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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칼럼/국내여행

"300년 고택 강릉 선교장은 입장료 만으로 운영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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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고택 강릉 선교장은 입장료 만으로 운영될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닙니다.
입장료(성인 기준 5,000원)는
강릉 선교장의 전체 운영 및 유지 비용 중 일부만을 충당할 뿐이며,
실제로는 정부 보조금과 다양한 자체 수익 사업이 결합된
다각화된 재정 구조로 운영됩니다.

강릉의 대표적인 전통가옥인 Seongyojang House는
조선 후기 상류층 가옥으로
.약 300년 넘게 후손들이 거주하며 관리해 온 문화유산입니다.
현재도 개인 소유 성격을 유지하면서
관람객을 받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관리와 운영은 누가 하나요?

선교장은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곳은 아닙니다.
원래 소유 가문이 중심이 되어 관리하며,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기도 합니다.

운영비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재원으로 충당됩니다.
관람 입장료 수입
한옥체험 숙박 수입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 운영
국가 및 지자체의 문화유산 보수 지원금
각종 행사 및 촬영 대관 수입

전통 목조건물은
지붕, 기와, 목재, 담장 등의 유지보수 비용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입장료만으로 운영하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공공 지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300년의 역사를 지닌 국가민속문화재(제5호)인 만큼,
거대한 목조건물 군락을 유지하고 복원하는 데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선교장의 구체적인 재정 및 운영 구조는 다음과 같이 나뉩니다.

선교장은 사유지이자
민간(재단법인 및 위탁운영사)에서 관리하지만,
엄연한 국가 지정 문화재입니다.

문화재 보수·정비 예산:
목조건물의 특성상
흰개미 방제, 기와 교체, 재해 방지 시스템 유지 등에 막대한 돈이 들어갑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과 강릉시로부터
매년 수억 원 규모의 문화재 관리 및 유지 보수 예산을 지원받습니다.

인력 파견:
선교장 내에서 활동하는 문화관광해설사 분들
역시 강릉시청 관광과에서 파견·지원하는 인력으로,
선교장 자체 고용 부담을 줄여주는 공공 지원의 일환입니다.

2. 자체 유료 비즈니스 (부가 수익 창출) 
선교장은 단순히 '보는 고택'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인 전통문화 비즈니스를 통해 자생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옥스테이(숙박):
행랑채, 서별당, 전통문화체험관 등
고택 내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한옥 숙박 체험을 운영합니다.
단체 대관의 경우 하루 수십만 원 선의 수익을 올립니다.

식음료 및 기념품 사업:
선교장 내부에서 운영되는 전통한식당 및 카페 '리몽(李夢)'을 비롯해,
가문 전승 먹거리인 '오색다식' 만들기 체험 및 판매를 통해 부가 수익을 냅니다.

공간 대여 및 행사 기획:
400석 규모의 야외 공연장과 세미나실 등을 갖추고 있어
기업 연수, 전통 혼례, 문화 예술 공연, 영화·드라마 촬영지 대여 등으로
수익을 다각화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강릉 선교장은
**[ 관람객 입장료 + 한옥스테이·식음료 등 자체 사업 수익 ]**
으로 상시 운영비를 충당하고,
대규모 고택 보수와 재난 방지 같은 핵심 유지 관리는
**[ 정부와 지자체의 문화재 보조금 ]**을 지원받는
'민관 합동 안정화 모델'
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입장료는 어떻게 되나요?

현재 선교장은 별도의 매표소를 통해 관람료를 받고 있습니다.
강릉 선교장 매표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입장료 수입은 시설 관리와 운영에 활용됩니다.
다만 입장료는 시기에 따라 변동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나 전화 문의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입장료만으로 충분할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교장 규모는 약 1만 평이 넘고
여러 동의 한옥과 정원, 연못, 정자 등을 유지해야 합니다.
오래된 문화재는 일반 건물보다 수리비가 훨씬 많이 들기 때문에
관람료 외에도 숙박체험, 행사 운영, 정부 지원 등이 함께 필요합니다.

쉽게 말하면,

> "선교장은 개인이 소유하고 운영하지만,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관람료와 체험수입,
공공지원금을 함께 활용하는 전통문화 공간"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Seongyojang  House 船桥庄

18세기 조선시대 상류층 주택인 선교장(Seongyojang House, 船桥庄)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에 위치한 대표적인 전통 한옥 단지로,
당시 양반가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에 자리하며,
현재는 박물관과 문화체험 공간, 한옥스테이 숙소로 운영된다.

