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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또순이 어렸을 적에

또순이 어렸을 적에 111

by 영혼의 닻을 찾아서 2020.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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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경제적 독립 >>

 

210. 이사와 뽈 꼬매는 일.

 

  또순이가 보기에 엄마는 평생을 아버지와 힘을 합하여 사신 게 아니고 아버지 그늘에서 사셨다고 생각된다.

  아버지는 이기적인 성품에 가족을 배려할 줄 모르시는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한테 엄마가 처음 반항한 게 이사였다.

 

  대전에 집을 사놓고도 옥천에서 많은 아이들을 끌고 월세살이를 하셨던 엄마는 또순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을 계기로 대전 집으로 이사를 하셨다.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혼내기 위해 2달 동안 생활비를 주지 않았었고 그 때문에 엄마는 참기름을 짜서 팔아 보았지만 아는 이 한명 없는 대전에서 큰이모한테만 2~3병 팔았을 뿐이고 그런 일이 가정경제에 도움은 안되었었다.

 

  아버지가 주말마다 집에 오시고 춤을 추러 다니는 엄마를 집안 살림만 하도록 주저앉힌 후에 아래층에 혼자 사시던 여사님이 이사를 나가셨다.

  엄마 말대로 하면 아버지가 찝적 대던 여사님이 이사를 하신 후(아버지는 연세가 드신 후에도 어디 가면 여자들한테 말을 잘 걸었다. 온 가족이 다 같이 일본 여행 갈 때에도 배를 타고 가면서 옆 호실에 아주머니한테 가서 계속 말을 걸었는데 그것도 재능이라면 대단한 재능이 아닐까?) 엄마는 아래층으로 이사를 하셨다. 

 

  아래층으로 이사를 하고 난 후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면 엄마가 불도 켜지 않은 컴컴한 큰방에 길게 누워 계셨다.

 

   "엄마 자?"

   "아니"

   "그럼 뭐 해?" 

   "기와집 짓는다."     

   "누워서 어떻게 지와집을 지어?"

   "머리 속으로 짓지."   

 

   30대 중반의 엄마는 아직 젊었지만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하셨던 것 같다. 

  특별히 주변에 어울리는 친구도 없었고 같이 춤추러 다니던 아주머니랑은 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엄마가 어느날 부터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을 시작했다.

 

  '축구공 꿰매는 일'

 

  축구공은 아주 단단한 가죽이었는데 그 가죽에 뚫린 구멍대로 기름 먹인 실을 바늘에 껴서 꿰매는 일이었다.

  두꺼운 골무를 끼고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공을 꿰매면 꿰맨 숫자대로 수고비를 받았는데 얼마 받았는지는 몰랐지만 아주 소소한 수입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두운 큰방 아랫목에 길게 누워 있는 엄마를 보는 것보다는 무엇엔가 열중하는 엄마를 보는 게 더 나았다.

 

  교실에 아이들이 별로 없었던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마 모두들 체육관에 갔을 때 남아 있다가 또순이 앞자리에 앉는 애랑 창문으로 운동장 건너편 나무 그늘 아래에서 뽈을 꼬매는 아주머니들을 보고 있었다.

  날이 더우니까 시원한 운동장 나무 그늘에서 2~3명의 아주머니들이 뽈을 꿰매고 있었다.

 

  "우리 엄마도 뽈 꿰매는데."

  "그래?"

 

  그 애가 또순이 얼굴을 그 커다랗고 표정 없는 얼굴로 돌아다보던 생각이 난다.

  별로 말이 없었던 그아이는 눈이 커다랗고 표정이 없는 약간 창백한 얼굴의 아이였다.

  

  말을 걸거나 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 뒤부터 그 애는 무표정하고 차가운 표정 위에 경멸하는 표정을 덧붙인 얼굴로 또순이를 쳐다보았다.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원래 그런 차가운 무표정을 짓는 아이인 줄은 모르겠는데 또순이가 왜 그러냐고 말 걸면서 친해지고 싶었던 아이가 아니라서 그러려니 하고 한 학년을 보냈다.

 

  졸업하고 딱 한번 그 애를 보았다.

 

  유성 온천에 목욕하러 갔는데 그 애가 탕 안에 있었다.

  그 무표정하고 차가운 표정은 여전하였다.

  어떻게 그렇게 얼굴이 변하지 않을 수 있는지. 

 

  서로 탕 안에서 바라보면서 그 애도 머릿속으로 무수한 생각을 했겠지만 또순이 머릿속에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애와는 그렇게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스쳐갔다.

 

 

211. 하숙

 

  처음에 엄마는 이층에는 세를 주었었다.

