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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쉬운가요? 네. 쉽습니다.

by 영숙이 2023.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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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가 쉬운가요? 네. 쉽습니다.>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는 전혀 우리를 몰라보신다.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마주친 어머니는 침대에 누운채로 우리를 보시는데 아무런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으신다.

"내영혼이 은총입어 중한죄중 벗고보니 슬픔많은 이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죄 사함받고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어디나 하늘나라."

토요일 10시 40분 치매이신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만나러 가서 부른 찬양이다.

"엄마. 나야.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

남편의 안타까운 물음에도 반응이 없으셨다.
하루종일 입을 다물고 계시니 목소리도 잃으신듯.

"엄마. 나 아들."

남편은 몇번이나 안타까이 부르고는 할말이 없는지 그저 어머니를 바라만 본다.
피부를 긁는다고 손에 장갑을 끼워 놓아서 대신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찬양 부를까? "
"응. 작게 불러. 다른 사람 시끄럽지 않게"

찬양을 불렀다.
jinnssam이 어머니 앞에서 찬양을 부르고 있다.
바짝 메마른 어머니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나 누군지 알아 보겠어?"

또다시 안타까운 목소리로 아들이 물으니 고개를 끄덕 끄덕 반응을 보이신다.
감정 표시를 하신 것.

요양원에 다녀온 후 저녁에 사우나를 다녀왔다.

사우나에 가서 찜질방에 누워 폰을 들여다 보는데  브런치 스토리에  흥미있는 스토리가 있어서 읽기 시작하였다.
사우나를 마치고 집에 걸어오면서 작가가 쓴 17편을 단숨에 읽었다.
재미있다기 보다는 100% 공감 때문에.

글을 쓰신 분 마음에
있는 상처가 눈에 보였다.

시댁에 대한 분노
남편을 향한 노여움.

글을 읽느라 천천히 걸었더니 남편한테 전화가 왔다.

 

 "올 시간이 넘었는데 안와서 ~ "

집에 도착해서 바로 잠을 청했는데  
잠들기 전에 읽었던 글 때문이었는지 오래 잊고 있었던 Jinnsssam의 악몽
같았던 30대 때의 고통이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올랐다.

 

아이 낳고 백일쯤 되니까 며느리를 길들인다고 다루기 시작하였다.

방학이라고 불러서

"큰집으로 제사를 지내러 가는데  남편은 바쁘니까 여름방학이 되면 너 혼자 와라."  

"안갈래요. 제사 지내면 떡이 나오나요? 밥이 나오나요?" 

"니동생 조카 백일까지 챙기면서 큰집 제사를 안간다고?"

그날 대구 시댁에서 울산 집에 오자마자 남편이 때리기 시작하였다.

"니가 우리 엄마를 어떻게 보고 그따위로 말해?" 

울산병원 응급실에 가서 진단서를 끊고 고소할거라고,
이혼할거라고 말했다.


시아버지가 시키는
데로 때린 것도 싫었
지만 고소한다고 하니까 시키는데로 울면서 잘못했다고 말하는 남편은 더 꼴보기 싫었다.

친정에서 이혼시켜
딸 버는거 챙기려
고 한다는 소리는 더 기가 막혔다.

그렇지만 친정 엄마가

"복수하려면 이혼하면 복수를 못해.
같이 살아야 복수를 하지.".

 

겨울 방학이 되니까 jinnssam 혼자 오라고해서 친정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시댁에서 오라는데 나혼자 오래"
"죽이겠니?  가봐라"

 

갔으면 안 됐었다.

지발로 걸어서 표범굴에 들어간 꼴이었다.
두려움을 이기고 버스를 타고 점심때 쯤 시댁  근처에  도착했다.

 

시댁으로 들어가는 시장 한 가운데를 지나가는데 갑자가 어디선가 나타난 시부모님이 달려들어서  jinnssam이 포대기로 업고 온 막 백일이 지난 아이를 억지로 빼앗아서 육아용품 가방과 함께 어디로인가로 감추었다.

시댁에 갔더니 그때부터 시부모. 시누이. 시동생이 번갈아 돌아 가면서 jinnssam을 앞에 꿇어 앉혀놓고 자신들에게 끓어오르는 온갖 화들을 온갖 욕으로 퍼부었다.
시누이는 졸업후 몇년동안 실직이었던 자신의 처지에 쌓여있던 분노를 마구 쏱아 놓았다. 
 "경로를 모르는 저런×은 직장 모가지를 똑 따야해."
시동생은
"oo치고 처녀가 없더라구.oo하는 동기x을 만났는데 여관에서 자고 나더니 헤어지자고 하더라구."

시아버지는 남편이 jinnssam을 편든다고
"×물에 튀겨 쥑일 ×놈들"
욕을 퍼붓다가 지치면  부엌에 내려가서 가마솥에 푹 끓여놓은 소머리를 큰 대접에 떠서 아침도 대충 먹고 밤늦게 까지 물 한모금 못먹은  jinnssam을 앞에 세워놓고 보란듯이 훌훌
맛있게 떠드시던 시어머니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건 리얼팩트가 아니라 한편의 영화가 jinnssam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같은 광경이었다.

