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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농협통장
또순이 엄마가 한 다발의 돈을 장롱 밑바닥에 넣는 것을 보았다.
“ 돈이 왜 이렇게 많아? ”
“ 계 돈 탄 거야! ”
“ 실과 책에 보니까 은행에 저금하면 이자도 나온다는데? ”
“ 은행에? ”
“ 응! ”
“ 어디 그럼 은행에 가서 저금 해봐! ”
“ 못 할 줄 알 구 ? ”
“ 큰 소리 뻥뻥 치네! 은행에 가지도 못 할 거면서! ”
“ 왜 못가? 가면 되지! ”
엄마한테 큰소리 치고 나왔지만 막상 은행에 가려니 막막했다.
사거리 근처에 있는 것을 보았지만 한 번도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어쨌거나 그날은 은행에 가서 저금을 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지금과 똑같은 농협간판을 올려다보면서 출입문을 밀었다.
‘ 으 왜 이리 출입문도 간판도 높아? - 아득하게 보여! ’
안에는 제법 사람들이 있었고
또순이는 이리 저리 두리번 거리다 창구 앞에 서있는 남자 직원 앞으로 갔다.
시험 공부하느라고 읽어본 실과 교과서에는
은행에 저금을 하면
은행에서는 그 돈을 보관했다가 이자를 붙여서 내준다고 하였지만
은행에 가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써 있지 않았다.
‘ 첨 은행에 와봤으니 뭘 알아야지 물어 보던지 말 던지 하지! ’
‘ 창구는 또 왜 이리 높아? ’
그 남자 직원은 키가 크고 안경까지 끼고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근사한 남자였지만
또순이 키는 창구에 가려 눈에 띌 것 같지 않았다.
‘ 또순이한테 말 걸어 주겠지! ’
생각하면서 그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일어서서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통장과 돈을 받아 처리해주고 있었고
저 사람이 일 마치면 또순이에게도 말 걸어 주겠지 하면서
그 남자 직원 얼굴을 보고 또 바라보았다.
여러 사람이 오고 가고,
오고 가던 그 사람들이 일 마치면 직원이 말을 걸어 주겠지 하면서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말 걸면 되는데
하염없이 말 걸어 줄때까지 뚫어지게 얼굴을 바라보며
기다림 ㅡ.
몇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도 있었지만
내 또래의 애들 두 명이 와서 그 남자 직원과 친한 듯이
“ 오늘은 뭐 하러 왔어? ”
“ 돈 찾으러 왔어요! ”
“ 그래? 얼마나 찾으려고? ”
직원이 돈과 통장을 줄때 까지
둘은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직원과 뽐내듯이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는다.
‘ 저 사람하고 엄청 친한가봐! ’
‘ 왜 나한테는 말 걸어 주지 않지? ’
‘ 쟤들 얼굴은 하얗고 나는 까무잡잡하게 촌스러워서 인가? ’
‘ 쟤들은 옷을 깨끗이 입어서 그런가? 나는 촌스러운 싸구려 옷을 입고 있어서? 아무튼 단골 인가봐! 직원이랑 친하잖아! ’
“ 저금하러 왔어요! ”
그 말 한마디면 되는데 먼저 말 걸면 안 되는 줄 알고
정확히 말 걸줄 몰라서 직원이 일 끝나는 순서를 기다리느라 ㅡ
생전 처음 은행에 처음 가본 중학교 2학년 여학생에게
그 말 한마디가 너무 어려워서
계속 직원얼굴만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가끔 손님들 얼굴을 바라보면서 ...
‘ 언젠가는 나에게도 말을 걸겠지! 지금은 바쁘니까! ’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ㅡ 기다림.
직원이 말 걸기를 기다렸지만
직원의 뒤 맞은편 정면 벽에 붙어 있는 시계의 작은 바늘이 몇 칸을 지나도록 또순이에게 그 키 크고 마르고 안경 낀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직원은
말을 걸지 않았다.
그래도 끈질기게 기다렸다.
그냥 가버릴까도 싶었지만 엄마의 비웃는 얼굴이 보여서 그럴 수가 없었다.
또순이 엄마의 비웃는 말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 잘난 척 저금하고 온다고 하더니 그냥 왔어? ’
그나 저나 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가는지 .
‘ 책에 보면 은행은 4시 30분이면 문을 닫는다는데 벌써 4시가 넘었잖아! ’
또순이보다 작은 애들 2명이 통장을 가지고 와서
직원하고 친하게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돈을 저금하고 간 후
안경 낀 그 키 큰 남자직원이
또순이에게 눈의 초점을 맞추더니
그때 처음 본 것처럼 말을 걸었다.
“ 너 왜 거기 서있니? 무슨 볼일 있어? ”
“ 저 저금하려고 왔어요! ”
“ 뭐? 뭐라고? 잘 안 들려! ”
“ 저금하러 왔어요! ”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쥐어짜듯 두번쯤 말하니까
직원이 그때서야 알아들은 얼굴이다.
“ 돈 가져 왔어? ”
“ 여기 있어요! ”
그 직원 두달치 월급은 충분히 될 듯싶은 뭉치 돈
그동안 손안에 꼭 쥐고 있느라 땀이 촉촉하게 베어든 돈 다발.
그 돈을 집어든 그 안경 낀 남자 직원은 새삼스럽게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시선이 집중된 또순이는 당황해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지만
돈을 헤아리는 직원 얼굴을 보면서 조금은 자랑스러운 기분 마져 들려고 했다.
“ 통장 만들려면 도장이 있어야 하는데! 도장 가져왔어? ”
교과서에는 도장을 가져가야 통장을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 아니요! ”
“ 도장이 있어야 하는데! ”
또순이는 그 키 크고 마르고 안경 쓰고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직원이
내어주는 돈을 받아 들고
욱죄는 상황에서 풀려나듯이,
입에서 ‘휘’ 소리가 나는 기분을 느끼며
돌아서서 농협 출입문을 밀며 최초의 은행 출입을 마감했다.
‘ 은행은 어려운 곳이로구나! ’
또순이 엄마는 다시 돈을 들고 온 걸 보면서 물었다.
“ 은행 갔다 왔어? ”
“ 응! "
“ 그럼 왜 통장 만들어 오지 않았어? ”
“ 도장 가져와야 만들어 준대! ”
“ 너 정말 은행을 가기는 갔었어? ”
“ 정말 갔었어! 아님 지금까지 내가 어디 갔다 왔겠어? 도장 파다 놓으면 내가 담에 가서 통장 만들어 가지고 저금하고 올께! ”
또순이는 당당하게 엄마에게 말했지만
실은 은행은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그 위풍당당함.
그리고 그 앞에 서있는 초라함.
또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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