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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왜 성공했을까?

by 영숙이 2023.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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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성공했을까? >   

 요즘 쓰는 티스토리 내용이 제자리를 맴맴 도는 듯 하여서 휴게소에서 흥미가 가는 책들을 잔뜩 샀다.

 한국의 산나물, 한국의 효소 발효액, 한국의 약초, 약이 되는 한국의 꽃차, 한국의 정원화, 한국의 건강 약차, 기적의 허브 총 8권을 샀는데 한권은 보기도 전에 벌써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안난다.

 바다를 가면서 챙겼는데 너무 물건이 많아서 어디에다 한권 빼 놓은거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

 더 중요한 건 jinnssam이 좋아하는 내용인데 써도 될까?

 

 오늘은 무얼쓸까?

 우선 제목부터 적어놓고 책을 찾아 여기 저기 뒤지고 있는데 눈에 띄는 책이 있다.

 

 "왜 성공했을까?"

 

 요즘 유튜브에 역행이라는 유튜브를 보다가 역행자라는 책까지 사서 보게 되었다.

 jinnssam만 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사줬다.

 책값이 19500인데 5권을 샀으니까 배송비까지 하면 10만원을 쓴셈.

 중요한 건 처음에는 술술 읽히더니 결국에는 마지막 챕터를 안읽고 책을 놓았다.

 열심히 읽다가 한소끔 쉬어가는 것.

 

 돈을 잘 번다는 것.

 또 돈이 많다는 것.

 나쁘지 않다.

 그냥 거기까지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다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다.

 역사의 획을 그었을까?

 단지 돈을 많이 번다고 또 벌었다고 역사의 획을 긋지는 못하는 것 같다.

 

 여기 만화 영화의 마술사 월트 디즈니는 역사의 한획을 그었다고 생각한다.

 왜 성공했을까?

 

 1928년 최초의 유성 만화 영화 <증기선 윌리> 제작.

 1932년 최초의 삼원색 컬러 에니메이션 <꽃과 나무> 제작.

 1933년 단편 영화 <세 마리 작은 돼지> 제작.

 1937년 최초의 장편 만화 영화 <백설공주> 제작

 1940년 클래식과 에니메이션을 결합한 <판타지아> 제작

 1950년 <신데렐라> 제작

 1955년 대규모의 오락 공원인 디즈니랜드를 건립

 1964년 <메리 포핀스>를 제작해 최고의 성공을 거둠.

 1965년 <정글북> 제작.

 

 미국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월트 디즈니는 꿈과 환상을 담은 멋진 만화 영화를 많이 만들어 전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사람이다.

 그는 "만화 영화의 마술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 분야에 관한한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로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그는 지금까지도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만화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또한 뛰어난 영화 제작자로도 손꼽히고 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이 만든 만화 영화 덕분에 무려 30여번의 아카데미상을 받았으며, 프랑스 최고 훈장을 받기도 했다.

 

성공 포인트 1. 자신의 재능을 믿어라.

 

 1. 어린 시절 다즈니는 떠돌이 기질이 있는 아버지 때문에 여러 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그리고 아버지의 강요로 한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신문 배달을 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디즈니는 자신의 꿈인 만화가가 되기 위해 통신 학교 과정으로 만화 그리기를 배우고, 미술 연구소와 디자인 학교를 다녔다.

 

 청년 시절의 디즈니는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여 고생을 많이 했다.

 디즈니가 상업 미술 학교를 졸업한 후 직업을 구하려고 여기 저기 광고 회사를 기웃 거릴 때의 일이다.

 다즈니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답게 광고 회사의 미술가로 취직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겨우 상업 미술 학교를 졸업한 풋내기 청년 다즈니에게 일자리를 주려는 회사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디즈니는 운 좋게도 어느 조그만한 광고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미술가로 취직이 된 것.

