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렌 버핏 연설>
예전부터 워렌 버핏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그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오늘은 티스토리를 뭐를 쓸까 생각하면서 컴퓨터를 켜고 찬양이나 좋은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으려고 들어 갔습니다.
맨앞에 워렌 버핏(1930년 생 91세) 연설이 떴습니다.
평소에 영숙이가 하고 싶었던 일들? 내용들?
조금씩 메모지에 적어 보다가 급기야 전체 내용을 여기에 적어 보려고 합니다.
요즘 영숙이는 스스로 이렇게 변명을 합니다.
"난 이제 나이가 많아. 할 만큼 했고 더 이상 악착같이 살고 싶지 않아."
"충분히 최선을 다했고 그걸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어."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찝찝한게 무언가가 잡아 당기는 기분이었습니다.
"정말 너 최선을 다하고 있는거 맞아? 정말 할만큼 다했다고 생각해? 나이가 정말 그렇게 많아?"
워렌 버핏의 연설을 들으면서 스스로가 틀렸다는 걸 발견합니다.
"그래.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고, 충분히 나이 먹지도 않았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은 아니야."
다음은 워렌 버핏의 연설 내용입니다.
"8년전, 저는 막 여든 살이 되었습니다.
저는 La. Guardia의 한 대학에 초대받았고 그곳에서 정말 놀라운 그룹을 만났습니다.
그 그룹의 사람들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히스패닉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든 그 어떤 인종이든간에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가치'를 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배경마저 뛰어 넘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에너지를 바쳤습니다.
이제 여러분께 두개의 짧은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두명의 여성으로부터 각각의 사업을 버크셔 헤서웨이로 인수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두 여성 모두 약 25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우연히도 두여성 다 정확히 같은 금액이었고 그것이 그들이 가진 전부였습니다.
그들 중 한명은 1917년 시애틀에 상륙한 여성이었습니다.
영어를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가 멍청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언어를 배울 수 없었고 기본적인 단어조차 익힐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큰 딸 프랜시스는 학교에 다녀오면 그날 배운 단어들을 어머니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여성인 로즈 블럼킨은 20년 동안 저축을 하였고 부모 대신 가족을 부양하며 헌 옷을 팔며 5만원씩 저축하고 그녀는 이 기간동안 4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20년 뒤인 1937년에 그녀의 저축은 약 250만원이 되었습니다.
가구점을 여는게 꿈이었던 그녀는 시카고로 가서 한 가구점을 인수했습니다. 이제 그녀의 가구점이었습니다.
평생 단 한번도 학교에 가본적이 없는 그녀는 당시 수중에 약250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1983년에 무려 약 720억원(6천만달러)에 제게 사업을 매각했습니다.
이 사업은 작년에 약 1조 2천억원의 가치가 되었습니다.
이 로즈 블럼킨 여성은 103세까지 저와 함께 일했고 그리고 은퇴를 했고 다음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를 통해 모든 버크셔 헤서웨이 매니저들은 너무 이른 은퇴는 우리의 삶을 예측할 수 없게 합니다.
중요한 것은 250만원이 아니고 그녀가 읽거나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구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사실 그녀의 가구점에는 특별한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성공하겠다는 굳은 결의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을 능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무엇보다 고객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녀의 회사 마진율은 매우 낮았지만 그녀는 이 사업을 놀랍도록 변화시켰습니다.
다음으로 저는 또 한 명의 작은 사업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이 사람의 회사를 사러 갔었습니다.
그는 그때 내 제안을 거절했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은 매우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이 친구는 내가 태어나기 8년 전인 1922년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중서부 출신의 잭이라는 남성이었는데 이 사람은 꽤 좋은 운동선수였지만 학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운 회사는 현재 미국의 다른 어떤 회사보다 매년 더 많은 대졸자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잭은 1년 동안 대학에 갔다가 자퇴했습니다.
그는 학교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이 공격을 당했을 때 그는 해군에 지원해 입대하였습니다.
해군에서는 그를 항공 모함으로 배치했습니다. 그는 소형 전투기를 조종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중서부로 돌아왔습니다.
젊은 남자가 돌아왔습니다. 아마 이때쯤 23세나 24세였을 것입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가 미국의 중서부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는 짧은 시간동안 여러 직업을 전전했는데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캐딜락 대리점의 중고차 판매원이 되었습니다.
35세에는 영업직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어느 날 잭은 상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자동차 리스 사업을 할 수 있습니까?"
그말에 사장은
"너의 급여를 반으로 줄이고 약 2500만원을 빌려오면 하겠다."
고 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그돈을 빌려왔습니다.
그렇게 제 친구 책은 35세에 자동차 리스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그는 고작 일곱 대의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업은 느리게 성장했습니다.