  그러다가 하숙을 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하숙으로 스쳐갔다.

 

  여학생, 군인 아저씨, 방위 산업체 다니는 청년들, 일본인 학생, 의대생, 충남대학교 학생들 등등...

  일일이 다 기억할 수 없지만 많은 하숙생들이 스쳐갔다.

 

  엄마로서는 하숙생들을 통하여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어서 정말 즐겁게 하숙생들을 치신 것 같다.

  하숙생들의 밥상에는 언제나 달걀 프라이가 얹혀 있었다.

 

  하루는 또순이가 우리도 달걀 프라이가 먹고 싶다고 우리도 해달라고 했더니 우리한테는 해줄 수가 없다고 해서 또순이가 막말을 했던 거 같다.

 

  '평생 하숙이나 하고 살아'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나쁜 말이었음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엄마가 우리한테 용돈을 더 준다거나 우리가 어떤 경제적 혜택을 입은 거 같지는 않다.

  다만 엄마 수중에 돈이 좀 있다는 것뿐이고 그만큼 아버지는 엄마한테 생활비를 덜 주었을 거 같다.

  아니면 열심히 모아서 아버지한테 드렸던지.

 

  엄마의 경제적 자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돈이 생겨도 그것을 이용하여 재테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름의 재테크를 한 거라면 부엌 옆 쪽으로 있었던 땅에 처음에는 각종 단지들을 올려놓고 파를 심어 먹는 정도로 사용하였었다. 

  그 땅에 방을 들여서 세를 놓을 요량을 한 것이다.

 

  거의 다 완성되었을 때 갑자기 시청에서 사람이 나와서 그 건물 지붕에 올라가서 작은 바위만 한 망치로 쿵쿵 때려 부수는 것이었다.

  하교해서 그 모습을 보게 된 또순이는 너무나 깜짝 놀랐다.

  무허가 건물이라는 것이다.

  뒷집 시청 다니는 아주머니가 고발해서 시청에서 나와서 그렇게 철거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광경이 선명하다.

 

  대문을 들어서는데 두 사람의 남자가 한 사람은 커다란 망치를 들고 한남자는 그 옆에 서서 바라보고 새 건물 옥상 평평한 슬래브 지붕에서 시멘트 바닥을 쿵쿵 내려치고 있었다. 

 

  "왜 그래요? 왜 부셔요?"   

 

 

 또순이는 가방을 거실에 내려 놓으면서 소리 소리 질렀다.

 근처에 있던 엄마가 말렸다.

 

 "조용히 있어. 가만히 있어."   

 

 또순이는 창백해진 얼굴로 소리 지르던걸 멈추고 엄마를 바라 보았다..

 철근 콘크리트가 깨어지고 건물 지붕에 철근이 드러났다.

 

 아들이 충남대 병원 의사라고 자부심이 대단했던 뒷집 아주머니는 뒷집 담 앞에 붙어 서서 그 광경을 안경 낀 눈으로 내려다보면서 웃고 있었다. 

 

  다 지을 때까지 기다렸는지 이제 다 지어져서 셋집으로 내 놓으려 하니까 무허가 건물이라고 신고가 들어 왔다면서 와서 깨부수고 간 것이다..

 

  결국 아버지가 설계도를 내서 시청에서 허가를 받아 그 건물을 완성했고 세를 주었다.

 

 

212. 엄마의 재테크

 

  재테크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돈이 생기면 은행에 갔다 넣었고 그러면 이자가 나와서 돈이 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돈을 버는 시절도 아니었고 번다고 해도 재테크를 해서 목돈을 모을 정도로 벌지는 않았었다.

 

  대전 집은 아버지가 대출을 안고 산 집이어서 엄마는 그 대출을 33년 동안 마지막 회차까지 다 갚았다.

  엄마는 그걸 자랑으로 삼았다.

  한 번도 날자까지도 틀리지 않고 다 갚았다고 했다.

 

  어느 날 엄마랑 또순이는 은행에 갔는데 초록색 헝겊 가방에서 통장을 꺼내 들면서 이제 2번만 넣으면 다 넣는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어찌됐던 엄마가 돈을 벌지 않았을 때나 수입이 생겼을 때나 엄마는 항상 돈이 없었다.

 

  처음 또순이는 월급을 타면 엄마한테 다 가져다 주었다.

 

  어느 날 대학 동기를 만났는데 또순이한테 자기가 돈을 얼마 모았는지 자랑을 했다.

  집에 주지 않고 본인이 모으는 것도 충격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또순이가 가져다주는 돈을 생활비로 쓰면서 표시 없이 사라지는데 스스로 돈을 관리하겠다고 엄마한테 말했다.

