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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

가계부를 적으며

by 영숙이 2020.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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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를 적으며>

                                            (이종화씀. 전 화정실업고등학교 교사. 처용수필 제2호. 1996년 겨울 )

 연초에 시작하는 가계부 적기, 쓰윽 훑어 넘기면 내 가계부는 콩나물, 풋고추, 마늘, 대파 따위의 기본 반찬거리로부터 낙지, 쇠고기, 인삼들에 이르는 값비싼 항복들고 간혹 적혀 있다. 서너 달이면 벌써 가계부는 닳은 표지에 온갖 영수증이 덕지덕지 붙여져 있어 배가 불룩하다. 

 가계부를 적을 때 나는 가급적이면 생각나는 모든 항목을 옮겨 적는다. 시내 버스 요금에서 빨래집게 사고 남은 거스름돈까지, 간혹, 한 두 가지가 생각이 안나, 어디다 썼을까 한동안 고민하기도 한다. 그래도 생각이 안날 때 적은 돈이면 콩나물에 덧붙이고 제법 돈이 비면 쇠고기나 인삼을 한 근 더 산 걸로 적기도 한다. 책임 없는 행위긴 하지만 사소한 몇 푼에 고민고민하는 게 실은 짜증이 나서다. 

 꼭 그럴 때다. 남편이 책을 보다가 아니면 평소에 잘 듣지도 않는 클래식 테잎을 들으며 말을 거든다. 여태 몇번이고 들어본 말인데도 그는 자못 진지하게 말한다. 당신 가계부 적는 것 보면 우스워 죽겠어. 가계부란 모름지기 연간이면 연간, 월간이면 월간을 기준으로 하고 수입이 얼마, 지출이 얼마, 그 결과로 얼마 남았더라가 돼야 하는데 또 결과에 따라서 지출이 많았으면 다음 달에는 허리띠를 약간 조르고 하는 따위의 계획이나 대비책이 나와야 하는데 당신 가계부에는 그것이 없어,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어. 그런 가계부를 뭣하러 적는지 몰라.

 남들은 어떻게 적는지 몰라도 내가 적는 가계부는 남편의 말 그대로다. 나는 지출의 근거만을 남기고 있다. 한 마디로 내 가계부는 영수증 붙임철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나는 이런 식의 가계부를 팔 년째 적고 있다. 돈을 쓴 출처라도 적어야 내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이 장난 삼아 던지는 말에 나는 신경이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뭔가를 계획하고 결론을 내리고 다시 어떤 식이든 준비를 하는 일은 예사롭지가 않은 것이고 나는 가계부를 통해 그런 치밀한 계획을 만들고 그 계획대로 지출하여 가정의 회계를 검토하며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심각한 목표치에 도달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하고 많은 일 가운데 가계부를 통해서까지 복잡하게 계산하고 따지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식으로 적고 내 식으로 영수증을 철해 두는데, 말리는 시누이처럼 슬쩍 끼어드는 남편이 슬쩍 미워지기도 한다. 숨겨둔 비밀의 일부를 들킨 기분이랄까. 

 

 내일이면 남편의 생일이다. 모레는 또 크고 작은 두 아들의 생일이다. 연이은 생일에 월급 봉투를 생각했는지 남편이 자기의 생일에 미역국만 끓이라고 선수를 친다. 고맙기도 하다. 그럴 때 나는 되려 더 많은 품목의 생일 찬거리를준비하고 싶어진다. 

 미역은 지난 여름에 시가에서 얻은 무공해 청정 미역이 남아 있고 한 해 동안 가계부에 적어 보지 못한 어떤 새로운 품목을 떠올려 본다. 아이들 생일에는 뭘로 준비할까. 막상 준비할 때만  계획을 하고 사고 나면 영수증과 지출만 적어둘 팔년 습관을 반복하며.

 보통 사람들처럼 나도 신접 살림을 시작하며 가계부를 적었고 시작의 잘못인가 지출만 적어온 버릇이 그 후로 팔년 동안 약간의 진전도 없는 것이다. 저으기 가계부를 적으며 걱정되는 것은 가계가 아니라 내 생활의 기록과 계획인 것이다. 책을 사고 무엇을 샀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콩나물 값으로 덧붙이는 식으로 내 가계부는 쓴 금액만 맞으면 내용은 약간 수정될 수도 있다. 그리고도 아무 탈없이 또 남은 가계부를 적어 나갈 수 있다. 내 인생은 앞으로의 내 글은, 하는 생각에 머물게 되면 꼼짝없이 가계부 적는 방법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지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결과를 가계부에 적는 방식으로는 좀 곤란하다 싶은 것이다. 내 글에도 가계부의 버릇처럼 간혹 진짜 해야 할 말이 빠져 있거나 가장 중요한 주제가 없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조금씩 깊어지기도 한다. 

 가계부. 남편은 가계부를 적지 않는다. 그는 적는 일이 없으나 신통하게도 그날의 할 일과 앞으로의 해야 할 일들을 구분하고 계획하며 생활하는 듯 하다. 놀랍다. 차라리 그에게 가계부를 맡겨 버릴까. 안된다. 그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내가 가계부를 적는 일보다 편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가정 경제에 있어서는 내가 낫다는 진단이다. 집마다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남편이 가계부를 적는 가정이 몇이나 될까. 있긴 있는 걸까. 

