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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칼럼/해외여행

북부유럽 ~ 코펜하겐

by 영숙이 2022.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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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보리에서(스웨덴에서 덴마크로)>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7시간 버스를 타고 헬싱보리까지 왔습니다.

  스톡홀름으로 5만톤 쿠르즈를 타고 밤새 달려서 오전 동안 스톡홀름을 구경했습니다.

 말 그대로 구경꾼 ~
  관광객입니다.

 

  스웨덴은 복지의 나라. 평화의 나라 등등 수식어가 많습니다.

  12개의 섬으로 되어 있는 아름다운 나라.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일인당 6만 달러의 선진국으로 사는 나라.

  철강석으로 부를 이룬 나라.

 

  100년된 아파트.

  200년 된 왕궁.

  건져낸 배를 복원하는데 17년.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긴 세월에 걸쳐 이룬 모든 것들에서 그들의 자부심을 느낍니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곳곳에 배어있는 그들의 향기에서 그들의 자부심을 읽습니다.

 

  우리의 자부심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후대에 물려줄 자부심은 어떤 것일까요?

  화려한 물질도 아닐 것이고, 눈에 번쩍 뜨이는 금은 보석도 아니고, 우리가 간직해야 할 자부심을 물려 줘야 할텐데요.

  단군의 자손?

  단일민족?

  글로벌한 시대에 어울리는 진정한 우리의 자부심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버스가 배에 진입하기 위해서 바지선에 실렸습니다.

  천천히 배 옆에 갖다대고 있습니다.

  갑판에서 그 광경을 보려고 나간 사람들이 30프로 쯤 되는군요.

 

  우리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멈추어서 뒤돌아 보아야 할 시점은 언제인가요?

 

  어제 저녁에는 스웨덴의 헬싱보리 굳모닝 호텔 주변을 산책하였습니다.

  스웨덴은 지금 10시 30분 쯤에 해가 지고 새벽 2시 쯤에 해가 떠오르는 백야의 시기입니다.

 

  얼마든지 늦게까지 산책할 수 있지만 날씨가 쌀쌀하고 항구가 있어서 덴마크로 건너가기 위해 배를 이용할 손님들을 위한 호텔 시설이 헬싱보리의 최고 시설인듯 특별히 갈 수 있는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거리를 멀리는 못가고 호텔주변을 걸어 다녔습니다.

  작은 도시인데도 개를 산책시키고 뛰어 놀게 할 공원이 따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어디를 기웃거려도 조용하고 맑고 깨끗한 거리에 나무와 꽃들이 예쁩니다

 

  ...

 

  배의 문이 열리고 버스가 건너편의 덴마크에 도착했습니다.

  15분 만에 스웨덴에서 덴마크로 진입하였습니다.

 

  와이파이가 늦고 배달도 안되는 덴마트인데 왜 선진국이라고 할까요?

  지상천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복지 때문이라고 하네요.

 

  학교에서는 2가지 언어.

  스포츠.

  악기가 필수인 나라.

  교육비가 들지 않는 나라.

 

  스키 방학이 있고 모든 것이 보장되는 나라.

  세금을 깎아 준다고 데모하는 나라.

  꿈이 없고 지루해서 자살율이 높다는 나라.

 

  오늘 해야 할일을 내일로 미루는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

 

   .......

 

<덴마크>  

                             2019년 7월 2일 

 여행 사흘 째

 인구 500만명.

 일인당 국민 소득 7만 9000불.

 세계 3위.

 

 우리는 3만불.

  27위.

 

  덴마크가 만드는 파이는 세계 10위의 석유생산국.

  연어. 고등어 생산과 더불어 오메가 3등 15%의 건강부가가치 식품.

  고부가가치로 배를 설계하고 배를 중개하는 나라.

 

   2008 - 2014년  원유가격 고공 행진시 10만불.

  오늘날 석유가격 하락으로 일인당 국민소득 하락세.

 

  노르웨이어와 문자는 스웨덴, 덴마크와 같으나 인삿말은 하이하이와 탁/ 투센탁(감사인사. 천개의 감사).

  은실(죄송, 실례합니다.)

 

  이태리의 나포리, 호주의 시드니,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루는 정박료 1억. 노루웨이 정박료 1개월 500.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노르웨이의 오슬로로 가려고 합니다.
  2시간 15분이 지나고 휴게소와 스키점프대 관람 후 7시 10분 호텔 도착.

  릴리암베리 투르 휴게실 무료화장실 이용.

