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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아버지 >
오늘 초등 단톡에 들어가서 친구에 대한 좋은글을 읽었다.
#좋은글
🍒 특별한 결혼식 ᆢ
몇년 전 이맘때 쯤 절친했던 지인의
딸 결혼식에 참석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인은 안타깝게도 몇년 전에 세상을
떠나신 분이었습니다.
늦게 얻게 된 외동딸을 소중히 키우며 행복한 삶을 살아온
딸 바보였던 지인은
그만 암에 걸려몇 년간을
투병생활을 하다
딸의 결혼식도 못보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혼자서
하객을 맞이하고 있는 신부의 어머니를 보게되자 웬지 마음이
짠하고 아팠습니다.
그런데 예식장을 들어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예식장이 고인의 고등학교 친구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례자도 친구였고
사회자도 고교 친구였습니다.
짧은 주례사가 끝나자
곧바로 축하송 순서가 있었는데
신부 아버지 친구들이
모두 앞으로 나와 "라나에로스포" 가 부른 옛날 노래인 "사랑해"
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한 쌍의 예비 부부를 에워싸고 노래를 부르는 친구들은
비록 실력은 부족했지만 모두 함께 열심히 불러 주었습니다.
신부는 계속 울고 있었고
신랑의 부모님들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으며 특히 신부의 어머니는 고개를 떨군 채 계속
울고 있었습니다.
신부의 눈물을 신랑이 살며시
닦아 주었습니다.
후렴 부분에서는
하객들 모두 따라 부르며
예비 부부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친구들은
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딸 ㅇㅇ야!
앞으로 엄마 아빠처럼
잘 살아야 한다!
친구야!
이젠 걱정말고 편히 쉬게나!"
커다란 감동이 밀려오자 어느덧 제 눈시울도 저도 모르게 붉어지고
어깨가 들먹이고 있었습니다.
이때까지 수많은 결혼식을 참석했지만 그날만큼 기억에 남는 멋진 결혼식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우정에 놀랐고
그들의 사랑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지인이 돌아가신지 몇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들은 친구와의 우정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남은 가족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친구들이 하나씩 둘씩 사라지고 있었지만
남은 친구들은 꾸준히 함께 모여 마치 친구와 같이 있는 것처럼
진정한 우정을 나누며 살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
하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친구들의 마음은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을까요?
여러분은
친구라는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 계시죠?
그리고
우정의 무게가 과연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계시지요?
그 결혼식 내내 지인 친구들의 행복한 우정을 지켜보며 모처럼
내 자신이 현재 지니고 있는
우정이란 무게가 과연 얼마나 무거운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친구들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똑똑한 친구도 있고 어딘가
부족한 친구도 있으며
걸핏하면 친구 사이를 갈라 놓는
못된 친구도 있고
만날 때마다 행복과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친구도 있습니다.
서로 서로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사이가 친구라면 어떤 친구든 가리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안아주고 사랑을 베풀어 주는 것이 진정한 우정입니다.
이 글을 쓰다보니 문득 친구들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그동안 친구들과의 만남에 소홀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며 조용히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좋은 친구들이 내 옆에 있어 주었기에 지금까지 행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언제까지 살 수 있을런지 알 수 없지만 살아가는 동안 친구를 한번 더 만나고 더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부족함이 많은 친구도 우정이란 이름으로 이해해 주고 포용해 주심으로 누구든지 부러워하는
좋은 친구들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참 감동적인 글이었다.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여고시절 절친인 민이는 대학내내 거의 날마다 만났었다.
그애를 정말 좋아했지만 그애처럼 살 수 없다는 스스로에 대해 깨닫고 그애랑 연락을 끊기로 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애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50년의 세월이 지나고 다시 연락이 되었을 때 그애와 두어시간 통화하고 나서 깨달았다. 사람은 잘안변한다는 것. 그애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냥 자신의 본성대로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으며 너무나 충실히 잘 살아온 또 살아가고 있는 그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왜 그애와 헤어졌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순간 헤어짐은 계속 되리란 걸 알았다.
그리고 그애는 정치 편향적인 글을 무작위로 보내기 시작했다. 못견디고 수신차단했나? 잘모르겠다. 아무튼 더이상 글을 받고 싶지도 읽고 싶지도 않았다.
여전히 그애의 방식대로 잘살고 있구나.
나? 나도 내 방식대로 잘살고 있지.
그냥 그런가부다. 여전히 지난 50년처럼 남은 세월도 흘러갈 것이다.
친구.
여자들의 친구는 절친이었어도 상황에 따라 바뀔 수 밖에 없을까?
민이 뿐만 아니라 경익이, 보경이, 성순이, 경혜등등 절친들과 연락이 안되고 있다.
정말 보고 싶고 어떻게 지내고 있나 알고 싶은 친구들이다. 동창회 단톡에 들어가 백방으로 연락했지만 거기까지다.
누가 물었다. 연락해서 뭐하려구요. 그냥 궁금해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잖아요.
대학 절친인 선아와 연락이 되었다. 그애가 하고 있는 사업체를 그애가 계속 하고 있으니까 사업체 번호로 연락이 되어 하루는 집에서 서너시간을 통화하였다.
