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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City life of JINNSSAM

CITY LIFE OF JINNSSAM 3

by 영숙이 2020.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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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우나에서>>

 

    코로나 때문에 몸무게는 좀 늘었지만 티스토리를 계속 쓸 수 있었고, 홀로 선 버드나무도 완성해서 책으로 만들었다.

   이런 시절에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쓸 생각을 못했는데 컴퓨터 앞에 앉게 하고 쓰도록 이끌어 주셨다.

  지금 앉아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책상에 붙어있는 성경 구절.

 

  <두려움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두려워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당신 앞에 나아갑니다.

    내 손을 놓지 않으시고 나를 자녀 삼아주신

    주님이 계시기에

    자신 있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의 짐을 내려놓습니다.

    주님! 우리를 위로하시고 구원하여 주소서...

 

  <내게 주신 십자가... 감사함으로 순종합니다.>

 

    주님의 한없는 은혜를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나의 십자가라 해도

    기꺼이 감사함으로 지고 갑니다.

    모든 것은 내게 거저 주어진 은혜이며

    지금 이 순간의 모습 또한 은혜입니다.

    감사함으로 순종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

    사우나를 마치고 집에 와서 티스토리를 정리하다가 써놓은 정선생 이야기를 들여다보았다. 눈발이 날리던 날들이 엊그제인 듯한데 벌써 봄과 여름이 지나고 매미 대신 귀뚤이가 우는 계절이 되었다.

   다시 한번 읽고 비공개에서 공개로 전환하면서 가슴속에 꼬깃꼬깃 접혀 있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서 들여다본다. 

  정선생과 아릿한 젊음  ~ 이젠 카리스마적인 대선배들은 요양원이나 아님 돌아가셨거나 활동을 안 하실 터이다. 

  정선생 이야기를 꺼낸다고 탓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시 이야기 실타래를 풀어서 이어간다.   

 

<<CITY LIFE OF JINNSSAM 3>>   

 

 

4. 정선생 이야기 D   

 

  어느 날 집에서 만 원짜리를 잃어버렸다.

  분명히 방 어디엔가 두었던 거 같은데 없어서 샅샅이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고 정선생한테 이야기하니까

 

  '그러냐고'

 

  하면서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1979년 교사 월급이 8만 원에 한 달 방값이 3만 원이니까 만원은 큰돈이었다.

 

  1980년에는 공화국이 바뀌면서 교사 월급도 2배인 17만 원이나 주었지만 여전히 만원은 큰돈이었다.        (1979년 10.26 사태(박정희 대통령 피살)로 유신 체제가 막을 내리면서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군대의 지휘 계통을 무시하고 병력을 동원하여 군사권을 장악하였다. 제5공화국은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1981년 3월)부터 노태우 대통령 취임(1988년 2월)까지의 시기를 가리키는 용어. (나무 위키에서)   

  그렇게 24살의 봄날은 가고 있었다.

  1980년에는 너무 어리다고 담임을 안주어서 더 심심하고 재미없는 봄이었는데 정선생이랑 같이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 선생이 말해 주었다.

 

 "정선생 지금 김영경 선생 만나는 거 알아?"

 "응???"

 

  김영경 선생은 작년 그러니까 내가 초임 발령받았던 79년도 연말에 교무실에서 방학하기 전날 망년회 비슷하게 음료수와 과일과 떡을 먹으면서 그다음 날 방학 시작하는 행사로 강릉으로 여행 갈 거라서 모두들 들떠서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김영경 선생한테 노래하라고 소리 지르면서 박수가 나왔다.

 영어 선생이었던 김영경 선생은 미군부대에서 일한 적 있다 했는데 나이가 40대 후반이어서 지금 살아있다면 80대 후반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배우보다 춤도 더 잘 추고 팝송도 더 잘 불렀다.

 기가 막히게 잘 추고 잘 불러서 처음 본 우리들은 입을 떡 벌리고 놀라서

 

 '헉'

 

 하는 느낌으로 보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 정도이고 그 선생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랐다.

 

  그런데 24살의 아가씨가 20살도 더 먹은 유부남을 만나고 있다고? 아무리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한다 해도 늙은이 티가 팍팍 나는?

 

 그날 퇴근해서 자지 않고 정선생을 기다렸다.

 

 "너 김영경 선생 만나고 다닌다며? 그럼 매일 저녁 나가는 게 김영경 선생 만나러 나가는 거였어?" 