 

  로마는 7개의 언덕으로 시작했듯, 노르웨이는 프라이빗 때문에 산위로 산위로 올라감.

 우리의 역세권처럼 산위가 비싸짐.

 

  평창올림픽 9위.

  메사 호수 환경 손상 전혀 없이 감자그릇도 자연비닐로 만듬.

  작은 호텔이용 동계 올림픽 치른 지역 7800만 달러 수입.

  메사 호수에 배 띄워 놓고 잠.

  후손에게 물려 주려고 다리 안놓고 불편함을 참으면서 산다.

  (우리나라는 화장실 휴지통을 다른 나라 사람 말 한마디에 전부 없앰 ~ 후손에게 물려줄 물을 보존하는 대신에 더럽히고 있음)   

 

  이태리 산토리니와 스페인 미아스는 지붕이 하얗고 집들이 하얗다.

  햇볕을 흡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모로코의 까사블랑카는 하얗고 여기는 지붕이 까맣다.

  햇볕이 적어서 많이 받아들이려고.

 

  릴리함메르 라는 작은 도시.

  노루웨이는 EU가 아니지만 집차 타고 올 수 있음.

  세렝게티 조약으로. 

 

  6개 나라.

  하계 동계 월드컵 등 3대 세계스포츠 열었던 나라

  전체 229개국  약 230개국 중에서.

 

  러시아는 99720평방키로 미터의 면적 약 10만.

  남한의 170배. 캐나다의 100배.

  북쪽은 춥고 나무가 좋아서 목재만 팔아도 일인당 국민소득 4만불.

 

  미국 초강대국으로 통화와 기름과 식량을 좌지우지 달러가 기축통화이며 국토면적은 90배.

  3 ~ 4년 전 엔화 700원까지 떨어짐.

 현재는 아베노믹스로 1000원.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이나 덴마아크 수도 코펜하겐.
 모두들 너무 아름다워서 사진을 수백장 찍었다.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를 제구성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사진은 어디가고 바쁘게 따라 다니면서 버스 안이나 호텔에서 써놓았던 일정 이야기만 남아 있다.

 써 놓았던 이야기를 다 올리면 사진을 찾아서 기억에 남는 사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해볼 생각이다.
 북유럽은 풍경과 사진을 이야기 하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는 아름다운 도시와 아름다운 풍경들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덴마아크의 수도 코페하겐의 수로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

사진이 곧 그림인 나라

 

북유럽 변두리에 유난히 반짝이는 덴마아크의 찬란한 역사 ~ 절망의 깊은 골짜기에서 기어이 희망을 찾아내어 일찌기 인류역사상에 융례가 없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서 농업 문화의 창조와 복지 국가 건설에 성공한 덴마아크

덴마아크는 독일 북쪽에 붙어 있는 작은 반도와 수백의 섬으로 된 작은 나라. 6.25 전쟁때 유우엔군이 참전하게 되자 즉시 그 일원이 되어 의료와 식품과 병원선을 보내고 우리와 함게 인류의 자유를 위여 잘 싸운 나라.

덴마아크를  <지상낙원>이라고 말한다. 빈곤을 물리쳐 어느 나라 국민보다도 부유하고, 체육을 진흥시켜 어느 나라 국민부다도 건강하며 장수하고, 국민의 교육 수준은 세계에서 최고이며 복지 사회의 건설은 빈틈이 없다. 

특히 일반 농민의 교육 정도는 비교할데가 없을 만큼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종교와 과학과 경제를 잘 조화시켜 건전하게 평화를 이룩하였고, 국민들은  즐겁고 보람 있는 삶을 누리고 있어 온 세계의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 

우리 나라 평안동보다 조금 넓은 국토와  3백만 미만의 국민으로서 최악의 모든 조건을 극복하고 오늘의 영광을 가져온 것은 그대로 역사상 하나의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찬연히 빛나는 오늘의 덴마아크의 농업 문화를 바라보면, 그들은 참으로 우리의 앞길을 비치는 아름다운 비전(vision)이고 희망의 등대이다.

덴마아크는 교육으로 성공한 나라이다. 그들의 오늘은 그 독특한 국민 교육이 가져 온 것이다. 교육 없는 문화를 우리는 상상할 수가 없다. 넓은 의미에서 인류의 문화는 곧 교육으로 피어난 꽃이요. 열매. 인류의 역사는 곧 교육의 역사. 

