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에서의 어느 주, 서울의대 무의촌 진료
< 서울의대 무의촌 진료 >
보건지소에 출근하던 날,
면사무소 옆 청성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이미 진료 텐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서울 의대 학생들이
무의촌 진료를 위해 내려온 아침이었다.
하얀 천으로 덮인 텐트와
서둘러 움직이는 젊은 얼굴들.
그 풍경은
청산의 평소 아침과는
조금 다른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학생들이 진료를 맡는 동안,
지난 4월 무의촌 의사로 와 있던
이 선생님은
뒤뜰의 상추를 돌보던 부인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났다.
자리를 비운다는 말보다
자리를 넘긴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안양 언니와 함께
가족계획 업무로 초등학교에 갔을 때,
영숙은 문득
자신의 모습이
유난히 작아 보였다.
서울대 의대라는 이름,
하얀 얼굴들,
정돈된 말투와 손놀림 앞에서
부러움과 거리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래도 할 일은 계속되었다.
교실을 돌며
이를 뽑는 치과 진료를 지켜보았고,
접수처에 서서
사람들에게 가족계획을 권유했다.
학생들은
기생충 검사를 위해 채변을 받고,
소화제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대부분은
노루모였다.
이 마을에서
가장 자주 찾는 약이었다.
진료만으로
일주일을 버틸 수는 없었다.
학생들에게 밥을 해 줄 사람을 구하고,
가마솥을 빌리고,
땔나무를 마련하는 일까지
모두 해결해야 했다.
부녀회가 돌아가며 밥을 하기로 했고,
소가 없는 집에서
가마솥을 빌려왔으며,
땔나무는
병든 소나무를 베어
겨우 마련했다.
봉사를 하러 온 사람도,
그들을 돕는 사람도
모두 지쳐가고 있었다.
진료가 이어지던 며칠 동안,
안양과 곽 양은
가족계획 업무로 초등학교를 오갔고,
일이 끝나면
곽 양의 먼 친척이라는
뒷집에서
낮잠을 청했다.
그 사이
보건지소 옆집 할머니가
약을 타러 가신다며
지나가셨다.
“무슨 약이세요?”
“소화제요.”
그제야
영숙은
무의촌 진료에 왜 그렇게
환자가 많은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병이 많아서라기보다,
참아 온 시간이 길어서
사람들은 약을 찾고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학생들은
며칠 뒤 다시 떠났고,
청성의 여름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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