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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어린시절 이야기

또순이 어렸을 적에 39 - 달걀두개

by 영숙이 2019.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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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달걀 두개(군서초등 동기  곽봉호글)
      집을 지키느라 가끔른 심심해 하시는 어머니에게
      닭을 키워 보는게 어떻겠느냐고  아버지께서 제안을 하셨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닭을 키우기 사작하면서
      어머니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어머니는 산작로에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보다
      시간마다 닭장에 들어가 달걀을 빼들고 나오는 일에 더 즐거움을 느끼시는 듯 했다.

      처음에 세 마리 였던 닭은 다섯 마리, 열 마리, 스무 마리까지 늘어 갔다.
      글쎄, 닭 때문에 우리 가족이 누리는 행복의 양이 늘어 간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

      우리는 어느 아이들보다 풍족하게 계란 음식을 먹을 수가 있었고
       어머니 대신 닭장 안에 들어가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알을 두 손으로 소중히 받쳐 안고 나오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모은 달걀을 들고 사장에 나가 팔기도 했다.
       그 돈은 우리의 옷과 책가방, 학용품 등을 사는데 보태어 지는 것이었다.

       어느날,
       어머니는 우리 삼형제를 모아 놓고 중대한 선언을 했다.
       내 졸업식이 끝날 때 까지는 계란을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바로 밑  동생이  울상이 된 얼굴로 이유를 물었고,
       어머니는,
          " 형 졸업식 날 좋은 옷 한벌을 해주기 위해서  "
       라고 말했다.

       졸업식은 한 달 가량 남아 있었고, 그  졸업식에서 전교생 대표로 우등상을 받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 느이 형은 좋은 옷이 없잖니! 그날 마저 허술한 옷을 입게 둘 수는 없잖아?

      어머니는 부드럽게 웃으며 납득 시키셨지만 그 설명을 듣는 두 동생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나는 마음이 아팠다.
      동생을 섭섭하게 하면서까지 새 옷을 입는 일 따위는 하자 않아도 될 것 같았다.

        " 엄마가 옷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면 차라히 나는 졸업 할 때  어떤 상도 받지 않겠다고 하겠어요. "
      슬픈 빛으로 막내 동생이 말했다.

         " 아니야, 엄마는 큰 형이 큰 상을 받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단다. 상을 받으러 아들과 함께 연단에 올라 갈 그 날만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이는 걸! "

     그로부터 일 주일이 지나서였다.

     어머니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불렀다.
         " 달걀이 매일 두개씩 없어자는구나! "

     스무 마리의 닭 중에서 알을 낳는 닭은 열 다섯 마리인데 달걀은 매일 열세개 씩 밖에 모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처음 하루이틀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 갔지만 일주일 내내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너희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주로 닭장 문 근처에서만 왔다갔다 하거든!  "
   
      어머니의 말대로 닭장은 마당 한귀퉁이에 있었고,
      대문에서도 한참이나 안쪽으로 들어와야 되기 때문에 쉽게 도둑 맞을 염려도 없었다.
      설사 도둑이 들었다 해도 왜 하필 두 개만 들고 간단 말인가?
      아버지까지 나서서 밤마다 대문을 철저히 잠그고 대문 근처에 개를 묶어 두는 방법꺼자 동언 했지만 해결 되지는 않았다.

      그 일이 계속 되는 가운데 졸업식 날이 다가왔다.
      약속대로 어머니는 그 전날 읍에 나가 내 옷을 사 가지고 왔다.
      붉은 색 체크무늬 남방과 곤색 자켓이었다.

         " 바지는 압던 것을 그냥 입어야겠구나! 덜걀이 없어지지만 않았다면 바지도 하나 살 수 있는 건데 그랬다. "
 
     어머니는 새 옷을 내놓으면서도 아쉬운 표정이었다.

        " 여보! 정말 너무 기뻐서 연단에 올라가 울 것만 같아요! "

     졸업식 날이 되어 아끼고 아끼던 한복을 입고 나선 어머니.......
    
     그때 우리 모두는 늑장을 부리는 막내 동생을 기다리기 위해 한참이나 마당에 서 있었다.
     막내 동생은 어버지가 어서 나오라고 두 번이나 채근 한 다음에서야 방문을 열고 나왔다.

        " 형들 준비 할 때 뭘 한겨, 어서 가자! "

     아버지가 주의를 주고 우리 모두 막 몇 걸음을 떼었을 때 였다.
     제일 뒤에 처져 있던 막내 동생이 수줍은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우리 모두 뒤돌아 보았을 때 막내 동생의 손에는 하얀 고무신 한켤레가 소중히 들려져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한복 치마 밑으로 삐쭉 내밀고 있는 어머니의 낡은 고무신을 바라 보았다.
     얼마나 오래 신었던 것인지 색이 바래 흰색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부끄러웠다.

         " 내가 엄마한테 주려고 샀어요! 하지만 너무 야단치지는 마셔요! 달걀 2개는 어디까지나 재 몫이었으니까요. "

     그날 어머니는 연단에 서기도 전에 눈물을 펑펑 쏟아 몇년 만에 한 화장을 다시 해야 했다.
     나의 손을 잡고 연단에 올라 가면서도 어머니의 눈길은 막내가  내 놓은 라얀 고무신 코에 머물로 있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겐 ......
    달걀이 단지 반찬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의 가교 역할을 해 주던 시절이었다.

     2002년 8월 31일 10:16분.

 < 첨부 >
       처음 졸업식 연습 때는 우등생 대표로 또순이가 불렸었다.
        예전에도 지금처럼 외모와 옷이 빈약해서 일 것이다.
       졸업식 전날 리허설 연습때는 다른 아이가 불렸는데 봉호는 교육감 상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또슌이는 배석칠 샘 집 앞 잘려진 커다란 나무 나이테 위에 왜 바꿨냐고 항의 쪽지를 올려 놓았던 기억이 난다.
        실제 졸업식 때에는 우등생  이름이 불려질 때 제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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