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City life of JINNSSAM

by 영숙이 2022. 9. 18.
728x90
반응형

<City life of JINNSSAM>

1. Start

이제 스물세살의 수채화는 끝났다.

윤선생님과의 인연은 보건지소를 떠나는 순간.

끝났다.

이야기도 끝났다.

포항성모병원을 한번 찾아가기도 했었지만 오히려 안찾아간것만도 못했다.

보건지소를 떠나서 울산으로 오면서부터 진샘의 도시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City life of JINNSSAM 이라는 제목으로 써나가려 한다.

그동안 써놓았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번엔 주인공 이름이 김영숙이 아니고 JINNSSAM이다.

김영숙이라는 이름을 썼던것은 평범함을 말하기 위해서 였다.

JINNSSAM이라는 이름을 쓴것은 무게감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직업이라는 의미에서
도시의 일원이라는 의미에서.
좀더 세련된 분위기를 주기 위해서.

SSAM이 됐으니까.

ㅎㅎㅎ
teacher가 됐다.
중학교때부터 꿈꾸던 SSAM이 됐다.

책을 쓰면 올릴 저자약력이 준비된 것.

책은 못썼지만.

2.직업의 선택은 우연?


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
무엇부터 시작했을까?

지금까지는 생각이 안 났었다.
왜 울산에 왔는지.
어떻게 생활했는지.

어제 천천히 돌아다니다 보니 생각이 났다.

울산에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일 몇 개의 눈송이들.

햇볕 사이를 누비는 몇 가닥 눈송이 사이 ~
사이 ~
걸어 다니다가 ~

울산에 왔던 23살의
Jinnssam이 떠올랐다.

홀로 선 버드나무 때 있었던 쓸쓸함 대신
먼저 슬픔이 떠올랐다.

그랬다.

슬픔이었다.

드디어 여름 방학이 되어 경아네 집에 놀러 갔더니 경아 아버지가 말했다.

"객지에서 사는 게 힘들다더라."
"친구 딸이 객지에서 선생하고 있었는데
힘들다고 데려 왔다더라."

경아와 연년생이던 순이와도 친구였었다.

"왜 그런 말을 할까 의아해했었지."
"그래도 선생님인걸 자랑스러워했었지."
"잘 몰랐어."
"지금 돌아보니까 슬픔이었어."
"객지에서 힘들게 사는 거 보다는
그건 슬픔이라는 감정이었어."

3. Jinnssam의 시작

대전에서 모교 옆에 있는 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부치러 갔었다.

공중전화기를 보고는 그냥 학교에 전화가 걸고 싶어 졌다.

그렇게 걸었던 한통의 전화가 인생의 흐름을 바꾸었다.

114로 모교 전화를 물어서 학교에 전화를걸었다.

교무부에 교무부장
하고 통화를 했다.

"안녕하셔요?"
"음 누구지?"
"졸업생인데요."
"음 그래? 지금 뭐하지?"
"교련교사자격증 있나?"
"네. 있어요."
"지금 임용 합격해서 임용 발령 기다리고 있어요."
"그럼 학교에 와봐."
"지금 마침 학교 옆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근처에 있어요."
"지금 찾아뵐게요."

바로 학교 교무실로 찾아갔다.
교무부장은 임용 합격 순서지를 가지고 있었다.
영숙이가 8순위인걸 확인하고 영숙이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선배가 고등학교에 근무하는데 선생 한 사람을 보내달라고 해서."
"음. 합격한 게 맞네."
"내가 나중에 연락해 줄게."

학교를 나와서 근무 중인 성모 병원으로 선아를 찾아갔다.

"소문에 의하면 교무부장 선물 좋아한다더라."
"선물 사 가지고 집으로 찾아가 봐."
"선물을 뭐 사지?"
"커피 좋아한다더라."
"도깨비 시장에서 커피 사면 될 거야."

선아가 근무를 마치고 난뒤 둘이서 도깨비 시장으로 커피를 사러 갔다.

그때는 커피가 귀할 때였다.
외제를 살 수 있는 역전시장 근처에 있는 도깨비 시장에서 이리기웃 ~ 저리기웃 ~

인스탄트 커피와 프리마를 한통씩 사서 이쁘게 포장을 했다.

"직업은 우연의 선택"

선아와 이런 말을 주고받을 때였다.

이튿날은 토요일
이었다.

9시가 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학교에서 알아낸 교무부장 집에 전화를 하였다.

보문산 근처에 있는 빌라에 살고 계셔서 선물을 들고 바로 찾아갔다.

차를 한잔 대접하더니 선생님은 내일 아침 학교 근처에 있는 다방에서 10시에 만나 학교에 대한 정보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일요일 아침에 다방에서 만나서 교무 부장 선생님이 울산에 있는 학교 주소를 주셨다.

집에 와서 학교가 있다는 울산을 지도를 꺼내서 찾아보았다.

저 남쪽 끝 부산 옆 울산.

울산 가는 차편을 알아보니 울산 가는 고속버스가 있었다.

다음 날 월요일 새벽.

울산 가는 고속버스를 탈 수 있는 고속 터미널로 가서 첫차 표를 끊고 있었다.

바로 옆에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이셨던 이강일 선생님이 표를 끊고 있었다.

그냥 우연이었을까?