건전한 교육을 떠나서 누가 나라의 재건과 민족의 버니영과 인류의 발전을 꾀할 수 있을까덴마아크는 비상한 정열과 노력으로 확실한 교육 목표와 특유한 교육제도를 창안하여 전국민을 단시일에 교육하기에 성공하였다. 이 교육의 성공이 덴마아크의 오늘의 번영의 근저가 된 것이다. 

농업을 주로하고 공업을 부로 하는 산업 국가만이 국민에게 참 행복을 줄 수 있는 이상국가라고 한다. 농업만이 건전하고 순박한 국민성과 높은 국가 교양을 오래 유지할 수가 있어서 참 평화와 참 행복을 영구히 누리는 국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 현명한 생각은 덴마아크의 역사가 확실하게 뒷받침하여 온 세계에 실증하여 준 것이다. 

어떤 국민이 어떻게 절망의 역경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보거해서 가장 건실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빛나는 역사와 번영의 날을 자기의 것으로 가져왔나. ~ 덴마크의 분투한 역사를 우리의 등대로 하고 덴마크의 높은 이상을 우리의 비전으로 함이 무엇보다도 튼튼하고 가까운 길임을 확신케 한다.

국토의 주요부인 유틀란드 반도는 원래 빙하 시대에 이루어진 황무지로 당이 메마르고 서북의 해안은 사구로 둘러져 있다. 북위 54도로부터 57도 사이에 있어서 우리나라보다 훨씬 북쪽이며 동양의 캄차카 반도의 위도에 해당한다. 해발 평균 30미터에 이르지 못하며 2백 미터를 넘는 산이 없는 지대이다. 덴마아크의 최고봉은 유틀란드 동편에 있는 에이르바브네회라는 산으로 그 높이가 겨우 172미터이다. 서울의 남산이 2백 6십미터의 높이이니 덴마아크의 지세를 이로써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서북을 가로막는 산맥이 없으매 차고 습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 1년의 대부분이 음산하고도 을씨년스럽다. 1년의 강우량은 겨우 6백밀리에 지나지 않으니 평균 비오는 날이 158일이오. 눈내리는 날이 30일이며 안개 깊은 날이 94일 평균이다. 가장 기후가 좋다는 덴마아크의 수도 코펜하겐조차 태양을 바라볼 수 있는 날이 겨우 50일에 지나지 않는다. 

평균기온은 섭씨8도이므로 위도에 비해서는 따뜻한 편이다. 늦 서리는 5월 10일까지 내리고 10월 5일쯤에는 벌써 첫눈이 내린다. 땅이 메마르고 기후가 또한 이러하니 농작물은 그 재배에 있어서 자연히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어디서나 가꿀 수 있는 콩, 옥수수 따위도 일광 부족으로 결실을 못하게 되니 다른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가축도 1년 중에 9개월 동안은 축사 안에서만 기르지 않으면 안된다. 약간의 토탄이 유일한 자원으로 그밖에는 아무 것도 땅 속에서 찾아 낼 수가 없다. 이처럼 매장된 자원이 전무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스웨덴 노르웨이는 모두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력 전기의 나라들이다. 덴마아크에서는 수력 전기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이 조건이 나쁘다. 덴마아트야말로 창조의 신이 전혀 쓸모가 없어서 북해 기슭에 내버린 몇 조각 불모의 땅인양 싶다. 자연의 혜택이 너무도 빈약한 한심한 나라다. 

우리의 인구를 덴마아크에 비하면 막대하다.국토는 또한 광대하다. 물과 바다에서 나오는 백, 천가지 풍성한 자연의 혜택은 견줄 바가 아니다. 맑은 하늘, 깨끗한 공기, 기름진 들, 아름다운 산, 수많은 강, 복잡한 애안선, 풍요한 바다, 다채로운 지하 자원, 무엇하나 어디에 손색이 있으랴. 어느 것 하나 덴마아크 사람들의 부러움이 되지 않을 것이 없다. 덴마아크 국민이 저 유틀란드의 참담한 황무지에서 농민의 낙원을 이루기에 성공한 것을 볼 때에 우리가 무릉도원과 같은 이 한반도에서 살기 좋은 낙원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할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설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믿는다.

 

 

◐ 덴마아크는 역사적, 환경적인 가혹한 시련을 가장 훌륭하게, 의의있게 살린 나라의 본보기. 덴마아크는 그 고난으로 하여 오늘의 특수한 문화를 이륙했다. 평화와 수와 부와 지를 모둔 가지게 되었다. 온세계 사람들이 찬양하는 농민의 낙원을 성취했다.

