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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만나러 가요>
![](https://blog.kakaocdn.net/dn/blvvPV/btrYDfZCJX9/REKdUCCS0zIrM1c2ajLyhk/img.jpg)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일에 관심없는 것 같지만 다른 나라의 천재지변에도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변잡기 대신 태화강 동해 전철을 타고 일광 바닷가에 도착해서 톡을 확인하다가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 소식이 톡을 통해 월드비젼에 들어와 있어서 티스토리에 올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통 티스토리를 확인하는데 다른 날보다 2배정도 많은 사람이 들어와 있었다.
뭐지?
아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진소식을 올렸구나.
톡으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았더니 월드비젼 모금 목표액이 3억으로 늘어나 있었고 모금액도 1억 6천만원까지 입금되어 있는것이 보여졌다.
처음 jinnssam이 올릴 때만 해도 모금 목표액이 5천만원 이었고 모금 된 금액은 3천만원이 안되어 있었다.
전국민이 폰을 사용하는 사람은 톡을 이용하니 톡 공유만 해도 기부액이 늘어나고 좋아요와 댓글만 써도 기부액이 늘어나니 점점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것 같다.
좋다.
참 좋다.
우리나라가 잘살아서 좋고
우리나라에 이런 천재지변이 없어서 좋고
다른 나라의 천재지변에 같이 마음 아파하고 기부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게 좋다.
처음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올 때만 해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가난하고 연약한 나라였다.
나라를 이웃나라에 뺏기기도 했던 슬픈 역사를 지녔던 나라.
이제는 다른 나라를 도와 줄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세계에 이런 유래가 없다고 한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된 유래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세계 각국에 파견된 선교사가 5만명이라고 한다.
얼마전 필리핀에서 일하시는 선교사님이 슬픈 소식을 전하였다.
울산은 날씨가 많이 풀려서 봄날 같아요 ~오늘을 눈이 부시게 살아가요 ~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
한국이
따뜻해지는군요.
올겨울 유독 추웠다고 들었어요.
눈도 많이오고 집사
님의 기쁨과 감사의 마음이 전해져옵니다.
민다나오엔 좋지않은 소식이 있어요.
지난주 저희 교단 한국선교사님이 피살되셨거든요. 가는지역이 위험하고
해서 오늘 남자들만 지금 화장장에 가 있습니다.
살아가는게 또한 지금의 안전이 거저가 아니라 기도 덕분임을 체험합니다.
한국도 평안하십시요!
필리핀 민다나오 권귀동 선교사, 반군에 피살 - 미션 - http://gnpnews.org/archives/130549?ckattempt=1
필리핀 민다나오 권귀동 선교사, 반군에 피살 - 미션
필리핀 민다나오 부키논 임파수공 지역에서 권귀동 선교사가 민다나오 반군에 의해 피살됐다고 세계한인선교사중보기도방이 13일 전했다. 한인선교사중보기도방에 따르면, 현재 지역 영사협력
gnpnews.org
오래전.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던 서양 선교사분
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였다.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
엄마를 만나러 간다.
기차를 타고 지금 대전으로 가고 있다.
원래 금요일날 가기로 했는데 목요일날 엄마가 동사무소에서 하는 취로 사업을 쉰다고 해서 목요일로 바꾸었었다.
금요일날 비가 온다는 날씨 예보 때문에 목요일로 바꾸어서 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가 일끝나는 11시에 맞추어서 지금 가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취로 사업에 참여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운동도 하시고 수입도 생기고 ~
엄마도 일하시는 걸 정말 감사해 하신다.
엄마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해 하시는 것이다.
생필품은 두달에 한번정도 사드리면 되는데 최근에는 두달에 한번 생필품을 사드리고 한달에 한번 정도 올라가서 엄마랑, 쫑숙이랑, 또돌이랑 점심 저녁을 먹고 내려온다.
오늘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엄마가 그렇게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생각 나면서 몇년 전에 기도 했었던 일이 생각났다.
~ 하나님. 생활비 드리는 대신에 두달에 한번씩 방문해서 생필품을 사드리는데 하나님께서 생활비에 부족함이 없도록 도와 주셔요. ~
그즈음 부터 였던 것 같다.
엄마가 취로사업을 시작하셨던 것이.
덕분에 엄마의 생활비가 모자라지 않아서 정말 감사하다.
엄마와 jinnssam의 나이차이는 20살이다.
엄마가 19살에 아버지한테 시집가서 20살에 jinnssam을 낳았으니까.
20살.
지금의 20살은 정말 어린 나이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 1학년.
옛날이라고 뭐가 달랐을까?
어린 건 어린 거다.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5살이었고 그만큼 순진하고 아무 것도 모르던 엄마를 아버지는 참으로 모질게 대하셨던 것 같다.
평생을 아버지의 따뜻함이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을 잊지 않으셨던 것을 보면.
그때 그 시절에는 많은 남자들이 그렇게 살기는 했다.
남자라고 아침부터 밥상 머리에서 반주를 하고 긴 곰방대에 담배를 가득 담아서 낮은 초가지붕 아래에 서서 초가지붕에서 낙숫물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면 허리 춤에 손을 찔러 넣고 뻐끔 뻐끔 담배를 피우던 남정네들.