그뿐이었다. 그애의 최신 근황을 알고 한번씩 연락하자하고 끊었는데 그게 2년인가? 3년전이다.
친구?
교회에 다니니까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지인이라고 한다. 교회 사람들과는 만나지만 지인까지만 될뿐이고 친구는 되지 못한다.
유일하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이는 남울산교회 구역식구로 만난 혜경이(본인이 원한 가명임)뿐이다.
요즘도 한달이나 두달에 한번씩은 부산에 가서 만난다. 만나서 밥먹고 차마시고 서로의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진다.
전도.
전도하면 다 친구가 될까?
그렇지 않다. 이용만 당하다가 전도도 못하고 끝나기도 하고 전도는 했지만 친구까지는 되지 못하기도 하고 사역자로 만난 분이지만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 주종관계로 발전하고 싶어해서 이어지지 못하고 끊어지기도 했다.
스스로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굳이 변명하자면 그릇의 크기가 여기까지 일게다.
그래서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예수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마음이 힘들때면 찬양으로 말씀으로 설교로 다독인다.
그런 의미에서 계속 공격하는 설교를 듣는 것은 정말 힘들다. 굳이 그런 설교를 들으면서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런 분은 그런 분대로 그런 설교를 계속 하시겠지. 설교로 사람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계속 찌르는 설교를 할 것이다.
변하지 않는다. 그걸 어떻게 변화 시킬까나. 스스로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지 않는한 어쩔 수 없다.
그래서 포도원교회의 김문훈 목사님 설교를 계속 듣게 된다.
그리고 한번씩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유튜브에서 찾아 듣는다.

단톡에 올라온 친구란 글을 읽으면서 조금 슬펐고 그리고 나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아버지.
아버지는 친구를 좋아하고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돈을 좋아하고 그때 그 시절 남자들처럼 첩실을 두고 가장 중요한 한가지 가정을 소홀히 하였다.
학비를 주지 않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거기까지였다.
사랑을 알았을까?
술주정하면서 가족들을 괴롭힌 아버지를 생각하면 사랑을 아는 분이 아니셨다.
돌아가신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 모르지만 아버지를 아무리 좋게 이야기할래도 좋은 이야기보다는 가슴아픈 이야기가 많다.
물론 학비도 안대주고 생활비도 안주고 그런 가장보다야 백배 천배 만배는 좋은 분이셨지만 거기까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가족을 사랑의 존재로 생각한게 아니라 당신의 소유물로 여기셨던 것 같다.
마음 내키는대로 휘두루고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소유물.
5형제 누구하나 상처받지 않은 아이들이 없었을 것이다. 장녀였던 jinnssam은 가장 일찍 아버지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피해갔지만 그 후폭풍은 동생들이 고스란히 떠안았다.
두번이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술취해서 옆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jinnssam의 속옷 위를 쓰윽 지나갔을 때 쌍욕을 퍼붓고 도피했을 때 한번과 대학 다닐 때 늘 술에 취해있던 아버지랑 모두들 저녁을 먹고 있을 때 무슨 이유로 jinnssam의 멱살을 잡았을 때 있는 힘껏 아버지의 따귀를 때리고 도피했을 때 였다.
이후로 아버지의 소유물에서 jinnssam은 벗어났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그런 본성을 타고 났는지 모를 일이지만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에서 벗어난 것으로 대만족이었다.
아버지에 대해서 jinnssam이 할 수있는 나름 효도를 하려고 애를 쓰기는 했다. 왜냐면 아버지가 가족이외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 잘했기 때문에 jinnssam은 반대로 가족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정식구들에게 다른 사람에게 지청구나 핀잔을 들을만큼 잘했다고 생각한다. 결혼 이후에도 친정 식구들에게 잘했는데 거기에는 시댁에 정을 못붙여서 그런 연유도 있다. 아버님은 자기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대신 어떻게 하면 이용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시는 분이셨다. 그 시절 그때쯤 성장하신 아버님 세대들은 사랑을 받고 자랄 수 있는 시대적 환경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아무리 그래도 가족에게 사랑을 주는가 아닌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개인적인 성향이나 성격의 차이라고생각한다.
아무튼 친구들을 좋아해서 진정한 친구였을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또 술을 좋아해서 늘 술에 빠져 사셨지만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조금만 따뜻하게 말한마디라도 건네줬다면 어땠을까? 사랑으로 한번이라도 다독여 줬다면 어땠을까?
지금 쓰다보니까 생각이 났는데 손자 손녀 외손자 외손녀들에게는 다정한 할아버지셨다고 했다.
손을 잡아주시면서 "이쁘네" 말해주셨다고 했다.
누구든지 사람이기에 완전하고 완벽하지 않다. 어떤 아버지는 너무나 다정하고 가족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사람이셨는데 경제적으로 무능하셨다든지 뭐 그런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가족들을 잘 돌봐주시고 사랑하시는 분이고 경제적으로도 알뜰 살뜰 보살펴주셨지만 아파서 일찍 돌아가셨다던가 하는 이야기도 있을테고 아무튼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오늘도 이렇게 기도를 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에 오셔서 마음, 감정, 의지, 영혼육을 건강하게 하시고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세포하나하나마다 기관기관마다 튼튼하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 가득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평강과 기쁨으로 가득 체워 넘쳐나게 해주셔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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