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tt-body-page" class="layout-wide color-bright post-type-thumbnail paging-view-more">
본문 바로가기

여행 칼럼/국내여행

양구에서 만난 “3,800명… 그리고 이름조차 남지 못한 사람들”

728x90
반응형


숫자로 드러난 전쟁의 무게

양구에서 만난 “3,800명… 그리고 이름조차 남지 못한 사람들”

양구 전투가 남긴 숫자,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

📍 기록으로 남은 전쟁의 흔적
전시관 한쪽 벽에는
짧지만 강한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기록에는 한국전쟁 중 이곳 양구지역 전투에서의 전사자가
3,800여 명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실명으로 확인되는 전사자는 불과 1,100여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발걸음이 멈춥니다.

❗ 이름조차 남지 못한 사람들

3,800명.
그중에서
이름이 확인된 사람은 1,100명.
👉 나머지 약 2,700명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습니다.
전시문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이름 석자마저 후세에 남기지 못한 채
양구의 땅에 묻힌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의 젊은이들”

이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추모입니다.

⚔️ 숫자로 보는 전쟁의 현실

또 다른 전시에는
한국전쟁의 피해 규모가 숫자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 국군 및 유엔군 인명피해

✔ 전사·사망 : 178,569명
✔ 전상·부상 : 555,022명
✔ 실종·포로 : 42,769명
👉 총 피해 : 776,360명

📊 민간인 피해

✔ 학살·사망 : 373,599명
✔ 부상 : 229,625명
✔ 납치·행방불명 : 387,744명
👉 총 피해 : 990,968명

📊 기타 피해

✔ 피란민 : 약 320만 명
✔ 전쟁 미망인 : 약 30만 명
✔ 전쟁 고아 : 약 10만 명

👉 북한 민간인 피해 : 약 150만 명 (추정)

🧭 숫자는 차갑지만, 그 안은 뜨겁다

이 숫자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닙니다.

✔ 한 사람의 인생
✔ 한 가족의 이야기
✔ 한 세대의 기억

그 모든 것이
숫자로 압축된 것입니다.

학도병들은 군번도 받지 못하고 출전한 이들이 많다고 함

😢 우리가 모르는 이름들

이곳 양구에서는
특히 많은 이들이 이름 없이 사라졌습니다.

👉 “누군가의 아들”
👉 “누군가의 친구”
👉 “누군가의 사랑하는 사람”

하지만 지금은
그저 숫자로만 남아 있습니다.

🌄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유

지금 우리는
그들이 지켜낸 땅 위에 서 있습니다.
평화롭게 여행하고
사진을 찍고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조차
👉 누군가에게는
지켜내야 했던 미래였습니다.

✨ 이 기록이 말해주는 것

이 전시는 말합니다.

✔ 전쟁은 숫자로 끝나지 않는다
✔ 이름 없는 희생이 더 많다
✔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기억되지 않은 이름들까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왜 티비를 보다가 갑자기 유튜브를 틀었을까?
그많은 유튜브 중에서 
왜 하필 양구의 펀치볼에 끌렸을까?
늘어지지 않고 한줄로 서 있는 사과 나무 때문에?
펀치 볼이라고 이름한 독특한 지형 때문에?
영상을 보는 순간에 강원도 양구를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강원도 양구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불러야 주변에서 귀를 기울인다. 
응? 
강원도 양구를 가고 싶다고?
왜?
몰러.
유튜브를 봤는데 그냥 가보고 싶어.

양구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다. 
울산에서 가까운 곳도 아니고 
사람들이 많이 가는 것 같지도 않고
특별하게 찾는 곳도 아닌데
뭐지?

오키나와 갈 때부터 
다음 코스는 우리나라 강원도 양구야.
이렇게 정해 놓고 있었다. 
친척 결혼식 때문에 
서울 갈일이 생기자 
재빠르게 따라 붙었다. 
물론 지청구를 듣기는 했지만 
그쯤이야. 

그렇게 시작된 양구로의 여행은 
고난 주간 점심 금식 기간에 가게 되었다. 
점심 금식을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기도부터 하고 시작하니까 
첫날 빼고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무엇이든지 시작이 힘들지 
막상 시작하면 어떻게 해서든 하게 되고 끝난다. 

