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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 of Jinnssam

by 영숙이 2022.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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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 of Jinnssam>


1. 삼호 막창집.


아버지가 촌스럽게 교감 선생님에게 돈봉투를 주셨다.

셈 첫한달 월급을 8만 6000원 받았으니까 아버지가 주고 가신 20만 원은 무척 큰돈이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아버지 노릇을 하셨다.

이후락 재단이어서 재단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렇게 인사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교감 선생님은 난감하셨는지 교련과 회식하라고 10만원을 교련과 부장에게 주셨고 나머지는 학교 친목계에 주셨다.

교련과 교사가 3명 뿐이니까 교련과 부장은 체육과도 같이 가자고 하였다.

"삼호에 있는 막창 집에 갑시다."
"택시 타고 갑시다."

잘 구운 막창은 정말 맛있었다.

어렵기만 한 남선생님
이 4분이셨지만 그래도 맛있는 건 맛있는 것.
맛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계산을 해야 하는데 아버지가 봉투를 주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진쎔은 어떻게 해야 하나 안절 ~ 부절 ~ .

아버지가 주었는지도 몰랐고, 그냥 이렇게 얻어먹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였다.

부장 선생님은 괜찮다고 마음 편히 먹으라고 했지만 진쌤의 안절부절은 어쩔 수 없었다.

음식 값이 거의 6만 원 가까이 나왔다.

부장 선생님이 계산하셨고 진쌤이 어쩔 줄 몰라하니까 아버지가 교감 선생님에게 봉투를 주고 가신 이야기를 하였다.

"교감 선생님이 교련과 회식하라고 주셨어요."

아버지는 한 달 후 대전 갔을 때 이야기하셨다.


2. 얕보이지 마세요.

4월 말.

교무실 바로 앞 화단 목련 꽃나무에 꽃잎이 피었다.

자색 목련 나무.

목련 나무가 꽃잎을 피워 올리면
이젠 봄이 왔다고
겨울이 지나갔다고
종을 울리는 것이다.

이제 이론 수업이 끝나고 운동장에서 제식 훈련을 시작해야 했다.

백바지에 흰 샤쓰.
하얀 모자와 하얀 장갑.

40대의 상과 영태 선생님이 교무실 앞 비탈길에 있던 벤치에 앉아 있는데 옆에 앉더니 이렇게 말해 주었다.

"애들한테 얕보이면 안 돼요."
"한번 얕보이면 앞으로 계속 힘들어져요."
"어떻게 해야 얕보이지 않는대요?"
"애들한테 무섭게 해야 해요."
"그래야 얕보이지 않아요."
"한 번만 무섭게 하면 애들이 함부로 하지 않아요."

1학년 5반 아이들은 이제 막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아직 서로들 익숙해
지지 않았고 어색했
지만 착했고 좋은 아이들이었다.

험 잡을 일이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을 잡으려면 뭔가 트집을 잡아야 했다.

23살.

아이들이 한번 얕잡아 보기 시작하면 감당 못할 것이다.

교무 회의를 마치고 교실로 아침 조례를 하러 교무실 앞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거기에서 1학년 5반 교실이 들여다 보였다.

교실을 들여다보니 몇몇 아이들이 자습시간인데 아이들 사이에 서 있다가 담임 선생님이 오는 걸 보고 재빨리 자리로 돌아가서 앉고 있었다.

작은 막대기를 들고 가면서 진쎔은 그 아이들을 눈여겨보았다.

"아까 애들 사이를 돌아다니던 애들 다 나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앞으로 나오라고."
"아까 내려오면서 다 봤거든."
"빨리 안 나오면 반 전체 맞을 줄 알아."
"누가 자습 시간에 돌아다니라고 했어?"

주로 뒤쪽에 아이들이 앞쪽에서 다른 아이들이랑 이야기하면서 놀고 있었는데 순진한 아이들이 다 앞으로 나왔다.

나온 아이들에게 손바닥을 내밀라고 해서 2대씩 힘껏 때려 주었다.

그 다음부터 아이들은 자습시간에 절대로 돌아다니지 않았고, 진쌤 말 한마디에 칼같이 움직여 주었다.

지금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

어떻게 애들을 때려서 샘과 제자로 친해질 수 있을까.

참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런 훈수를 둔 영태 선생님 ㅠㅠ ~

혹시 그게 아이들을 빨리 잡을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되면 아이들과 소통하는 거는 물 건너간건데 ~

어쨌든 그 덕분이었는
지 1년 동안 반에서 애들 때릴 일은 생기지 않았었다.

부끄럽지만 진쌤은 그렇게 시작하였다.


3. 웃으면 3대.

운동장 수업을 하는데 무조건 모이면 운동장을 3바퀴 뛰고 수업을 시작하였다.

진쎔은 23살.

운동장 한 반에 3바퀴씩을 돌면 4시간이면 12바퀴.

그 정도는 충분히 뛸 수 있는 나이였다.

아이들과 함께 뛰는 게 좋았다.

호각을 불면서.

뛰고 나면 체조를 하고
줄을 세웠다.

차렷 ~ 열중 쉬어 ~ 우향우 ~ 좌향좌 ~
뒤로 돌아 ~

제식 훈련을 하였다.

커다란 당구대 막대기를 들고 조례대 위해 당당하게 딱 버티고 서서 수업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웃으면 3대.
움직이면 3대.
장난치면 3대.