 

  순간 당혹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던 정선생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자리를 펴고 자더니 다음 날에는 일찍 들어왔다.

  집에 들어온 정 선생은 영숙이의 얼굴을 눈치 보듯 살 피면서 말을 꺼냈다.

 

  "오늘 김영경 선생 만나러 가는데 ~"

  "둘이 만나는 게 아니라 강호 선생이랑 셋이 만나는데 ~"

  "첨에는 강호 선생이랑 최 선생이랑 넷이 만나다가 요즘은 셋이 만나고 있어."

  "너도 같이 갈래?"

  "지금 레스토랑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같이 나오라고 하더라."

  "아니"

  "싫어."

 
대놓고 말을 못하고 속으로만

'미쳤어?'

  '그렇게 나이 많은 아저씨들을 만나러 가게?'

  '애들이 서너명씩 주렁주렁 달려있는 아저씨들을 뭐하러 만나러 가?'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냐?'

  '맨 정신이야? 정신차려!'

 

 

  비웃음 같은 웃음을 늘 입꼬리에 달고 사람 얼굴을 읽는 것처럼 보이는 호리~호리 강호 선생이나 뚱뚱한 몸에 느끼하게 온화한 웃음을 짓는 얼굴인 김영경 선생은 단짝이었는데 두 사람 다 정말 싫었다.

  영숙이가 싫어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지만 그런 선생들을 정선생이 뭐가 좋다고 만나러 다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강력한 영숙이의 말에 아무 말 못 하던 정선생은 그날도 외출을 하였다. 

  외출하였다가 한밤중에 술이 취해서 들어온 정선생은 혼자서 이런 말 저런 말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김영경 선생이 서울에 있는 결혼 안 한 남동생을 소개해준다고 같이 올라가자고 하더라고.~ "

  "같이 서울 올라갔는데 기차 침대칸을 예약한 거야."

  "알고 보니 소개해 준다는 것도 거짓말이었고 나를 꼬시려고 그랬던 거야."   

  "남동생은 만났어? "

  "만나긴 만났는데 남동생이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싫다고 했다 하더라고"

  "김영경 선생이 서울 여기저기 구경시켜 줬는데"

  "그땐 정말 좋았는데......".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네."

  "처음엔 최 선생하고 강호 선생하고 4명이 만나서 놀았는데...." 

 

  정선생은 울진 않았지만 괴로운 얼굴로 일의 앞뒤를 두서없이 이야기했고 자기도 모르게 빠져든 것에 대해, 아버지 같은 사람하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간 것에 대해서 자책하고 있었다. 

 

 

  "방 구해지는 대로 나갈게." 

 

  영숙이는 학성고등학교 앞쪽 주택으로 이사를 하였다.  방 2칸을 터서 하나로 만든 방하나에 작은 부엌이 있는 집으로.

 

 

5. 정선생 이야기 ㅌ.

 

  같은 학교에 근무한다 해도 교사가 70명 가까이 되는 큰 학교라서 같은 부서 이외에는 서로 친한 사람 말고는 가까이 지내지 않는다.

  정선생 하고는 부서도 같지 않았고 또 상과 선생하고 교련 선생 하고는 같은 학년이 아니면 서로 그러려니 하고 지내는 사이가 돼버린다.

 

  영숙이가 사는 집 근처에는 그다음 해 새로 들어온 체육선생이 살았다.

  키가 훌쩍 크고 허여 멀 금한 서울에서 온 총각 선생은 좀 싱거워 보였고 원래 이성 문제뿐만 아니라 눈치에 둔감한 영숙이는 그냥 앞자리에 키가 작은 무용 선생이 앉아 있고 그 옆자리에 체육 선생이 앉아 있는가 보다 할 정도였다.

 

  "정선생 이사했어요?"

  "응. 학교 뒤쪽에 있는 빌라로 이사했어요."

  "아, 이사했구나." 

 

  1981년.

  이제 근무한 지 3년째.   

  25살. 

  1학년 10반 담임이었다.

 

  시험지는 처음 발령받던 1979년에는 파란 필경사 종이에다 긁어서 인쇄실에 들어가 직접 선생님들이 롤라에 잉크를 묻혀서 인쇄했지만 1980년에는 종이에다 볼펜으로 쓰면 복사해서 인쇄기에 걸어서 인쇄를 했다. 

  생활기록부도 잉크를 펜에 묻혀서 기록하던 시절로 모든 걸 전부 수작업을 하던 시절이다. 

