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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

존재의 이유

by 영숙이 2020.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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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이유>     

                                            (이종화씀. 전 화정실업고등학교 교사. 처용수필 제2호. 1996년 겨울 )

 언제부터인가, 이른 아침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할 때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 온다. 

 "누가 이 시간에 피아노를 치는 것일까?"

 출근 시간마다 홈통을 타고 내려가는 물소기, 변기 물 내리는 소리 따위로 우웅거리던 내 귀는 그 맑고 분명한 소리에 놀라 소라기 된다. 소라가 그 소리를 듣는다. 이 가을 아침에 베에토벤의 '열정'을 연주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피아노 곡조에 마음이 알싸해져 나는 눈을 감는다. 반쯤 눈을 뜨고 아이샤도우를 그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눈썹을 그린다. 눈썹 꼬리는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할 즈음이면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작은 촛불 하나 오롯이 감싸고 있는 그의 손이 떠오른다. 

 인하. 대학 졸업 후 많은 시간 잊었던 그가 생각난다. 새치 머리 덕분에 또래보다 나이 들어 보이던 그가 조용하게 책을 읽거나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내 가슴은 뛰었다. 

 강의실에서, 은행나무 아래서, 해바라기가 있는 풍경 속에서 차를 나눌 때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의 손가락조차 피아니스트의 그것처럼 고결해 보였다. 

 그러나 나의 스무 살이 고통스러웠듯이 그 또한 소도시에서의 가난한 장손으로 살아가기가 힘겨웠나 보다. 

 어버이들이 물려준 남루함에 허기져 하늘의 색깔을 느낄 수도 신선한 바람을 맞이할 수도 없었던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기댈 언덕이 되지 못했다. 

 치매로 고생하시는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할머니를 봉양하느라 늙어가는 어머니의 주름살을 헤아리면서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침통하게 묻곤 하였지. 

 "글쎄..."

 명쾌하게 대답을 하지 못했던 내가 답답했던 것일까. 졸업 하기 전에 그는 뜻밖의 결혼을 하였다. 피아노 학우너을 한다는 그녀의 아내ㅔ 덕분에 그의 신혼 집에는 늘 피아노 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세월의 江에 흔들리며 서로를 잊고 지내다가 바람결에 묻어 오는 그의 소식을 들은 것은 몇년 전이다. 그의 아내가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쓰러져 수술로 딸 아이를 낳았지만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 있다는 것이다. 

 왜 삶에는 복병이 숨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 인간들은 그 느닷없는 소용돌이를 미리 알 수 없는 것일까. 동물들은 위험의 순간을 예감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는데 지혜롭다고 외치고 있는 우리 인간에게는 선지(先知) 능력이 없는 것일까. 

 졸업 후 10년. 교원 연수장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울산에서 부산으로 새벽 5시면 나는 그를 만나러 직행에 몸을 실었다. 

 "아직 그렇게 누워만 있는데, 언제까지 네 젊음을 저당 잡힐거야? 너는 이제 겨우 서른 셋이야. 그 여자와 헤어져. 네 딸 생각도 해야지. "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지. 그러나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을 버리고 나면 나는 과연 자유로울까..."

 그의 눈에 누물이 고였다.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을 지키려고 하는 고귀한 마음을 나는 벌써 잊었는가. 항뇽운의 시에서처럼 진정한 자유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낮추고 버리는 것이 아닐까. 

 대학 졸업 후 교사 발령을 기다리면서 정신박약아를 돌보면서 지낸 시간이 있엇다. 특수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집에서 유기된 채 지내야만 하는 열 아홉, 스무 살의 아이들과 산과 들을 돌아다니다가 저녁이면 귀가 시키는 반복적인 일상이엇다. 그러다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재활원을 만들기로 하였다. 평생 동안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곳, 가능하다면 직업 훈련까지 해서 그들 스스로의 삶을 살도록 배려된 장소를 찾기 위해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다녔다. 

