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의 밤길, 복숭아 과수원에서 마주한 어른의 세계
“밤은 깊었고, 추억만 달았다”
🌙 복숭아 과수원
그날 밤이었다.
옆방에서 농협에 다니는 주양이
복숭아 밭에 가자고 했다.
같은 농협에 근무하는 차양도 함께였다.
밤공기를 핑계 삼아
우리는 복숭아를 사 먹으러 나섰다.
낯선 논둑길을
더듬더듬 지나고,
냇물 위에 놓인 징검다리를
위험스럽게 건널 때,
영숙은 문득
잘 모르는 미지의 세계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새카맣게 캄캄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었다.
불빛 하나 없는 시야는
끝도 없이 어두웠고,
그 위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었다.
비로드처럼 검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저 많은 별들은
대체 어디서부터
나타난 것일까.
이렇게 많은 별을
본 기억이 없었다.
개구리들은
우리가 발을 디딜 때마다 잠잠해졌다가,
발소리가 멀어지면
기다렸다는 듯 다시 울기 시작했다.
개굴, 개굴.
마치
사람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처럼.
넓은 과수원을 지나
커다란 검은 개가
컹컹 짖어대는 마당으로 들어섰다.
“누구세요?”
“복숭아 사 먹으러 왔어요!”
“누구라고?
농협에 주양 아냐?”
마루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그제야 내려왔다.
“얼마치나 줄까?”
“천 원어치 주세요.”
자그마한 소쿠리에
복숭아를 하나하나 세어
씻어 담아주었다.
어릴 적,
시골 외갓집에 놀러 가면
그냥 양껏 먹으라며
내어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건 이제
정말 추억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과수원 아주머니의 태도와
과수원 초입에 매어 놓은
송아지 만한 검은 개를 보며,
영숙은
야박해지고 각박해진
시골 인심을 보았다.
하지만 곧
내가 살고 있는 집 주인 할머니는
마당의 푸성귀도
돈을 받고 판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숭아는
참 맛이 없었다.
어두운 데서 먹으면 예뻐진다는
복숭아벌레가 있을 법한
푸짐한 복숭아와는 거리가 먼,
탱글탱글하기만 한 복숭아였다.
그 순간,
어린 시절의 밤이 겹쳐졌다.
다 큰 처녀가
밤에 마실 다닌다고
외할아버지에게
천둥 같은 야단을 맞던 이모.
그 소리에 깨어
방 한켠에 앉아 있던 영숙에게
이모가 몰래 쥐여주던
그 한밤의 복숭아는
얼마나 달고 맛있었던지.
돌아서 오는 길은
유난히 피곤했다.
밤은 여전히 깊었고,
별은 여전히 많았지만,
영숙은 알 것 같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복숭아를 사 먹으러 가는 일조차
예전처럼 달지 않다는 걸
알아버리는 일이라는 것을.
'소설 > 홀로선 버드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랑이 오기 전, 그녀는 먼저 사랑을 상상했다 (0) | 2025.12.30 |
|---|---|
| 🌑달 없는 밤, 별만 남은 곳에 서다 (1) | 2025.12.25 |
| 🌙 사랑을 생각하기엔 너무 고요한 오후 (1) | 2025.12.23 |
| 🔥그녀는 화를 냈고, 나는 자리에 남았다 (0) | 2025.12.22 |
| 🔥조용한 하루가 끝나고, 인생의 문이 열리던 아침 (0) | 2025.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