 

  정신없이 바쁘던 3월과 4월이 지나고

  5월.

  갑자기 정선생이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소문 속에서도 꿋꿋이 학교를 잘 나오던 정선생이 그만두었다는 소리에 별 관심을 안 가졌는데 우연찮게 정선생 일을 알게 되었다.

 

  따뜻한 날씨에,

  불어오는 봄바람도 부드러운 5월 어느 날.

  모두들 수업을 들어가고 교사 네댓 명이 앉아 있는 조용한 교무실.

 

  별명이 영국 신사이셨던 교장 선생님이 출장 가신 교감 선생님 옆에 놓여 있는 의자에 조용히 앉아 계시면서 교무실 여기저기를 바라보고 계셨다. 

  그 교무실 문을 열고 어떤 살집이 좀 있는 아주머니 한분이 들어오셔서 곧바로 교장 선생님 앞으로 가시더니 떠들기 시작했다.

 

  "김 선생 처음에는 내가 그렇게 안 봤는데."

  "아니 어쩌면 그럴 수가 있어요."

  "그렇게 매너 있게 잘해주더니 아니 애를 얼마나 때렸으면 애가 아주 정신이 나갔어요."

  "강 선생하고 몰래 들어와서 물건을 다 때려 부시고 "

  "애를 때리다가 기절하니까 물을 부어서 깨워가지고 때리다니"

  "아니, 그럴 수가 있어요?" 

  "이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아니 우리 애가 무얼 그리 잘못했다고 애를 그렇게 찾아와서 때린대요. 때리기를." 

  "내가 분해서 참을 수가 없어요."

  "분해서 참을 수가 없다고요."

 

  아주머니는 흥분해서 두서없이 떠들어 대었다.

  영숙이 뒤에 앉아 계시던 교장 선생님 앞에서 떠드는 소리로 미루어 보건대 정선생 어머니셨다.

  교장 선생님도 처음에는 어리벙벙한 얼굴로 듣고 계시다가 사태를 파악하고는

 

  "아, 예, 교장실로 갑시다. 교장실로 가서 얘기합시다."

 

  정선생은 그냥 그만둔 게 아니었다. 

 

  정선생과 김영경 선생의 사이가 깊어지면서 김영경 선생의 부인이 알게 되었고 이혼하자고 하니까 정선생과 김영경 선생이 헤어지기로 하고 정선생은 학교 위에 있는 빌라로 이사를 한 것이다.

 

  누구에게서 이야기가 흘러 나왔는지는 몰라도 그동안 정선생에 대한 나쁜 이야기들은 교무실에 화젯거리로 끊임없이 흘러다녔었다.

 

  '정선생님이 입고 다니는 하늘하늘 비치는 옷 말이야. 정선생 엄마도 같이 입는대'

  '정선생 엄마가 술집 한다더라.'

  '엄마하고 둘이 사는데 홀어머니에 외딸이래.'

  '정선생 키울 때 엄마가 매일 쌀겨로 주머니를 만들어 문질러 줘서 피부가 그리 곱고 부드러운 거래.'

 

  영숙이가 본 정선생 어머니는 그냥 보통 엄마였다.

  딸을 엄마 혼자 손으로 애지 중지 길러낸 그냥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주머니였다.

 

  이야기는 이랬다.

 

  두 사람이 헤어지기로 하고 정선생은 학교 바로 옆에 있는 빌라로 이사를 하였다고 한다.

  그다음 해 새로 온 체육 선생이 집이 서울이다 보니까 자주 못 올라가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특기생 관리 때문에 학교에 남아 있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학교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일직을 하던 시절이다. 

 

  일직을 하던 정선생이 체육특기생 관리 때문에 학교에 남아 있던 새로 오신 체육과 박시호 선생님과 이런저런 말을 나누게 되었다. 

 

  "벌써 저녁이네요. 저녁 먹어야 하는데 우리 집에 가서 먹을래요? 바로 학교 옆에 있는 빌라에 살거든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뭐 어때요. 아무도 없는데, 우리 집에 가서 같이 저녁 먹어요. 객지에서 자취하는 사람끼리 서로 도와야지요. 어차피 저도 혼자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시작되어 박시호 선생은 자주 정선생 집으로 놀러 갔다.

  부인이 이혼하자고 하여 정선생과 헤어지고 부인에게 돌아간 김영경 선생이 그 이야기를 듣고 강호 선생하고 정선생 집에 가서 몰래 창문 넘어 들어간 것이다.