외갓집에서 초등학교 1학년때 살았었는데
어리기만한 Jinnssam의 눈에도 그모습이 정말 보기 싫었었던 기억이 난다.
남정네들이 입고 있던 솜을 넣은 하얀 무명옷
이 더러워지면 여자들
이 그 옷을 얼음이 언 냇가로 가지고 가서 빨래 방망이를 휘두르
며 빨았고 집에 들고 와
서 삶았었다.
엄마가 시집가던 날.
큰집 뒷집에 사시던 군수할아버지가 찦차
를 새댁이를 위해 외갓집에 보내 주셨고 그 차를 타고 시댁으로 갔다고 한다.
그 옛날 가마 타고 시집 가던 새색씨가 대신 찦차를 타고 시집을 간 것이다.
그때 군수할아버지가 아버지 뭐하냐고 물으셨고 군청에 취직 시켜 주셔서 평생을 공무원을 하셨다.
엄마는 아버지가 공무원이 된 것도 자기가 시집 가는 바람에 되었다고 말씀 하신다.
아버지는 공무원이 되어서 영동군청에서 근무하시고 엄마는 큰집에서 큰 엄마와 작은 엄마와 함께 몇달 사셨다고 하셨다.
가끔 그때 일을 말씀 하신다.
'작은 큰 엄마가 부엌 아궁이에서 발톱을 깎았는데 그 발톱이 날라가서 죽에 들어가 있더라.
죽을 먹다가
죽 속에서 발톱을 꺼냈지 뭐냐.'
할머니의 막내 아들
이었던 아버지는 그 어려움 속에서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해서 다니다가 3학년 때 6.25 사변이 나서 학도병으로 끌려 가셨다고 한다.
집에 학도병으로 끌려 갈 때의 사진이 있었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가슴를 가로질러 완장을 찬 사진.
6.25 때 학도병으로 끌려가 가장 전방에 배치되어 총알 받이가 되어야 했던 때.
같이 있던 전우들이 매일 매일 사라져갈 때 아버지도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운명을 거부했다.
어느 날 수색을 나가서 숲속에 앉아 자신의 총으로 오른 손 검지를 어렵사리 쏘았다고 했다.
오른 손 검지가 있어야 총을 쏠 수 있는데 다쳤으니 병원에 후송 되어서 치료를 받는데 간호사가 말해주기를 검지 한마디만 자르면 총을 쏠 수 있으니 다시 군대가지 않으려면 검지 손가락을 전부 잘라야한다고 말해
줘서 그렇게 했고 그걸로 군대를 의가사 제대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가끔 그 간호사때문에 살았다고 말하시고는
하셨다.
아버지는 오른 손 검지 손가락이 없었다.
보통 때에는 신경도 안쓰이고 그러려니 하는데 한번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아버지가 표를 사는데 검지가 없는 손으로 사는게 보였다.
엄마는 시집가서 보니까 아버지의 검지가 없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엄마는 그렇게 큰집에서 일년동안 시집살이를 한다음에 아버지를 따라서 영동군청 사택에 가서 사셨다.
엄마는 그때의 기억을 지금은 못하신다.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지 아니면 너무 어린 나이에 객지 생활을 하셔서 그런지 기억을 못하시는 것 같다.
jinnssam은 빨간 쉐타(나중에는 쫑숙이한테 물려준 옷이다.)를 입고 엄마가 앉아 있던 한옥의 마루 높이보다도 작은 키로 엄마가 다듬는 고추를 만지작 거렸던 기억이 난다.
"고추 만지면 맵다."
빨간 고추가 이뻐 보였는지 엄마가 만지는걸 만지고 싶었는지 만지고 눈을 비볐더니 따가워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고추 만지면 맵다고 했지?"
덕분에 지금도 그 기억은 선명하게 머리 속에 새겨져 있다.
엄마가 아기를 낳았다.
아기를 재워 놓고 옆집에 잠깐 다녀 온다고 아기가 우나 잘보라고 하였다.
아기가 울길레 무릎에 올려 놓고 흔드는데 엄마가 들어왔다.
"고개도 못가누는데 그렇게 무릎에 올려 놓고 흔들면 안돼."
응?
뭐를 잘못했나부다.
아기가 울어서 달랠려고 그랬는데.
아기 잘보라고 했으면서.
그렇게 기억이 난다.
기억이란 참 많은 일들 중에서 머리 속에 저장
된 선택된 상황이다.
젊은 엄마는 그렇게 jinnssam의 머리 속에 기억이 남아 있다.
지금의 엄마는?
jinnssam도 나이가 들었지만 엄마는 20년이나 더 들었다.
그래도 엄마를 만나러 간다면 왠지 좋다.
그건 나이가 많고 적고가 상관없나 부다.
나는 지금 엄마를 만나러 간다.
오늘은 뭘 먹을지 생각해두지는 않았지만 오늘도 맛있는거 먹고 맛잇는거 마시러 카페를 가려고 한다.
기차가 대전역에 도착하기 10분전이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https://blog.kakaocdn.net/dn/clIg4M/btrYI9jpqRh/s9Y2Fv74KKIY6RUcYYT4Bk/img.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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