역사와 건축

선교장은 1703년~1781년 사이에 활동한 이내번(李乃蕃) 가문의 주거지로,
조선 중기 상류층 주택 양식을 대표한다.
1967년 대한민국 중요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다.
본채를 비롯해 사랑채, 별당, 정자 등 여러 건물이 99칸 규모로 배치되어 있으며,
입구의 활래정(和來亭)과 연못은 정원의 핵심 경관 요소다.

문화적 가치

이 저택은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의 생활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주거 건축뿐 아니라 일상 용품, 가재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생생히 보여준다.
강릉시가 주관하는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
(다식 만들기, 한복 체험, 국악 공연 등)도
정기적으로 진행된다.

방문 정보

매년 3~10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11~2월에는 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입장료는 성인 5,000원, 청소년·어르신 3,000원, 어린이 2,000원이다.
일부 건물은 숙박 가능한 한옥스테이 공간으로 운영되어
전통 가옥에서의 하룻밤을 체험할 수 있다.

주변 명소

인근에는 오죽헌, 강릉향교, 경포해수욕장 등 다양한 관광지가 위치해 있으며,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강릉의 문화를 함께 경험할 수 있다.

강릉 선교장 매표소 Address: 471-8 Unjeong-dong,
특별자치도 Gangneung-si, Gangwon-do, South Korea

강릉 선교장 매표소
는 강릉 선교장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는 공식 티켓 부스이다.
관람객은 이곳에서 표를 구입해 300년 역사의 고택과 문화유산을 둘러볼 수 있다.
매표소는 선교장 관리법인 ㈜배다리문화원이 운영한다.(Seongyojang)

기능과 역할

매표소는 선교장 입장 절차의 출발점으로,
일반 관람권과 체험 프로그램, 한옥스테이 예약 관련 문의를 함께 받는다.
하절기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에는 오후 5시까지 운영하며,
입장 마감은 폐장 30분 전이다.(Seongyojang)

역사적 배경

선교장은 조선 후기 상류 양반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고택으로,
국가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매표소는 이 전통가옥군의 관람 관리 체계 일부로 자리하며,
문화재 보존과 방문객 서비스의 균형을 담당한다.(KNSGJ)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운정동 471-8번지(도로명: 운정길 63)에 위치해 있으며,
강릉시 도심과 가까워 접근이 용이하다.
부지 내에는 전통한식당 ‘리몽’, 다식체험 카페, 공연 공간 ‘열화당’
등이 함께 운영되어 종합 문화관광지로 기능한다.(KNSGJ)

운영 관리

매표소는 관람객 응대와 함께
선교장의 문화행사, 한옥스테이, 교육 프로그램 참가 접수 등
종합 안내 역할을 수행한다.
운영 주체인 ㈜배다리문화원은
선교장의 역사 보존과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Seongyojang)

강릉 소개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관광지라서
한번은 꼭 가보고 싶었지만
일부러 신경쓰지 않는 이상
강릉을 다녀 왔어도 선교장에 들리는 일은 없었다.

이번에는 마음 먹고 들리기로 했다.

한옥에 살지는 않지만 멋진 한옥 건물에 항상 매료 되었다.
멋진 한옥 건물은 어떤 느낌이라고 할까?
고풍스러운 품위를 갖추었다고나 할까?

아파트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아파트에서 살겠지만
그렇다고 한옥에 살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특히나 오래된 한옥 고택은 
히스토리가 기둥마다 아로 새겨져 있을 것만 같아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너무 예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들이 읍내에 있는 월세집을 전전케 하던 아버지가
군서면 상지리에 멋진 한옥을 지으셨다.

외갓집에서 자라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문간방에서 월세로 살면서 바라보았던
 주인집의
그 멋진 한옥이었다. . 

방 앞에 널널한 마루가 있었고 
큰 방과 작은 방에 큰방의 두배 크기의 대청 마루가 있었고
작은 큰 아버지가 일년동안 사셨던 사랑방이 있었다. 

그집에서 행복했었나?
어렸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읍내보다 시골이어서 자연속에서 살았던 것은 
정말 좋은 추억이었던 것 같다.

공무원으로 평생 사시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유전자 때문에 
나도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을까?

아무튼 그런 아버지 때문에 정말 자주 이사를 다녔다. 
중학교 때 까지는 1 ~ 2년 마다 한번씩 다녔고
고등학교 때 대전 집으로 이사하면서 부터는
결혼하기 전까지 그집에서 살았다.

