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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탄다.

영혼의 닻을 찾아서 2024. 7. 1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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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를 탄다. >


기차를 타는게 좋다.
어딘가를 가는게 좋은지 그냥 기차가 좋은지 모르겠지만 둘다 좋은거 같다.

기차를 타면 어딘가를 가는게 좋은 거 같다.

기차를 탈 때 좌석번호를 외우고 타는데도 자꾸 잊어버린다. 집중을 안하는거 같다. 지난번에도 여행가방을 든채 좌석번호를 못찾아서 우왕좌왕 했는데 양아치처럼 생긴 젊은 애들이 못되게 굴어서 참 난처함을 겪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잘 찾아서 앉아야지 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못되게 굴었다.
잘 앉아 계시는 어른한테 가서 "제자리 인데요?"
어르신
"좌석 번호가 맞나 확인해 보세요."
그 자리에서 확인해보니 4A가 아니라 6A였다. 너무 미안해서 얼른
"죄송합니다. 다른데네요."
그러면서 자리를 찾아갔다. 혼잣말처럼
"집중을 안해서 자꾸 틀리네."
머리 속이 좀 복잡하기는 하다.
여러가지 일이 ~ 게중에는 원룸 204호 아주머니 때문이다.
지금 그 아주머니가 좋은 집으로 이사가서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하고 있다. 아주머니 사정이 딱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 까지만 해야 한다. 오버하다가 그 아주머니가 더 힘들어질 뿐이다.
아주머니도 나이가 있으니까(우리집에서 14년을 살았으니 40대에 와서 60대가 된 것이다.) 아무리 옳게 이야기해도 현실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타성에 젖어서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 상태가 되기 전에 정리 했다면 좋았을텐데, 지금도 늦지 않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반성을 하고 새롭게 일어서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토마토를 엊저녁에 식자재에서 작은 통으로 한통 샀다. 아침으로 먹기 위해서이다.
바나나를 먹었지만 바나나는 목이 메인다. 토마토는 98%가 수분이라서 목이 메이는 일은 없다.

집을 나서면서 3개를 씻어서 크리어 봉지에 담아서 가지고 왔다. 역구내를 통과하는데 커피 냄새가 죽인다. "커피 마시고 싶다."
마시고 싶다고 먹을 수 없는 형편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디야 카오스 앞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모자의 뒷모습이 부럽다.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손에 들고 타는 사람들이 부럽다.

같이 앉아서 부시럭거리며 토마토를 먹는게 미안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나에게는 아침을 먹는거니까 ~ 그러고는 뻔뻔한 마음으로(사실 좀 미안한 마음으로) 토마토를 입에 물고 죽죽 빨았지만 토마토 씨앗이 그 사이 한개 튀어 나와 상의에 묻었다.
엊저녁에는 '발명품' 유튜브를 보면서 토마토를 먹다가 왕창 씨앗이 흘러 나와서 상의를 온통 다 적셨다. 대충 휴지로 닦고 계속 먹었는데 저녁을 돼지고기로 잔뜩 먹고도 맛 있었다.

경주를 지나 대구다.  

4005번 울산 역가는 리무진을 타러 나오는데 샌달 끈이 떨어졌다. 원래 발목에 2개씩 있는 건데 오른쪽 발목에 끈이 한개 빠졌길레 그냥 잘라버리고 한개로 왼쪽은 두개로 신고 다녔는데 그 한개가 빠진 것이다.
그냥 정류장에 갔더니 15분이 남아 있었다. 집에 다시 가서 제대로 된 샌달로 바꾸어 신었다.

샌달 이야기.

은퇴를 한 뒤 날이면 날마다 놀다 보니까 복장이 불량해졌다.
사실 불량한 복장 입는게 은퇴 후에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복장이 불량해지는 건 좋은데 더불어 신발도 불량해졌다.
그런데 여름에 지인의 딸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가봐야 하는데(보통 축의금만 전달하는데 코로나도 끝났고 꼭 가봐야 하는 지인이라서) 막상 집을 나서려니까 복장은 어떻게 해결하겠는데 신발이 부실했다. 신을 만한 샌달이 없었다. 결국은 슬리퍼를 신고 양말을 신었더니 완전 촌할매가 되어서 부끄러웠다. 그래도 그렇게 참석했는데 정말 보기가 싫었다. 양말을 벗고 슬리퍼만 신었는데 정말 보기 싫었다. 슬리퍼가 약가 샌달 흉내는 내고 있었지만 샌달은 샌달이다.

