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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칼럼/국내여행

집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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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대전역 주변 모습

쫑숙이를 오룡역에서 내려 농협 앞에서 30분간 기다려 만났다.
쫑숙이의 애견 "미소"가 반갑다고 내 손등을 길쭉한 혀로 핱는다.

"안돼, 안돼, 아이구 안돼, 안돼. 핱지마."

내 옷에다 닫다가 쫑숙이 윗옷에다 스윽 스윽 손등을 닫는다.

"내 옷이 아니라 너네 엄마 옷에다 닫아야 겠다."
"디게 깔끔한 척 하네."
"그게 싫다고 싫은 걸 어쪄"
"오랫만에 만났다고 반갑다고 그러는데 왜 그래?"

1930년대 대전역 모습


바로 코스트코로 갔다.
엄마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서이다.
구루마를 끌고 천천히 코스토코 안을 돌았다.

간식을 좋아하는 쫑숙이는 시식코너마다 돌아다니면서 시식을 하고는 사고 싶어했다.

비타민 젤리 구미에 팥차 음료수 기타 등등 ~

똘이랑 같이 장을 볼 때와는 또 다르다,

똘이랑 시장을 볼 때에는 똘이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샀었는데 이제는 쫑숙이가 좋아하는 식품 위주로 사게 된다. .

대전 은행동의 일제시대 사진 [출처]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대전역과 대전 사진 자료들❘작성자 아솜Asom


1. 알로에 이뮨 젤리 스틱
2. 비타민 젤리 구미
* 젤리 구미로 사는 이유는 먹기 좋기 때문이다.
영양제가 알약으로 되어 있는 것은 약을 먹는거 같아 거부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3. 현미 찹쌀 5키로
4. 두부 크레커.
5. 힌잎 강정 견과류 스넥
6. 참치
7. 고구마 1박스
8. 키위
9. 팥 차 음료수
10. 돼지 목살

1960년대 모습


11. 감태 김 구운 것.
12. 발아 현미 햇반
13. 참께 컵 라면
14. 짜파게티
15. 양념 불고기 3키로
16. 동물 복지 구운 달걀 2판
17. 국물용 멸치 1키로
18. 멸치 볶음조림용
19. 그릭요거트

20. 델몬트 바나나
21. 북어채

1960년대 대전 중앙로의 모습. 오른쪽에는 시민관의 모습이 보인다.​ [출처]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대전역과 대전 사진 자료들❘작성자 아솜Asom

이번엔 좀 많이 샀다.
7월초에 오고 9월 중순에 왔으니까 ~
예전 같으면 이 정도는 신경을 안쓰는데 부피가 큰 물건을 사다보니 마트 구루마에 넘친다.
겁이 난다.

"이거 엄청 나오는거 아녀?"

좀 나오긴 했지만 7월 보다는 10만원 정도 더 나온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다.
또돌이가 없으니까 여자 둘이서 여러번 왔다리 갔다리 해야 했다.
아무래도 남자가 있으면 두어번 큰걸로 움직이면 되는데 쫑숙이랑 둘이 하려니 조금씩 나른다.

1970년대 대전역 광장에서 도청방향으로 바라본 모습. [출처]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대전역과 대전 사진 자료들❘작성자 아솜Asom


집에 도착하니 너무 늦어서 배가 고프시다고 빨리 밥 먹으러 가자고 하신다.
코스트코 한바퀴 돈다고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 같다.

"응 그려. 빨리 정리할께. 두부 크랙커하고 요플레하고 여기 팥차하고 먹고 계셔요. 알로에도 드시고 멀티 비타민 구미도 드셔요."

나도 고구마와 팥차 그리고 두부 크래커 요플레등을 조금씩 챙겼다.

원래는 옥천으로 묵밥을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너무 늦어서 쫑숙이네 동네 콩나물 밥과 시레기 국밥을 먹으러 갔다.
엄마는 콩나물 밥을 두어술 뜨더니 안넘어간다고 숟가락을 내려 놓았다.
억지로 권하여 시레기 국밥을 조금 드셨다.

1920년대 목척교 사진 [출처]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대전역과 대전 사진 자료들❘작성자 아솜Asom


옥천에 있는 팥빙수 카페를 가자고 해서 쫑숙이 차를 타고 갔다.
산내로 해서 군서를 지나 옥천으로 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멀리가 난다면서 집에 가자고 했다.

옥천까지 가는 건 포기하고 군서로 들어가는 터널 앞에 옥수수 파는 집에서 옥수수와 생밤을 한 보따리 사서 냠냠냠
찰옥수수가 맛있다.