사실 그가 한 일 중 하나는 전화가 울릴 때마다 일부러 세번이나 네번 전화벨이 울리도록 하여 사람들이 그를 매우 바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모험은 괜찮았습니다. 그의 사업은 목적 없이 아무대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40세에 그는 17대의 차량으로 랜터카 사업을 결심했습니다.
17대의 자동차요.
그 차량들은 다른 랜터카 경쟁업체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Herts, Avis, National 등 많은 차를 가지고 있는 렌터카 업체와 경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작 17대의 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의 차는 그들의 것과 차별성도 없었습니다.
그가 제너럴 모터스나 포드 크라이슬러에서 제조한 차를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그는 경쟁업체들이 꿰고 있던 공항 위치도 잘 몰랐습니다. 이렇게 지속되는 한, 그는 고객들에게 경쟁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객들이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친절함과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그렇게 그의 회사를 새롭게 꾸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본인이 있었던 항공 모함 이름을 가져와 모함 이름은 USS Enterprise였어요. 엔터프라이즈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는 약 1년 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생을 마쳤을 때 그의 랜터카 사업은 17대로 시작해서 그 가치는 Herts, Avis등 다른 모든 랜터카를 모두 합친 것 보다 많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잭 테일러이고 미국에서 이 사람은 인공지능(AI)를 발명한것이 아닙니다.
그는 가구를 파는 로즈 블럼킨 부인처럼 거대한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 말은 우리 중 누구라도 그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본적으로 고객을 기쁘게 하고 사람과 함께 일하고 그들과 신뢰 관계를 구축하여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다는 굳건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가 밖에서 홀로 모든 렌터카들을 관리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자기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춰지는지 알았고 그의 동료나 고객들을 그의 친구로 만들려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평범한 자동차 몇 대를 통해 거의 무의 상태에서 이렇게 특별한 사업으로 탈바꿈 시킨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몇가지 시사점을 더 보여줍니다.
하나는 처음에 무언가를 시작할 때 그것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말은, 자동차 리스 사업은 기본적으로 자동차 자금 조달을 위해 비용을 놓고 경쟁합니다.
그리고 고객에게 차를 주고 5년 동안 매달 리스 비용을 보내라고 하면 고객을 만족시키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의 고객을 기쁘게 만드는 재능은 리스 사업에서는 낭비되고 있었습니다.
40세의 나이에 이르렀을 때 그가 가진 것은 그의 경험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거기서 황금 열쇄를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평범한 렌터카 사업을 매우 특별한 사업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꿀 수 있는 것들 중에서 한가지에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객들의 '경험'이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핸리 포드는 1903년 포드 모터 컴퍼니를 설립하기 전에 두번이나 실패했습니다.
테스트는 첫 시작 때 가장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테스트는 계속 무언가를 배우는지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고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상대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요한 것은 고객을 기쁘게 하기 위한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껏 나는 수많은 기업을 보았지만 고객을 기쁘게 만들어서 성공하지 못한 기업을 보지 못했습니다.
고객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그들이 차를 랜트하려고 하거나 가구를 사려고 할 때 그들의 마음은 어디로 향할까요?
바로 좋은 경험을 했던 곳입니다.
나는 이것들이 얼마인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이 셔츠를 살 때 어떻게 대우 받았는지 기억합니다.
결국 가격에 대해서는 잊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구매 경험에 대해서는 좋았는지 아니면 나빴는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좋은 경험을 한 고객이 다시 그 가게를 방문하지 않을 확률은 매우 적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약 구매 경험의 기억이 무례함 무관심이었다면 고객들은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한 기업의 소유자로서, 그들은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사람들의 행복에 대한 관심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데 투영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행복 또한 자신에게 투영되어야 합니다.
또한 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지 않고 자신의 견해가 적절히 고려되지 않다고 느끼는 고객들을 통해서는 그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자신을 키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한가지 핵심은 한 사람이 갖게되는 가장 중요한 결정은 배우자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보다 더 나은 사람들로 당신 주변을 둘러싸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은 당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방향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운이 정말 좋았습니다.
제 말은 제게는 저보다 더 나은 선생님과 친구 배우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과 함께하고 내 행동을 발전 시킨다면 내 삶이 더욱 나아질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비지니스 동반자든 인생의 동반자든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바로잡아줘야 하는 사람들보다 당신에게 모범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으라고 조언 드립니다.
룰은 간단합니다.
고객을 기쁘게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은 당신을 더 나은 길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그 고객들은 당신을 인생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데려갈 것입니다.
그들은 영어를 한마디도 할 수 없는 로즈 블럼킨을 정말 멀리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오늘날 약 1조 2000억원 규모의 사업으로 성장하게 했습니다.