 덴마아크의 온 국민이 어둠 속에서 비탄에 쌓여 있을 때에도 전혀 실망하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전쟁에는 패하였으되 정신은 패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파멸 속에서 덴마아크를 구원해낸 횃불들인 것이다. 세월이 지나갈 수록 더욱 찬란히

밝아지는 횃불들인 것이다.

 

 < EM 달가스>

달가스는 36세의 공병장교였다. 무너진 전선에서 돌아온 그를 만나는 친구마다

 

"오늘이야말로 우리 덴마아크의 가장 불행한 날이다. "

 

하고 부르짖었다.

 

 "당신 말대로 우리는 불행하다."

 

 그는 서슴치 않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달가스의 대답이 이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반드시 말끝을 이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시 살아갈 희망의 길이 있다. 우리는 밖에서 잃어 버린 모든 손실을 안에서 회복해야 한다. 이 유틀란드의 황무한 들을 장미꽃의 향기가 풍기는 기름진 들로 바꿀 수가 있단 말이다."

 

 달가스의 얼굴에는 굳은 신념이 엿보였다. 그러나 그의 말을 망상으로 돌리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달가스의 가슴 속에는 총검으로 잃은 것을 괭이와 쟁기로 회복할 결심이 되어 있었다.

 그는 일선 포탄 밑에서 싸울 때에 벌써 패전한 조국 덴마아크를 구원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달가스야말로 참담한 덴마아크 천지의 어둠을 비치는 한 개의 희망의 횃불이었다.

 

 <그룬트비히>

 

 덴마아크의 어둠 속에 또 하나의 더 큰 횃불이 있었다. 그룬트비히가 곧 그 사람이다. 이 음울한 나라 안에 있어서도 그의 이상은 동쪽 하늘의 샛별처럼 찬란하였다. 그는 결코 그 환경에 지배되어 시들지 않았다. 시인이며 종교인이며 역사가이며 철학자인 참 애국자 그룬트비히야 말로 덴마아크의 구국의 원동력이 된 선각자이었다.

 

 그는 북유럽 신화의 대저를 세상에 내어 유명해진 살마으로 문예계에서는 <덴마아크의 카알라일>이라고 기림읠 받던 사람이었다.

 18세기에 온 유럽을 휩쓸던 이성주의를 배격하고 독일의 로맨티시즘에 경도하여 실러, 피히테, 셀링과 같은 정열적인 시인과 철학자들로부터 깊은 감화를 받아 대성한 사람이다. 그룬트비히는 또한 수많은 애국시를 지었는데 그를 덴마아크 최대의 시인이라고까지 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조국의 수난을 몸소 겪은 사람이었다.

 영국을 시찰하던 중 조국 덴마아크의 걸어갈 새 방향을 발견한 사실이다. 당신 영국은 기계 문명이 융성하여 공업의 눈부신 발달에 따라 농촌 청년들이 도시로 모여들고 있었다. 청년들이 홍수처럼 도시로 밀려드는 동안에 농촌은 피폐의 한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영국 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볼 수 있었던 경향이었다. 그룬트비히의 머리 속에는 번개오아 같은 섬광이 비쳤다.

 

 "우리 덴마아크의 갈길은 이제야 확실하다. 영국을 비롯한 여러 공업국에 대하여 덴마아크는 일치 단결하여 협동 농업국으로 매진하는 것만이 조국을 건지는 길이다. "

 그는 조국의 갈 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또 런던 시민들의 정력에 넘치는 활동의 모습을 바라보고 덴마아크의 청년들을 교육할 국민 교육에 대한 새 이념이 비쳐지게 되었다. 덴마아크의 새로운 역사를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청년들을 새로운 길로 교육하지 않으면 안된다. 청년기는 곧 영혼의 창조기이다. 인생의 최고 이상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이 시기에 반드시 한 번은 열정에 불탈 것이니 이 때 작열한 강철처럼 달구어서 그 열이 식기 전에 덴마아크의 애국자로 두드려 내야만 한다.

 

 "역사적으로 진실하게"
 "윤리적으로 고상하게"
 "심미적으로 순미하게 "

 "이렇게 개조된 젊은 국민만이 덴마아크를 이 역경 속에서 구원해 낼 수 가 있을 뿐이다."

 

 그룬트비히가 절실하게 느끼고 분명하게 깨달은 바는 이것이었다. 이 각성이야말로 덴마아크 새 역사의 진로를 밝혀 준 빛나는 샛별이 된 것이었다. 그룬트비히는 조국의 내일을 바라보고 새로운 희망에 불타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가 가르친 정의와 박애로 덴마아크의 나아갈 방향을 <역사교육>에서 찾는 것이 새 교육의 가장 건실하고 가까운 길이라고 믿게 되었다.

