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숙이 처음 마주한 신혼 시절 끝자락에 있는 남자의 얼굴
말없이 사람을 살피는 눈
📘 1. 신혼의 끝, 무의촌으로 오다
이 선생님은
결혼하자마자 이곳 무의촌으로 내려온 의사였다.
부인과 함께
신혼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다고 했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으며,
누가 보아도 인상이 후덕한 사람이었다.
처음 마주했을 때는
우락부락한 몸집이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그 안에는 다른 결의 사람이 숨어 있는 듯했다.
말투는 낮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는 서두름이 없었다.
📘 2. 얼굴을 들여다보다
영숙은
말을 하고 있는 이 선생님의 얼굴을
가만히,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겉모습과 달리
생각에 잠긴 옆얼굴에는 묘한 온기가 있었다.
살이 붙은 얼굴 아래로 내려온 눈꺼풀,
그 위에 길게 드리운 속눈썹.
무엇보다
맑고 투명한 눈동자와 눈빛.
그 눈에는
그늘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회상에 잠긴 얼굴은 온순했고,
어쩐지
다른 사람들을 조용히 감싸 안는 사람처럼 보였다.
📘 3. 반바지 차림의 이유
영숙은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천천히 그의 옷차림으로 눈길을 옮겼다.
남방 셔츠에 반바지 차림.
제법 살이 붙은 체격에
배도 앞으로 나와 있었다.
영숙의 시선이 다리 쪽에서 멈추자
이 선생님은
변명하듯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반바지가 좀 이상하죠?”
“너무 덥기도 하고, 이게 편해서요.”
“선풍기는 서울에서 가져왔습니다.”
“형편만 되면 여긴 참 살 만한데 말이죠.”
“그래도 뭐… 여름 피서지라 생각하고 있어요.”
“6개월 근무니까, 마음 편히 지내려고요.”
말은 가벼웠지만
그 안에는
이곳에서 버티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는 듯했다.
📘 4. 느리게 도는 바람
아까 영숙이 사무실에서 가져온 선풍기가
느리잇, 느리잇
바람을 보내고 있었다.
그 바람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니
긴장했던 탓인지
생각보다 덜 덥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이 선생님의 시선이 느껴졌다.
맑으면서도
조용히 남의 얼굴을 읽는 듯한 눈빛.
말없이 사람을 살피는 눈이었다.
📘 5. 다시, 일상 속으로
그때
나이 지긋한 농부 한 분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이 선생님은 익숙한 듯
상처가 좀 어떠냐고 물었다.
그 모습을 본 영숙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사무실인 가족계획실로 돌아왔다.
진료실에는
느리게 도는 선풍기와
서울에서 파견된 무의촌 의사,
그리고
여전히 이어지는 하루의 일상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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