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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최근 지병 악화

by 영숙이 2021.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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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최근 지병 악화

                                                              출처 : 동아닷컴(21-10-26)

1988년 2월 25일 취임 선서를 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 동아일보 DB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암 수술을 받으면서 건강이 악화됐고, 희소병인 소뇌위축증과 천식 등을 앓으면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왔다.

 

 최근 지병이 악화돼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장 전역식 모습. 오른쪽은 김옥숙 여사. 1981.7.15 동아일보 DB

 

서울올림픽 개막식 당시의 노태우 전 대통령 모습. 1988.9.17 동아일보 DB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난 노 전 대통령은 1988년부터 1993년까지 대한민국 13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직선제가 부활한 뒤 처음 당선된 대통령으로, 88서울올림픽 개최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북방외교의 성과를 냈다.

 1993년 퇴임 후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 반란을 주도했던 내란죄로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복역중 1997년 12월 22일에 특별사면을 받고 복권됐다.

 

 

 

<노태우 유언 “제 과오들에 깊은 용서 바란다”>

                                                                   출처 : 한겨레(2021-10-26)

유족 “장지는 정부와 파주 통일동산 협의중”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7월7일 민족 자존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 선언(7·7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26일 숨진 노태우 전 대통령 유족들이 노씨가 사망하기 전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

 

 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노씨 유족들은 이날 저녁 성명을 내어

 

 “많은 분들의 애도와 조의에 감사드리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평소에 남기신 말씀을 전해드린다”

 

 며 노씨 유언을 공개했다.

 

 이들은 노씨가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

 

 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또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겸허하게 그대로 받아들여, 위대한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고 영광스러웠다”

 

 는 말도 했다고 한다.

 

 이어 유족들은 노씨가

 

 “자신의 생애에 이루지 못한 남북한 평화통일이 다음 세대들에 의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는 당부를 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노씨가 국법에 따라 최대한 검소하게 장례를 치르기 바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장례 절차는 정부와 협의 중이다. 장지는 이런 뜻을 받들어 (대통령) 재임 시 조성한 통일동산이 있는 파주로 모시는 것을 협의 중”

 

 이라고 했다.

 

 

◇다음은 노태우 전 대통령 유족 성명 전문◇

 

 오랫동안 병환에 계시던 사랑하는 저희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께서 10월26일 오후 운명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의 애도와 조의에 감사드리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평소에 남기신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겸허하게 그대로 받아들여, 위대한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고 영광스러웠다”

 

 고 하시며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

 

 고 하셨습니다.

 

 장례는 국법에 따라 최대한 검소하게 해주시길 바라셨고

 

 “자신의 생애에 이루지 못한 남북한 평화통일이 다음 세대들에 의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장례 절차는 정부와 협의 중이며 장지는 이런 뜻을 받들어 재임시에 조성한 통일 동산이 있는 파주로 모시는것을 협의 중입니다.)

 

 

노태우도 10·26에... 42년 전 박정희와 같은 날 떠났다

                                                                                          출처 : 조선일보( 2021.10.26)

사진은 1981년 국군보안사령관 노태우 대장 전역식. /연합뉴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노태우(89) 전 대통령이 2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이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0·26 사건으로 서거한지 42년째 되는 날이다.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오던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삶을 마감했다.

 

 대구 출생인 노 전 대통령은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고, 1956년 육군 제5보병사단 소대장으로 발령받으며 당시 5사단장이던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78년 노 전 대통령은 육군 소장으로 진급한 뒤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발탁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79년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한 10·26 이후 12·12 당시 9사단장으로서 군사 반란에 가담했다.

 

 박 전 대통령 기일인 이날 국민의힘 지도부와 대선 주자들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현충탑과 고인의 묘역을 합동으로 참배했고, 구미시는 박정희대통령 생가 추모관에서

 

 ‘박정희 대통령 42주기 추모제’

 

 를 거행했다.

 

[노태우 별세] 시장 개방·자유화 門 연 대통령…재임기 평균 8.5% 성장    

                   1기 신도시 등으로 주택 200만호 건설 추진. 지하철·공항 등 인프라 구축에 박차

                                                                                                         출처 : 조선비즈( 2021.10.26 )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의 경제 정책은 ‘자유화’와 ‘개방화’가 핵심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8년 12월 5일 외환 및 금리자유화가 시행됐다. 금리자유화란 정부 및 금융당국이 금융기관의 금리에 대한 직접규제를 철폐하고 금리가 시장에서 자금수급 사정에 따라 자유롭게 결정될 수 있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이를 통해 금융시장 개방이 이뤄지면서 1988년 외국계 보험사 합작사 및 현지법인도 허용됐다. 또 ‘자본시장 국제화 계획’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1992년 1월에는 외국인이 한국 주식시장에 직접 투자하는 것을 허용하면서 국내 주식 시장의 개방화에 한몫을 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 경제도 연평균 8.5%라는 고속성장을 누렸다. 특히 1988년의 서울 올림픽 개최는 발전한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1988년 수출은 600억 달러를 돌파했고, 1986년 대한민국은 대외교역 사상 최초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한 뒤, 매년 확대되면서 1989년 한국은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올라섰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 부인 김옥숙 여사와 함께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 /연합뉴스

