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칼럼/해외여행

스웨덴

영혼의 닻을 찾아서 2021. 4. 18.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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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     

 

 스웨덴 릴마.

 

 굳모닝.

 굳모닝.

 코리아.

 

 입구 쪽에 다와가는데 유모차 속에 귀여운 여자 아이가 쿨쿨 자고 있다.

 천사다.

 

 사회 시간에나 들었던 복지의 나라

 천국의 나라.

 스웨덴.

 

 해발 26미터

 스톡홀름에서 제일 높은 언덕.

 

 15개 섬.

 남섬.

 동물의 섬.

 사냥터. 유원지. 마사오 박물관. 동섬.

 부자들이 사는 곳. 해군의 나라. 해군의 섬 2개.

 해군기지. 관공서. 옛동네. 가물라스턴 왕궁. 대성전. 대광장이 있는 곳 기사의 섬.

 돈 있는 사람이 살던 가물라스턴 섬. 호수. 

 여기는 바다.  우리가 타고온 크루즈가 정박된 곳.

 

 인구 1100만명.

 남한 4배, 유럽 4번째 크기.

 농경기 시대에 인구 절반 이민.

 자원은 철강, 목재.

 구스타프왕이 국부 재위 30~56세까지.

국회의사당과 왕궁등 700년 넘은, 1252년 수도 정할 때 지은 건물.

 

 1792년 왕 가면 파티에서 왕 죽이는 반역에는 토막 사형인데 사전에 발각

 있는 재산 바치고 성을 바꿈.

 용서.

 구스타프 4세.

 

 1534년 왕실 법.

 사회법.

 국법.

 나라를 위해 충성.

 

 200년 되니 그랜드 호텔.

 왕의 정원

 노벨과 노벨상.

 통나무 섬.

 

 ~ 스톡홀름 뜻

 

 자전거.

 우산.

 친환경화.

 처음으로 친환경 도시.

 문화적 도시.

 아름다운 도시.

 왕의 섬 도착.

 건너편 남섬.

 

 시청사는 12년 동안 건축.

 전국에 시청사 274개.

 에스베리굿 45.

 싱글

 

 엘사.

 엘사의 계단 8개.

 

 피사룸.

 로마실.

 발코니.

 분수.

 층계.

 

 고딕양식.

 네셔널 로만틱 양식.

 고딕양식 영향.

 

 푸른 방.

 황금의 방.

 의원들의 방.

 회의 방.

 

 노벨 ~ 12월 10일 120개의 회사.

 20개 연구실 건물.

 

 노벨하우스

 스웨덴, 이태리, 프랑스에 집을 사고 6억원 연구 개발.

 한국 3위. 일등 스웨덴. 2위 핀란드

 

 질량식 메달을 걸어 주는데 당일까지 본인도 모름.

 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문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푸른 방.

 태양의 방.

 노천 하늘을 보는 곳에 타일 100만장 사용

 전체 800만장 사용.

 

 푸른 방이 행사장.

 행사의 순서는 1400명 또는 1500명 초청인이 들어오고 만찬

 맨 나중이 왕과 수상자 들어옴.

 

 100년 가까이 행사장으로

 

 왕이 호스티.

 사회자 4사람

 

 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순서로 계단을 따라 나오고

 오페라와 연극을 보여줌.

 

 오르갠은 만개의 파이프로 만들어져 있으며 만찬이라고 해도 반찬이 잘 없음. 

 농사가 잘 안되어 3코스로 먹는 나라.

 삼페인, 와인, 꼬냑 4가지 술로 만찬.

 대화 삼가.

 

 정치이야기. 종교이야기. 돈이야기. 연애 이야기 안하기.

 왕이나 수상자 만나면 마음 문을 열 수 있는 이야기로 일등 이야기가 날씨 이야기.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이야기 2는 음식. 술. 아이스티.등등

 

 엘사 계단 올라가서 황금의 방으로

 복지의 나라.

 인체 공학에 가장 편한 계단.

 23.5케이 금 23만장으로 12년 걸림

 

 파트너와 와서 노벨상 시상식 때 이외에도 많은 행사 열림.

 멜라렌 여신.

 

 동양, 서양, 시청사.

 옥쇄. 권력. 명예. 왕권. 친위대 6명 따라다님.

 근대 시대. 1600년 말부터.

 조선시대 중기부터 고대 중세기

 

 십일조.

 조세는 교회가 관공서로 폴란드와 스웨덴 사이의 전쟁.

 프리스이나 여왕 10년.

 성 베드로 수녀로 왕실에 주교 만나서 살고

 베트로 구스타브 3세 세계 1차 대전 스웨덴 사회를 만든 사람.

 

 꽃이름.

 린네.

 온도계를 만든 사람.

 의사였지만 과학의 나라.

 생각이 많은 팔방미인. 

 1 ~ 2가지 생각으로 미래 창조.

 

 왕이 쓰는 다리.

 왕이 설자리 없음.

 왕의 자객.

 덴마크와 싸움.

 판사들한테 사죄.

 요리사 250명.

 

 의회실.

 수입의 22프로 세금으로 바이킹 요람에서 무덤까지

 기권 노랑, 파랑 찬성, 빨강 반대.

 

 

 ◐ 여행 당시 가이드가 말하는 것을 요약해서 적어 놓고 호텔에 오면 정리한다고 생각하고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이다.

 

 여행 당시 적어 놓았던 그대로 옮겨 보았다. .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노벨상을 만든 대단한 선조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돈을 많이 벌고 많은 일을 한 사람들이 많지만 노벨처럼 전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상을 만든 선조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다음 세대를 위하여 앞으로 노벨상같은 권위있고 다음 세대에게 진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나오리라고 확신한다.

