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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가장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
감림산 기도원에
가려고 마음 먹은 날 일어나니까 골반 바로위 허리가 아파서 운신이 안될 지경이었다.
살벌하게 불안과 공포감을 주거나 말거나 기도원에 가서 은혜를 받고는 공포감과 불안감은 사라졌다
은혜를 유지하기 위해서 최소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감림산 기도원을 오르기로 하였다
물론 가는 길이 멀다
가는 길도 버스를 타야해서 쉽지 않다
쉽지는 않지만 가면서 기도하거나 찬송이나 복음송을 듣는 시간이 되어서 좋다
물론 집에서도 설교를 듣고 기도도 하고 찬양도 듣는다
아무래도 집중이 덜되는 건 사실이다
기도원에 가려고 마음 먹는 시간부터 가는 길, 오는 길, 예배시간들이 좋다.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최근에는 별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티스토리에 제목만 쓰고 제대로 쓰지 못했다.
아무튼 허리가 둘러빠지듯이 꼼짝 못할정도로 아팠지만 그냥 시간맞춰 일어나서 버스를 타러갔다.
아파서 ~ 천천히 ~ 삐딱하게 ~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나이가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감림산 기도원에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이 가팔라서 땀범벅 ~
오랫만에 허덕거리는 것도 좋으다.
누구는 돈내고 허덕이고
누구는 돈버느라고 허덕이고
누구는 ......
예배드리고 점심먹고 내려오는 길이다.
모든 장면에 시선의 부딪힘이 있다.
살아있다는 증거? ㅎ ~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도망치는 것은 비겁하지만 도움이 돼"
내용은 젊은 사람들이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지만 그중에 가장 핵심적인 문장이 "도망치는 것은 비겁하지만 도움이 돼."
이다.
왜 도망치느냐고?
"살아남기 위하여."
ㅋ ~
어쨌건 살아남는 것은 중요하다.
살아 있음의 증거는 시선의 부딪힘이다.
내려오면서 오래전에 자주 불렀던 찬양이 떠올랐다.
"너는 담장 너머로 뻗은 나무. 가지에 푸른 ~ "
'그래. 오늘 티스토리 제목은 이거야.'
내려와서 신평터미널에서 글을 쓸수 있는 찻집을 찾았다.
기도원에서 쓰고 내려와도 되지만 너무 늦을까봐서 일단 내려와서 울산으로 바로 갈 수 있는 터미널 근처에서 찾은 것이다.
오곡라떼를 시키고 좋아하는 에그타르트를 한개 시키고 화장실에 갔다.
버릇처럼 메세지를 확인하니 치과 예약이 한시간 후였다.
바로 버스를 타야 갈 수가 있다.
카페 사장님께 테이크 아웃으로 해달라해서 터미널로 뛰었다.
버스가 20분 후 출발.
어짜피 예약시간을 못맞출것 같다.
공업탑에서 환승하고 치과에 갔더니 이미 늦었지만 다행이 손님이 없어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치아 체크를 하였다.
"이상 없네요. 관리를 잘하고 계시네요. 6개월 후에 오시고 그때 치석제거를 하면 될 것 같아요."
요즘 힘들어도 저녁마다 꼬오옥 이를 닦는게 효과가 있나부다.
아무튼 아파서 치과 가는 것보다는 예방이 쵝오여 ~
디즈니에서 무빙이라는 영화가 인기가 있었다는 이야기에 들어가보는 중.
메세지를 확인하니 똘이한테 와 있었다.
마음, 감정, 의지가 힘든 가부다.
답을 보냈다.
"불안해하지마 ~넌 하나님의 사람이야 하나님이 힘께 하시니 두려워마 ♡♡♡. "
"하나님이 너를 복의 근원이요축복의 수단으로 쓰실 계획이심."
아침에 일어나니 티스토리에 제목만 적어 놓고 쓰지 않은 제목이 생각났다.
"너의 가장 좋은 날은 아직 않았다."
그 내용을 어떻게 쓸까하고 고민 중이었는데 갑자기 생각났다.
똘이한테 이야기 하듯 쓰면 될 듯.
jinnssam은 똘이의 많은 부분을 기억하고 있다.
가족이니까.
바로 밑의 동생이니까.