 신이 난 디즈니는 매일 아침 남보다 일찍 회사에 나가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어렸을 때 부터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했던 그는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직업이 너무도 행복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회사 안에서는 디즈니의 그림을 보고 칭차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칭찬은커녕 그가 온 정성을 다해그린 그림을 보고 사자은 걸핏하면 신경질을 냈고, 작유직원들은 비웃으며 킬킬거리기가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쩔 수 없네. 자네를 가르쳐서라도 함께 일하려고 해 보아씨만 도저히 안 되겠네. 자네의 그림은 너무 우스꽝스러워. 자네는 아무리 봐도 그림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아. 그러니 쓸데없이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다르 ㄴ일을 찾아보게. 그게 훨씬 나을 걸세."

 

 훗날 '만화 영화의 마술사'가 된 디즈니가 다른 것도 아니고 그림에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광고 회사에서 쫓겨났던 것.

 정말 믿기지 않겠지만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디즈니는 회사에서 쫓겨난 뒤로 실의와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말한 사장의 말이 너무도 야속했다.

 그러나 그는 실의에 빠져 멍하니 앉아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누가 뭐라고 하든 자기의 재능을 믿었고, 언젠가는 자기의 진짜 실력을 보여 줄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성공포인트 2 가장 새로운 것을 찾아라     

 그는 자기 실력을 발휘할 새로운 어떤 것을 찾아 내려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러자 그의 눈에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무렵, 플라이셔 형제가 만화 영화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매우 높은 인기를 끌고 있었다. 디즈니는 플라이셔 형제가 만든 만화 영화를 보고 만화 영화야말로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곧 함께 그림을 공부한 친구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이봐. 우리도 한번 만화 영화를 마들어 보자. 네 생각은 어때?"

 "뭐, 만화 영화를 만들자고?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그럼  할 수 있고말고. 플라이셔 형제의 만화 영화는 정말 대단해.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부족한 것 같애. 그러니 우리가 만화 속의 동물들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만들어 보자고."

 

 그날부터 디즈니는 자신의 재능을 몽땅 다 쏟아 부어 재미있는 만화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만화 영화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정말 열심히 작업을 해 나갔다.

 늘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만화 영화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렇게 하여 그 당시 만들어진 만화 영화가 바로 지금까지도 어린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장화 신은 고양이>, <빨간 모자>, <재크와 콩나무> 등이다. 

 

 만화 영화가 흔치 않던 시대여서 디즈니가 만든 만화 영화는 나오자마자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자기가 만든 만화 영화가 꽤 인기를 끌자, 거기에 용기를 얻어 더욱더 만화 영화 제작에 박차를 가했다.

 드디어 1928년, 디즈니는 착하고 귀여운 생쥐를 주인공으로한 만화 영화 <증기선 윌리>를 만들었다.

 <증기선 윌리>는 세계 최초의 '소리가 있는 만화 영화"였다. 그 전까지의 만화 영화는 그림만 보여 줄 뿐 소리가 없는 '무성 만화 영화" 였었다.

 

 소리까지 들렺는 디즈니의 만화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유성(소리가 있는) 만화 영화를 제작하여 디즈니는 한순간에 '할리우드의 신동'으로 떠올랐다.

 

 성공 포인트 3 자기 일에 확신을 가져라    

 1934년.

 회사가 제법 자리를 잡게 되자 디즈니는 마침내 큰 극장용 만화 영화를 만들 결심을 했다.

 디즈니는 직원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극장용 자편 만화 영화를 만들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갑니다. "

 "그러다가 손님이 들지 않으면 우리는 망하고 맙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디즈니의 의견에 반대를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만화 영화는 30분 정도로 만들어 다른 영화와 같이 상영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데 디즈니는 한편의 만화 영화를 80분 정도로 마늘어 단독으로 상영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만화 영화를 만드는 기간도, 제작비도 이전의 3배 이상이 들어가야 가능했다.