 

  스스로 돈을 관리하면서 목돈을 제법 모았을 때 학교에 요구르트를 배달해 주는 아주머니가 학교 바로 뒤에 자기 소유의 아파트가 있는데 팔고 싶다고 했다.

  잘 안 팔린다고 빨리 팔렸으면 좋겠다 하는 소리를 듣고 또순이가 산다고 하였다.

   

  아주머니한테 아파트를 사서 방이 3칸이니까 한 칸은 또순이가 쓰고 다른 방 2개는 세를 놓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셋방 놓기가 수월치 않다. 

  작은 방 하나를 세를 놓았더니 4만원이 매달 들어왔다.

  그때 월급이 20만원 안팎이었으니 4만원은 작은 돈이 아니었다. .

 

  한 번은 학교 기간제 선생님 가족이 방을 구한다고 해서 전세로 놓았는데 그 선생님이 한번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일주일 내내 마시면서 결근하고 술 취한 체 학교로 와서는 영숙이네 집에 세 산다고 떠들어대는 고주망태였다.

 너무 부끄러워서 그 부인한테 말해서 그 집을 산 값에 그대로 팔았다.

 그때 돈으로 제법 큰돈이었다.

 380만 원인가? 

 40년 전 아파트 한채 값이었으니까 그 돈을 엄마한테 드리면서 아버지한테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주지도 말고 은행에 넣어놓고 이자 받아 쓰라고 이야기했다.

 

  또순이는 다시 한 칸짜리 월세를 얻어서 살았다.

 

  겨울방학 때 집에 가니까 엄마가 밤에 어디를 좀 같이 가자고 하였다.

  어디인가 싶어서 따라갔더니 예전에 보영이네가 이사 가서 살던 그런 고급진 주택가에 가서 고급스럽게 생긴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인터폰에서 뭐라고 대답하는 소리가 났다. .

 

  그리고는 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 엄마는 그 커다란 대문 앞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왜 그러냐니까

 

  "이자 받으러 왔어."

  "엄마 그러지 말고 은행에 넣어두고 이자 받아요. 못 받고 떼이면 더 손해인데 그까짓 이자 몇 푼 받겠다고 이 고생을 하고 추운 데서 남의 집 대문 앞에 이렇게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건 아닌것 같은데."

 

  다음에 오랜만에 집에 갔을 때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돈 어떻게 했어?"

  "아버지 줬다."

  "왜? 아버지한테 줘? 주지 말라고 했잖아."

  "남한테 떼이는 거보다 니 아버지한테 떼이는 게 낫지. 그래도 아버지이잖아."

 

  그때 알았다.

 

  엄마는 재테크가 안 되는 사람이고,

  그냥 돈을 아낄 뿐이고,

  돈이 모이면 어떻게 할 줄 몰라한다는 걸.

 

  우리한테도 돈이 없어 안 준것도 있지만 아끼느라 안준 것도 있었던 것이다.

 

  아끼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지나치게 쓰는 것보다는 좋지만 지나치게 아끼는 건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모아서 결국 자식들에게 주신다고 그러겠지만 그보다는 자식들이 필요할 때 적절하게 쓸 수 있도록 주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적절하게 쓸 줄 아는게 중요하다.

  그런데 적절하게 쓸줄 안다는 게 쉽지 않다.

  지나쳐도 모자라도 안되니까 결국 그런 것도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이전 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를 할 때 학생부를 담당한 목사님이 기도하러 갈 때마다 계속 돈이 필요하다고 기도하는 것을 뒷자리에서 기도하면서 들었고 또 교사 모임에서도 왜 돈이 필요한지 이야기 하는걸 들었다.

 

  "아버님이 수술하시는데 돈이 필요해서 계속 기도하고 있는 중인데 같이 기도해 주셔요."

 

  그때 기도 했었다.

 

  "주님. 목사님을 도와줘야 하나요?"

  "남을 도와줄 때에는 깊이 생각하고 도와 줘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도와주지 말라는 이야기 인듯 해서 기다렸더니 어떤 학생부 교사 한분이 목사님에게 돈 봉투 건네는 것을 교회 계단에서 보게 하셨다.

 

  하나님한테 기도해서 받으면 되는데 인간적으로 도와주면 끝없이 나오는 줄 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도와 주는데 돈을 주는 것보다는 본인이 기도해서 하나님께 받는게 최고이다.

  결국 전도해야 하는데 전도해서 본인이 기도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걸 받게 하기까지 ~

 

  쉽지 않으니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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