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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의 20대를 고이 접어 보냈습니다."
45년 전, 아가씨 시절 입었던 벨벳 재킷,
마지막으로 한 번 입고, 조용히 작별 인사를 건넸습니다.
"시간은 옷에도 스며요.
그래서 우리는 옷을 입고
추억을 걷습니다."
"버리는 게 아니라, 보내는 거예요.
고마웠다고, 예뻤다고.".
오늘, 내가 나에게 작별을 건넨다
추억도 입고, 인사도 입었다
옷장 속 시간에게 고마웠다고 말하는 법
> 벚꽃이 피던 그해 봄, 나는 이 자주색 벨벳 재킷을 입었다.
어깨선이 각 잡힌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어른이라 여겼던,
아직 세상 물정을 몰랐던 그 시절.
오늘, 그 옷을 다시 꺼내 입었다.
조금 바랜 색깔, 손끝에 느껴지는 낡은 감촉,
그런데도 참 따뜻했다.
오랜 친구와 마지막으로 손을 꼭 잡는 것처럼,
나는 그 옷과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오늘, 녹슨 수거함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작별 인사를 건넸다.
"수고했어.
나의 젊은 날을 함께해줘서 고마워."
이제 나는 조금 더 가벼워지고,
마음은 오히려 더 깊어진다.
언젠가 이 글을 다시 읽게 되면,
오늘의 나를 또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기를
.

오늘 옷장에서 아가씨 때 즐겨 입었더 벨벳 재킷을 꺼냈다.
25살 때 입었던 옷이니까 이제 45년된 옷이다.
그때 벨벳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나는 유난히도 벨벳 천을 좋아했었다.
"내일에도 해가 뜬다"라고 말하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대사를 읊던 비비안리 때문이었다.
학교 졸업하던 해 크리스마스 전날에 할 일이 없어서 시내 홍명상가로 옷을 사러 갔었다.
초록색 땡땡이 벨뱃 천으로 된 투피스를 한벌 사서 집으로 가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앞에 서 있는 낯 익은 뒷모습을 보았다.
그때 거기에서 안만났었으면 좋았을 텐데 ~
아무튼 대학 1학년 때부터 만나다 안만나다 뜸하다 만나다 했었던 passion을 만났다.
나는 영어로 sperm 이었고 그애 이름을 영어로 passion이라 불렀었다.
아침에 passion으로 부터 전화가 왔었다.
오전에 만나자는 전화였다.
오후에 만나면 안되냐니까 오후에는 약속이 있어서 안된다고 하였다.
그날 그렇게 버스 정류장에서 여학생의 어깨를 팔로 감싸고 있는 그애를 만났던 것이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 양복과 와이샤쓰를 입고 빨간 넥타이까지 매고 있었다.
여학생은 우리학교 동급생이었다.
우리 반이 아니어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얼굴은 아는 애였다.
여름에 대전 역 옆에 있는 다방 이층에서 만났을 때 passion이 말했었다.
예전에 과외를 해주던 아이가 있는데 그애가 대학에 갔다고 하면서 만약 그애와 함께 있는 것을 길에서 만나면 어떻게 할거냐고 ~
뭘 어떻게 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면 되지.
얼마전에 절친인 선아가 말했었다.
"너 passion이 어떤 여자 애하고 유성 가는 버스를 나 보란 듯이 의기 양양하게 타고 가더라. 그 여자애 우리 학교 애 같던데 ~ "
그 이야기를 듣고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직접 눈 앞에서 보니까 이야기로 들을 때와는 달랐다.
passion의 어깨를 잡았을 때 passion이 뒤돌아 보았고 난 비웃듯이
"넥타이까지 맺네?"
그말을 하고 돌아서서 지하도 입구로 빠르게 걸어갔었던 생각이 난다.
passion네 집까지 찾아 갔었던 모든 일들이 빠르게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던 순간이었다.
교사가 되었던 첫해는 정신없이 보냈고 두번째 해에는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는지 담임을 맡기지 않아서 너무 심심하게 보냈고 세번째 해에는 울산 여상 1학년 10반 담임을 맡았었다.
그 해 봄 내내 입었던 옷이다.
딱 좋아하는 벨벳 천에 색깔도 딱 좋아하는 색깔로 사서 정말 열심히 입었었다.
25살
가장 좋은 시절에 입었던
정말 좋아했던 옷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버이 날에 받았던 브로치 카네이션을 찾는다고 장롱 안을 들여다 보다가 그 옷을 꺼내서 주머니를 뒤졌다.
낡아서 털이 빠지고 팔꿈치가 다 닳아 버린 옷을 들고 한참을 들여다 보다가 재활용 통에 넣기로 하였다.
"보내 줘야지. ~"
"이제 고만 붙잡고 있자. ~ "
"나의 청춘아 ~ 잘가.~ ".
"옛 추억도 ~ 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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