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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천에 오리가 안보여요

영혼의 닻을 찾아서 2022. 10. 2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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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천에 오리가 안보여요>  

늘 다니던 다리 밑에 대장 오리가 보이지 않았다.

더불어 함께 있던 등치가 좀작은 서너마리의 숫컷과 암컷 오리도 없었다.

토종유래인지 어디 유래인지도 모를 비둘기들이 떼로 모여 있었다.

"다 어디로 간거지?"
"터전을 옮겼나?"
"누가 잡아 먹었을
까?"

사람이 아니라도 고양이나 다른 들짐승들이 잡아 먹었을 수도 있다.

조금 옆길로 새면 집에서 토끼나 닭. 강아지들을 어렸을 때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진샘도 집에서 거북이. 조그만 털북숭이 쥐(이름이 생각이 안남.생각나면 수정하겠음) 토끼. 강아지. 앵무새. 닭등을 키웠다.

닭은 학교 앞에 병아리를 사서 키우니까 잘살지를 못했다.

  웅촌상고 근무할
때 서창 장날에 가서 막 병아리를 벗어난 닭을 사왔더니 병아리 사오랬더니 닭을 사왔다고 난리가 났다.

이뻐하지도 않으면서 키우다가 냄새 난다고 아파트 뒷쪽 화단밑에 새장에 넣은채로 두었더니 몇일지난뒤  새장은 그대로인데 닭만 사라졌었다.

한번은 병아리를 초등
학교 앞에서 사서  이번에는 종이박스에 넣고 백열등을 켜서 잘 키웠다.

  하얀 레그혼이었는데 커다란 닭이 새장 속에 갇혀서 눈을 끔벅 거리
는게 너무 안스러웠다.

캔터키 시켜 먹으면 그렇게 맛있는데 잡아 먹을 수도 없고 시골 사시는 집사님에게 보내기로 했다.

새장 속에 갇혀있느라 닭똥에 닭색갈이 보기 싫어서 남의 집에 보내는데 목욕을 시켰다.

  샤워기로 물을 뿌리니까 닭이 난리를 친다.

닭털이 물에 홀딱 젖으니까 앙상한 뼈와 가죽이 드러났다.

정말 볼품이 없었다.
그래서 비맞은 닭꼴이라는 말을 쓰는가 부다.

  샴푸로 닭털을 씻고 드라이로 말리니까 눈부시게 새하얀 털이 휘황하게 닭의 몸을 감쌌다.

"우리 이 닭  보내지 말까?"

보내고 싶지 않을만큼 새하얀 털의 닭을 보니까 계속 키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새장에 갇혀 있는것 보다는 시골에서 다른 닭들 사이에 끼어서 노는게 좋지"
"보내자. 키우기도 힘든데."
"감당하기도 힘든데 욕심내지 말고.".

키우던 닭은 못잡아  먹는다.

탄천 다리 밑에서 오고가는 이들의 사랑을 받던 오리를 어떻게 잡아 먹겠누.

그렇다면 필시 노리고 있던 들짐승 이거나 들고양이 짓일 수도 있다.

아니면 수명을 다한 대왕오리가 가면서 조직이 와해 됐을 수도 있다.

지난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변을 당했을까?

7월 말 그 대단한 폭우에도 끄덕없이 자리를 지키던 녀석이다.

그럼 왜?
어떻게?
무엇때문에?

하릴없이  이리 저리 궁리하다가 편한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더 좋은 곳으로 이사갔지?"
"이사 간곳에서 더 행복하게 살고 있지?"
"어디서든 행복하게 잘살고 있는게 쵝오"
"오리들아. 우리 응원 없어도 잘먹고 잘살아"

그래도 탄천 지류 다리 밑을 지날 때면 커다란 빨간 깃털을 가진 대왕오리인가가 빨간 눈꺼플을 끔벅 끔벅 하던 모양이 생각난다.

호감이 가는 모습도 아니고 비호감도 아니었지만 항상 그곳을 지날때면 보이던 모습.

  그래도 안보이니까 섭섭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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