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에서, 혼자 서는 연습
오후 내내
영숙은 창가에 서 있었다.
창문 밖으로는
건물 옆을 따라 이어진
작은 꽃밭이 보였다.
햇볕은 그 위에 조용히 내려앉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꽃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지금 여기 있구나.
누군가의 딸도 아니고,
누군가의 연인도 아닌 채로
그저 한 사람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이
조금 늦게, 그러나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나이가 아닐까.
그 생각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붙잡으려 하면 사라질 것 같아서
영숙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이곳에는
음악도 없었고
시도 없었고
대화도 없었다.
정막과
햇볕과
고요만이
천천히,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어쩌다
창밖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면
그제야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그 고요 속에서
영숙은 알았다.
지금 이 시간은
누구에게 빌린 것이 아닌
온전히 자신의 날들이라는 것을.
어떤 이유로도
피할 수 없는
혼자만의 길을
지금, 걷고 있다는 것을.
뒤돌아보면
엉킨 실매듭처럼
풀리지 않은 날들이 보였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
그것들을 하나하나 풀고 있을
시간은 아니었다.
꿈은
지나간 자리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비로소 숨을 쉰다는 것을
영숙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신선하고
조금은 달기까지 한 공기를
천천히 들이마셨다.
어쩌다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했을 때
비로소 한 사람은
성인이 된다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영숙은
성인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 앞에서
걸음마를 떼듯
조심스럽게
사회 속으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영숙아.
그래도
너는 살아야 하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햇볕과
더위와
고요만이 있는 이곳을
피하지 말고,
언젠가 올
사랑을 서두르지 말고,
지금 이 고요를
온몸으로 견디며
시를 고르고,
글을 쓰며
너 자신이 되어가야 한다.
이 침묵이
언젠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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