◇'한국’ 세계에 알린 88서울올림픽... 소련·중국과 ‘국교’

 노 대통령의 경제성과로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는 주요 업적으로 꼽힌다. 노 대통령은 취임 전인 1983년 서울 올림픽 임시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그해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구성됐고,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으로 서울 올림픽 개최를 이끌었다. 1986년에는 아시안게임을 유치시켰고,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서울 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으로 준비와 진행을 지원했다.

 노 대통령은 개회식에 참석해 “서울올림픽 대회를 개최하는 것을 선언합니다.”라며, 올림픽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 북의 핵개발로 빛이 바랬지만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발표,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남북 단일 체육팀 출전 등 남북 대화가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띠었다. 성공리에 끝난 서울올림픽은 우리나라가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경제, 사회, 외교,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파급효과가 있었다.

 서울올림픽의 경제효과는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실제 16일 간 열린 서울올림픽은 270만명의 관중이 들어왔고, 약 3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했다. 고용유발 효과는 34만명에 달했다. 생산유발 효과는 4조7000억원, 부가가치 효과는 1조8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됐다. 1988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1972억 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올림픽 경제효과는 GDP 2% 수준에 달했다. 또 당시 4653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총소득도 올림픽 개최 이듬해 5000달러를 돌파했다.

 서울올림픽은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한국경제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브랜드를 전세계 시장에 홍보하면서 관광, 레저, 전자, 통신 분야의 산업 발전에도 기여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984년 ‘88올림픽의 경제성 평가와 효과분석’ 보고서를 통해 “올림픽 관련사업 추진은 지출이 발생한 부문은 물론 이와 관련된 여러 부문에서 추가수요를 발생시켜 결과적으로 많은 부문 생산이 증가하기 때문에 소득 및 고용이 유발되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노 전 대통령 시절 추진됐던 ‘북방외교’도 빠질 수 없는 정책 중 하나다. 고인이 재임하던 시기는 소련이 붕괴하면서 동구 공산권 사회가 해체되던 격변기였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른바 ‘북방외교’를 천명하고 소련, 중국 등 공산권 국가와 수교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1991년 9월 국제 연합 입성을 이끌어냈다. 그는 7·7 선언 이래의 북방정책을 꾸준히 추진하였고 1990년 6월 샌프란시스코 방문시 보좌진을 파견해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과 연결하여 한소 정상회담과 한러 관계를 다시 복원시켰다. 또 냉전 이후인 1992년에는 한국 전쟁의 적성국이었던 중국과도 국교를 맺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토지공개념 최초 실행자... 1기 신도시 등 도시 인프라 구축

 노 정부는 지난 1990년 재벌기업의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비업무용 토지를 매각하지 않으면 은행대출을 회수하는 ‘5·8 조치’를 발령하기로 했다. 이 대책은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인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 전 지사는 지난 3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동산 투기와 관련해, 강력 규제를 언급하면서 “노태우 정권에서 부동산 안정화를 목표로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을 강제하기도 한 전례를 비춰보건대 최소한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강제조치는 여야 이견 없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또 토지공개념 제도를 처음으로 시행한 것도 노태우 정부 시절이다. 1980년대 후반 들어 3저(저금리, 저물가, 원화 약세) 호황의 여파로 부동산 투기가 광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택지초과소유부담금제 ▲개발이익환수제 ▲토지초과이득세를 골자로 하는 토지공개념을 도입했다. 토지를 일종의 공공재로 본다는 취지였다. 다만 토지공개념은 재산권 침해와 시장기능 왜곡 등을 이유로 헌재로부터 위헌 결정이 내려지면서,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사실상 사장됐다.

  택지초과소유부담금제는 서울시와 광역시에서 가구당 200평 이상 택지소유자에게 주택부속토지는 공시지가의 7%, 나대지는 11%에 해당하는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국민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1999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결정을 받았다. 개발이익환수제는 택지개발사업, 관광단지 조성 등 29개 개발사업을 시행하는 사업자에게 개발이익의 25%에 해당하는 개발부담금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아직 존속하나 기업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이유로 비수도권은 2002년부터, 수도권은 2004년부터 부담금 부과를 중지한 상태다.

 토지초과이득세는 유휴지 등의 소유자에 대해 3년 단위로 전국평균 지가상승률의 150%를 웃도는 지가상승분에 대해 30~50%의 세금을 물리는 제도였다. 땅값이 급등한 지역에 대해서는 1년 단위로 미리 과세한 후 3년 단위로 정기과세시 정산토록 했다. 이 제도도 미실현이득에 대한 과세가 문제가 되어 1994년 7월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아 1998년 12월 폐지됐다.