제 정신을 가지고 그게 리얼팩트라는 걸 어떻게 믿을 수가 있을까?
그렇게 독하게 욕을 퍼붓고 그게 그렇게 맛있게 넘어갔을까?

 

그날 밤. 

남편이 밤 9시쯤 도착하였다. 

"아이를 뺏어갔어."

"괜찮아. 기다려봐."

근처에 살던 시이모가 아이가 울어서 안되겠다면서 데리고 왔다.

"이혼하자."

"그래 이혼해."

"이혼해도 너 평생 따라다닌다."
"그래 평생 따라다녀라.".

다음 날 이혼한다고 법원 갔던일.

법원에서 접수가 끝났다고 다음 날 오라고 해서 다시 시댁으로 가는데 시장 입구에서 기다리던 시아버지가 다방으로 우리를 끌고 가더니 남편을 족쳤다.

"이혼해라."

"안할 거예요."

"집으로 가자."

작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시어머니가 jinnssam얼굴을 할퀴면서 머리끄덩이를 잡았다. 

본능적으로 남편이 시어머니를 말리니까 시아버지가 복주머니 재단에 쓰는 커다란 가위를 들더니 남편을 찔러 죽인다고 위협을 하였다.

"아이구. 아버지 잘못했어요."

커다란 소리가 나면서 시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싹싹 빌고 있는 남편 모습이 보였다.

 

이후 시댁을 가지 않았다.

3개월쯤 지나서 집에 전화가 없던 시절인데 남편 회사로 시부모님이 전화를 했다면서 대구 시댁을 다녀왔다.

혼자 술을 마시더니 김치와 물과 밥만 놓고 식사를 하신다고 불쌍하다면서 울었다.

가지 않은 3개월동안 보내지 않은 생활비를 달라고 시어머니가 우리집에 오셨다.

어머니랑 마주앉아 있는것만 해도 속이 미슥거릴 정도로 두렵고 떨렸다.

얼굴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서 말도 잘 안나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처럼 싹싹하게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원래 명랑쾌할하고 말도 잘하는 사람인데 저절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친정엄마가 만날 때마다 말했었다.

 "왜 그렇게 수다스럽게 떠드냐고." 

그런 사람이 시댁 식구들 앞에만 서면 할말이 없어서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물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는 연말 쯤이었던 것 같다.

대문을 열었더니 그무서운 시어머니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왠일이세요?"

"김장 해가지고 왔다."
어머니가 집안에 들어오셨는데 또 무슨일일까 싶어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아무말도 안했다.

집안에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조금 지나니까 시어머니가 근처에 사시는 시외숙모 집에 가신다고 하시면서 일어서셨다.

그날 저녁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시외숙모네 집에 가자고 하였다.

"어른들이 말하면 가만히 듣고 있어."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외숙모, 시외삼촌, 시이모, 시이모부 이렇게 6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큰방 입구에 앉아서 번갈아가면서 온갖 욕과 온갖 말들을 퍼부어대는 어른들을 바라보면서 리얼팩트가 아니라 영화를 찍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바라보았다.

"이건 영화야."

밤 12시가 넘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까 시외삼촌이 불러냈다.

"니가 빨리 잘못했다고 해야 끝나."
앞에서 퍼붓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시키는대로

"잘못했어요."
"저 x이 속으로는 잘못했다고 생각 안하면서 입으로만 잘못했다고 하네."

 

하도 힘이 들어서 어느날은 점을 치는 집에 들어가서 시댁이 왜 그러는지 물어보았다.

점쟁이가 하는 말이

"시댁 사람들이 사랑이 없는 사람들이네."

그때 알았다.

시댁식구들이 말하는 것처럼 jinnssam이 잘못한게 아니라 시댁식구들이 사랑이 없어서 그런 거라는 걸.

친정엄마는 이렇게 말했었다.

"차라리 잘됐다. 너는 잘해주면 콩이야 팥이야 다 퍼주는 사람이잖여.".

 

그때는 예수님을 잘 믿지도 않을 때였는데 시댁에 불려가서 한집안에 두가지 종교가 있으면 안된다며 교회 다니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후에도 끊임없이 시동생이나 시누이를 보내기도하고 이런 저런 일로 힘들게 했다.

3년동안 부은 재형저축은 손에 만져 보지도 못했고 시댁에서 필요하다고 해서 대출해다가 드리기도 여러번.

어머니는 남편이 보너스를 탈때마다 오른쪽 눈 수술을 하고 왼쪽 눈 수술을 하고 틀니를 하고 장사 밑천에 어느쪽 눈 수술을 하셨는지 헷갈려 하시면서 또 눈 수술을 하셨다.

시아버지는 jinnssam이 얼마나 미움받는 존재인지를 시댁에 갈때마다 철저히 느껴지게 만들었다.