아주 어렸을 때 영동에 살 때 똘이가 까맣고 배가 뽈록해서 집 마루 밑에 뜰팡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것이 생각난다.
배만 유난히 뽈록했던게 기억이 난다.
영동에 있는 강가에 갔을 때 동네 아이들이 모여 있었는데 이렇게 말했었다.
'니 동생 빠졌었어. 우리가 건졌어. 큰일날뻔했어.'
집에 와서 엄마한테 일어 주었었다.
그후 외갓집에서도 같이 살았다는데 기억이 잘 없다.
군서면 상지리로 처음 이사 갔을 때 강가에 갑자기 뛰어 들었다가 똘이랑 jinnssam이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 동네 애들이 손에 손을 이어 잡고 손을 잡아 주어서 강가로 나와서 캑캑거리던 기억
옥천 여중 다닐 때 30리 길을 걸어가는데 중간까지 자전거를 타고 마중 오던 똘이.
옥천에서는 점심 때마다 처음에는 jinnssam이 그리고 똘이가 시장으로 아버지가 먹을 싱싱한 고추를 사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똘이는 사춘기 멋쟁이 였었다.
몸을 단련시킨다고 체육관에 다니고 쫙붙는 남방에 청바지를 입고 다닌 기억이 난다.
해군사관학교 입학 ~ 엄마의 소원을 이루어 주었지.
주일학교 학생회장할 때 사귀었던 최성복이랑 연애를 했지만 그애는 다른데로 시집갔어.
그리고 졸업할 때 쯤 지금의 올케를 만나서 쫓아다녀 결혼했지.
jinnssam보다 먼저.
올케는 너무 이쁘고 조신하고 여자여자한 여자여서 jinnssam이 질투가 날 정도였는데, 거기에다가 아주 지혜로워서 길가에 꽃 이름을 똘이가 모르니까 비웃는게 아니고 아주 잘 가르켜 주는거 보고 충격을 받았었지.
결혼 후에는 신경 쓰는 jinnssam에게 편지를 주고 받던 우리 사이였는데 올케가 일침을 가했어.
'형님 우리 이제 결혼해서 한 가정을 이루었으니 간섭은 사절입니다.'
충격받았지.
내가 간섭을 하고 있었구나.
세월이 빠르게 흘러서 아이들이
젊은 시절의 우리가 되어 있었어.
그 사이에?
근 20여년 객지로 떠돌았던 똘이는 외로움과 혼자라서 사실에 지쳐갔을까?
누구든지 혼자라고 생각하면 지쳐갈 수 밖에 없을거야.
도망하지도 못하고 앞으로만 가야 한다면 ~
끊임없는 책임의 울타리에 갖혀 있다면 ~
언제인가?
막내 여동생의 막내 돌잔치인가?
진해에서 온다고 할 때 였다.
열심히 예수 믿고 전심으로 기도할 때 였었다.
'하나님. 동생 똘이를 복의 근원이요. 축복의 수단으로 삼아 주세요.'
하나님의 응답이 어떻게 이루어 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100세에 아브라함이 이삭이 낳을 것이라고 누군들 생각했을까?
형제들한테 애굽에 종으로 팔렸던 요셉이 총리가 될줄을 누군들 알았을까?
왕자였던 모세가 광야를 40년동안 헤매다가 민족을 구원하는 모세5경의 주인공이 될줄을 어떻게 알았을까?
지금 똘이는 누구한테든 다 버림을 받은 느낌일 것이다.
올케랑 이혼하는 똘이 ~
아이들도 다 커서 ~.
그렇지만 이것이 축복의 통로로 가는 시작인줄은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복의 근원이 되는 길인줄은 알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은
"우리의 가장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는 것이다.
가장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힘.
모두들에게 버려졌다고 생각 될때에 그때가 시작인지도 모른다.
올케가 이혼하고 싶다고 ~
올케가 이혼 변호사를 샀다고 ~
이혼 판정을 받았다고 ~
왜 그러는지는 주변사람들은 정확히 알수 없다.
모든 일에는 이유와 결과가 따르니까. ~
"우리의 가장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시작이 아닐까?
올케 부디 원하는데로 이혼했으니 잘 살아요.
아이들하고도 잘 지내고 아이들도 잘 살기를 바랍ㄴ다.
부디 행복하셔요.
"우리의 가장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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