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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1. 시작

by 영숙이 2019.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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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작 >

   

   40년 동안 묵혀 두었던 것을 어제 낮에 드디어 꺼내었다.

   

   지난달에 45년 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찾느라 친정에서 먼지 쌓인 책장들 사이에서 앨범을 꺼내 뒤졌던 것처럼

   이번엔 농 속에 수북이 쌓아놨던 원고지들을 찾아내서 종류별로 분류 해 놓고 홀로 선 버드나무 원고들만 따로 모아봤다.

   원고들을 배낭 가방에다 넣어서 의자 위에 올려놓고 끙끙 앓기 시작했다.

   실제로 위가 아프기도 하고 두통도 생기고 으쓸으쓸 춥기도 하다.

 

     " 내가 할 수 있을까? "

     " 잠이나 자자! "

     

   자고 나서도 컨디션이 좋아지지 않고 위축된 마음이 펴지지도 않고 일하기도 싫고 영화도 안 봐지고 다른 일거리 없나 보다가 며칠 전부터 미루어 놓았던 아주 얇은 소설책 " 중학교 1학년 - 수지 모건스턴 지음 "을 읽기 시작하였다. 

   2005년 3월 파리 도서전은 90권의 책을 펴낸 예순 살의 작가 수지 모건스턴을 축하했다. ~ 이렇게 시작되는 저자 약력.

   다 읽고 보니 책 내용이 좋아서 이 저자의 책을 더 사서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 글쓴이 하아 타니 갠 지로 " 에 빠져서 한때 그가 쓴 모든 책을 섭렵했던 여름이 있었다.

  이번에는 수지 모건스턴에 빠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어떻게 해서든 써지겠지, 피하지 말자! " 

     "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을 때 해보자! "

 

   누구에게나 젊은 날에 추억이 있을 것이다.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대로 그렇지 못하면 그렇지 못한 대로의 추억이 가슴을 채워 주어 때로 아슴하게 떠오를 것이다.

   아직 젊은 시절이 지나가지 아니한 사람은 청춘에 대한 예쁜 기대로 가슴이 설렐 것이다.

   청춘의 추억,

   이 아름다운 한 순간을 무엇인가로 나타내어 본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일지.

   기쁨일지.

 

   물론 나에게는 수시로 모든 일을 좋게만 생각하고 긍정적인 면으로만 받아들이려고 하는 점도 있기는 하지만,

   나에게 맡겨진 청춘 중에서 아름답게 지나 온 시간을 조금이나마 주어진 글재주로 표현하여 본다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조금씩 조금씩 모아 왔던 이야기며 그 당시의 일기장들 그리고 기억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여 펼쳐보고 싶다.

   

   이 이야기가 있었던 당시부터 이 아름다운 시간을 어떻게 하면 표현할까를 고심하여 왔었지만 언제나 심중에 그득한 것은 생각뿐이었고 막상 표현해 보면 미흡할 뿐이었다.

 

   이제 오랜 시간이 흘러 간 지금 역시나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리라.

  그러나 그 미흡함을 겪으면서 내 청춘의 한 단면을 애써 엮는다고 생각하고 쓸 수 있는데 까지 써 보리라.

 

   그렇다고 지난날에 연연한 것은 아니다.

   이랬었으면 어땠을까?

   이럴 것을?

   저럴 것을?

   하는 순간들은 누구나 있기 마련이고 그런 순간에 지나치게 메어 달리다 보면 정말 하여야 할 현재의 일들,

   그 때문에 있어질 현재 보다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현재를 거스를 염려가 있는 것이다.

   

   지난 일은 단지 지난 일로 그칠 뿐이고,

   지금 이 순간을 위하여,

   필요한 과거로써 남기기 위하여,

   나름대로 깨끗이 그때의 감정을 재조명하여 보는 것일 뿐인 것이다. 