 

  그날도 박시호 선생은 정선생과 함께 있었다.

 

  "이거 누가 사다준 거지?"

  "어 그거? 내가 사다 준거지."
"그래?"
"와장창".

그렇게 말하면서 물건을 부셨고 놀라서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바라보는 박시호 선생한테

 

  "박시호 선생 집으로 가세요."

 

  박시호 선생을 내보낸 후 김영경 선생은 정선생을 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네가 그새를 못 참고 또 남자를 꼬셔 들여?"

  "그래. 체육 선생은 어떻드노."

  "이게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등치 큰 남자가 한 번만 때려도 실신할 텐데 맞아서 정신을 잃은 정선생한테 김영경 선생은 물을 바가지로 떠다가 부어서 정신이 돌아오게 한 다음 또 때렸다고 한다.

 

  영숙이는 치가 떨렸다.

 

  아무리 그래도 서로 해를 넘기면서 부비부비 했던 사이인데 얼마나 얕잡아 보았으면 그럴 수 있었을까나.

  정선생이 홀어머니에 외딸에다가 정선생 엄마가 술집 한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함부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영숙이는 정선생이 단정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꽃은

  꽃이 피어나는 시기가 있다.

  정선생은

  다른 사람보다 좀 일찍 꽃이 피는 여자였는가 부다.

  또 꽃이 피는 호르몬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을 거라는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김영경 선생이나 강호 선생이 그러는 건 아니었다.

 

  객지에 혼자 사는 영숙이로는 정말 치가 떨렸다.

 

  무서웠다.

  무서워서 떨렸다. 

 

  같이 초임 발령받아서 친하지는 않았다고는 해도

  이건 일방적으로 정선생이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남자들의 폭력  ~ 인과응보나 뒷날을 생각지 않는 무식한 행동.   

 

  그날 학교에 출근하는 대신 대구 집으로 간 정선생은 얼마나

  울고 ~

  울고 ~

  또 울고 ~

  또 울었는지 ~

 

  그걸 찢어지는 가슴으로 보다 ~ 보다 ~ 보다 못한 정선생 엄마가 분해서 학교로 쫓아온 것이다. 

 

  그런 짓을 하고도

  헐 ~

  헐 ~

  헐 ~ 웃으면서

  다음날 출근만 잘하고 ~ 잘 지내는 ~

  김영경 선생과 강호 선생이었다.

 

  오히려 통쾌하다는 듯이 정선생 욕을 하고 다녔었다. 

 

 

6. 정선생 후일담.

 

  영숙이는 정선생이 당한 거를 생각하면 가슴 한쪽에 날카로운 아픔이 서늘하게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고는 하였다.   

 

  내일은 아니었지만 객지 생활을 했었고, 같은 시기에 발령받은 초임 발령자로서 다른 사람들은 가십처럼, 재미있는 동화책이나 소설 줄거리들을 이야기하듯이 말했지만 영숙이는 가만히 듣고 있는 것만 해도 힘이 들었다.

 

  들을 때도 무심코 듣는 것처럼 표정 관리를 해야 했고 누구 한 사람한테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다. 

  객지 생활은 여전히 외로운 생활이었고 말할 상대나 상의할 상대가 없다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그래, 객지 생활은 힘든 거야. 객지 생활이 힘든 거지."   

 

  정선생은 몸이 추스러진 다음 온산에 있는 고등학교에 잠깐 근무하다가 사우디로 돈 벌러 갔다 돌아온 대학시절 첫사랑한테 시집갔다고 한다.

  서울 사는 최 선생이 서울로 시집간 정선생을 만나서 근황을 이야기해주고는 하였다.

 

  '딸 하나 낳고 잘 살고 있다고'

 

  최 선생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영숙이는 정선생 가슴에 일생동안 불고 있을 겨울바람을 ~

  누르고 ~

  눌러도 ~

  면도날처럼 불어올 ~

  얼음처럼 날카롭고 찬바람을 보는 것 같았다. 

 

 이혼녀라고 소문난 최 선생도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 이후 이후락 재단이었던 울산, 울주 지역에 있던 모든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로 넘어가면서 교사들도 함께 공립학교 교사가 되었다.

 

 '청첩장 ~'

 '김영경 선생 딸을 결혼시킨다는'

 '청첩장' 

 '청첩장~'

 '강호 선생의 딸을 결혼시킨다는'

 '청첩장~'

 

  눈부시게 발전한 인터넷 덕분에 모두 연락이 되어 울산지역 교사들에 대한 경조사는 다 알게 된다. 