 칠월의 더위 속에 우아한 자태를 한껏 자랑하고 있는 능소화가 아름답던 마을을 발견하고 모두들 좋아서 부등켜 안았다. 여름 하늘을 향해 소망하듯이 피어 있던 주홍빛의 단아한 꽃이 능소화라른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마을 주민이 우리들에게 준 상처는 여름 소나기처럼 갑작스러웠다. 

 모여진 기부금을 가지고 어렵게 땅을 샀지만 결국 건물을 짓는 일은 포기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그들의 강경한 태도에 우리는 지역 공청회를 여는 방법으로 대처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름의 더위가 철정에 다다르자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이 타고 잇는 스쿨 버스가 통과하지 못하도록 정자나무 아래 드러누워 있었다. 하얀 수염이 멋스럽던 할아버짇르의 삼베 적삼 뒤에는 굵은 몽둥이도 보였다. 순진한 아이들이 일제히 입을 열어 울시 시작하였다. 나는 참을 수 없ㅈ는 분노로 뭄이 떨려 왔지만 아이들과 엉겨서 울 수 밖에 없었다. 그렇제 내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져 본적은 처음이었다. 무엇이든지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고 믿었는데 현실은 너무나 거대한 벽으로 다가왔다. 

 어렵게 덕계에 재활우너을 지었다. 그리고 개우넝르 하엿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즐거움에 취해 테이프를 자르고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은 미용사가 될 꿈에 부풀어 있거나 재봉사가 될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회오리 바람이 아이들의 항해를 방해하러 나타났다. 성지원 사건이 터지면서 우리 복지 단체에게도 어두운 폭풍우가 덮친 것이다. 아, 수순함은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이들과 헤어져 산을 내려올 때 메아리 되어 퍼지던 내 이름 석자. 그들에게 끝까지 힘이 되지 못했던 나약한 내 이름에 매달린 어눌한 목소리, 어슬픈 몸짓이 떠오른다.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잊고 살았다. 정상적인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장애자인 그들을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새 눈빛은 흐려지고 가슴에는 먼지가 자옥하게 앉았는가 보다. 10년 만에 만난 그에게 장애자인 아내를 버리고 훨훨 자유를 향해 날아가라고 조언까지 했으니 말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0년 만에 그가 다시 묻는다.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을 받기 위해서."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으로 내가 그에게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번데기가 되고 싶어서..."

 나는 이제 새롭게 허물벗기를 해야 할 것이다. 사랑한다고 목이 터지게 외치는 대신에 조용히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삶의 방식을 가꾸어 나가야겠다. 돌이켜 보면 내 욕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 입혔을까. 그것 때문에 내게도 생채기가 남았으니. 

 그에게서 배운 새로운 사랑법으로 마침내 아름다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싶다. 그것은 확실한 존재 이유가 될 것이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또 다른 의미 있는 타인에게도 정상적인 사람에게도 장애자에게도...

 피아노 소리가 나를 깨운다. 나는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고 싶다. 

  영숙이는 이분과 비슷한 시기에 수필 작가 모임에 참석을 했었다. 단아한 분위기의 여선생님이셨다.  30대 후반의 젊은 선생님이셨는데 이렇게 인생의 깊이가 녹아난 글을 쓸 수 있었다니 지금 읽어 보아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숙이는 수없이 많은 인생의 파도를 헤쳐나오고 예수님을 만난후 수없이 많은 예배와 설교와 말씀의 연단을 거치면서 비로소 이제서야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이라도 그런 생각을 한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말한다면 할말이 없지만 더 늦기 전에 또는 전혀 그런 생각없이 끝날 수도 있었지 않았느냐고 한다면 정말 할말이 없지만 이종화 선생님처럼 젊은 시절부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면 좀더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give & take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 간다는 give의 마음으로 살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나.

 

 돌아보면 얼마나 낯뜨겁고 부끄러운 일이 많았는지 일일이 다 적을 수 조차 없는 부끄러운 젊은 날 들이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 돈만 모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소유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들이다.

 이제 돌이켜 본들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나.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깊이 생각하고 아낌없이 주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려 애써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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