시댁 골목에만 들어가도 설사가 시작되었다.

처음 시댁에 갈때만 해도 어머니 음식 솜씨가 좋아서 혼자서 밥상을 끼고 눈치없이 끝까지 먹고는 했었는데 그런 힘든일을 겪고 나서는 시댁에서 먹기만 하면 설사가 나왔다. 

어느날 시 외숙모가 남편이 허리가 아파서 누워있다고 하니까 김장을 담아놨다고 가지러 오라길레 갔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런 집을 중매해서 미안해요."

"아니요. 괜찮아요. 이제 10년쯤 살았으니까 다 제 책임이예요.".

 

그러다 친정에 불행한 일이 생겼다.

 

시댁이 시장근처에 살았는데 시장근처에는 점을 치는 점쟁이들이 많았고 시누이가 시집을 못가고 시댁일이 잘 안풀리는게 다 며느리가 잘못들어와서 그렇다고 했나부다.

끊임없이 굿을 하고 부적을 쓰고 사술을 행할 때마다 jinnssam은 그걸 밤중에 몸으로 느꼈다.

처음 시작은 시어머니가 삼재가 있다고 속옷을 보내라고 전화가 왔는데 보내고 싶지 않아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었다.

"엄마 시어머니가 삼재라고 속옷을 보내래."
"보내. 너희에게 해롭게 하겠니?"

 

그때 보내면 안되었다.

시어머니가 jinnssam이라고 만든 인형에 바늘을 찌르면 자고 있을 때 콕콕 찌르는게 느껴졌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갈지어다."

이렇게 외치면 쑥 빠져나갔다.

교회를 잘 나가지는 않았지만 예수 이름으로 외치는 것은 알고 있었고 믿음은 있었다.

어느 날 누가 jinnssam을 향하여 화살을 쏘았다.

뽑아서 반대편을 향하여 던지는데 동생이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환갑을 지내고 한달쯤 지났을 때 였는데 그렇게 아프기 시작한 동생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충분히 괜찮을 수 있었는데 증오나 저주가 얼마나 무서운건지.

 

남편이 허리가 아파서 누워 있을 때 어머니는 울산 우리집에 오셔서 새벽마다 밖으로 나가서 부적을 태웠다.

부적을 태울때면 집안에 파란 연기가 가득찼다.

하루는 이렇게 말했다.

"인형을 만들어서 강에 가서 담갔다, 꺼냈다, 담갔다, 꺼냈다 ~ "

그러다가 Jinnssam을 무서운 눈초리로 힐끗 보더니 입을 벌린채 멍하니 듣고 있는 jinnssam을 보고는 놀래서 말을 멈췄다.

아파트 뒷베란다에 인형이 던져져 있기도 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jinnssam은 미쳐가고 있었다.

귀에서는 끊임없이 굿하는 소리가 들리고 스스로 교회를 찾아가 등록을 하였다.

조금씩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그때마다 지옥의 문이 닫히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

이제는 안다.

예수님이 아니라면 jinnssam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울고 또울고 또 울면서 기도가 안나와서 끊임없이 주기도문을 외우다가 처음으로 기도를 하게 됐을 때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물었다.

"시부모님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기도하면서 그토록 증오하던 시댁식구와 시부모님에 대한 미움과 증오의 벽이 무너져내렸다.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가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인간이었지만 그래도 미움과 증오의 감정은 씻겨져 내려갔다.

미움과 증오는 나 자신을 위해 버려야 했던 감정들이었는데 그걸 몰랐던 것이다.

미움의 화살을 쏘면 내 가슴에 맞고 증오의 화살을 쏘면 돌아와서 내 마음에 박힌다는 것을 알았다면 미워하거나 증오했을까?

그걸 깨닫게 해주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나를,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것 같은 나를,

예수님은 목숨까지 버리면서 사랑해 주셨다.

내 죄를 사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부터는 남편이 이쁘게 보였다.

평생 이뻐 보일 것 같지 않던 남편이.

늙으면 내가 맞은만큼 때려 주겠다고 복수를 다짐했던 남편이 이뻐졌다.

신기했다.

남편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하니까 남편이 이뻐진 것이다.

이즈음 생각해보면 남편을 미워했던 30대의 10년보다 이뻐하고 축복하고 기도한 40대부터 60대 후반까지의 27년.

그 기간이 더 긴것이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어머니는 80에 치매가 오셔서 이제 93세.

코로나 이전에는 매주 방문해서 운동도 시키고 해서인지 사람을 알아보셨는데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극도로 제한되면서 전혀 사람도 몰라보고 다리가 접혀 굳은채로 누워계신다.

말도 잊어버리고 목소리도 안나오시고 감정도 없으시다.

 

찬양을 하니까 눈물이 고이신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레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요양원을 다녀오는데 남편의 입에서 찬양의 곡조가 흘러나온다.

"할렐루야 ~"

남편 본인이 더 놀래서 입을 다문다.

찬양의 놀라운 은혜이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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