인디언 할인 매장에 따라가서 샌달을 2개 골랐다. 여름에만 잠깐 신을 거고 보통 때는 신지도 않을테니 적당한 것으로 2개 골라서 데리고 왔다.
그런데 발목에 매는 끈이 빠진 것이다. 꿰매면 될 듯한데 싫었다. 영영 신을 것도 아니고 세월이 흐르면 아무리 예쁜 샌달도 세월을 따라 낡아진다. 새신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명품이나 비싼 것은 다르려나?
아무튼 안 신고 놔두면 신도 세월따라 세월의 이끼가 낀다. 그러니 신에 대해서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 그냥 신을 만한 거 한두켤레면 충분하다. 사람을 만난다던지 어디갈 때 신을 수 있도록 말이다.
요즘은 왠만한 곳은 크록스로 충분하다. 출근 안하니까 이런 것도 정말 좋으다.

집에서 나올 때 장마철인데다 어제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모자를 쓰고 가야 하나? 하다가 무조건 쓰고 나왔다.
방금 기차가 지나가는데 햇볕이 비치는 구역을 지나간다. 지금은 아침 안개가 잔뜩 끼여 있는 곳을 지나간다.

집에 가서 샌달을 바꾸어 신고 나오는데 아파트 담 옆으로 감꽃을 떨어트리던 나무가 이제는 조그마한 파란 감을 떨어트린다.
너무 귀여워서 한개 주웠다. 아직은 먹을 수 없는 딱딱하고 새파란 조그마한 감모양의 애기 감이 손에 잡혔다.
뒷면을 보니까 알 껍질이 하나 붙어있다. 벌레는 이미 빠져나간듯 ~ 그래서 아직도 정말 조그마한 감인데도 나무에서 떨어졌나? 주웠던 감을 옆에 있는 빌딩 건물 턱에 올려 놓으면서 집에 올 때도 여기 있을까? 잠깐 생각했다.

곧 조금 더 커져서 완전한 큰 감이 되면 떨어져도 물렁 물렁한 감으로 보이면 어렸을 적에는 주워서 먹었었다.
맛이 없다. 단 맛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맛없는 감을 먹었었다.
지금 아이들은 감나무에 빨갛게 홍시로 달려 있어도 따 먹지 않는다.
감 홍시가 되는 계절에 강가를 따라 걸어가면 강가에 있는 감나무에 홍시들이 그냥 떨어져서 썩어가는 것을 많이 본다.
아무도 감 홍시를 안따는 것이다.
아이들은 학원 다니기에 바쁘고 어른들은 일하기에 바쁘고 그걸 따먹을 사람이 없어서 그냥 떨어져서 사그라져 가는 것이다.
밤나무도 마찬가지. 한번은 추석 때 군서면 상지리에 갔는데 동네 뒷길에 밤나무가 축 늘어져서 밤이 떼구르르 바닥에 굴러 다니는데도 주울 사람이 없어서 그대로 굴러 다니고 있었다.
마을에 어린아이들이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어른들도 몇 없었다. 집집마다 빈집이었다.

그 바글거리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이들을 바라보며 곰방대를 물고 있던 그 어른들은 다 어디 갔을까?

추석인데도 적막강산이라 대추나무에 대추가 주렁 주렁 쓰러질 정도로 달려 대문 앞에서 빨갛게 익어가도 그 대추를 따줄 사람이 없고 밤나무가 밤이 잔뜩 열려 축축 늘어져 밤송이를 한껏 벌리고 저를 데려가 주세요. 해도 그걸 빼내갈 사람이 없었다.

기차를 타는게 좋다. 기차는 모두들 어디를 가려고 탄다. 한사람도 기차에 머물려고 타는 사람은 없다.

인생은 기차이다.
영원히 머물 인생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산다.

감사한 마음으로 인생 기차를 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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