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여행과 일반 여행의 차이
필리핀 선교 여행을 다녀 온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필리핀 선교 여행을 떠나기 전에 철야 기도를 20일 가까이 했다.
왜?
처음 가는 선교 여행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이라는 건 뭐든지 긴장하기 마련.
응답이 있었다.
불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 세 친구의 이름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입니다.
이들은 원래 히브리식 이름이 있었는데, 바벨론에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냐 → 사드락
미사엘 → 메삭
아사랴 → 아벳느고
이 세 사람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 때문에 뜨겁게 달군 풀무불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셔서 머리카락 하나 타지 않고 살아 나왔습니다. 그때 왕은 불 속에서 네 번째 사람이 함께 걷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이를 하나님의 천사 또는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다니엘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많은 사람이 힘을 얻는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겠습니다." — 다니엘 3:17–18
이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겠다는 세 친구의 신앙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성경 구절입니다.
사실 그때의 나는 사드락, 메삭,아벳느고라는 이름을 몰랐었다. 그런데 풀무불 가운데에서도 지키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알지도 못했던 그 세사람의 이름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시다. 한번 약속하신 것은 절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그렇게 필리핀 선교 여행을 떠났다. 그때 교회에서 청장년등 모두 20명이 떠났는데 떠나기전 석달 전부터 만보 걷기를 시작했고 매주 선교 여행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필리핀에 가면 어떤 일을 할 것이며 어떻게 해야 하며 등등. 교회에서도 대규모의 인원이 출발하기 때문에 준비를 철저히 했다.
그렇게 떠난 선교 여행은 현지에 계신 선교사님 중심으로 전도도 하고 현지 선교 교육을 하는 학교도 가고 거기서 파는 간단한 것도 선교의 의미로 샀고 현지에 세운 교회도 가서 기도도 하고 그 교회는 바닷가에 세워진 쓰레기 판자 마을에 있었는데 선교 교육원을 졸업한 현지 졸업생이 선교사와 선교사의 교회에서 후원하여 지은 교회 였다.
일주일에 300 ~ 400명의 아이들이 모인다고 하였다.
다녀와서 후기를 작성하는데 나는 솔직하게 써내지를 못했다. 적당히 작성한 내용을 대신 제출했고 모든 교인들 앞에서 아주 잘 작성한 다른 예쁜 집사님의 간증이 채택되어 집사님이 읽는 것을 들었었다.
그때 심정은 솔직히 실망했었다.
왜?
기도를 하거나 선교 학교에 가서 기도를 하고 현지에 있는 교회에 가서 현지 아이들과 함께 활동하고 기도하는 시간들은 좋았지만 또 현지에 있는 교회에서 교인들과 돼지를 잡고 함께 풍성한 잔치를 하는 것 까지는 좋았다 해도 현지를 속속드리 아는 선교사님이 맛있는 음식점이며 버스를 대절하여 맛자시 샾이며 그 지역의 유명 관광지와 유명 휴양지를 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마치 선교사님을 가이드로 해서 현지 관광을 철저히 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결단코 관광은 아니었다.
관광도 아니고 봉사도 아닌 적당한 어중간함이 싫었다.
현지에서 돌아가면서 평을 이야기 할 때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이맴버, 리맴버, 훠 에버
그때 선교사님이 기도 제목을 말하라고 해서 말했는데 그 기도 제목대로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본다.
이럴 줄 알았다면 좀더 큰걸 구했어야 했나?
그때의 선교 여행에 실망해서 이후 선교 여행에 동행하지 않았다. 이후에 선교팀은 동유럽을 다녀왔는데 교회에서 보여 주는 사진을 보니까 내가 동유럽을 여행 갔을 때 찍었던 사진과 별반 다를바 없었다. 선교라는 이름으로 교회의 지원까지 받으며 관광 욕구를 체우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건 정말 잘 못된 나의 생각이었다.
이후 개인적으로 스위스와 북 유럽 관광을 다녀왔었다.
스위스를 간 것은 은퇴 이후 직업을 무엇으로 할까요? 했더니 여행 다이제스트라고 말씀하셨고 어디로 여행 갈까요? 했더니 융플라워였다. 어딘가 보았더니 스위스에 있는 산이었다.
북 유럽은 버스를 아주 아주 오래 타고 여러 나라를 걸쳐서 다니는 것이였지만 버스를 오래 타고 새벽 일찍 떠나고 여러 나라를 거치다 보니 일정을 소화 하느라 개인적인 교류가 없었던 스케쥴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이드에게 주어진 시간이 정말 많았는데 가이드가 한국을 낮춰서 이야기 하는게 괴로웠었다는 기억은 있었지만 지금 같으면 그런 내용이라면 귀을 이어폰으로 막으면 그만이었다.