그래도 여고생들은 웃고 싶다.

그러다 걸리면 엎드려 뻗쳐를 시키고 몽둥이로 궁둥이를 한 대씩 때렸다.

한번 때리고 나니까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고서 아무도 웃는 아이는 없었다.

또 다른 반에 소문이 나서 조회대 위에 서서 한 번만 소리 질러도 제대로 움직여 주었다.

그렇지만 그건 정말 가장 안 좋은 수업 방법 중에 하나였다.

41년 전이니까 가능한 이야기.

1979년
23살때 진쎔의 이야기.

아이들 사이에는 씩씩한 영숙이가 여군 장교 출신이라는 소문이 났다.

한번 그렇게 시작하니
까 운동장 뛰는 것도 재미있었고,
체조하는 것도 재미있
었고,
제식 훈련하느라 소리 지르는 것도 재미 있었
다.

그때 여고 1학년이었
던 학생들이 지금은 50대 후반이 되었다.

58살 된 울산 여상 제자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진쌤 용서해줘요.

어느 골목을 지나가다
가 마주치면 아는 척을 안 한다.

진쎔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제자들도 많다.

그래도 지나가면서 킥킥 웃으며 힐끔 거리는 것보다는 아는 척을하면 하면 좋을 텐데...

남편들하고 같이 갈 때는 보통 남편들이 힐끔 거린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편 23 : 6) -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내 삶은 변하지 않는다. 나의 시야. 관점. 가치관. 생각을 변화 시킬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시다.>


💢 1.진영숙샘~Jinnssam

옥천 여중 2학년.

Jinnssam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그저 만화책이 너무 재미 있어서 모든 것 재쳐 놓고 만화책에 빠져 사는 아이였다.

시골에서는 만화책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만화책 대신 교과서를 또는 책을 머리 속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읽으니까 만화책처럼 재미가 있었다.

중학교 때에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박계영씨의 로맨틱 소설을 시도 때도 없이 읽어댔다.

수업시간에 읽다가 걸려서 책을 빼앗긴적도 있다.

공부 대신에 센데이 서울이나 야시꾸리한 책에 빠져 살았다.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인 산림조합의
가마니를 보관하는 창고나 방과후에는 교실에서 책을 읽었다.

빈 교실에서 교실이 캄캄해지도록 소설 책을 읽는게 너무 행복 했다.

어느 날 수학 샘이 수업시간에 지나가는 여담으로 말했다.

'앞으로 자기가 되고 싶은게 있으면 잠자기 전에 생각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자기 암시.

그때는 그게 자기 암시인줄도 모르고 샘이 그렇게 말하니까 잠자기 전에 앞으로 되고 싶은 모습을 상상했다.

"나는 훌륭한 작가이다."
"나는 훌륭한 선생님이다."
"나는 건강하다."

자기 전에 그렇게 자기 암시를 시작했다.

Jinnssam.
ㅎㅎㅎ
드뎌 Jinnssam이 되었다.

여름 방학이 되어서 오랫만에 외갓집에 동생들과 가는 길이었다.

옥천가는 버스를 타고 버스 손잡이에 메달려 가면서 고등학생이었던 둘째 남동생에게 떠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ㅎㅎㅎ."
"내가 샘이 되었어."
"내가 진짜 샘이 되었네."

학교에서는 막내 샘이었지만 아무도 아는 이없는 사람들이 좌석을 꽉 채우고 있는 버스.

만만한 버스에서 조금 큰 목소리로 이렇게 떠들었었다.

"내가 드뎌 샘이야."
"내가 샘이 됐단 말이지."
"내가 샘이야."

여름방학이 되어
Jinnssam이 나온 옥천 여중이 있는 옥천 시내에서 그렇게 떠들어대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러울 따름.

얼마나 잘난척하고 뻐기고 싶었으면 ~

부끄럽지만 이게 인간의 본성이다.

스스로가 뿌듯하고 기뻐서
스스로가 대견하여서.

학교에서는 여전히 신입교사였고 Jinnssam이 사는 도시 울산에서는 이제 막 외지에서 들어온 햇병아리였지만.

2. 도시에서의 숙소

처음 입고간 분홍빛 모직 투피스는 Jinnssam을 어른처럼 보이게 했다.

어른처럼 보이게 했지만 어른은 아니었다.

아이의 몸에다 어른의 의상을 걸친 것 뿐이었다.

옷 속에 있는 아이는 여리고 보들 ~ 보들 ~

바람에 쉽게 흔들리고 위태 ~ 위태 ~

의상으로 가리니까 조금은 근사해 보였었다.

늘 분홍색 모직 투피스를 입고 다닐 수는 없었다.

초록색 원피스도 입었는데 난로에 그을려서 원피스 하단을 잘랐더니 너무 짤막해져서 입고 다닐 수가 없었다.

빨간색 실크천으로 된 브라우스와 치마를 사서 입었다.

숙소는 처음에는 선배인 문선생님 집에서 같이 지냈다.

이런 저런 일로 숙소를 구하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때 생각했다.

"내 월급이 8만 6천원인데 방값이 4만원이네"
"나중에 돈 모으면 방장사를 해야겠네."

울산에 공장이 들어
서면서 확장되던 시기라 방구하기가 하늘에 별이었다.

선배인 문선생님 집에서 있었던 일과 숙소때문에 있었던 일을 어딘가에 적어 놓은게 있다.

찾아서 여기에 덧붙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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