월요일에는 PT가 있고 
화요일에는 하루종일 비가 온다하고 
수요일을 출발 날자로 삼았다. 

여행을 할 때
쫓기는 여행을 제일 싫어 하기 때문에 
목표인 강원도 양구를 정해 놓고 추진하면서 
시간은 항상 그때 그때 널널하게 잡는다.
렌터카를 근처 마트 주차장에 
11시까지 가져다 놓으라 하고 
아침 먹고 천천히 준비해서 
근처에 있는 마트 주차장으로 갔다. 

귀여운 케스퍼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우리 정서에는 
무조건 차는 크고 튼튼해야 한다.
큰차가 안전해 라는 
그런 정서를 가지고 있다. 

양구 전쟁 기념관 앞에 있는 조형물로 양구에서 있었던 전투를 상징한다.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와서 
수정된 생각이 있다면 
바로 소형차에 대한 인식이다. 
일본에서 소형자를 몰고 다니면서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물론 오키나와는 시속 60키로로 다닌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속도를 조금 줄이고 
모두들 소형차를 선호한다면 
누구나 다 소형차를 타고 다닐 것이다. 

캐스퍼는 딱 2인이 타고 다니기에 적합하다. 
뒷자리에 짐을 놓고 
앞자리에 둘이 앉으면 공간이 넉넉해서 
너무 편하다. 

그렇게 캐스퍼를 타고
늦으막이 강원도 양구로 출발했다.  
양구까지 2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아침을 먹고 출발했기 때문에 
나는 점심 금식을 하고 있어서 
동행은 가져간 바나나 하나로 
점심을 때우고 
달리고 달려 양구에 도착했다. 
양구 입구에 10년 젊어지는 양구란 팻말이 인상적이었다.
펀치볼 지형이 내려다 보이는 도로가에
차를 세워 놓고 내려다 보다가
사진도 찍고
'아, 저기가 펀치볼이구나."
그때만 해도 그냥 평화로운 우리땅
강원도 양구구나.

네비에 찍힌 펀치볼을 향하여 가는데
부대가 보이고
병사들이 보이고
여기가 휴전선과 가깝구나.

차량 통행이 별로 없는 길을
달리고 달려서 네비에 찍힌 펀치볼을 갔더니
거기에 통일관이 있었다. 
그때부터 펀치볼??? 하던
개념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휴전선이구나.
가장 치열하였던 휴전선이구나.
전쟁이었구나.
6.25 전쟁 현장이었구나.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고난주간 점심 금식 기간 중에 
어떻게 여기를 찾게 되었을까
왜?

충격이 
머리와 가슴과 
마음. 감정. 의지. 영. 혼. 육에 
쿵 소리가 났다.

여행을 다녀와서 
아직 여행 후기를 작성도 안한 상태로 
밤에 잠을 자는데 
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가득하였다. 
양구의 충격이 
하늘의 별들을 보여 주었나?

양구에서 만난
“3,800명… 그리고 이름조차 남지 못한 사람들”

하늘의 밝은 별들이 되어 
밝고 밝은 하늘에서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래. 
양구 이야기를 꼭 적는거야 
티스토리에 올리는 거야. 
이름조차 남지 못한 사람들. 
그 수많은 별들을 기록하는거야. 

여행을 다녀온지 이제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하늘의 별이 된 그 수많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금 적고 있다. 

하나님. 
하늘의 별이 된 그분들의 혈육들을 
축복하고 축복 하옵소서.
비록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은 아시지요!
그분들이 무엇을 이땅에 남기고 갔는지 
그분들이 어떻게 이땅에 와서 
무엇을 하고 갔는지 
하나님 아버지는 아십니다. 

간구하고 간구하오니 
하나님 아버지 그분들의 혈육들을 
돌봐 주시옵소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이땅을 떠난 헌신을 기억하사 
그들의 혈육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천대 만대 복주시옵소서. 
뿌린대로 거두어 주시는 하나님
이땅 위에 이땅을 위하여 
피를 뿌린 그들의 헌신을 
외면하지 마시고 기억하여 주시어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