 수도권 1기 신도시도 노 전 대통령 시절, 성공했던 부동산 정책이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 ‘주택 200만호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엔 3저 호황과 베이비부머들의 결혼이 러시를 이루면서 1988년 한 해에만 서울 집값이 24% 치솟았다. 1기 신도시 개발은 1989년 시작됐다. 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등 5개 도시다. 서울 광화문을 중심으로 반경 20㎞ 안팎의 지역에 5개 주거단지 총 28만2000여 가구를 건설하는 게 목표였다. 당시 서울 전체 주택 수의 20%에 달하는 규모였다.

 1기 신도시는 200만 가구 공급 계획이 발표된 이후 1989년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다. 1995년 고양 일산, 안양 평촌, 군포 산본을 시작으로 1996년 성남 분당, 부천 중동까지 총 5곳이 조성 완료됐다.

 

이순자 여사, 노 前대통령 빈소 조문…5·18 질문엔 침묵(종합)

                                                        출처 : 연합뉴스(2021-10-28)

 눈물 지었던 것으로 전해진 전두환 전 대통령은 모습 안드러내

 아들 전재국씨·경호원 동행…질문 잇따르자 인상 찌푸리기도

조문 마친 이순자 여사

 이 여사는 이날 오후 1시 53분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방문했다. 아들 재국 씨가 이 여사의 손을 잡고 조문에 동행했다.

 노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에 눈물을 지었던 것으로 전해진 전 전 대통령은 빈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건강 문제로 직접 조문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인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와 아들 노재헌 변호사가 이 여사를 직접 맞이했다.

조문하는 이순자 여사

 이 여사는 빈소에 10여 분간 머문 뒤 나오는 길에 오웅진 신부와 마주쳐 악수하고 잠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이 여사는 빈소 밖에서 '5·18 사과 생각이 없는가', '유족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나' 등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경호원 3명에 둘러싸여 곧바로 차량을 탑승해 현장을 빠져나갔다.

 이 여사는 줄곧 무표정이었으며 취재진과 뒤엉키는 상황이 되자 잠시 인상을 찡그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한편 사자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전 전 대통령은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을 진단받고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육사 동기 사이로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로 전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뒤에는 최고통치자와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에 이어 13대 대통령을 지냈다.

 앞서 전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부고를 듣고 "아무 말씀을 하지 않은 채 눈물만 지으셨다고 부인 이순자 여사가 전했다"고 전 전 대통령측 관계자가 지난 26일 밝힌 바 있다.

 

빈소 지킨 딸 노소영…조문 온 최태원과 '조우'

                                                           출처 : 연합뉴스(2021-10-27)

아들 노재헌 귀국…코로나 검사 거쳐 빈소올듯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서 최태원-노소영 '조우'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유족들은 27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빈소가 차려지자, 부인 김옥숙 여사와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등 유족들이 상주석에 자리했다.

 영국 출장 중이던 아들 노재헌 변호사는 이날 오전 귀국했으며,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뒤 음성 확인을 받으면 빈소를 곧바로 찾을 예정이다.

 노 전 대통령의 법적 사위로서 노 관장과 이혼 소송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이날 오전 10시 28분 빈소를 찾았다.

 검은 마스크에 굳은 표정으로 빈소를 들어선 최 회장은 영정 사진 앞에서 5초 정도 목례를 한 뒤 절을 했다.

 상주 자리에 선 노 관장은 이 모습을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최 회장은 이어 노 관장 및 자녀들과 잠시 대화를 나눴고, 유족들은 최 회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조문객 맞이하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최 회장은 빈소를 나와 한편에 마련된 식당에서 노재봉 전 국무총리 등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최 회장은 10여 분 간의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마음이 상당히 아프다"며 "오랫동안 고생하셨는데 이제 아무쪼록 영면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한 기자가 '고인과의 생전 인연'을 묻자 최 회장은 "허허허"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최 회장과 유족 간의 관계를 인지하지 못한 질문에 특별히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조문을 마친 뒤 미국 출장길에 오를 것으로 전해졌다.

 

노태우 前대통령, 임시안치 거쳐 파주 통일동산 안장될듯

                                            출처 : 한경닷컴(2021.10.28)

 노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가장으로 절차가 진행 중이며, 오는 30일 영결식과 안장식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고인의 유해가 화장을 거쳐 임시 안치 절차를 거치게 되면, 묘역 조성 이후 별도로 안장식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 유족들은 고인의 생전 남북 평화통일의 의지가 담긴 파주 통일동산을 장지로 희망해왔다

 고인의 별세 전에도 파주시와 여러 차례 접촉하며 통일동산 부근을 장지로 쓰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시편 90:10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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