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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유리창 앞에 서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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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뭄의 여름, 보건지소 창가에 머문 영숙의 고요한 시간  

시간이 멈춘 듯한 여름 오후


 

📘 1. 햇볕 아래, 멈춘 시간

따가운 햇볕이
유리창을 정면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영숙은 팔짱을 낀 채
창 앞을 서성였다.

빛은 사무실 안까지 깊숙이 스며들었고,
한가한 풍경은
마치 졸음에 잠긴 듯
천천히 가라앉아 있었다.

참으로 조용한 하루였다.

빈 사무실을 홀로 지키며
영숙은 창밖을 내다보다가,
이내 책상에 앉아
책장을 넘기곤 했다.

시간은 흐른다기보다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 2. 가뭄이 남긴 풍경

요즘 근 한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 탓에
아직 모내기를 하지 못한 논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면사무소 창고 앞에는
양수기 몇 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누군가 데려가 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없이 햇볕을 견디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가뭄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풍경이 되어
마을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 3. 어젯밤, 이양의 방

어젯밤 저녁은
이양의 집에서 먹었다.

그녀의 방은
여러 세간살이가 모여 있는 윗방이었다.

작은 책상 위에는
깨끗한 옥스퍼드지 책상보가
단정하게 깔려 있었고,
그 위로 화장품과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시골 아가씨의 방에서는
조용하고 소박한 냄새가 났다.

꾸밈없고,
정돈된 삶의 냄새였다.


📘 4. 돌아오는 길, 오래된 기억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
주인집 할머니 댁은
유난히 고요했다.

저녁 어스름 속에서
이웃집마다 피어오르는 연기가
겹쳐지며,

어릴 적
외할머니 집에 갔을 때 맡았던
그 고즈넉한 시골 냄새가
문득 떠올랐다.

시간이 겹쳐지고,
기억이 현재로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 5. 창가에서 마주한 사람

퇴근 무렵,
이 선생님이 이쪽으로 건너왔다.

창 앞에 서 있는 영숙을 보고는
우물 쪽으로 난 창문 앞에
나란히 섰다.

면사무소와 보건지소를 나누기 위해
경계로 세우려다 만 듯한
중간에서 끊긴 담장 아래를 가리키며
그는 슬그머니 웃었다.

“하도 심심해서 상추를 심었어요.
몇 번 뜯어 먹었는데,
얼마 동안 돌보지 않았더니
엉망이 됐네요.”


📘 6. 담장 아래의 것들

담장 아래 한쪽에는
상추가 자라고 있었고,
유리창 바로 아래에는
봉숭아꽃 몇 송이가
힘없이 매달려 있었다.

출입문 쪽을 제외하면
삼면이 모두 유리창인 건물 탓인지,
영숙은 실내에 있으면서도
자주 창밖을 바라보게 되었다.

밖은 늘 조용했고,
그 고요 속에서
하루는 또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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