터널을 지나 군서면 하천변에 있는 조그만 동네 공원에서 쫑숙이는 미소랑 왔다리 갔다리 ~
오는 중에도 한번 산책을 시켰는데 볼일을 안봤다고 데리고 걸어다니더니 볼일을 짤끔?

공원 옆에 땅에 하우스를 만드는지 커다란 트렉터가 텅텅 거리면서 위압적인 소리를 낸다.

1968년 목척교 사진 [출처]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대전역과 대전 사진 자료들❘작성자 아솜Asom


군서 초등학교로 갔다.
나의 모교.
작은 운동장. 아담한 교실.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뛰놀지 않아서 이끼가 생기고 주인 잃은 축구공이 굴러 다니고 있었다.
쫑숙이가 미소를 데리고 뛰다가 하릴없이 축구공을 뻥뻥 차 댄다.
ㅋㅋㅋ

군서초등하교 병설 유치원이 있어서 들여다 보니 신발장에 아이들 실내화가 4켤레 나란히 놓여 있다. 실내화 놓인 아랫칸에는  노오란 장화가 4켤려 놓여 있다.

그토록이나 가족 계획을 권장하고
"삼천리는 초만원 집집 마다 한명만 낳자."
"한집 건너 한명 낳기"

가족계획이 잘 실천되어 지금과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이렇게 투자한 건물들과 시설들은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까?
가족 계획으로 인구 줄이기는 쉬웠지만 인구 늘리기도 가족 계획 만큼 쉬울까?????

내가 학교 다닐 때 우리의 놀이터는 이곳이었다. 1970년경 대전 목척교 주변에 위치한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의 모습 [출처]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대전역과 대전 사진 자료들❘작성자 아솜Asom


내가 다니던 군서 초등학교는 일층 짜리 건물이 3동이 있었고  건물 사이는 지붕이 있는 시멘트로 연결 되어 있었다.

건물 사이로 뚫려 있는 건물 벽에는 계시판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반공 포스터가 있었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김일성은 돼지."

실제로 돼지 얼굴이 김일성의 몸에 붙여져 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걸 보면서

'사람 몸에 정말 돼지 얼굴이 붙어 있을까? 거짓말 인거 같은데? 왜 이런 거짓말을 붙여 놓은 거지? 그만큼 욕심이 많고 나쁘다는 건가?'

1990년대 리모델링한 중앙데파트의 모습....그러나 안타깝게도 20년 후엔 건물전체가 철거되는 운명을 맞는다. [출처]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대전역과 대전 사진 자료들❘작성자 아솜Asom


지금은 알록 달록한 이층 양옥으로 아래층에는 교무실, 행정실, 보건실, 도서실, 과학실,등이 있고 이층에는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이 있다.
병설 유치원에 아이들이 입학하면 내년에는 1학년 신입생이 4명이 되는 건가?

쫑숙이는 1학년만 다녔고 나는 5학년 6학년 2년을 다녔다.
학교가 정말 아담하고 정겹고 조용했다.
그렇게 커보였던 학교가 저렇게 작아 보인다니 신기했다.
넓기만 했던 운동장도 미니 사이즈고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상장을 수여하던 조회대는 왜 저렇게 작아 졌지?
정말 신기하다.
초등학교 시절 저 조회대에 올라가서 상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상상하고는 했었다.

학교 정문을 나가면 정문 앞에 문구점이 조르륵 있었고 아이들이 옹기 종기 모여 앉아서 띠기를 했었는데 ~
지금은 근사한 카페가  마당에 천막을 쳐놓고 밝고 깨끗한 실내를 보여 주고 있었다.

1960년대 대전천 물장난. [출처]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대전역과 대전 사진 자료들❘작성자 아솜Asom


저녁은 산내로 나와서 시민칼국수에서 칼국수 한 젓가락
가격이 아직 7000원이어서 놀랐다.
대부분 9000원이거나 10000원이데 말이다.
돈가스를 시켰더니 어른 손바닥 3개 크기로 바사삭 소리 날 정도록 속초겉바 돈가스가 나왔다.

쫑숙이가 대전역까지 태워줘서 내린 다음 대전역으로 들어가면서

"아 ~ 오늘 금요일이지? 기차표가 있나?"

기차표가 있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

동대구에 도착했다.
눈이 아프니까 좀 눈 좀 감고 있어야 겠다.
그러다 부산까지 갈라 ~
ㅋㅋㅋ 20분만 참자 .

[출처]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대전역과 대전 사진 자료들❘작성자 아솜A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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