 

   이 모든 것 이전에 하나님의 응원이 다시금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간호학교에 입학했고 입학 전에 아이들의 소문에 의하면 실습하던 3학년 선배 언니가 급성 간염에 걸려서 간성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죽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기에,

   또 실제로 학교 신문 귀퉁이에 조그마하게 기사가 난 것을 읽었기에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극심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실습 시작하면서 집 옆에 있는 교회에 가서 지켜 달라고 간절히 새벽 기도를 하고 있었고,

   더불어 내가 간호하는 환자들에게 회복의 기쁨을 주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는 아침 근무에 나섰기에,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던 그 시절에는 왠지 스스로 느껴도 나 자신에게서 알 수 없는 삶의 기쁨이 반짝이고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죽어 가는 환자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밤을 새웠던 밤 근무를 마치고 밝고 명랑한 아침 햇살과 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아침에 교정에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를 들으면서,

   삶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그리고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매 순간마다 느끼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교회를 다닐 때에는 실체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삶의 기쁨과 감사가 있었다.

   

   실제 영숙이의 모습은 평범 그 자체고 때로는 냉담하고 무표정하며 어찌 보면 못생기기까지 한 평범한 여학생이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 

 

   교사로 빨리 발령이 안 나자 선생님 되게 해 주시면 십일조도 하고 교회 일도 열심히 하겠다고 교회에서 기도 했을 때 꿈결인 듯 눈 앞에 어떤 학교 현관이 보였었다.

 

   드디어 교사로 근무하면서 십일조는 아까워서 못하고 교회도 가끔 심심하면 가면서 어렸을 적부터의 꿈이었던 작가가 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이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려고 했을 때 영숙이에게 감당 못할 슬픔이 찾아와서 쓰는 일을 그만두었다. 

   

   감당 못할 일을 견디기 위하여 다시 교회를 찾았고 이번에는 교회를 다닌 게 아니고 예수를, 오직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때 처음으로 들려주신 마음속의 음성, 필링 보이스는

 

      "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도다.

        네가 들에 나가서 외칠지라도 풀들이 일어설 것이요.

        나무들이 귀를 기울일 것이니라.

        왜 들에 나가 외쳐야 하나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서 외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사람들이 없는 들에 가서 외칠지라도 너의 말에 귀를 기울이리란 뜻이니라. "

 

   오직 예수로만 산지 벌써 23년.

   다시 글을 쓸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글 쓴다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살았었다.

   가끔 어쩌다 가끔 글을 쓰기는 하였지만 심심해서 아이들이 끄적이는 그림 같은 거였다..

   어찌어찌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게 되었어도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글 쓰는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영숙이에게 이제 주님이 주신 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 누가복음 8 : 48 )

       

           < 두려움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두려워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당신 앞에 나아갑니다.

      내손을 놓지 않으시고 나를 자녀 삼아주신

      주님이 계시기에

      자신 있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의 짐을 내려놓습니다.

      주님... 우리를 위로하시고 구원하여 주소서. 

 

   이제 말씀을 의지해 홀로 선 버드나무를 써 간다.

   주님. 저를 도와주소서.

 

 

   

   창 밖에 떠오르는 저녁 어스름 사이로 영숙이가 처음 이 곳에 오던 날이 생각난다.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청성 면에 있는 보건 지소에 보건 요원으로 근무하는 일이었다.

   보건 사회부 산하 시 보건소와 군 보건소가 있었고 군 보건소 관리를 받는 보건지소가 있었다.

   면마다 있는 이 보건 지소에 간호원 면허증을 가지고 모자 보건을 담당하는 모자 보건 요원으로 근무하는 일이었다.

   

   집이 있는 대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아니한 옥천군에서 가장 오지인 청성면으로,

   군 보건소에서 발령장을 받아 들고 조그만 짐과 함께 찾아가던 날은 무척이나 덥고 땀이 끈적끈적하게 배어 나는 날이었다.

