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송근아 잘했어

< 송근아 잘했어 > 1 - 이땅의 그루터기

by 영숙이 2020. 4. 10.
728x90
반응형

1. 이 땅의 그루터기

   

   우리는 이 땅의 그루터기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땅은 아니지만 태어나 보니까 이 땅에 살고 있었다.

 

   베이비 붐 세대로 온갖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이제 좀 살만해지고

   편안해 지고

   나름대로 자리 잡고 잘 살고 있다.

 

   잘 살아 보자

   잘 살아 보자

   꿈에서 조차도 잘 살아 보자

   잘 살아 보자.

 

   이제 잘 살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뒤돌아 보니 베이비 붐 세대가 머리가 하얗게 되어 있었다.

   이런 베이비 붐 세대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이 땅의 그루터기가 되는 것이다.

 

   80년대 생들이

   이땅의 그루터기가 된 베이비 붐 세대에게

   접 붙인 바 되어

   베이비 붐 세대보다 더 큰 나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다음 세대들이 용기를 가지고

   태평양과 대서양을 품고 세계로 뻗어 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루터기에 새 순이 싹터서 올라오도록

   물과 영양을 주신다.

   새 시대에 새로운 사명과 비전을 주시는 것이다.

 

   베이비 붐 세대에게 무엇이 있었을까?

   뜨거운 열사의 사막에서

   포탄이 터지는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게 최선이었다.

 

   이제 살아남아서

   잘 살게 되어서

   이 땅의 그루터기가 된 것이다.

 

   80년대 생들도 나름 어렵고 힘들고 한숨이 쉬어지겠지만

   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신 하나님이

   베이비 붐 세대를 그루터기로 삼으셨다면

   분명 80년대 생들을 향한 계획이 있으실 것이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2. 송근이의 중학교 -1

   

   송근이는 순천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양복 일을 하시는 형님 두 분과 미용실을 하시는 누님들은 부산에서 살고 계시고 어머니는 형님과 누님 밥해 주느라 부산에서 같이 살고 계셨다.

   형님들이나 누님은 기술을 배우느라  아직 봉급이라는 게 없고

   차비나 받고 먹을 것을 해결하는 정도여서 모두들 형편이 어려웠다.

 

   제법 크게 사업을 해서 집안을 일으켰던 아버지가

   4년 동안 병원에 누워 계시다 돌아가시고

   넉넉한 집안의 장남으로 패륜아였던 큰 형님은

   술과 도박과 여자에  남은 가산을 탕진하였다.

 

   어머니는 어려서는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결혼해서는 남편에게 의지하고

   나이 들어서는 자식에게 의지하는

   여자 여자 한 전형적인 한국 여성이셨다.

 

   남편한테 그랬듯이

   25살의 큰 형님이 요구하는 것은 무조건 들어주셨다.

   

   큰 형님이 돈 달라고 하면

   둘째 형님이 몇 년 동안 차비를 아껴서 저축한 돈을 어머니 고생한다고 쓰시라고 드리면 

   어머니는 한 푼도 안 쓰고 꼭 쥐고 있다가 돈 필요하다고 보채는 형님에게 주었다.

   큰 형님은 그 돈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도박이니 뭐니 순식간에 다 탕진하였다.

   송근이가 6살 때에 큰 형님이 주머니에 돈을 넣고 다니면서 쓰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평생 하는 일마다 실패하며 제대로 된 직업 없이 사셨던 큰 형님은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지금 큰 형님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어머니는 6남매를 키우느라 고생을 하였고

   다른 형제자매들도 고생길을 걸었지만

   특히 막내였던 송근이는 고생이라는 포탄에 직격탄을 맞았다.

 

   집을 팔아먹은 큰 형님 때문에

   송근이는 순천 중학교 뒤쪽에 작은 사글셋 방을 하나 얻어서 혼자 자취를 하였다.

 

   그 집은 높은 곳에 있어서 같은 반 반장이었던 혁주네 마당이 바로 밑에 내려다 보였다.   

 

  혁주네 아버지는 의사였다.

  송근이가 살고 있는 작은 삯월세 방에서 내려다 보이는 혁주네 마당과 혁주네 집은 꿈의 집이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 붉은 기와를 얹은 집

  기둥은 굵은 소나무 기둥이었고 마당에는 파아란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었다.

 

 

  100평이 넘는 파아란 잔디밭에 농구대가 세워져 있고 

  송근이네 반 반장이었던 혁주가

  그곳에 있는 하얀색 야외 테이블에서 과목마다 바꾸어 가며 집으로 방문하 과외 선생님들과 공부를 하고 있었다.

 

   쌀이 떨어져서 이틀을 굶은 송근이는

   우물에서 물을 퍼올려 입에 대고 마시다가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승혁이에게 승혁이 어머니가 가져다주는

노란 오렌지 주스를 바라보았다.

 

   송근이는 이빨을 사려 물었다.

   너무 꼭 물어서 입술이 아팠다.

   

       " 혁주를 꼭 이겨 보리라! "

 

   좀 있으면 중간고사이다.

   송근이의 목표는 어떻게 해서든지 혁주보다 성적이 좋은 것이다.

 

   혁주는 전교 1등에 반 1등이다.

   혁주를 재낀다는 건 전교 1등 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고픈 배를 움켜 잡고 낮에도 어둑어둑한 방으로 들어가

   동그란 소반에 교과서를 올려놓고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

 

  점심 도시락을 싸갈 수 없었던 송근이는 점심시간만 되면 하릴없이 운동장으로 나가서 한쪽 옆에 있는 수돗가로 가서 수도꼭지를 틀고 허기진 배를 물로 채웠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혁주를 이기고 싶은 마음에 공부 시간에 집중해서 수업을 들었고 집에 와서도 할 수 있는 데까지 공부를 하였다.

  그렇지만 과목마다 과외를 하는 혁주를 이길 수는 없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송근이의 성적은 혁주를 이겨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파아란 잔디밭.

  농구대.

  잔디밭을 걸어와서 사뿐사뿐 걸어와 시간마다 바뀌며 공부를 가르치던 과외 선생님들.

  야외 테이블.

 

  학교 수돗가에 수도꼭지

  봄볕을 바라보면 어지럽던 현기증.

 

  그렇게 이겨보고 싶고

  그렇게 잘하고 싶었던 공부.

  아무리 공부가 하고 싶고

  아무리 혁주를 이기고 싶어 했어도

  먹을 수 없고 잘 수 있는 집이 없다면 할 수가 없다.

 

  결국 중학교 2학년을 다 마치지 못하고

  고픈 배를 해결하기 위해 형과 누나들이 있는 부산으로 갔다.

 

  어머니는 송근이를 데려가

  한해만 쉬고 중학교를 계속 보내려고 했지만

  그때에는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가야 했고 그나마도 형편이 나아지지도 않아서 보낼 수도 없었다.

  부산으로 가면서 고생 시작이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