"아 선생님.
안녕하셔요?"
"음. 어디 가는 중인가?"
"네. 울산에 고등학교 교사 자리가 있다고 해서 가는 중이에요."
"음 그래?"

버스를 타고 가면서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총각 선생님이셨던 선생님 반이었을 때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좋아했던 선생님이다.

그때 그 모습 그 느낌 그대로 얼굴만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셨다.

울산에 도착.

분홍색 모직 투피스를 입고 Jinnssam이 되려고 울산 여상을 찾았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객지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6시 30분 첫차를 타고 울산에 9시 30분에 도착.
울산여상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교무실 문을 열었다.
꽤 큰 교무실 문을 열자

"어떻게 오셨어요?"

누군가가 물었다.

"'문영자' 선생님을 만나러 왔어요."

라고 말했다.
교무실 중간쯤에서 '문영자' 선생님이 일어서더니 맞이하러 왔다.

"아, 어떻게 오셨어요?"
"조영재 교수님께서 문영자 샘 만나보라 해서요."
"교련 교사 뽑는다던데요."
"아 교련교사 한 사람 보내 달라고 하긴 했는데, "

문영자 샘은 머뭇머뭇 망설이다가 바로 교장실로 영숙이를 데리고 갔다.

교장 선생님은 별명이 "영국 신사"

교장실에 들어가서 인사를 하니까 교장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것저것 물으셨다.

특히 종교가 무엇인지 물으셨다.

"기독교입니다."

아무 말씀 안 하시고 빙그레 웃으시더니 어디인가로 전화를 했다.

그러더니 이사장한테 인사하러 가자고 하였다.

교장실을 나서면서 문영자 선생님이 말했다.

"이사장이 기독교 싫어하니까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무교"라고 대답하세요.".

그 당시 울산에는 이후락 재단 학교가 많이 있었다.

학성고등학교, 울산남고, 학성여중, 학성중, 언양여상, 울산여상 등 6개 학교.

그때 날고 긴다고 하는 정보부장 이후락 재단이었다.

재단을 총괄하는 재단 이사장이 있었다.

최종 허락은 재단 이사장이 허락이 떨어져야 했다.

재단 이사장 집은 지금 대흥교회 옆에 있는 주택이었다.

재단 이상장 님은 이런 저런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지금 기억나는 거로는

"우리 아들이 의대를 갔는데 전공을 정신과를 했어요."
"내과나 외과를 안 하고 정신과 한다고 아무데서도 안 뽑아 주면 하는게 정신과 아니냐고 했더니 요새는 정신과가 제일 잘 나간다 하네."
"우리 딸이 언양여상 근무했어."
"같은 학교 선생하고 연애하고 결혼한대서 절대 안 된다고 했더니 둘이 몰래 서울로 도망갔어."
"우리 딸이 그 선생을 같은 교회 다니다가 만나서 연애했다는데."
"교회는 젊은 남녀 모아놓고 연애하는 곳이여."
"교회는 다니면 안 돼."
"참 종교가 뭐지?"
"무교입니다."

대답하는데 교장 선생님이 아까와는 다른 대답에 고개를 들고 쳐다보셨다.

이후 이 대답 때문에 힘들 일이 생길 때마다 오랫동안 괴로워했었다.

<베드로에게 닭울기 전에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하셨고
이후 베드로는 닭이 울때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울었다고 했다.

  요한복음(Joh) 13장

 

38. 예수께서 대답(對答)하시되 네가 나를 위(爲)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眞實)로 진실(眞實)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前)에 네가 세번(番) 나를 부인(否認)하리라>


만약 그때

"기독교입니다."

했더라면 그래도 이사장이 합격시켰을까?

아니면 면접에서 떨어졌을까?

떨어졌으면 어땠을까?

계속 청성 보건지소에 근무했을 텐데 그럼 어떤 일이 생겼을까?

윤선생님이 떠나고 어떤 분이 무의촌 의료요원으로 오셨을까?

그 후 공립고등학교 발령 나는데 1년 6개월이 더 걸렸으니까 그럼 3분의 무의촌 의료 선생님이 오셨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분명한 것은 박태자가 영숙이가 보건지소 오기전에 즉 무의촌 이선생님이 떠나기 전에 청성 보건지소를 떠났던 것처럼 영숙이도 윤선생님이 떠나기 전에 보건지소를 떠나기를 간절히 원했고 기회가 왔을 때 떠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때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다는 것은 확실하다.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 곧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몰랐을 때였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기독교라고 알고 있을 때였다.

이사장은 이런 말도 하였다.

"부모의 슬하를 떠나면 힘들 텐데."
"어디에 있던지 부모의 슬하라고 생각합니다."

그 대답을 들은 이사장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였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교장 선생님은 언제부터 근무할 수 있는지 묻으셨다.

"언제부터 근무하실수 있습니까?"
"네. 바로 근무할 수 이습니다."
"그럼 모래부터 근무하시면 되겠네요".

다음 날 청성 보건지소로 출근하였다.

고등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서류를 정리하고 윤선생님이 떠나기 하루 전날 청성 보건지소의 그 작은 사무실을 벗어났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편 23 : 6)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내 삶은 변하지 않는다.

나의 시야. 관점. 가치관. 생각을 변화 시킬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시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