코로나 전이었다. 이제 코로나를 지나고 그때 함께 북유럽을 여행하였던 지인이 튀르키에를 가자고 하였다.
북유럽이 나쁘지 않았기에 그러자고 역시 여행 내용과 모든 것을 지인에게 맡겼다.
사실 여행을 좋아했지만 왜 굳이 튀르키에를? 그냥 지인이 가자고 하니까 ~
그렇게 여행이 시작 되었다.
북유럽을 다녀온지 7년? 그 사이에 지인은 서너번 만났을까? 톡을 하거나 여행 전에는 지인이 자주 전화를 해서 전화를 받는 정도?
지인이 그 7년 동안 70 노인이 되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70 노인이었다.
지인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런 모습이 아닌가? 나 역시 70 노인이 아닌가? 예전에 주변에서 누가 70이라고 말하면 그분 70 노인이래?
했었던 그 70 노인이었다.
스스로만 아니라고 발버둥치고 있었던 것이다.
기억력이 감퇴하였고 모르는 것 투성이고 고집쟁이였고 누군가 이말하면 자신의 사고 경로대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가령 소금 호수라고 하니까 유우니 소금 호수를 생각하는 사람.
충격을 받았다.
더 충격이었던 것은 7박 9일 동안 내내 술파티를 벌이고 술을 마시는 사람.
그 사람의 머리 속은 온통 술 뿐인가 보았다. 바다를 가르는 유람선을 타면서도 내 앞에서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풍경이 너무 좋아서 또 술 한잔 생각이 나네하는 술 때문인지 더위 때문인지 벌건 얼굴의 여성. 그 정도로 술생각이 난다면 대낮부터 그렇게 마셔댄다면 그게 알콜 중독이 아닐까?
나는?
투자 중독이 아닐까?
은퇴 이후 기도하는데 금이 가득 든 물통을 보여 주셨었다. 아 ~ 금을 투자하라는 거구나. 투자했을까? ㄴㄴㄴ그때까지만 해도 금값이 정체되었기 때문에 투자하지 않았었다. 올 봄에 은이 가득 든 물통을 보여 주셨다. 은을 투자해야 겠다. 은값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몫돈이 없었기 때문에 매달 생활에 지장이 없는 적은 금액이지만 신한 은행에 은 계좌를 만들어서 넣고 있다.
모두들이 모여서 호텔에서 정해진 저녁을 먹을 때 나도 모르게 "은 투자 하세요." 말하고 있었다. 웃긴다. 부자도 아니면서 왜 그런 소리를 했대?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다. 나름대로는 기도할 때 보여 주신 내용이었지만 듣는 사람은 자기 나름의 생각틀에 걸러서 들을 것이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나름들 여행을 다닐 정도로 여유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웃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다 환율까지. 나는 정말 웃기는 사람이다. 투자에 미친 노인이 아닌가? 겨우 백만원 이백만원 투자하면서 투자의 달인처럼, 전문가인 것 처럼 말한건 정말 부끄럽고 부끄럽다.
부부끼리 왔는데도 부인 외 다른 여자들에게 한눈을 팔면서 은근 슬쩍 추파를 보내는 남자. 남이야 이렇든 저렇든 서로만 챙기는 부부. 멀찍이 떨어져서 다른 사람들을 비난만 하면서 어울리지 않는 부부.
가이드는 자신의 일을 철저히 하는 분이셨다.
거기까지.
돌아보니까 선교 여행과 정말 비교되는 여행이었다.
그때의 선교 여행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가져간 쌈지돈들을 현지 신학교에 몽땅 털어 놓고 오던 교인들. 특히 물건을 파는 매장에는 한번도 안갔었다. 그냥 시장에 갔었고 시장 근처 카페에 가는게 전부였다.
선교사님은 기도 해 드릴테니까 기도 제목을 말하라는게 전부였다.
물건 광고는 있을 수 없었다.
가죽이 어떻고, 약이 어떻고, 카페트니, 기념품이니 ~
이제 돌아보니 정말 행복한 선교 여행이었구나. 관광만 조금 줄인다면 더할나위 없는 여행이었구나.
오늘 아침 튀르키에 여행이 왜 그렇게 불편했었는지 비로소 발견한 것이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이사야 52:7)
"평안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로마서 10:15)
이 말씀을 묵상하며 조금 더 시적인 표현으로 적으면,
주의 이름을 품고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아름답습니다.
그 걸음마다 은혜가 머물고,
그 발자국마다 평안과 소망이 피어납니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 걷는 길이 가장 아름다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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