그녀는 약 250만원의 자본금 투입 이후로 한번도 추가 자본을 투입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네브라스카 가구점에 들어간 총 자본금입니다.
그리고 잭의 앤터프라이즈를 보면 그들의 회계 방식이 지금과 똑같은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업에는 몇년 동안 아주 적은 초기 자본금만 들어갔습니다.
시작 자체로 사업이 발전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지금껏 해온 일들과 지금 하고있는 일을 존경합니다.
정말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 자리에 서서 이렇게 나는 내가 존경하는 2,200명의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들을 응원하며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처음 들었을 때도 좋았습니다.
좋은 내용이라서 요약해서 쓰려다가 전부 다 쓰기로 마음 먹었는데 쓰다 보니까 전부 쓰기로 한 것이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귀로 듣는 것과 이렇게 내용을 전부 옮기는 것이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훨씬 강력하고 더 많은 동기 부여가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맨발로 집 떠난 13살 소녀 …103살까지 CEO로 성공 신화>
출처 : 갈라북스( 2016. 12. 21 )
그녀는 아흔 살이 다 됐을 때도 일주일에 60시간 이상을 일했다. 그리고 103살이 될 때까지 CEO 자리에 있었다.
"유능한 경영인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런 인재를 내보내는 태평스러운 짓은 할 수 없다."_ 워런 버핏
바로 세계적 부호 '워런 버핏'이 최초로 선택한 여성 경영인 '로즈 블럼킨' 얘기다.
![](https://blog.kakaocdn.net/dn/cfhFio/btrCOKrPCEc/TtKTWVRlngKVxonDdi70xk/img.jpg)
그녀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미국에서 이민자의 신화를 쓴 대표적 여성으로 꼽힌다.
러시아 민스크 근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블럼킨. 그녀는 한 번도 정규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저 교육이라곤 어린 시절 어머니 일을 도우며 산수를 배운 것이 전부다.
밤낮없이 일하는 엄마를 보며 자라던 그녀는 13살 때 맨발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몰래 기차를 타고 우크라이나 국경 유대인 정착촌에서 가게 청소로 처음 일자리를 얻었다. 이후 신발 판매원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지만 1차 세계대전을 피해 남편만 미국으로 건너갔다.
홀로 남겨진 그녀는 포목점 등에서 어렵게 일을 하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건너가 남편과 재회.
재회한 부부는 매주 10달러의 임대료를 내고 중고의류점으로 첫 사업을 시작. 이후 빌린돈 500달러로 지하실에 '네브라스카 퍼니처 마트'라는 이름으로 가구점을 연다.
네브라스카 퍼니처 마트는 훗날 버크셔 해서웨이에 매각되고, 로즈 블럼킨은 워런 버핏과 함께 일한 최초의 여성 CEO가 된다.
![](https://blog.kakaocdn.net/dn/bijU6s/btrCHMrQfze/cJMYbS5qVKE3ysBk3KgEKk/img.jpg)
"저에게 있어서 영웅은 중산층, 이민자 그리고 워런 버핏입니다. 버핏은 천재입니다. 전 그를 무척이나 존경해요. 굉장히 정직한데다가 소박하고, 약속을 금쪽같이 여깁니다. 그렇게 친절하고 다정하고 정직한, 제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로즈 블럼킨이 워런 버핏을 두고 평가한 말이다.
버핏 역시 로즈를 끔찍하게 존경했다. 버핏은 로즈의 생일 때마다 장미 꽃과 사탕 상자를 보내면서 존경을 표현했다.
"그저 제가 그녀를 존경하고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싶습니다. 매장에 들어선 순간, 로즈가 저를 바라보는 것이 좋거든요." 버핏의 말이다.
그녀가 세상을 뜬 것은 104세 때. 공식적으로 은퇴를 한 후 1년 만이다.
부고를 전해들은 버핏은 말했다. "우린 동업자입니다. 그리고 많은 면에서 로즈는 저보다 선배였습니다."
로즈 블럼킨은 지금도 미국의 대표적 여성CEO이자 '유리천장' 깬 인물로 추앙을 받고 있다.
"그 어떤 남자, 대학 졸업장이 있는 사람도 제 상대가 될 수는 없었어요.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상식을 이용했죠. 사업은 물론이거니와 무엇을 하든 저에게 상식이 자산입니다. 이 세상에는 바보같은 여자도 많고, 상식을 갖춘 여자도 많아요. 저만 그런 것은 아니죠."
_ Rose Blumkin(Nebraska Furniture Mart CEO)
출처 : 한국일보(2005.12.01)
사람을 제대로 대접하면 이익은 자연적으로 생긴다는 경영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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