 

  두 선생의 딸들이 결혼한다는 청첩장 소식에 영숙이는 마냥 해맑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분명히 딸들이 결혼할 만한 과년한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결혼시킬 터 ~

  만약 딸들이 정선생처럼 그런 일을 겪었다면 김영경 선생이나 강호 선생은 어떻게 했을까? 

 

  체육선생이었던 190센티 가까이 되었던 박시호 선생은 옆에 앉아 있던 작고 귀엽고 이쁜 무용 선생하고 결혼하였다.

  결혼하면서 무용선생님은 선생님 하는 게 싫어서 그만두고 아이 키우고 살림하고 박시호 선생은 이후락 재단인 여상을 그만두고 제일고 재단으로 옮겨서 지금도 알콩 달콩 잘 지내고 계시리라~

 

  영숙이는 얼마나 둔감했는지 둘이 결혼 발표할 때까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때에는 지역마다 반상회를 엄청 강조하던 시절이라 공무원이었던 교사가 반상회 지도를 해야 해서 같은 동네에 살면서 반상회에 참석 안 했다고 박 선생을 얼마나 뭐라 했는지.

  영숙이가 박 선생한테 머라고 잔소리를 할 때 짝지였던 두 분.

 

  "책상 밑으로 손잡고 있었어요."   

 

  눈치 제로 영숙이는 중매로 ~~~

  ㅋㅋㅋ

  독신을 면했다. 

 

  <<이후락 재단>>

  이후락 :1924년 2월 경상남도 울산군 웅촌면 석천리에서 태어났다. 1943년 울산 공립 농업학교 졸업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교하여 이듬해 3월 국방경비대 소위로 임관, 장면 내각이 만들어준 정보기관인 총리실 산하 중앙정보연구위원회 연구실장으로 임명되었다.

  국가재건 최고회의 공보실장 ~ 대통령 비서실장

  이후락 정보부장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 질문

   "이 부장 선생, 남반부에서는 왜 미 제국주의 군대를 붙잡아두고 돌려보내지 않고 있소?"

   이후락은

  "수상 각하, 한반도에서 물러난 미군을 다시 불러들인 게 누구요. 수상 아닙니까? 6.25 전쟁이 없었다면 왜 물러갔던 미군이 다시 들어왔겠소?"

  라고 대답했고 김일성은 하하하 하하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고. 

  이후 7.4 남북 공동 성명을 이끌어냈다.
 

  이후락은 중앙 정보부장 해임 이후  중남미 바하마로 날아가서 거기서 한동안 숨어있었다고 한다. 심장질환 때문에 요양하며, 겸사겸사 미국 유학 중이던 아들을 통해 "나는 정권의 비밀 다 알고 있으니 날 건드리지 말아라, 그러면 나도 입 다물겠다."는 식으로 정치적 보복을 피하려 박정희 대통령과 모종의 협상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숙청당한 후 박정희를 맹비난했던 김형욱과는 달리 박정희에 대해 적대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박정희도 이후락에 대해서는 김형욱, 윤필용, 강창성 등과 달리 숙청하지 않고 그냥 놔두었다.

  제10대 국회의원

  1985년 정치활동 규제에서 풀렸지만 정계를 완전히 은퇴하고 경기도 광주시에서 도자기를 만들면서 은둔 생활을 하였다. 그 후 2009년 10월 31일에 사망했다. 향년 86세 (만 85세). 그렇지만 박정희 밑에서 일하던 동료와 선후배 대부분은 끝이 좋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천수를 누린 셈. 김재규는 10.26으로 인하여 이듬해 처형되었고, 차지철은 김재규가 발사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김형욱은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으며 박종규는 간암으로 인해 제5공화국 정권이 끝나기도 전인 1985년에 죽었다.

  자식들이 국내외에 막대한 양의 부동산을 상속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가치가 폭등한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막대한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알려진 부동산 외에도 박정희의 거액 스위스 차명계좌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향인 울산에는 이후락이 설립한 학교가 많다. 현재 신정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꾼 우석고등학교는 이후락의 호를 딴 학교였고, 학성고등학교는 이후락의 본관인 울산의 옛 별호를 딴 학교다. 울산여자상업고등학교도 이후락이 설립한 학교로 알려져 있다.

   1972년 이른바 "10월 유신"도 이후락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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