 그가 한번은 농담삼아, '어험 내가 가계부를 적을까' 했다. 임금 기침을 앞세운 걸로 보아 그때 나는 그가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로 받아 들였다. 나도 남편처럼 사회 생활을 하는데 왜 남편이 가계부를 적겠다고 했을 때 실직의 예감으로 느꼈을까. 그런 뜻은 당초없었을 텐데. 모를 일이다. 

 여전히 우리집의 가계부는 내 몫이다. 콩나물에 풋고추에 마늘에 대파에, 책 보고 어설피 만든 낙지볶음 선보인 죄로 양념 버무리는 재료도 책에 나오는대로 적고 식탁 위에서 구워 먹은 소금구이 원료도 <한우>하고 구체적으로 적는다. 괜히 지나간 날짜를 쓰윽 훑고는 내일 날짜 적어 놓고 연필 입에 한번 문다. 그제서야 살림 잘 살고 있다는 사소한 위안을 다지며 약간 더 두툼해진 책장을 덮는다. 

 마침 주방에서 물을 끓이시던 어머니께서 장보러 가야지 하신다. 서둘러 가계부를 옷장 속에 보관하고 - 중요한 물건을 옷장 속에 넣어두면 안심이 된다. - 다시 장보러 가는 신세가 된다. 장에 가면서 가계부에 대해서는 잊어버릴 것이다. 눈앞에 식구들이 좋아할 맛있는 반찬거리들이 널려 내 선택을 제촉할 것이므로, 우리 집 가계부는 여전히 반찬거리 사고 난 뒷전의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내가 살림을 사는 한 나와 여정을 함께 할 가계부. 그날의 소중한 경험을 기록하는 일기 대신 돈으로 그 날의 지출을 기록해 온 그 동안의 가계부. 어쩌다 중요한 항목을 빠드리고 대수롭지 않은 항목에 덧붙여 총체적으로 눈가림해 버린 가계부. 

 미안하다. 반성이 없는 내  인생.    

 가계부.     

 가계부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릿해져서 가계부를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신혼 초에 가계부를 적으라는 남편의 지시(?)에 따라 콩나물, 대파, 마늘 등등 열심히 적었다. 마치 가계부가 전부인양 하나도 빠짐없이 적고 시댁에서 생활비 운운에 드릴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생활비는 기본이고 보너스 타면 보너스 가져갈 일이 생겼고 계돈 타면 계돈 가져갈 일이 생겼고 대출해서 드려야 했고 집안 대소사를 다 챙겨서 보내야 했고 재형저축 만기 되는 날에는 시댁에서 일하는 아이 월급으로 가져갔다.   

 

 어느 날 시부모님이 오셔서 영숙이가 직장에 있는 동안 가계부를 자세히 훝어보셨던가 보다. 가계부를 보셨다해도 말씀 하지 않으셨다면 보셨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었을텐데 방학을 시작하자마자 아이 데리고 일주일동안 시댁에서 특훈?으로 일하는 아이에게서 반찬하는 법을 이것 저것 배우고 집에 오려고 하는데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8월 중순에 큰집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 지내러 가야 한다."

 "제사요? 산사람도 못챙기는데 제사 지내러 안갈거예요."

 "뭐? 가계부 보니까 니 동생 조카 백일에 담요까지 사다 주면서 챙겼던데 제사 지내러 안간다고?" 

 (결론은 친정에 갔다가 큰 집에 제사 지내는 것도 모르고 큰집 식구들한테 인사 드리러 가자고 해서 따라 갔는데 제삿날이었다. 여자도 제사에 절을 하라고 하는데 그냥 서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제사에 억지로 데려 가지 않았다. 

 

 그동안 곪아 있던 것이 순식간에 터졌다.

 이후로 가계부는 절대로 안썼다.

 가계부는 안쓰고 영숙이 월급은 무조건 장기 저축을 하였다. 월급날 남편이 월급을 타오면 무조건 한달 동안 필요한 생필품을 전부 다 사들였다. 

 

 시부모님은 그렇게 살아오셨으니 그때까지 살아오신 방법대로 하신 것이고 영숙이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경제적 자유를 얻었을까? 절대로 아니다.

 친정에서 제일 잘 나가는 남동생이 하늘에 별이 되는 것을 보고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인간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항복하고 예수께로 손들고 나아갔다.

 

 예수를 믿기 시작하고 3년 동안 십일조를 하고 돈이라는 물질에서 놓여 났을 때 비로소 지혜를 주셨고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

 예수님 믿고 부터는 기쁜 마음으로 시댁에 신혼 때의 3~4배의 생활비를 드렸다.

 물론 그때 그때 필요한 것을 드렸고 울산으로 이사 오셔서 4 ~5년동안 울산 주위의 유명한 음식점이란 음식점은 안 다녀 본데가 없다.   

 

 지금 어머님은 요양원에 계신다. 매주 주일마다 방문했었는데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뵙지를 못한다.

 지난번에 뵈었을 때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천년을 살 것처럼 나부댄다 해도 결국은 백년을 못 체운다. 나의 젊은 날에 부끄러움의 상징이 가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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