 

 "기독교적 애국 청년으로 하여금 덴마아크 자신을 구하게 하고 또 영양이 풍부한 좋은 식품을 만들어 세계 각국에 보내는 것은 인류에 봉사하는 우리 조국 덴마아크의 올바른 사명일 것이다."

 

 이것이 그가 품은 농업국 덴마아크의 기본 정신이었다. 그룬트비히는 불타는 구국교육의 정열과 이념을 안고 고국에 돌아가서 그의 포부를 국민들에게 열령히 창도하였다.

 

 농민 교육, 특히 청년 교육은 민족 갱생의 초석임을 깊이 깨닫고 이 획기적 교육운동을 전개했다.

 이것이 덴마아크 부흥의 근본적 첫 출발이었다. 지엽말초에 붙잡히지 않고 확고히 근본적인 점에 착안하여 그 이상과 신념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한 길로 매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현명하고 꾸준함을 거듭 감탄하게 된다.

 

 그룬트비히의 감화로 국민 고등 학교의 교육을 실천에 옮여 위대하게 발전시킨 크리스텐 콜도 또한 이 나라의 찬란한 부흥의 횃불이며 덴마아크의 유명한 협동 조합의 장점을 널리 선전 계몽하여 협동 운동의 기초를 닦아 놓은 에반도 회그스부로도 잊을 수 없는 인물이다. 

 

 역사는 생명을 짜내는 한 폭의 길이다. 아름다운 생명의 약동만이 빛나는 역사 창조의 씨와 날이 되는 것이다. 이 역사 창조의 소재가 되지 못하는 생을 일러 티끌 같다 할 것이다. 

 인생이 어찌 신념없이 살 것인가. 사명없이 살 것인가. 우리 나라 청년들이 그룬트비히, 달가스, 콜과 같은 덴마아크의 선각자들의 그 신념을 신념으로 그 이상을 이상으로 한다면 우리의 바라는 비전은 통일 된 국토 위엥 확실히 실현될 것이요. 우리의 문화가 세계에 기여할 날도 반드시 오고 말 것이다. 

 

 "신은 스스로 돕는 사람만을 돕는다."
 라고 갈파한 금언은 천고의 진리가 아닐 수 없다. 덴마아크의 애국자들은 우리에게 요행을 버리라고 경고한다. 스스로 씨뿌리지 않은 땅에서 열매를 거두고자 하는 따위의 근성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가 겪는 역사적 고난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힘을 다하지 않는한 결코 우리가 걷고 있는 험난한 골짜기를 벗어날 수는 없다.     

                                                                   네이버의 블로그에서 <joseph>     

덴마아크에 대해서 찾아보다가 좋은 글이 있어서 가져왔다.

글이 길어서 많이 간략화 했지만 기본적인 글의 내용을 가져오려고 애썼다.

 

 그동안 왜 하나님께서 "스위스"를 여행가라고 했으며  "동유럽" 여행 간다고 할 때에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안에 있다"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정말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글을 옮겨 적으면서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많이 힘들어질텐데 다음세대를 위해서 그동안 기도를 하게 되었고 그 해결책이 스위스와 북유럽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 베이비 붐 세대는 다음 세대를 제대로 이끌고 있는가?

 많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이제 확실히 알겠다.

 땅을 사라고 했던 이유도 ~ 부동산 투기를 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부동산 투기를 해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야 만족할 수 있을까?

 돈은 소금물 같다.

 만족할 수 없다면 갈증만 심해질 것이다.

 

 그동안 종종 농사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농사?

 할 수 있을까?

 평생에 땅 한번 일궈보지 못한 사람이?

 지인한테 농사가 어떤거냐고 물어보니까 농사를 지어봤던 지인은 노 ~ 노 ~ 노 ~ 손사래를 쳤었다. 

 

 미니 다육이를 키우면서 다육이를 키워볼까? 이런 생각도 했었지만 앞베란다 이상은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나마 농사일에 가장 가까운 일이고 또 재미도 있고  ~ ~ ~   

 앞베란다에 상추를 키우고 있는데 상추 키우는 일도 쉽지는 않지만 어쨌든 키워지기는 한다.

 요즘은 수경재배라는 것도 있다. .

 

 앞으로도 생각을 거듭하겠지만 무언가 실마리는 보이는 듯하다.  

 

 여행 ~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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