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견 의사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난 한 아가씨의 뒷모습
말없이 40리를 걷던 사람 그 이름, 박태자
📘 1. 박양은 서울로 갔어요
“박양은 서울 백병원으로 갔어요.
아마 거기 가서도 일을 아주 잘할 겁니다.”
이 선생님의 말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사람을 말하듯,
그는 박태자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일을 참 열심히 했거든요.
깔끔하고, 손도 야무지고.
키는 작아도 눈이 얼마나 똘망똘망한지…
생김새 그대로 빈틈이 없는 아가씨였어요.”
짧은 문장들이었지만
그 안에는 태자라는 사람의 성실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설명이라기보다는, 기억이었다.
📘 2. 40리 왕진길, 장수리로 가던 날
이 선생님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오래된 기억 하나를 꺼내듯, 천천히 덧붙였다.
“한 번은 둘이서 장수리까지 왕진을 갔었죠.
40리도 넘는 길이었어요.”
그날은 유난히 더운데다
길은 먼지투성이였고,
걸음을 옮길수록 땀은 비 오듯 흘러내렸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박양은 말없이, 정말 열심히 걷더군요.”
불평도, 투정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앞을 향해 내딛던 걸음.
그 모습이 이 선생님의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었다.
📘 3. 석양 아래, 두 사람의 뒷모습
이 선생님은 말끝을 흐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먼지가 이는 길 위,
반바지를 입은 이 선생님과
작고 단단한 체구의 태자.
두 사람은 말없이
저녁 석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자전거 한 대만 있었어도,
오토바이라도 있었더라면
조금은 덜 힘들었을 그 길.
하지만 그때의 두 사람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그저 걷는 것뿐이었다.
📘 4. 말 속에 남은 마음
이 선생님은 태자 이야기를 마치며
조용히 다시 한마디를 덧붙였다.
“백병원에 가서도,
아마 참 잘 해낼 거예요.”
그 말은 평가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함께 걸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심 어린 신뢰처럼 들렸다.
영숙이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태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먼지 날리던 길,
땀에 젖은 옷,
그러나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았던 걸음.
그날의 왕진길은 끝났지만,
그 기억은 아직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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