   

   한창 더운 7월의 햇볕 속을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물어 물어 보건지소가 있는 면사무소 뜰로 들어섰을 때,

   면사무소 뜰에는 그때 당시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쮸쮸바라 쓰여 있는 차처럼 생긴 네모지고 하얀 자동차가 세워져 있었고 그곳으로 사람들이 달랑 나랑 하는 것으로 보아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숙이는 간단한 짐만큼이나 가볍게 청바지 위에 티를 걸친 옷차림으로 화단 옆에다 짐을 내려놓고 땀을 훔치면서 사람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커다란 버드나무 그늘 아래 네모난 하얀 차가 세워져 있는 옆 쪽으로는 자그마한 하얀 건물이 면사무소의 부속건물처럼 서 있었는데 그곳에 청성 보건 지소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그날은 잘 몰랐지만 가족계획으로 보건소 진료차가 와서 루프 시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몇 아줌마들이 차 안에서 나오고 조금 있다가 하얀 가운을 입은 아가씨가 하얀색의 세숫대야 같은 것을 들고 내려서고 있었다..

  재빨리 다가서서 머뭇 거리며 말을 붙였다.

 

     " 청성 보건지소 찾아왔는데요! "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이 올려다본다.

 

     " 어떻게 오셨어요? "

     " 보건소에서 오늘 발령을 받았어요! "

 

   아가씨는 상냥하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한다..

 

       " 아! 그러세요? 오늘 발령받았어요? 나는 이곳에 근무하는 한양이에요! "

 

   수도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한양을 따라 영숙이도 따라가서 옆에 서서 바라보았다.

   

      " 이것이 피임하는 기구예요! "

      " 오늘이 마침 펫 사리 기구 넣는 날이거든요! "

      " 이제 막 끝나고 지금 기구를 씻는 거예요! "

 

   한양이 펫 사리 기구들을 보여 준다. 

   다시 차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 아는 사이 인 듯한 두세 사람이 한양에게 눈웃음을 짓고 눈으로 영숙이를 묻는 것 같다.

 

      " 이 아가씨 오늘 청성 보건지소에 발령받고 왔데요! "

 

   모두들 보건지소 건물로 들어갔다.

 

      " 여기 있는 한양과 이양은 청산으로 발령이 나서 내일 떠나요! "

      " 대신 군북에서 두 사람이 이곳으로 쫓겨 와요! "

      " 둘 다 농땡이에다 한 사람은 올해 32살 난 올드미스인데 큰일이군요! "

      " 처음 발령받아 그런 사람들하고 근무하니! "

 

   청성은 청산을 거쳐 옥천으로 나가야 하는 오지에 있었고 군북은 대전에서 가까워서 면중에서는 조건이 제일 좋다는 곳이었다.

   어쨌든 생각했던 것보다는 보건지소는 꽤 규모가 있었고, 건물은 밖에서 보았던 것처럼 깨끗하였다.

 

   면사무소를 향하여 유리창이 사방으로 달려 있는 진료실과 가족계획실이 현관 양쪽으로 있었고 살림이 가능한 방 하나에 면사무소 집기가 가득 차 있는 커다란 창고, 환자 내진이 가능한 산부인과류 침상이 있는 조그만 병실도 하나 있었다. 

 

   6개월 시한의 무의촌 의사도 있었고 면사무소 사무실과 뚝 떨어져 있어 독립된 기분도 들었다. 

   전국적으로 이 보건지소 건물 형태는 다 같다고 한다. 

   다만 어떤 곳은 면사무소 사무실 안에 한쪽으로 보건지소 책상을 놓고 함께 있는 곳도 있는데 청성 바로 옆인 청산 보건지소는 면사무소 안에 보건지소가 같이 있는 곳이었다.

 

    왼쪽에 면사무소  현관이 사선으로 보이고 보건지소 옆으로는 숙직실과 창고가 있었다.

    정원에는 면장님이 늘 손질하시는 정원수들이 잘 정리되어 기묘한 자연석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가족계획실 유리창 전면 가득 보이는 면사무소 정문에는 그 앞 길을 지나다니는 시골 사람들이 보였다.

   

   그 모든 것보다도 영숙이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진료실 바로 앞에 서 있는 아름드리 버드나무 고목이었다. 

   버드나무는 버들의 속칭으로 버들과에 딸린 낙엽 교목으로 냇가에 흔히 나는데 가는 가지가 휘늘어 져서 양유라고도 한다. 버들개지는 버들의 꽃이고 솜 비슷하여 바람에 날려 흩어진다.