고택 뒤안까지 관리가 잘되어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서 생활하게 했을까?
네버, 한번도 그런적 없는거 같다. 
생각하니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든다. 
평생 자연을 가까이 안했으니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게 당연하다. 

어렸을 때 자연 속에서 성장 한 적이 있는 나도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아파트에 살면서
앞으로도 계속 아파트에서 살겠지만
그저 아름다운 고택을 구경하는 것으로도 정말 만족한다.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감탄에 감탄을
사진에 사진을 정말 많이 찍었다.

아무리 사진을 많을 찍는다 해도 홍보용으로 찍은 사진만 못한 경우가 많다.
차츰 차츰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제는 인터넷에서 사진을 잘 찾아 올려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 들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련을 못버리고 찍고 찍고 또 찍고
좋은 사진이 찍히기를 바란다. 
이것도 쓸데없는 욕심이리라

최선에 최선에 최선을 다한 것으로 만족하리. 

다음은 my house history.
선교장과 정말 비교되는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울산에 취직해서 처음에는 월셋방을 전전했다. 
결혼 이후에는?
단독주택에 붙어있는 두칸짜리 전셋집에서 
거실에서 은행나무가 보이는 23평 아파트 전세로 
(전세비보다 매매가가 쌌는데 왜 안샀는지 몰라.)
이후에는 23평 임대 아파트로 
이제는 32평 오래된 아파트에서 산다. 

선교장은 누구나 꿈으로만 그렸을 법한 그런집이다. 

강릉 선교장, 300년 세월을 품은 명가의 탄생 이야기

강릉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바로 강릉 선교장입니다.
수많은 한옥 가운데서도 선교장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300년 넘게 이어져 온 조선시대 양반가의 역사와 삶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선교장은 왜 지어졌을까?

선교장의 역사는 조선 후기인 17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강릉 지역의 명문가였던 이내번이 새로운 터를 찾아
지금의 선교장 자리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이내번이 현재의 경포호 주변을 둘러보던 중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수지리에 매료되어
이곳에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특히 집 앞에는 넓은 연못과 숲이 있었고,
뒤로는 산이 감싸는 배산임수의 지형이어서 명당으로 여겨졌습니다.

집안에 할머니가 거주 하셨다는 뒷채. 사진으로 찍으면서 높아서 드나들기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교장'이라는 이름의 유래

선교장이라는 이름은 집 앞의 작은 배다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옛날에는 현재와 달리 주변이 물로 둘러싸여 있었고,
사람들이 배를 이용해 건너다녔습니다.
이 배다리를 '선교(船橋)'라고 불렀는데,
이 다리 옆에 세워진 큰 집이라는 뜻에서
'선교장'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즉, 선(船) : 배, 교(橋) : 다리, 장(莊) : 큰 집, 저택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0대에 걸쳐 이어진 양반가
선교장은 단순한 개인 주택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시대 강릉을 대표하는 사대부 가문이
대대로 거주하던 공간이었으며,
약 300년 동안 후손들이 이곳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전쟁과 근대화를 거치면서도
대부분의 건물이 보존된 것은 매우 드문 사례입니다.

현재도 후손들이 관리에 참여하고 있어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선교장 유퓸 전시장에 전시된 많은 물품들. 어떻게 보관이 가능했을까? 미니멀이라 오늘 쓴 것도 내일 버리는 시절이다.

   선교장의 대표 건물들
선교장에는 여러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열화당   
 집안의 중심 공간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중요한 행사를 열던 사랑채입니다 .

활래정   
연못 위에 세워진 정자로, 선교장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합니다.
이름은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온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동별당
가족들이 생활하던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행랑채    
하인들과 관리인들이 머물던 곳입니다.

오늘날의 선교장   
현재 강릉 선교장은 국가가 지정한 중요 민속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한옥 체험과 전통문화 체험이 가능한 관광지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경포대와 동해바다에서 가까워 많은 여행객들이 찾고 있으며,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

마무리   
강릉 선교장은 단순한 옛집이 아닙니다.
조선 후기 한 양반가가 터를 잡고,
300년 넘는 세월 동안 가문의 역사와 문화를 이어온
살아 있는 역사책입니다.
아름다운 한옥과 정원,
그리고 선조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강릉을 찾는다면 꼭 한 번 걸어봐야 할 공간입니다.

"강릉 선교장을 걷는다는 것은 300년 전 조선 양반가의 시간 속을 걷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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