈리야는 하늘색이고 경쟁 도시인 커파도끼야는 회색에 가깝다.
앙카라는 짙은 회색이고 경쟁도시인 이스탄불은?

이러저러한 상황에 대해서 함께 여행하는 분에게 불평을 했다.
아니 왜 호텔에 가두어 놓고 꼼짝 못하게 해요?
카파도키아의 동굴 호텔에서 외출을 허락하니 정말 좋았다.
생각해보니 안탈리야에서는 외출을 허용한다면 외출에 따른 부작용도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푸르른 지중해를 마주하며 영화 속에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은 충분하다.

카파도끼아 동굴 호탤이 있는 거리를 천천히 걸어 내려 갔다.
문이 안달린 아치를 세운 거리가 신기하다.
아치를 통과하여 내려 가니 옛날 옛적 선조들이 살았음직한 동굴들이 파져 있는 산이 바로 눈 앞에 있다.
아직도 몇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좀 먼곳이고 눈 앞에 보이는 곳은 살았던 흔적이다.

그 맨 아래 동굴에는자동차가 커버를 씌운채 세워져 있다.
자동차 주차장.
이런 저런 기념품을 파는 가게로 들어갔다.
제법 넓은 가게로 물건도 많았지만 살만한? 마음이 갈만한? 지역의 대표적이거나 상징적인 물건?
잘 눈에 띄지 않았다.


거기서 나와 삼거리가 되어 있는 광장으로 갔다.
옆에서 불안한지 자꾸 보챈다.

'어디까지 갈건데?'

조금만 더 가자.
저기까지만 가지?
좀만 갔다가 돌아갈께.

그렇게 들어간 다양한 물건이 아록 달록 놓여 있는 가게에서  나무로 만든 튼튼한 팽이를 샀다.
가격을 깎아야하는 줄다리기를 못하겠다.
그래도 10달라에서 1달라를 깎았다.
ㅋㅋㅋ

돌아오면서 1달라를 만들기 위해 호박씨를 사려고 했는데 거스름돈으로 받아야할  달라가 없어서 5달러짜리를 내놓지 못했다.
아가씨는 호박씨 한보따리를 주면서 2달러라고 하였다.
5달러인데 거스름돈 있냐니까 있다고 했다. 보여 주라니까 빈 책상 서랍만 열고 보여 주는데 거스름 달라가 없어서 그냥 지나왔다.


천천히 올라와서 우리 숙소로 올라가는 계단이 너무 예뻐서 사진 찰칵 찰칵 그러고 숙소로 들어갔다.

우리 건물 바로 옆에는 담만 있고 그 안에 돌덩이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 공터가 있었다.
우리가 올라가는 계단 위쪽으로는 건물을 수리 중인지 시맨트 포장지가 놓여 있었다.
공터 옆으로는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는 카페가 있었는데 손님은 없었다. 주중이어서 그럴까? 주말이면 손님이 오려나? 불이 켜지려나?
그 옆에는 심하게 동굴들이 많아 보이는 제법 큰 바위산 이 있었다.
그곳은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않고 행사시에만 쓰는지 인적이 없었고 대문에도 소나무 잎사귀 같은 잎사귀가 갈색으로 변한채 붙여져 있었고 꼬마 전구들이 달려 있었다.


처음 왔을 때에는 지하에 있는 앨리베이터를 한충 타고 올라 왔었는데 같이 온 이는 일층 출입구로 올라 가고 나는 계단 골목을 끝까지 따라 올라갔다.

양치하고 옷을 바꿔 입고 예쁜 아가씨들이 추는 춤울 보러 간단다.

이것 저것 마구 뒤섞어서 썼는데 여행이 끝나면 잊어 먹을거 같아서 여기에 잔뜩 써 놓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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