 

   왕버들은 버드나무의 여러 종류 가운데 하나다.

   연못의 운치를 더해주는 수양버들, 가지가 배배 꼬이며 자라는 용버들, 버들 피리를 만들 때 쓰는 갯버들과 사촌 간인 나무다.

   왕버들은 가지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올라 사방으로 넓게 퍼지며 넓은 그늘을 짓기 때문에 농촌에서 정자나무로 많이 심어 키우는 나무다.

   줄기가 크고 굵게 자랄 뿐 아니라, 수명도 비교적 긴 편이어서, 버드나무 가운데에 왕이라 할 수 있다.

 

   흰색 버드나무 껍질에서는 아스피린을 추출한다.

   

   강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드나무가 면사무소 뜰 한쪽에 우뚝 서서 영숙이 팔로 안아도 두세 아름 정도나 되는 우람한 모습으로 수많은 가늘고 긴 나뭇가지들을 휘늘어 트려 바람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창가에서 그 버드나무를 바라보는 순간 영숙이 가슴 가득 쏴 하고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었다.

 

   그 누군가를 따뜻하게 감싸줄 수  없을 것 같은 영숙이의 젊으나 빈약한 가슴.

   

   하얀 로맨스 그 이후,

   염전처럼,

   바닷물의 수분이 다 날아가면 버석이는 짠 소금만이 남는 것처럼 영숙이의 마음에 가라앉아 가던 알 수 없는 우울함이 자리 잡던 여름.

   

   무척이나 여름은 덥고 가뭄이 근 한 달여나 계속되어서 면서기들은 창고에서 양수기를 고치고 있었다.

   

   취업 때문에 올해 초에 X-RAY를 찍으니 거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음영으로 결핵을 앓고 있었다.   

   이후 한 달 이상 항생제 주사 맞고 결핵 약도 계속 6개월 동안 먹어서 보건지소에 발령받기 전인  7월에 X-RAY를 찍으니 이미 음영 따위는 보이지도 않고 모든 검사에서 정상이었다.

   애초에 증상도 거의 없었으나 약은 결핵을 발견했을 때부터 1년 이상 계속 먹어야 한다.

   영숙이는 아예 2년 동안 약을  복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숙이는 언제나 건강에 자신만만했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영숙이 결핵을 앓다니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X-RAY 상으로 결핵 선고를 받고 난 후 자신의 건강에 유의해 보니 기침은 안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목에서 조금 가래가 나왔었고 체중이 5KG 이상 줄었으며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었고 밥맛도 없었다.

 

  건강.

  병원에 입원하지는 않을 정도로 아파 봐야만 건강의 소중함을 안다고 했나?

  처음 결핵이라는 소리를 듣고 놀랐을 뿐만 아니라 함께 찾아온 공포와 불안과 두려움.

  다행히 이 곳은 영숙이의 건강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로 알맞은 곳이었다.

 

   어제 한양이 책상 정리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영숙이의 전임이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동기동창이었던 태자였다는 것을 알았다..

   한양은 이 곳에 근무하던 일까지 합쳐서 추억을 더듬 듯 태자와 출장 같던 이야기며, 같이 생활하는 동안 느꼈던 것을 생각하면서 가끔가끔 이야기해 주었다.

   같은 사무실에 있다가 역시 내일 같은 청산면으로 전출해가는 이양이 점심 먹고 와서 한양과 함께 서랍이며 케비넷이며 사무실 정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퇴근 시간이 되어 이양과 같이 전에 태자가 썼다는 방을 얻으러 나갔다.

   할머니 혼자 사는 집이었는데 옆 방에는 농협에 다니는 주양이라는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아까 한양 소개로 면장님과 부면장님께 인사를 하였었다.

   부면장님은 40대 후반으로 사람 좋아 보이는 유순하고 동안인 얼굴에 자그마한 키, 통통한 체격이었다.

   면장님은 마르고 대머리가 벗겨진 깐깐한 얼굴로 나이는 50대 전반으로 보였다.

< 청정지역의 끝판왕 스위스 ~  태어났으면 꼭 가봐야 할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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