 

 건물 하나를 지어도 200년 이상 사용하는 나라.

 

 다음 세대를 위한 마음이 이렇게 춥고 사람이 살기 힘든 못살던 나라를 위대한 나라로 만든 것이다.◑

<알프레드 노벨>

                                            출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에서

알프레드 베른하르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

  1835년 10월 21일(스웨덴 스톡홀름) ~ 1896년 12월 10일(이탈리아 왕국 산레모)은 스웨덴의 과학자(화학, 공학, 방위산업, 발명)이다.

 그는 고체 폭탄인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노벨상이 제정되었다

 

◆생애

◎유년시절과 유학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발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재주 있는 건축기술자로 알려져있다.

 발명하기에만 열중하는 아버지라 가정의 살림은 나날이 빈궁에 빠져 들어갔다. 

 1837년 노벨의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였다.

 거기서 기계공장을 세우고 처음에는 번창하였다.

 18세(1851년)에 미국에 유학하여 4년간 기계공학과 화학을 공부하였다.

 

 크림 전쟁(1853~56년)에 러시아가 패전하는 바람에 노벨의 아버지 공장도 파산하고야 말았다.

 아버지는 스웨덴으로 돌아가고 노벨은 러시아에 머물러서 연구를 하였다.

 이때부터 다이너마이트의 연구에 몰두하였던 것이다.

 후에 다시 노벨은 스톡홀름에 돌아왔다.

 이때 노벨이 혼자서만 연구한 것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와도 같이 연구했다.   스톡홀름의 공장이 폭발할 때는 알프레드의 동생 에밀이 희생한 일까지 있었다.

 

 

나이트로글리세린

 

나이트로글리세린을 연구하고, 이를 이용하여 다이너마이트를 발명, 1867년에 특허를 얻었다. 

 1869년부터 파리 연구소에서 연구에 전념하여, 1875년 무연 화약 발리스타이트를 발명하였다.

 이러한 발명 및 특허에 의해 그의 가문은 유럽 최대의 부호가 되었다.

 그러나 만년에 들어선 노벨의 마음은 슬펐다.

 자기가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새 문명을 건설해가는 어려운 공사에 이바지되는 것은 기뻤으나, 전쟁에 이용되어 많은 사람을 죽이는 힘이 되는 것은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평화운동 참여

 노벨의 평화에 대한 갈구는 아주 컸다.

 그래서 자기 비서가 평화운동에 참가해서 일할 때는 많은 돈으로 원조해 주기도 하였다.

 

노벨상

1896년 12월 10일 숨을 거두기 전 유명한 유언장을 남겼다.

 자기 재산에서 생기는 이자로 해마다 물리학, 화학, 생리학 및 의학, 문학, 평화의 다섯 부문에 걸쳐 공헌이 있는 사람에 상을 주라는 유언이다.

 세계의 평화와 과학의 발달을 염원해 오던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산은 스웨덴 과학 아카데미에 기부되었다.

 그 기부금으로 1901년부터 노벨상 제도를 설정하였다.

 이 상은 물리학·화학·생리·의학·문학·경제학·평화의 6개 부문으로 나누어 국적 및 성별에 관계없이 그 부문에서 뚜렷한 공로자에게 매년 수여하고 있다.

 

여생을 마치다

 노벨은 역설과 모순으로 가득 찬 인물로 남아 있다.

 비상하면서도 고독하고, 비관주의자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주의자였던 그는 현대전에 사용된 강력한 폭탄을 발명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에 이바지한 지적인 업적에 수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노벨이 열아홉살 때 외국 유학 도중 프랑스에서 한 여인을 사모하게 되었다.   그 후 이 소녀는 죽고 말았다.

 이 죽음의 상처로 노벨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1896년 이탈리아 산레모의 별장에서 여생을 마쳤다.

 

노벨박물관, 노벨륨

 그의 생애와 노벨상과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을 다루는 노벨 박물관은 스톡홀름의 구 시가지에 있다.

 주기율표 102번 원소인 노벨륨은 노벨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이다.

 

 

발명품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혼합한 안정한 규조토와 같은 물질을 만들었으며 그것을 좀 더 안전하고 사용하기 쉽게 변형하였는데, 이 혼합물들을 다이너마이트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냈다.

 

 발명 첫 해에는 잉글랜드의 레드힐 (서리주)에 특허를 내고 "Nobel's Safety Powder"란 이름으로 이름 짓기도 하였지만 '힘'을 뜻하는 그리스어인 다이너마이트란 이름으로 결정한다.

 

 노벨은 이후에 콜로디온과 유사한 니트로글리세린과 니트로셀룰로스 혼합물들을 섞은 혼합물을 만들었고, 후에, 투명하고, 젤과 같은 물질이면서 다이너마이트보다 더 강력한 젤리나이트 또는 블라스팅(blasting) 젤라틴이란 이름을 붙은 물질을 1876년 특허를 낸다.

 

 비슷한 혼합물의 호스트로 부터 유래된 것이지만 질산칼륨(potassium nitrate)를 추가하고, 다양한 그 외의 물질들을 추가한 점이 다르다.

 

 젤라틴은 보다 안정적이고 이동하기 편하고, 구멍을 뚫거나(드릴링)이나 채광(마이닝)에 좀 더 쓰기 편하게 구멍과 같은 홈에도 넣어 쓸 수 있었다.

 

 채광 역사의 표준으로 이 물질이 사용되면서 노벨은 엄청난 경제적 성공을 이루게 되었다.

스톡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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