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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교회 시화전

영혼의 닻을 찾아서 2025. 1. 8.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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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 교회 시화전 >  

만나 교회 홀에 시화전이 열려 있다.
지난 번에는 사진 전시회가 있었다.
교회 홀에서 여러 전시회를 여니까 사회를 향하여 개방 하려는 애씀이 좋아 보인다.

"교회는 누구나 오셔도 됩니다."

어느날인가 성당을 지나 가다 보니까 홀에서 그림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수준 높은 그림도 있고 그냥 저냥 취미로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는데 그 성당에 다니는 교인들  동호회에서 그린 그림들 같았다.
좋았다.
그림을 그리신 분들은 전시 할 수 있어서 좋고 또 누구나 다 와서 감상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시화전이라~

여고 시절에 한창 담임 선생님이셨던 총각 국어 선생님을 좋아해서 도서관에서 시집을 빌려다 읽고 시집에 써 있는 시들을 흉내내서 시를 쓰고는 했었다.
교사들이 낸 시집을 국어과이신 담임 선생님이 소개할 때마다 꼭 사서 읽었다.
시집을 읽으면서 상상 하고는 했다.

"언제인가는 나도 교사가 되어서 시집을 출간해야지."

여고 시절 이었음에도 시를 써서는 밥 벌이가 안된다고 생각을 했었나부다. 교사라면 약력 소개에도 써넣을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꿈은 충분히 꾸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는 노력파도 아니었고 잘하는 학생도 아니었다.
그저 반 아이들 60명 중에서 10등에서 20등 사이 정도?  뚜렷이 목표하는 대학도 없었다. 막연히 사범대학 가야지 하는 정도였고 성적이 안되어서 사범대학 원서도 써 보지도 못했다.

어쨌든 교사로 근무했고 꿈꾸던 시집도 냈다.
  시집 이름이?  
이젠 내가 냈던 시집 이름도 기억이 안난다.
예수 믿고 나서는 시  쓰기를 포기 했고 써놓았던 시들도 애착심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흔적 남기기"

였었던 것 같다.
제목을 보고 동료 국어 교사가 하던 말이 기억 난다.

"흔적이 곧 남긴다는 뜻 이거든요? 반복해서 쓴 거예요. '흔적' 이라고 하지 그랬어요"

경제 학자가 돈을 못벌듯이 국어 선생님들은 보통 글을 안쓴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고 너무 잘 알아서 그럴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나?
무식해서 물색없이 시를 써서 시집까지 냈을 것이다.

은퇴 이후 코로나가 계기가 되어 다시 글을 쓰면서 시에 대한 그리움이 싹트기 시작했다.
시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시가 있고나.
여기에 시가 써 있어.

삭막한 도시의 지하철 유리창에 써 있는 시를 보면 시에 대한 눈물 같은 향수가 피어 오른다.
미지의 작가가 쓴 시면 미지의 기꺼움이 있고 익숙하고 유명한 시를 보면 이련했던 그리움이 진하게 올라 온다.

여고 시절 담임 이셨던 국어 샘은 첫 발령 받고 대전에서 울산 가는 고속 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났었다.
23살의 초임 발령 교사로 객지에서 근무하면서 선생님이 수업 중에 하셨던 태도. 미소 등등이 많이 떠올랐었다.

시집을 냈을 때 선생님에게 몇권을 선생님이 근무하시던 학교를 교육청에서 찾아 보내 드렸다.
혹시나 뭐라도 한마디 써서 보내 주실까 기다렸지만 답은 없으셨다.
내심 기대 했었는데 ~
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은 금강 유원지 이층이었다.
연세가 많이 드셨고 건강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만약 샘이 몇글자라도 격려의 말을 써서 보냈더라면 반갑게 달려가서 인사 했을까?
샘의 눈빛은 그대로 였지만 그냥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만약 샘이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 먼길을 달렸구나.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가고 있을 그길을 계속 걸어 갔으면 좋겠다."

이런 글을 보내왔다면 어땠을까?
사정이 있으셨겠지 하면서도 아쉬움을 완전히 떨칠 버릴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수필을 쓰던 쉽지 않은 혼자 만의 길이다.
더우기 미디어의 홍수 속에 엄청나게 쏟아지는 책들 속에 누구나 공감하면서 시대를 아우르는 특별한 무언가를 써 낸다는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쓰는 일이 힘들다고?
포기 한다고?
그렇다면 한강같은 노벨 수상자가 나왔을까?

누군가는 그 힘든 일을 멋지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만나 교회에 걸려있는 모든 시화를 사진으로 찍었다.
우리 엄마가 내가 여고 시절 만들었었던 시화 액자를 아직도 집에 고이 잘 모셔 놓고 있는 것 처럼 나의 사진들로 간직하고 싶다.

  오늘은 여기에 몇개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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