 하지만 디즈니는 끝네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디즈니는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백설공주>를 83분짜리 장편 만화 영화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1937년. 무려 100만 달러가 넘는 제작비를 들인 장편 만화 영화 <백설공주>가 탄생.

 이 만화 영화는 직원들의 우려와는 달리 매우 큰 인기를 끌었다. 디즈니는 이 영화로 무려 제작비의 8배가 넘는 돈을 벌었다.

 

 그 이후 그는 마치 마술사처럼 멋지고 환상적인 만화 영화를 무수히 만들어 내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월트 디스니사' 에서 만든 <신델렐라>, <피터 팬>,<잠자는 숲속의 미녀> 같은 만화 영화는 전세계 어린이드에게 꿈과 낭만을 심어 주었으며, 최초의 삼원색 컬러 만화 영화인 <꽃과 나무>로 만화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후로도 그는 만화 영화 덕분에 공로상 등 30여 번의 아카데미 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당시 사회 학자들과 교육자들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폭력성과 잔인함 등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디즈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예술을 한다고 한 적이 없소. 이것은 흥행 사업이며 나는 흥행가일 뿐이니까."
 

 어떻게 들으면 화가 나서 변명한 것 같지만, 디즈니는 자신이 하는 일에 언제나 확신과 주관이 뚜렷했던 사람임을 알 수가 있다.

 

 또한 디즈니는 만화 영화와 캐릭터 사업으로 번 돈으로 1955년에 꿈의 놀이 동산인 '디즈니랜드'를 만들기도 했고, 미술 연구소 설립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그림 솜씨도 뛰어났지만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무한한 상상력으로 '월트 디즈니 왕국'을 건설했고, 환상적인 그의 만화 영화는 세계  모든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 주었다.

 오늘날까지도 감히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만화 영화의 신화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월트 디즈니사'는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인온 킹>, <노틀담의 꼽추> 등 장편 만화 영화를 계속 발표해 그의 뜻을 따르고 있다.

 

◐ 얼마 전에 '월트 디즈니사'에서 우리나라 감독이 만든 만화 영화 엘리멘탈을 극장에 가서  보았다.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은 불, 물, 땅, 공기가 함께 어울려 사는 정령의 도시에서 불같은 성격의 아가씨와 무사태평한 남자가 두 사람이 사실은 닮았다는 근본적인 사실을 깨닫는 이야기를 그린다. 2015년 작 애니메이션 '굿 다이노'를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피터 손 감독이 연출을 맡아 화제가 됐다.

 만화영화였지만 감동적이었고 그림과 내용이 긴장감 넘쳐서 조금치의 한눈팔이도 허용하지 않았다.

 정말 잘 만든 만화영화였다.

 

 그 옛날 미키마우스부터 우리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함께 보았던 그 수많은 만화 영화들.

 쿵푸팬더는 여러번 보았으며 겨울 왕국은 몇년 동안이나 노래와 의상이 아이들에게 유행했다.

 

  학교 다닐 때 어린이  신문인가? 잡지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디즈니가 초창기 어려울 때 창고같은 곳에서 살았는데 그곳에서 왔다갔다하는 쥐들을 보고 미키마우스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디즈니랜드를 만들었던 과정은 불가능할 정도였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거절하는 은행들을 수십번씩 찾아가서 마침내는 대출을 받아  디즈니를 완성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는 어떻게하면 많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연구한 것 같다.

 디즈니랜드도 그렇게 완성하지 않았을까?

 

 세상에 부자가 많지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부자는 많지 않다.

 월트 디즈니는 이 세상에 없지만 아직도 그가 만든 '디즈니사'는 세상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쉽기만 했을까?

 쉽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쉽게 쓰고 사용하는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그 옛날에 만화 영화 만들기가 쉬웠을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감동을 받고 쉽게 볼 수 있는 만화 영화를 시작한 월트 디즈니.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결국 오래 오래 살아남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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